강풀 만화 중에서


26년 전 빛의 도시 광주를,

5월 18일


빛의 면사포를 쓰고 새벽 창가에 서 있던

오월의 신부여! 우리, 눈부신 광주의 누이여!

저 바람재 푸른 새벽 바람을 간직한

붉은 꽃 화관, 그대 이마에 얹지노니

먼 훗날 바람 불어 바람꽃 피면 ;

남쪽으로 뻗은 비단길(錦南路)에 뿌린 우리의 피,

부글부글 끓는 그 피, 바람꽃 되면 ;

우리가 눈뜨고 맞은 이 새벽의 피 묻은 말들, 전하라.

하여, 우리가 이 새벽에 쏟아낸 피, 불꽃 되고 빛 되시라!

그리하여 먼 훗날 넋나간 이 역사, 믿을 수 없는 역사가

멍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혹시 아는가? 문득 눈에 띄는

이새벽의 이름들, 불멸의 광채로 깜박거리고 있을 지를


-황지우, <오월의 신부> 中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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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니름 있을 지도 모릅니다. ^^;

한줄 요약 :

하여간 남자들이란.

스파이더맨은 이제 원숙한 영웅이 됐습니다. 1,2편에서는 겨우 거리의 음유시인들에게서나 칭송받던 붉고 푸른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거미남은 이제 어린이들의 우상이며 여자들의 꿈이자 범죄 퇴치에 일조한 결과로 경찰청장 따님이신 아름다운 모델 지망생한테 뉴욕 시민 공로상을 받는데다가, 스파이더맨 티셔츠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기도 합니다.

피자배달을 하다가도 교통사고 당할 뻔한 아이들을 구출하던 순진한 영웅대신, 집에 경찰 무전기를 놔두고 위급상황이 생길때만 거미줄을 뻗고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여유'도 생겨버렸습니다. 어느새 '열심히'보다는 적당히, 그리고 '생색나게' 할 줄 알게 된거죠. 사실상 스파이더맨 활동은 '자원봉사'도 아닙니다. 피러 파커는 스파이더맨 전속 사진사로서 여전히 데일리 뷰글 지에 사진을 팔아 용돈을 챙기고 있거든요. 위험부담에 비해선 물론 적은 돈이긴 하지만 이익이 나오는 '일'이죠.

게다가 학교에선 이제 수업도 안빼먹는 우등생이며, 모델 지망생인 경찰청장 따님과 실험 파트너가 되니 적당히 친절하게 대해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여자친구 공연도 꼬박꼬박 챙겨봅니다. 2편의 정신없이 바빠서 불쌍한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매사에 긍정적이고 즐거우며 자신의 인기를 자랑스러워하는 피러 파커예요.

반면에 무대위의 스타로 이름 날릴 뻔하던 메리 제인 왓슨에겐 혹평이 쏟아지고, 결국 극단에서 퇴출됩니다. 좌절하는 그녀에겐, 이미 자신이 뭐든 잘 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차 있는 피러 파커는 정말이지 도움이 안돼요.

한 장면. 뭔가 대화를 하러 찾아온 메리 제인 왓슨은 대화 도중에도 계속 시끄럽게 떠드는 경찰 무전기를 가리킵니다.

"잠깐, 그거 좀 끄면 안돼?"

사고 소식, 곧 스파이더맨의 일거리이자 피러 파커의 사진 건수를 전해주는 경찰 무전기를 가리키며 메리 제인이 말합니다. 그러자 우리의 피러 파커는,

볼륨을 줄입니다.

메리 제인 왓슨과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 거미남, 피러 파커는 아주 평범한 보통 남자입니다. 여자친구는 자신만 바라보고 있을 거라 믿고 자신도 여자친구만 바라보고 있는 거라 믿으며, 언제나 여자친구와는 이렇게 저렇게 돼서 좋은 결말만 있을 거라고 혼자 망상에 잠겨 있었던 덕분에 실제로는 일이 틀어져도 어떻게 해야 할지 대처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우선이고 친구와의 관계 회복이 더 급하며 정작 그것 때문에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있어도 자신만큼 자기 여자친구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혼자 멋대로 상상하는 그런 보통 남자, 그게 피러 파커입니다.  

사실상 여자친구한테 잘해주는거라곤 '남자친구 있다' 라는 사실 확인밖에 없으면서 말이죠.

잘해준 것도 없으면서 '다른 남자가 있어' 라고 차이고 나자 찌질찌질, 다른 여자를 끌고가서 보란 듯이 앞에서 춤춥니다. 더욱이 화내면서 메리 제인을 때리기까지 해요. 너무 평범한, 어쩐지 사귀다 깨진 어느 커플에 대한 뒷담화 같은 피러 파커의 행동에 웃음마저 나옵니다. 친구가 '다른 남자'라는 사실을 알자 이젠 그렇게 좋아하던 친구도 막 때리고 말이죠. 어린애 같죠?

근데 거기 계신 여친 있는 남자분 당신은 어떤데요? :)

결론 : 커플 분은 꼭 보세요. 여자들은 남자들 심리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남자들은 자기 반성을 위해서 말이죠.

덧 : 어떤 글씨가 굵어보이는 건 아마도 눈의 착각일 겁니다. (생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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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겐 남동생이 있고,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가족입니다. 그러나 다리를 쓰지 못하는 정신과의사는 소녀와 대화하면서 이 집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부부의 침실이 두 개고, 남동생의 방도 두개이며, 소녀의 방도 두개입니다. 왜 그럴까요. 얼마 되지 않는 면적에 많은 방을 넣어두기 위해 온통 파란 색과 녹색으로 치장된 집안에는 계단과 복도가 이리저리 비틀려 있습니다.  

소녀를 쫒아다니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학교까지 찾아옵니다. 소녀의 아빠는 소녀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소녀에게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의 방에서 학교가 내려다보이는데, 소녀의 아빠는 소녀를 쫒으며 복도를 걷는 수상한 검은 옷의 남자를 호신용 라이플의 조준경으로 똑똑히 본 겁니다.

집에만 있어야 하는 소녀는 정신과 의사에게 끝으로 말합니다.

'저는 절대로 그 집에 낮에 있고 싶지 않아요.'

절박한 목소리에 대체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 어렵사리 소녀의 집에 찾아갔던 정신과 의사는 그 곳에서 완전히 모습을 바꿔버리는 소녀의 가족들을 보게 됩니다. 소녀가 학교에 갈 시간이면 귀여웠던 남동생이 부풀어올라 보기 흉한 고도비만 아이가 되어 온 입에 먹을 것을 처바르고, 엄마는 머리를 잔뜩 볶아올린 소름끼치는 피어싱 여자가 되어서 남동생에게 먹을 것을 부어줍니다. 아빠도 술병을 입에 물고 다니는 볼살 늘어지고 호통만 치는 남자가 되어서 소녀를 향해 '넌 누구냐. 왜 우리 딸같이 안생긴게 우리 딸 방에 있냐'고 외칩니다. 당장이라도 때려죽일 것처럼. 정신과의사는 간신히 원래의 소녀의 방에 숨어서, 행복했던 소녀의 옛 사진들을 살펴봅니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남자는 지금의 이 아빠가 아니에요.

소녀는 급히 아줌마같은 가발을 쓰고 얼굴을 바보같이 일그러트리며 헤실거리지만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이제 아빠는 집안 청소를 해야 한다며 온 집안에 흰 종이를 덕지덕지 붙이고, 그러던 와중에 가정방문을 온 소녀의 학교 교사에게 마침 잘 왔다며 학교 건물 안을 돌아다니는 수상한 남자를 보여주겠다고 베란다로 이끌고 갑니다. 라이플을 쥐어주고 조준경으로 학교 몇층 몇번째 창문을 보라고 하는 순간, 그 창문에서 불이 번뜩였고, 조준경에 눈을 대고 있던 교사의 머리를 총알이 뚫고 지나갑니다. 흰 벽지에 튀는 붉은 피. 소녀의 비명.

소녀의 아빠는 도망쳐야 한다며 아직 속옷차림이었던 소녀만을 이끌고 종이로 뒤덮인 문을 밀쳐 열고 밖으로 나갑니다. 거리에는 이미 붉은 경광봉을 휘두르며 교통 통제를 하고 있는 경찰들이 붉은 플라스틱 방패를 내밀어 길을 막고 서 있습니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양 차에 오르려 할때, 총성과 함께 소녀의 흰 속옷에 피가 튀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소녀를 잡습니다.

"내가 네 아빠다. 널 오랫동안 찾아왔다. 이제 돌아가자."

흉하게 일그러진 남자의 시체에서 흐르는 피가 소녀의 맨발을 감습니다. 소녀는 가발을 벗어던지며 조심스레 발을 들어 그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원래는 팀 버튼 영화의 색감과 달리의 질감을 합쳐놓은 것 같은 엄청난 이미지들이 폭주했는데 그걸 다 글로 표현을 못하겠는게 우울.
덧붙여서 소녀 역에는 어린 시절의 나탈리 포트만, 수상한 남자 역에는 에릭 바나가 수염을 기르고 나왔어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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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만 하겠소, 한마디만. 당신이 한 모든 말은 아마 다 맞을 거요. 난 항상 최악의 것을 알고 싶어하고, 그 다음에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하는 성격이오. 그래서 당신이 한 말을 하나도 부정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그렇더라도 한 가지 더 할 말이 있소. 우리가 꿈을 꾸었다고 칩시다. 그 모든 것들 ..... 나무와 풀과 태양과 달과 별과 그리고 아슬란님까지 모두 꿈이었다고! 혹은 우리가 지어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지어낸 것들이 내 눈에는 실제 사물보다 훨씬 중요해보인다는 점이오. 당신의 왕국이라는 이 검은 구덩이가 유일한 세계라고 합시다. 그런데 나한테는 어처구니 없는 곳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 아니오? 당신이 옳다면 우리는 그저 장난이나 꾸며대는 철부지 애들에 불과하오. 그렇더라도, 우리가 만든 가짜 세계가 당신의 진짜 세계보다 낫단 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난 가짜 세계 편에 있겠소. 설령 우리를 이끌어주는 아슬란 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난 아슬란 님 편에 서겠소. 설령 나니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난 나니아인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겠단 말이오. 따라서 저녁 대접을 받은 데 감사드리고, 이 두 신사와 아가씨가 준비됐다면 우린 즉시 당신의 성을 떠나 이 암흑 속에서 지상의 나라를 찾는 일에 평생을 바치겠소. 우리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오. 그러나 당신 말대로 이 세계가 그렇게 재미없는 곳이라면, 일찍 죽어도 그렇게 큰 손해는 아니겠지요."

-by 퍼들글럼, C.S. 루이스의 <은 의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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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사였던 거 같은데 한국 전래동화(뒤에 숫자도 붙었던 거 같은데 몇번째였는지는 모르겠어요)라는 제목이 붙은 책이 있었습니다. 아동문고치고는 글자도 좀 작은 편이고 지금 문고판 소설 정도 느낌이었던걸로 기억해요. 아마 초등학교 5~6학년이 적정 연령이었던 거 같은데 처음 읽었을 때 전 2학년이었습니다.

그 책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중에 기억나는 것중 하나가 '반쪽이' 연작이라고 해야 하나, 반쪽이라는 주인공을 소재로 하는 네편인가 다섯편의 이야기가 있었어요. 반쪽이는 날때부터 반쪽이라서 반쪽이라고 불렸습니다. 팔도 하나. 다리도 하나. 눈도 하나. 입도 하나. 귀도 하나밖에 없었대요. 대신 두 팔의 힘이 모두 한 팔에 옮겨 붙었는지 팔 힘은 굉장히 쎘대요.

반쪽이에겐 두 형이 있었습니다. 큰 형은 힘이 좋고 둘째 형은 영리했나봐요. 부모님은 두 형제를 지극히 사랑했지만, 반쪽이는 반쪽이라서 반쪽밖에 사랑하지 않았습니다.(이 대목에서 눈물이 왈칵 나왔던 것 같아요) 형들도 반쪽밖에 안되는 동생이 거추장스럽다며 어딜 가든 떼어놓고 둘이만 갔답니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영웅 신화입니다. 사람으로 둔갑하기도 하는 거대 호랑이가 아버지를 물어가고, 속임수로 두 형을 차례로 물어가면 반쪽이는 쫒아가서 그 무지막지한 팔힘으로 호랑이를 한방에 눕히고 배를 갈라 아버지와 두 형을 구출합니다. 왜구가 쳐들어와 현감의 딸을 납치하면 두 형이 전략을 짜내느라 고심하는 사이 반쪽이는 용맹하게 반쪽밖에 없는 몸으로 왜선에 올라 딸을 구출해옵니다. 그 외에도 오랑캐 두목도 눕히고, 아마 도깨비 왕도 눕혔던 거 같네요.

사람들은 모험을 떠난 반쪽이를 볼때마다, 반쪽밖에 안되는 청년이 뭘 하겠냐며 우습게 봅니다. 반쪽이는 바로 그런 틈을 파고드는 거죠. 다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하나밖에 없는 팔이 괴력을 발휘하는 거예요.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이야기를 계속 읽게 만들었었죠.

재미있는 점은, 평소에는 그렇게 홀대하던 부모님은 두 형이 모험을 위해 길을 떠날 때는 잘 다녀오라고 말하면서, 반쪽이가 뒤따라 가려고만 하면 울며 불며 말리더라는 겁니다. 그래도 반이라도 사랑은 하긴 했나봅니다. 너는 반쪽밖에 안되는데 형들도 못한 일을 네가 어찌 하느냐. 네가 가버리면 우린 아들 셋을 다 잃는거 아니냐. 그러면 반쪽이는 매번 담담하게 그러더라고요.

"염려 마십시오. 저는 반쪽이니 저를 잃어도 슬픔은 반밖에 되지 않을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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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들어올려 방패를 들지 못하는, 그래서 용맹한 스파르타 인이 될 수 없었던 에피알테스를 보면서 자꾸만 어릴때 읽었던 반쪽이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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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기형이거나, 어디가 좀 모자라면 버려집니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7세 때부터 시작되는 군사교육은, 어린 소년으로 하여금 굶주린 늑대를 함정에 빠트려 무력하게 버둥거릴때 서슴없이 찔러 죽이는 것을 당연하게 실행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저는 사람 목숨 동물 목숨 어느게 더 소중한지 몰라요. 적어도 비겁하게 좁은 틈으로 숨어들어간 소년 레오니다스는, 늑대보다 몇배는 흉칙해보였습니다. 저 시작부터.)

피를 가지고 웃으며 노는 남자들의 나라 스파르타를 향해 다가오는 것은 동방의 대국 페르시아가 보낸 대군. 흙과 물을 보내 충성의 서약만 하면 살던대로 살게 해주겠다는 사신의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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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질 한방에 묵과당합니다.

뭐가 이성이고 뭐가 자유입니까. 입으로 열심히 이성과 자유를 부르짖어도, 그들은 절대로 이성적이지도, 자유민이지도 않습니다. 출생부터 전사이길 강요당하는 그들이, 자유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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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출생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기형이라 스파르타를 떠나 자라난 이 사람. 에피알테스. 스파르타인으로서 싸울수 있다고 말하는 그를 레오니다스는 '불구의 손으로는 방패를 들어 네 옆의 동료를 지킬 수 없다.'며 내칩니다. 300개의 복근이 하나처럼 움직이는 밀집 진형이 스파르타 군의 강점이었죠. 혹독한 훈련으로 잘 정돈된 300개의 육체와 전혀 다른 이 사람에게 스파르타는 함께 싸울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기회따위 존재하지도 않았죠. 원래 스파르타에서 기형으로 태어난 그는 죽었어야 했으니까요. 스파르타에 그의 자리는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도, 스파르타에서는 전열을 이탈하면 죽고 맙니다.

레오니다스는 자신의 병사들이 노예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네. 아니에요. 하지만 그들은 독립된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스파르탄'일 뿐입니다. 레오니다스 자신이 늘 그렇게 부르잖아요. 300명밖에 안되는데도 이름을 불러주는 게 아니라 '스파르탄!'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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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 페르시아의 관대한 왕이며 '자칭 신' 크세르크세스는 레오니다스에게 스파르타의 방식을 존중해줄 테니 그저 충성의 맹세만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오히려 더 많은 명예를 보장하겠다고 하지요. 모든 그리스를 스파르타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그건 페르시아에게도 이로운 일이며, 사실 스파르타에게도 손해볼 게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스파르타의 원로와 흉한 몰골의 제사장들은 뒷거래를 했을 겁니다.

그러나 레오니다스는 굴복하지 않고 끝없이 싸웠습니다. 아니, 죽였습니다. 어린 시절 굶주린 늑대를 좁은 바위틈에 끼이게 하고 무력해진 늑대를 찔러 죽였을 때처럼, 그렇게 페르시아의 군대를 좁은 테르모필레 협곡에 끼워놓고 무력해진 그들을 300개의 복근으로 이루어진 창으로 찔러 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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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계에서 몰려든, 복색도 전투 방식도 다양한 페르시아의 군대를 보면, 크세르크세스는 진실으로 관대한 왕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그는 스파르타가 내친 에피알테스도 받아들였습니다. 두 팔이 없는 사람도 창도 방패도 들 수 없다며 버려지지 않습니다. 그의 군대에서는 두 팔이 없더라도 양 팔에 칼날을 손 대신 붙이고 사형 집행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몇배는 거구인 사람도 그의 군대에서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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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관대하지 않나요? 그렇게 관대했기에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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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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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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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에게도 무제한적인 충성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들이 노예라서가 아닙니다. 어리석어서도 아니에요. 크세르크세스를 위해 엎드려 몸으로 계단을 만들어주는 노예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왕은 신이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다른 인간과 모습이나 복색이 다르더라도 자신의 군대로 인정해준다. 그런 믿음 말이예요.

적어도 다양한 문화권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인정해주는 크세르크세스는, 팔을 들어올리지 못하는 에피알테스를 내친 레오니다스보다 300배는 관대한 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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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알테스를 받아들인 다음에도, 악귀처럼 자신의 병사들을 학살하고 있는 300명의 '스파르탄'을 죽일 기회가 왔음에도 그는 죽이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손을 내밉니다. 그러나 레오니다스는 창을 던집니다. 정말이지 말이 안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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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신으로 만들어 비로소 저 수많은 다양한 인종과 출신의 백성들에게서 충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크세르크세스는 뺨을 스치며 자신의 피를 낸 레오니다스의 창으로 말미아마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신이 아니고, 신성을 잃어버린 페르시아 군대는 흩어질 수밖에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오리엔탈리즘을 말하는 사람들을 경멸합니다. 이 영화의 괴물은 스파르타예요. 페르시아가 아닙니다. 그들의 잘 정돈된 육체. 다비드의 그림에서처럼 아름답게 정돈된, 암포라에 새겨진 무늬처럼 단정한 300개의 육체가 바로 대화도 통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인간을 죽여대는, 물리쳐야 할 괴물인 겁니다. <에일리언>의 단 한 마리 에일리언, <고질라>의 단 한 마리 고질라, <괴물>의 단 한 마리 괴물처럼요.

그리고 그 괴물은 죽지 않았습니다. 100배로 불어나서 돌아왔습니다. 그리하여 페르시아는 쓰러졌고, 서구 문명은 팽창했고, 자신들이 올바르다고 믿으며 세계를 지배하려 들었죠. 페르시아처럼 상대방을 인정하는 관용도 없이, 자기네처럼 정돈된 복근을 갖지 못하면 죽여버리면서. 헬레니즘은 그렇게 확장되었습니다.


자기네처럼 흰 피부를 갖지 못하면 죽여버리면서. 자기네처럼 하느님을 믿지 못하면 죽여버리면서. 자기네처럼 과학적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면 죽여버리면서.

지금도 그렇게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혹평하는 사람들은 괴물같은 페르시아와 조각상같은 스파르타의 대조가, 너무 단순한 미적인 악과 선의 대조를 통해 역사를 왜곡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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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가 야만적으로 묘사되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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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라고 별 다르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아가 괴물같은 자들로 이루어졌다? 외모가 어떻게 다르든, 그들 모두의 신 크세르크세스의 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페르시아가 저는 스파르타보다 몇배는 이성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의 외모에 눈살을 찌뿌렸던 지금 거기 있는 당신! 그들의 외모가 '악'을 나타냈다고 믿는 지금 거기 있는 당신은 어쩌면 정돈된 신체를 갖지 못하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인간은 누구나 다르게 생겼습니다. 조금 많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네. 송곳니가 좀 튀어 나올 수도 있고, 덩치가 무지하게 클 수도 있고, 팔이 없어서 칼을 팔대신 끼울 수도 있는겁니다. 다 인간이에요.  그러나 그 모두를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 포섭하는 법을 페르시아와 로마, 한 등 대제국들이 멸망해버린 후 암흑시대부터 '다시' 지난 2000년간 배웠습니다.

아직도 덜 배웠어요.

그러니까 이 영화를 인종주의나 오리엔탈리즘으로 보고 있는 여러분들 자신이 인종주의자인 겁니다. 나치식의 인종주의자이기에 여러분들은 이 영화가 묘사한 페르시아의 그 다양성이 나타내는 아름다움을 이해 못하는 겁니다. 얼굴 한쪽이 일그러진 여자도 여성으로서 인정받고, 절룩거리며 왼팔도 제대로 못쓰는 에피알테스도 남자로서 성욕을 채울 수 있게 해주는 크세르크세스의 처우는 분명 '정당'합니다.  

단지 모습이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크세르크세스의 그 온화한 목소리를 가식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관대함은 '영화 속에 근거가 눈에 빤히 보이는데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생각과 같은' 모습을 가진 레오니다스의 입에서 나오는 자유와 이성에는 '영화 속에서조차 근거가 하나도 없는데' 거짓말이며 가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건가요?

제가 마음에 안들었던 부분은 딱 한가지입니다. 레오니다스의 죽음 직전의 연설. 노예와 자유민의 대비는 <알렉산더>와 같은 영화에서도 나왔습니다. 참 이놈의 연설 하는게 우스워요. 그 시절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가치를 그 시대 사람의 입으로 말합니다. 어차피 다 거짓말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남자들 군대가면 흔히 듣는 말이 인권을 보장 받으려면 한 사람 구실을 하라는 소리예요. 즉, '자진해서 복종하는 것이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거죠. 똑같은 헛소리인 겁니다. 영화에는 '접전 직전 사령관의 연설'이 참 많이도 나옵니다. 아무래도 선동적인 분위기를 조장하고 관객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내심 응원하게 만들기 좋은 방식이긴 합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령관 연설' 장면은 <매트릭스 : 레볼루션>에 나오는 캡틴 미퓨네의 연설이에요. We give them HELL before we die! 짧고, 명료하죠. 레오니다스도 조금만 더 짧게, 괜히 자유니 어쩌니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했다면 좋아했을 텐데요.  

어쨌든 저 한가지 단점만 제외하면 300은 분명 '공정한 시각으로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린' 잘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는 여러가지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한 영화를 보는 그 각도는 그 사람의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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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레무리아 온라인 구상

덧붙임이랄까 구체화랄까. 어쨌거나 쓸데없는 망상인 건 같습니다.

*. 게임의 목적은 퀘스트 수행과 그 외 다양한 방법을 통한 호감도의 증가와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캐릭터(NPC와 PC 포함) 간의 관계 향상 ─ 길드 생성, 사귐과 결혼, 자녀 입양, 유산 상속, 스킬 전승 등 ─ 과 그로 인한 보상입니다. 사회레벨 개념은 철폐,  1대1 관계의 호감도만 계산합니다. 레벨업은 어떠한 형태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 호감도 정보창에는 현재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위 100명의 리스트가 표시됩니다. PC와 NPC를 모두 포함합니다. 단, 자신에게 특정 캐릭터가 얼마나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는 그 캐릭터로 로그인하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덧붙여서 GM에게 물어봐도 가르쳐줄 수 없습니다. :)

*. 퀘스트를 수행해주면 해당 NPC에 대해 호감도가 올라갑니다. 퀘스트 수행에 실패하면 호감도가 내려갑니다. 빠르게 성공할 수록 호감도는 많이 올라갑니다. 파티의 경우, 파티 리더가 퀘스트를 받으면 모든 파티원이 자동으로 퀘스트에 참가하게 됩니다. 파티는 최대 5명까지 가능합니다. 파티를 이루고 퀘스트를 수행하여 성공하면 모든 파티원에 대해 호감도가 올라갑니다. 실패하면 파티원에 대한 호감도가 내려갑니다. 파티 리더는 다른 파티원에 비해 조금 더 호감도를 받습니다.

*. 아이템을 선물하면 해당 캐릭터에 대해 호감도가 올라갑니다. 단 아이템의 가격과 상관없이 매 횟수마다 올라갑니다. 거절당한 경우에도 호감도의 감소는 없습니다. 같은 종류의 아이템을 반복해서 선물할 수록 점점 호감도의 증가 정도는 줄어들고 곧 0이 되므로, 한 가지 아이템으로는 호감도를 그다지 많이 올릴 수 없습니다.

*. 호감도 수치는 음으로 내려가는 경우 약간 적대적, 적대적, 매우 적대적, 철천지원수로 구분되며, 양으로 오르는 경우 약간 우호적, 우호적, 매우 우호적, 확고한 친구, 그리고 이성인 경우에 한해(동성도 가능하게 해버릴까요?) 연인, 부부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NPC는 기본적으로 매우 우호적이 되기 전에는 PC에게 아이템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또한 연인, 혹은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프로포즈를 하여 특정 퀘스트를 수행해야 합니다. 연인 프로포즈는 약간 우호적일 때부터 가능하지만 부부 프로포즈는 연인일때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 한 서버 안에 한 NPC와 연인이 될 수 있는 캐릭터는 단 하나입니다. NPC가 부여하는 프로포즈 퀘스트는 일반적으로 대단히 어려우며 파티 플레이가 불가능합니다!

*. 플레이어 캐릭터도 퀘스트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마스터 레벨의 스킬을 가진 경우 스킬 퀘스트를 부과할 수 있고, 프로포즈를 받은 경우 퀘스트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퀘스트를 수행하면 호감도가 비약적으로 올라갑니다. 프로포즈 퀘스트의 내용은 특정 아이템을 가지고 오는 것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구현 불가능)

*. 부부간인 두 캐릭터는 합의 하에 자녀 캐릭터를 입양할 수 있습니다. 다른 PC일 수도, 어느 한쪽 캐릭터와 같은 계정안의 다른 캐릭터일 수도 있습니다(이 경우에는 출산이 되나요?). 자녀 캐릭터에게 부부 캐릭터는 가지고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 레벨 만큼 스킬마다 각기 한번의 퀘스트 수행으로 전승해줄 수 있습니다.

*. 대화창에 명령어를 입력하여 발동되는 감정 표현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대상 캐릭터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조롱이나 야유, 모욕은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저하시키고, 축하나 박수, 웃음이나 안아주기, 키스(연인 이상에서 가능) 등은 감정 상태를 고양시킵니다.

*캐릭터의 감정 상태에 따라 호감도의 증가량에 차이가 있습니다. 음식을 먹거나 감정표현을 받는 경우, 혹은 공연 스킬 효과나 마법 스킬의 효과를 통해 감정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감정 상태는 우울증. 불쾌함. 짜증. 보통. 평온. 즐거움. 조증으로 나눠집니다. 짜증 상태에선 호감도가 매우 적게 증가하고, 불쾌함의 상황에서는 호감도가 증가하지 않으며, 우울증인 경우 보통일때의 증가량에 비례하여 오히려 호감도가 감소하므로 호감도와 관련있는 활동을 할때는 상대 캐릭터의 감정 상태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 생명력, 마나, 체력, 지능, 기력 등 캐릭터의 능력에 관계된 수치는 하나도 없습니다. 대신 시야 개념이 있습니다. 캐릭터는 다음과 같이 도식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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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캐릭터의 포트레이트가 나타납니다. 현재의 감정상태도 볼 수 있습니다.
2. 캐릭터의 현재 생명력이 최상, 건강, 일반, 약화, 고통, 사망으로 나타납니다. 3~6의 상태에 따라 한쪽이 중상이나 절단인 경우 약화와 고통을 거쳐 사망에 이릅니다.
3, 4. 장비를 착용하고 사용하는 두 팔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최상부터 일반, 경상, 중상, 절단까지 나타냅니다. 장비의 사용 효율을 볼 수 있습니다. 최상의 경우에 100% 장비 사용율을 보이며, 절단일 경우 장비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공격당하거나 피로가 누적되면 부상에 이릅니다.
5, 6. 두 다리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최상부터 일반, 경상, 중상, 절단까지 나타냅니다. 최상일 경우 이동속도 100%, 상태에 따라 그 방향의 이동속도가 저하됩니다. 한쪽이 절단되면 그방향으로 이동할 수 없고, 모두 절단되면 이동할 수 없습니다. 공격당하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부상당합니다.

*. 타겟팅을 하지 않기 때문에, 화면 중심에 나타나는 "시야 점"에 따라 모든 활동의 효과가 결정됩니다. 즉, 한 캐릭터의 "시야 점"이 팔과 다리 머리 몸통 등 어디에 위치하느냐와 그 거리에 따라서 그 캐릭터의 모든 스킬사용이 다른 캐릭터에 영향을 미칩니다.

*. 예를 들어 댄싱 스킬의 사용은 자신의 캐릭터 상에 시야점을 두고 있는 모든 캐릭터에게 초당 일정 비율의 호감도를 증가시킵니다. 음악 스킬의 경우 소리가 들리는 거리 이내의 모든 상대에게 호감도를 증가시키지만 자신이 시야점을 두고 있는 상대가 자신에게 시야점을 서로 두고 있는 경우 특히 더 많은 호감도를 집중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바라보며 성의를 다해 연주해 보세요.

*. 사격과 투척, 마법 등 원거리 공격 스킬의 사용은 시야점이 상대 캐릭터의 어디에 맞춰져 있느냐에 따라 경상과 중상이 결정됩니다. 힐링 스킬의 사용 또한 시야점을 상대 캐릭터의 부상을 입은 부위에 집중해야 빠른 효과를 보입니다. 검술 스킬을 비롯한 근접 공격 또한 마찬가지. 공격과 방어의 위치와 방향은 시야점과 그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결정됩니다. (구현 불가능. 팔 다리 부상 효과의 경우 확률적인 디버프 개념으로 구현은 가능.)

*. 일반 스킬의 사용은 해당 단축키를 눌러 활성화하고 사용할 방향으로 시야점을 조정한 후 마우스를 클릭하면 이루어집니다. 전투 계열 스킬의 경우 마우스 왼쪽 버튼이 공격, 오른쪽 버튼이 방어입니다. 공연 계열 스킬의 경우 활성화와 동시에 스킬이 사용됩니다. 생산 스킬의 경우 해당 단축키를 누름과 동시에 미니게임창이 열립니다. 정교한 마우스 클릭과 운이 생산 결과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필요한 아이템을 소지하고 있다면 미니게임의 결과에 따라 해당 아이템을 자동으로 소모하여 생산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스킬은 한 캐릭터가 최대 10개까지 배울 수 있습니다. 그 이상 배우기 위해서는 전에 배웠던 스킬을 포기해야 합니다. 모든 스킬은 퀘스트 수행을 통해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초급 레벨부터 견습, 중견, 상급, 마스터 레벨까지 각 레벨은 5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마스터 레벨이 되려면 총 25개의 퀘스트를 마쳐야 합니다. 마스터가 되면 다른 캐릭터에게 초급 레벨 스킬을 부여하는 퀘스트를 줄 수 있습니다. 당연히 NPC와 마찬가지로 퀘스트를 수행해주면 호감도가 올라갑니다.

*. 스킬의 효과는 단계를 거칠때마다 강화됩니다. 예를 들어 체술 스킬의 경우 처음에는 보통 캐릭터보다 조금 높이 뛰어오르거나 약간 높은 위치의 목표물을 붙잡고 매달릴 수 있는 정도지만, 마스터 레벨이 되면 시야점을 조절함에 따라 캐릭터 키의 몇 배, 혹은 몇십배를 뛰어넘을 수도 있습니다.

*. 장비는 내구도 이외에 아무 수치가 부여되지 않습니다. 즉 특정 장비를 들었다고 공격력을 강화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다만 중급 3랭크의 검술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중급 3랭크에서 들 수 있는 도검류를 들어야 하고, 상급 2랭크 음악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급 2랭크에서 가능한 악기를 들어야 할 뿐입니다. 물론 둔기 스킬이나 격투 스킬의 레벨 여하에 따라 악기도 무기로 쓸 수 있습니다. 단 내구도를 얼마나 버티는가가 문제겠지요. 아이템의 가격은 오직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가에 달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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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기억날때마다 덧붙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대부분은 지경사 어린이 문고나 창비 아동문고에서 나온 이야기들일 겁니다.

1. 큰 새 작은 새

금슬이 좋지만 아이가 없던 어느 부부가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정성들여 기도를 했더니 아이가 생겼습니다. (아마 새의 깃털을 가져다가 댓돌위에 얹어놓으면 된다는 식의 산신령이나 선녀의 계시를 받았을 거예요. 기억이 정확하지가 않네요.) 남매를 낳게 된 부부는 각기 큰 새와 작은 새라는 이름(네이밍 센스하고는)을 지어주고 금이야 옥이야 길렀답니다. 네 식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걸로 끝나면 좋았을 것을, 작은새가 시집을 간 뒤에야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비가 오는 날 큰새의 나막신 바닥이 젖지 않았다든가, 날아다니는 사람을 보았다는 마을 사람들의 수근거림이라든가. 이게 큰 일인 것이, 당시에 날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역적이라는 국법이 정해져 있었거든요. (도대체 왜!) 결국 아버지는 어느날 큰새를 붙잡고 술을 마시며 잠을 재운 뒤 옷을 벗겼습니다.
진짜로 날개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큰새가 역적으로 몰려 잡혀가고 가족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불에 달군 칼로 그 날개를 잘라버리려 하지만 그 때에 큰 새가 깨어나버립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함부로 할수 없거늘 그 부모가 자식의 몸을 해하는 법이 어딨냐면서 큰새는 하소연을 하고, 아버지는 그냥 칼을 놓고 우네요.
비밀로 하고 앞으로 절대 날지 않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집간 작은 새에게도 날개가 있었습니다. 시부모는 서슴없이 작은새의 날개를 잘라버렸고, 덧붙여서 큰새가 날아다니는 사람, 역적이라고 관아에 일러바칩니다. 포상을 노렸지만, 한통속이 아니냐며 시부모와 남편과 같이 작은새는 투옥당합니다.
큰 새의 집을 나졸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아버지 명령대로 나무위에 숨어있던 큰 새는 부모님을 마구 대하는 나졸들에게 분노해 날아오르며 내가 잘못했다면 나를 잡으라고 외치고, 온 몸에 화살을 맞고 떨어집니다.
그 사이, 작은새는 날개가 잘린 자리가 썩나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옥사하고 말았습니다.

날아다니면, 날개가 있으면 어째서 역적이었던 걸까요. 어린 마음에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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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3 - 최후의 전쟁에 나오는 엔젤과, 그의 날개를 없애기 위해 돌연변이 억제제 '큐어'를 개발한 그 아버지를 보면서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2. 호랑이가 된 효자

옛날 어느 마을 선비에게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1000일동안 하루에 하나씩 소의 생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의원의 처방에 좌절하던 선비는 어느날 결심하고 주역을 펼쳐 둔갑술을 시행합니다. 아내가 잠든 사이 몰래 호랑이로 변신하여 소를 잡아와 마당에 던져놓고는, 다시 몰래 방으로 들어가 잠든 척 하다가 아침에는 마당에 놓인 소를 보며 아내와 함께 놀라주는 거예요.
어머니는 차츰 차도가 있는 것 같았고, 선비는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계속 밤마다 호랑이가 되어 조선 팔도를 누비며 소를 잡아오는 이중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문제는 이게 햇수로 3년씩 계속되다보니 아무래도 아내가 눈치를 채지 말이죠. 덧붙여서, 팔도를 가리지 않고 소가 매일매일 없어지다보니 나라에서도 이게 무슨 괴현상인가 싶어 조사를 하러 다니는 형편이었지요.
999일째 밤, 먼저 잠든척 하고 있던 아내가 몰래 밤에 밖에 나가는 남편을 뒤따라갔습니다. 마을 어귀 한적한 곳에서 옷을 벗어 숨겨놓고 주역을 펼쳐놓고 주문을 외우니 커다란 호랑이로 둔갑해버리는 걸 보고는 아내는 기절하듯 놀랐습니다. 여태 지성으로 섬겨온 남편이 호랑이라니! 여우가 사람 놀이를 하듯이 호랑이가 사람으로 변해서 여태 자신과 어머니를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했던 아내는 나라에서 찾는다는 소도둑이 남편이 아닌가 싶어 관아에 신고를 해버렸어요. 물론, 두번다시 사람으로 둔갑하지 못하게 옷과 주역책을 태워버리고요.
쿵. 마지막 한마리의 소를 던져놓고 사람으로 돌아가려고, 이제 두번다시 호랑이로 변신하지 않으려고 가벼운 걸음으로 마을 어귀로 갔던 선비는 아무것도 없는걸 보고 기절하듯 놀랐습니다. 사람이 될 수 없는 거예요! 그 때 아내가 나졸들을 데리고 와서 자신이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가슴이 터질 지경이지요. 이 바보같은 아내야. 오늘이 마지막인데! 하지만 아무리 외쳐봐야 호랑이가 어흥 하는걸로 밖에 안보이는 겁니다. 그길로 선비는 도망을 쳤습니다. 정말로 호랑이가 되어서 산짐승을 잡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와 뼈를 씹으며 울던 그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옵니다. 나졸들이 다 포위하고 있는데 당당하게 들어오다가 결국 어머니 방 문앞에서 창에 찔려 죽고, 그제야 사람으로 돌아갔습니다.
거의 다 나았던 어머니는 비참하게 죽어있는 아들을 보고 충격받아 세상을 떠버렸고, 아내는 자신이 호랑이가 아니라 사람이었던 남편을 죽게 했다는 사실에 자살하고 말았답니다.

전래동화의 호랑이 이야기는 자주 호랑이가 죽는걸로 끝납니다. 은혜 갚은 호랑이(목에 걸린 비녀를 뽑아주었더니 아내감도 업어다주고 벼슬거리도 업어다주고 했다는 암호랑이 이야기). 효자 호랑이(나무꾼을 잡아먹으려다 예전에 잃어버린 형 아니냐는 거짓말에 속아 나무꾼의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던 호랑이). 어느 쪽이든간에요.

아내는 왜 남편이 호랑이면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까요.
자신에게 인간인 남편으로서도 잘못한 게 없고 혼을 빼가는 것도 아닌데 단지 '호랑이'라는 이유만으로 잡으려 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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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아니지만 표범으로 변하는 이 언니를 키우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네. 아마 이런 동화들 때문일거예요. 저는 사람 목숨 동물 목숨 어느게 더 귀한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드래곤 라자를 읽으면서도 드래곤 라자(드래곤과 뜻을 통하는 사람? 대충 그런 의미였던 기억이)가 있는데 왜 말 라자는 없을까, 드래곤은 왜 인간 라자를 따로 두지 않는가. 오크는 드래곤 라자가 되면 안되나. 인간과 엘프와 오크와 페어리와 드래곤 등등 각 종족을 나타내는 별이 있다면, 왜 말을 나타내는 별과 나무를 나타내는 별과 개를 나타내는 별은 없는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길에서 지내는 고양이들을 막 대하고 흉물이니 요물이니 하는 걸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그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학대하는 이들과 뭐가 다른가 생각이 듭니다.

하기야, 자신 이외의 존재를 '이용대상'으로 절대로 보지 않고 모두 동등하게만 바라보면 살 수가 없겠죠. 생명이 있거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못먹을 테니까요. 어쩔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긴 합니다.

'인간의 맘에 드는 자연이란, 인간에게 이로운 자연일 뿐'이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있었죠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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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요?

그럼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해요? 내가 착하지~, 착하지~, 하고 위로해줬으면 좋겠어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사람들도...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쓸쓸한건 쓸쓸한 거라고요.

말로 할 수 있는 쓸쓸함은 누군가가 위로해줄 수 있어요.

하지만 말로 하지 않는 슬픔은 스스로 뛰어넘는 수밖에 없어요.


 - by 스이세이세키, <로젠 메이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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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편이 적군의 열 배가 되면 적을 포위하며, 이편이 적군의 다섯 배가 되면 적을 정면공격하고, 이편이 적군의 두 배가 되면 적군을 분산시켜 공격하라. 이편이 적군과 세가 비등한 경우는 전력을 다하여 싸우며, 만일 이편이 적보다 약간 약세라면 퇴각하고, 이편이 적보다 아주 열세이면 적과 접전하지 말고 전투를 피하라. 왜냐하면 열세한 편이 피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어 완강하게 싸우더라도 결국에는 우세한 적군의 포로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十則圍之, 五則功之, 倍則分之,

敵則能戰之, 小則能逃之,

不若則能避之,

故小敵之堅, 大敵之擒也.

- <손자병법>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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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기어스 - 반역의 루루슈 제 22화를 보고

(미리니름 대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절대로 읽지 마십시오.)

이글루스 애니 밸리도 그렇고 네이버 블로그들도 그렇고 온갖 곳에서 루루슈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드높습니다. '일본 특구'라는 취지 좋고 호응 좋고 전례없는 행사를 처음부터 망가트리기 위해 그 곳에 갔다는 것부터, 어이없는 실수로 유피를 살인마로 만들고는 주저없이 유피를 적으로 선언하며 죽이라고 명령하는 등, 욕먹을 짓을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22화의 가장 가련한 피해자는 영문도 모른 채 학살당한 일본인도, 학살의 주범으로 전락해버린 유피도 아닙니다.

이제 계속 발동하는 자신의 기어스를 통제할 수 없게 된, 영영 제로의 가면을 벗을 수 없게 된 루루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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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화 마지막 장면. 영영 꺼지지 않을 기어스의 불꽃 아래 흐르는 눈물.

네. 이제 루루슈는 가면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은 맨얼굴로는 이제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것, 곧 루루슈 란펠지의 삶, 덧붙여서 루루슈 비 브리타니아의 삶도 이제 영원히 끝장났다는 겁니다.

어렸을때 저는 슈퍼맨 영화를 TV에서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저런 힘을 가지고 뭐하러 저렇게 무보수 봉사활동만 해야 하는 거지. 나라면 차라리 저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겠어. 악당으로 몰려 전 세계로부터 탄압? 내가 지배하는 게 더 세계를 위하는 것인양 그 힘으로 꾸미면 돼. 그래서 부모님도 삐까번쩍하게 살 수 있게 해드리고, 친구들하고도 최대한 재미있게 놀거야. 어렸을 때니까 가능한 생각이죠. 지금 소중한 것을 그대로 가진 채 아무도 그걸 빼앗지 못하게 세계를 바꿀 수 있다. 남자애들은 이따금 하는 얘기입니다. 왜 이런 개인사적 얘길 하냐면,

루루슈, 겨우 고등학생이거든요.

생각해보세요. 전투가 체스처럼 진행될거라고 믿다가 실전을 수도없이 겪은 코넬리아에 의해 간단히 격파당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를. 그리고 제로와 흑의 기사단이 발족했을때의 그 퍼포먼스. 그 분위기. 다분히 아이다운 발상 아닌가요? 아니 그보다, 기어스 능력자가 되었다는 걸 안 그 순간 '여동생 나나리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타도 브리타니아를 부르짖으며 행동에 들어갔다는 것부터가 다분히 아이나 할 법한 생각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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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파이더맨> 중에서


어느날 갑자기 슈퍼 거미에게 물린 피터 파커에게는 아버지처럼 키워준 삼촌이 있었습니다.피터 파커는 어린애처럼 메리제인에게 잘보이려고 차를 사기 위해 그 힘을 이용할 수 있는 프로 레슬링 알바를 뜁니다. 하지만 레슬링 관계자는 돈을 주지 않았고, 복수심으로 그는 레슬링 사무실을 턴 강도를 놓아줬다가 그 결과로 소중한 삼촌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그는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되었죠. 어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루루슈는 어떤가요. 어머니는 죽어버렸고 아버지는 그를 방목해버렸습니다. 세계 자체인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제를 아버지로 두고도 루루슈는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집니다.(그리고 이 점에서, 황제는 루루슈를 제대로 평가했습니다. 정말로 루루슈는 약한 인간이었으니까요) 그의 주변에는 지켜줘야 하는 여동생 나나리 뿐이었어요. 자신도 어린 아이면서 어른의 흉내를 내야 했던 이 소년에게 어느날 갑자기 기어스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한번도 자라볼 기회가 없었던 아이 루루슈는 마음껏 그것을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피터 파커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요. 그리고 그 결과로 소중했지만 몰랐던 이들을 전부 잃어버리기 시작합니다. 바로 22화 지금.

좀더 끔찍한 것은, 루루슈는 자신이 기어스를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기어스가 자신을 통제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노력하지 않고 얻은 힘은 힘이 아니라 재앙일 뿐입니다. 기어스는 재앙입니다. 쥬라기 공원의 공룡들처럼.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처럼. 타이타닉의 빙산처럼. 모든 이야기에서 재앙이 언제나 그렇듯 기어스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은밀하게 아는 사람만 알고 있어요. 그리고 서서히 재앙은 영향을 퍼트리기 시작합니다. 비렛타와 우리 불쌍한 '오렌지' 경을 비롯해 루루슈, 그리고 제로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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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화 중 한 장면. 유페미아 황녀의 예고없는 등장으로 대혼란에 빠진 학교에서 혼자만 계속 기어스 명령대로 벽에 표식을 남기는 소녀.


루루슈에게 주어진 기어스에 대해 다시 한번 짚어봅시다. 루루슈 자신이 수많은 사람들을 실험 대상으로 연구한 스펙을요.

1. 한 사람에게 단 한번만. 철회는 불가능.

2. 당사자는 해당 행동에 대해 기억상실.

3. 발동 시간은 무제한. 조건이 달성되면 끝난다.

처음부터 기어스는 사용은 할 수 있지만 통제는 할 수 없는 겁니다. 통제란,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한다 안한다 뿐 아니라, 그 결과까지 책임질 수 있는 것을 말해요. 한번 시작되면 철회할 수 없고 중단시킬 수도 없다. 그런게 바로 재앙이죠. 루루슈라는 방출구를 갖게 된 재앙이 서서히 퍼져나오다가 마침내 유페미아 앞에서 폭발한 겁니다. 이건 우연한 일도, 예견할 수 없었던 일도 아닙니다.

우린 이미 무한으로 발동하는 기어스 때문에 미쳐가는 마오를, 그의 죽음을 보았잖아요.

루루슈에게 남겨진 것은 이제 마오와 같은 파멸 뿐입니다. 이미 소중한 것을 많이 잃고 나서야 진정 옳은 것을 하게 된다는 스파이더맨의 선택지는 그에게 불가능합니다. 그는 '전부' 잃었으니까요.

아름다운 이상을 품었던 순수한 소녀 유페미아의 끔찍한 최후에 건배를.

죽어버린 루루슈와 그를 삼켜버린 제로에게 애도를.

그들을 죽인 것은 어느 누군가 한 인간의 의지가 아닌, 기어스라는 이름의 재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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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멀지 않은 옛날입니다. 카세트 테이프가 들어가는 286 컴퓨터와 재믹스 게임기, 롤러가 달린 스케이트보드, 조그만 장난감들이 들어 있는 100원짜리 캡슐 뽑기와 소아과 병원에서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용 주사기의 시절입니다. 간호사가 꿈인 소녀는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해서 늘 수많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오빠도 있고 남동생도 있고 말썽꾸러기 여동생도 있어서 네 남매였는데요. 어느날 동네에 나타난 마법사 복장을 한 남자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폭죽 구경을 시켜주며 공룡모양 풍선과 솜사탕과 스케치북을 팔았습니다. 남자의 손에서 나무젓가락에 한올한올 감겨나가는 솜사탕을 몇 시간이고 신기한 듯 바라보던 여동생 덕분에, 소녀는 남자에게 특별한 스케치북을 선물받습니다.

"이건 말이다. 아주 특별한 거란다. 여기에 그림을 그리면, 뭐든 다 실현되지."

물론 남동생은 티라노사우루스 모양 풍선을, 오빠는 뽑기에서 당첨되어 깨끗한 새 스케이트보드를, 여동생은 신비의 솜사탕이라고 딱지가 붙은 비닐포장에 쌓인 은회색 솜사탕을 선물로 받았답니다.
 
그런데 다음날 소녀가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남동생이 모든 스케치북을 온통 먹물로 망쳐놓은 겁니다. 한바탕 난리가 났고, 소녀는 마지막 한장만 남은 그 특별한 스케치북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때 돌아온 오빠는,

"괜찮아. 한 장은 남았잖아. 여기에다 그림을 그리는 거야. 먼저 그리기 전에, 뭘 그릴지부터 잘 생각해보고. 그럼 버리지 않아도 되잖아?"

소녀는 울음을 그치고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오빠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케치북을 손에 꼭 쥐고요. 그리고 가벼운 스케치와 함께 이야기가 시작됨에 따라 네 남매는 순식간에 소녀의 상상속에 있던 사막으로 함께 떨어집니다.

"누나땜에 그래!"/"언니 땜에 그래!"
"그만 해 너희들!"

자신을 둘러싸고 옥신각신하는 형제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소녀는 몰래 그들 곁을 떠나고, 갈 길도 모른 채 정처없이 걷다가 어느 계곡에서 커다란 풍선 공룡들과 마주칩니다. 네 발로 지면을 울리며 무리지어 걸어가는 거대한 폴리프로필렌 풍선들. 그리고 그 사이로 뛰어드는 투명한 재질의 사람 키만한 작은 풍선 공룡. 도망치던 소녀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와서 구해준 오빠 덕분에 간신히 자리를 벗어나지만, 막다른 동굴에서 구해준 건 남동생이 갖고 있던 커다란 티라노사우루스 풍선이었습니다. 펑펑 터지는 얇은 비닐 풍선들.

그 동굴안에서 그들은 늘 갖고 싶었던 것을 발견합니다. 게임 팩이 푸른 비닐봉지에 하나가득. 캡슐에 들은 사탕이 까만 비닐봉지에 또 하나가득. 그리고 주사기 세트가 하얀 비닐봉지에 하나가득.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갖고 싶지 않아 해요. 그들이 원하는건 집에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배고픔을 못이기고 손에 들고 있던 포장된 은회색 솜사탕을 먹어버린 여동생은 그때부터 갑자기 모든 걸 알아버린 것처럼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남자는 마법사야. 신기루의 마법사라고 이 사막의 지배자라고 해. 환상으로 공포를 주어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것 같아. 힘을 얻은지 100년이면 죽게 되는데, 후계자에게 힘을 물려주면 죽지 않는대. 우리들 중 하나가, 남자의 후계자가 되어야 하나봐."

누가 되어야 할까요.
그리고, 누가 되든, 나머지는 돌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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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 종류의 공간을 좋아할 수는 없다.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또 한구석에서는 "나는 그곳은 정이 안가더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더러 스펙트럼이 넓고 다방면에서 연주를 잘 하는 아티스트들도 있지만 모든 음악 팬들이 좋아하는 연주자는 존재하기 어렵다. 중요한건 비율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으면 된다.
본인이 만약 얇은 귀를 갖고 있다면 지금부터 귀를 두껍게 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물론 그렇다고 불만의 소리를 못들을 정도로 귀를 막으면 안된다. 만약 까페 문을 열고 보니 8명이 까페를 좋아하고 2명이 까페를 싫어한다고 하자. 까페의 발전을 위해 2명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부분적으로 반영할 필요는 있지만 2명을 위해 전체를 다시 뜯어고칠 필요는 없다. 그러면 8명을 잃을 수도 있다.

- 김영혁, 김의식, 임태병, 장민호, <우리 까페나 할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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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삼녀, 사실은 군십삼녀?

자세한 내막은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일간 스포츠야 찌라시니까 뭐 언론의 자세 어쩌고를 논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또 무슨무슨 녀.

된장녀. 개똥녀. 엘프녀가 오크녀. 꼭 뭔 일 있을 때마다 아이콘화 되어서 문제되는건 여자입니다. 남자가 어떤 행동을 했을때 사진에 찍히고 온라인에 공개되어 집단으로 욕을 먹는 경우는 거의 못봤습니다. 기껏해야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 정도?

만만한게 여자라는 거죠. 소위 네티즌, 누리꾼이라는 작자들의 수준이란게 결국은 초등학생 수준이라는 겁니다. 아이스께끼! 예요 이건. 정말 잘못해서 패는게 아니라 (아니 정말 잘못했더라도 당신들이 팰 권리는 없잖아?) 순전히 재미라니까요. 여자가 더 약해보이니까, 뭔 짓을 해도 현피(현실의 PvP)는 설마 안하겠지, 이러고 까는 겁니다.

더 웃긴건 그들의 언급들을 보면 자신들이 엄청 도덕적이고 고결하며 애국애족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묘사를 한다는 거죠. 자신은 정말로 누구라도 화낼 수밖에 없는 일에 분노한 것처럼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표출하는 것인양 연기하는 당신들의 손가락에 박수를. 짝짝.

근데 왜 '당신'이 분노해야 하는데.

저 여자가 지금 거기 모니터 앞에 앉아서 '분노' 하는 당신이란 구체적인 한 사람을 보고 군대 가서 3년 있으라고 했나? 아니, 그럴 만한 명령권자이기나 한가? 저 여자가 말했다고 정말 그렇게 돼?

실재하는 사람을 재미로 까면서 죄책감도 느낄줄 모르는 그 작자들이 써갈긴, 개 짖는 소리보다도 더 의미가 없는 언급들을 기사화하는 기자도 기자지만 애초에 그 말을 하는 것들이 더 나빠요. 정말로 그런것들부터 군대 13년 보냈음 좋겠어. 적어도 13년은 사회 정화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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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화이트데이였지요. 고교시절에나 신경써야 할 화이트데이가 제 기억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은 물론 요란스런 인터넷과 방송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게임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냐면 이쪽이 제게는 몇배나 더 인상이 깊었지요.

2001년에 이 게임을 접하고서,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패키지 게임이 나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악튜러스, 마그나카르타, 언제든지, 언제까지나, 이어질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2003년 이후 4년간 국내 정식 발매된 패키지 게임의 수는 0.

한 장르가 아예 없어졌습니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네. 제 잘못입니다.

저도 수많은 게임들, 다 복제본으로 플레이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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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모뎀의 시대, 영화 <접속>의 시대, 이제 잊으시겠습니까? (Y/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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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wookpsn/11310984
간만에 정말 바보같은 사람 하나 봤네요.

+ 그냥 바보라고 하기엔 미안해서, 바보인 이유를 덧붙입니다.

1. 커서 님의 논증

대전제 : All인터넷 → 공유
소전제 : Some창작 → 인터넷
결론 : Some창작 → 공유

논증 자체는 틀린게 없습니다. 정확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3단 논법 형식에서는 대전제가 거짓이면, 결론도 거짓이 됩니다. 이유는 논리학 책을 찾아보도록 하세요.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니까요.

이 논증의 대전제가 거짓이라는 점, 즉 '인터넷은 공유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지만, 커서님은 반드시 참이어야 하는 대전제에 대해 반증이 계속 나오는데도 대전제가 거짓이 아니라고 입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전문 지식 논하자는게 아닙니다' 등으로 일축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 한번, 커서님 소원대로 인터넷의 정신이 공유라는 것을 참이라고 '가정' 합시다. 그렇다면 말이 되느냐.

2. 커서님의 어휘 사용

"인터넷에선 인터넷의 정신이 우선이다. 인터넷 첫 번째 정신인 ‘공유의 정신’과 현실의 ‘지재권’이 충돌한다면 당연히 하위법인 지재권이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 커서님의 포스팅 중에서

첫번째. '~에선'은 공간에 붙는 부사격 조사입니다. 인터넷은 공유의 '수단'이므로 공간으로 대응될 수 없습니다.

두번째. 지재은 하위이 아닙니다. 지적재산권은 법률로 규정된 권리일 뿐입니다.

세번째. 지재권이 하위법이라면, '공유의 정신'은 상위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공유의 정신'은 명문화된 법이 아닙니다. 당연히 상위법일 리가 없습니다. '공유의 정신'과 '지재권'은 상하위 관계를 논할 수 있는, 같은 범주에 해당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네번째. 인터넷이 공간이라고 가정할 때, 인터넷과 현실의 우열을 논하려면, 인터넷의 정신과 현실의 정신을 대조해야 합니다. 지재은 '정신'이 아닙니다.  

결론 :
비아냥이나 조롱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커서님은 개념이 없습니다.
인터넷의 개념, 지재권의 개념, 그리고 의 개념을 모르시는 겁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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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요. -_-a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특정 어휘에 대한 개념에 동의할때 가능합니다. 책상을 연필이라 하고, 종이를 밥이라 하면 대화가 되지 않는건 당연한 거죠.

커서님이 갖고 계신 개념은 다른 많은 사람들의 개념과 일치하지 않으며, 사용하신 개념들은 문장 안에서도, 전체 글 안에서도 일관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커서님은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소통을 원하시니, 바보라는 겁니다.


+ 2월 25일 8시, 다시 추가
http://blog.daum.net/moveon21/2916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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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 개념도 없다니, 진짜 개념없는 사람입니다.

뭐 마침표를 심심하면 찍는다든가, 문장 호응이 안맞는 구절들이 곳곳에 산재했다든가 하는 걸 보면 기본적인 국어 능력도 없는 사람이니 개념이 있을리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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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해서 확대해 보세요
지명은 후에 더 추가 가능합니다.
경선에 따른 일그러짐이 있습니다. 즉 대륙 남부 넓이는 사실 그려진 것보다 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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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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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
반역의 검은 영웅 vs 순백의 기사

기어스 :
마인드 컨트롤 vs 마인드 리딩

브리타니아 :
인종주의 vs 민족주의

란슬롯 :
슈퍼 메카닉 vs 리얼 메카닉

카렌 :
학교 친구 vs 기사단





빌어먹을. 이렇게 취향마다 직격해도 되는거냐. 코드기어스.



 거대 제국 브리타니아가 일본을 합병, 에어리어 일레븐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배하게 된 지 7년째지만, 여전히 일본 독립의 기치를 내거는 레지스탕스가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버림받은 황자 루루슈는 불구인 여동생 나나리와 함께 신분을 감추고 숨어 살던 중 우연히 레지스탕스에 말려들었다가 신비의 소녀 C.C를 만나 절대 명령의 힘 '기어스'를 손에 넣습니다. 약육 강식을 몸소 실천하는 브리타니아 제국 자체가 무너지지 않는 한, 약자로 규정당한 남매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믿었던 루루슈는 그 놀라운 힘을 이용, 일본 '독립'이 아닌 '타도' 브리타니아를 외치며 자신을 '제로'로 칭하고 검은 가면을 쓰고 일어나 일본 내 레지스탕스 세력들을 '흑의 기사단'이란 이름으로 규합해 브리타니아 제국 전체에 맞서 전쟁을 선포합니다.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 앤더슨과 네오, 아나킨과 다스베이더처럼, 코드 기어스는 루루슈와 제로, 즉 가면을 쓴 검은 영웅의 모티브가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가면과 가명은 우리말로는 아주 작은 발성의 차이밖에 없는데, 사회적인 접촉에 있어서도 이 둘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가면을 쓴 상태와 쓰지 않은 상태의 같은 인물이, 사회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다르게 작용하는 두 인물로 보이지요.

특이한 것은, 이 검은 영웅들이 사회에 대해 갖는 태도는 자신을 '감추는' 가면을 썼을 때 '솔직하게' 드러나며, 가면을 벗어 맨 얼굴을 '드러내면' 오히려 모든 것을 '속이는' 가식의 얼굴로 돌아간다는 점이에요. 루루슈와 제로는 이 과정을 그대로 답습해냅니다. 너무 충실해서 오히려 저 위엄넘치는 선배님들보다도 더 원류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반역의 루루슈


재미있는 것은, '코드기어스'의 세계관은 혼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버리는 저 선배님들과 달리 자신만 가면을 쓰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선 루루슈의 오랜 친구, 스자크가 있습니다. 그의 가면은 거의 슈퍼로봇물의 주역 메카와도 같은 배경을 가진 강력한 나이트메어, '란슬롯'이죠. 명예 브리타니안으로 군에 있는 이 '일레븐' 소년이, 제국의 비밀스런 병기 '란슬롯'의 파일럿이라는 점은 아주 오랫동안 루루슈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밝혀지지 않습니다.

두번째는 카렌, 평범한 귀족 여학생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혼혈인 반정부 테러리스트죠. 이 경우 그녀의 가면은 오히려 병약해서 학교도 잘 못나오는 귀족 여학생 쪽입니다. '흑의 기사단'에서는 에이스로 갈수록 그 입지를 굳혀가지만 오히려 학교에서 힘들게 쓰고 있는 병약 미소녀 가면은 점점 불안해져갑니다.
 
세번째는 학생회장이죠. 겉으로 보기엔 야한 농담으로 후배들을 놀리기 좋아하는 지극히 평범한 '언니' 이미지지만 그건 가면이고, 사실은 몰락한 가문의 딸로 끊임없이 맞선에 불려나가야 하는, 그럼에도 루루슈의 출생의 비밀을 알면서도 숨겨주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고요.

이 외에도, 단 한번 자신을 구해줬던 유페미아 황녀에게 연정을 품었지만 사람들에겐 '감사 인사도 못했는데 한번 뵙고 싶어' 라고 말하는 여학생이나, 겉으로는 항복하고 충실하게 브리타니아에게 헌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반 정부 단체들을 알게 모르게 지원해주고 있는 '교토' 라는 세력의 수장, 하녀의 가면을 쓴 채 언제나 딸의 곁에 있으려 했던 카렌의 생모, 방송사 보도 담당자면서 동시에 '흑의 기사단' 단원이 되는 남자, 브리타니아의 순혈통 기사였지만 기억을 잃고 흑기사단원과 같이 지내게 되는 여성 등, 이야기는 계속해서 두 얼굴을 가진 이들, 혹은 한 얼굴에서 다른 얼굴로 변해가는 이들을 루루슈와 교차편집해서 보여줍니다.

심지어 브리타니아군의 주 무기인 인형 병기 나이트메어도 일종의 가면처럼 작용합니다. 루루슈, 즉 제로가 나이트메어 안에 탄 채 브리타니아 군 심장부에 숨어서 발각될까 전전긍긍하는 장면에서 특히. ('얼굴을 드러내라!') 브리타니아군은 덧붙여 단순한 보병조차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고, 그건 과거 가면을 착용했던 일본의 사무라이들을 연상시킵니다. 그래서인지 브리타니아는 오히려 과거의 제국주의 일본, 그리고 정복당한 구 일본은 과거의 한국처럼 보이네요. 혹자는 설정에서부터 일본인들의 피해망상이 배어나온다고 말하지만, 이야기 구조상 '일본적'인 것은 오히려 브리타니아 쪽입니다.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라고 오래된 유행가 가사도 있잖아요. 거의 그러한 발상으로 보입니다. 일종의 반성문인 셈이죠. '반딧불의 묘' 처럼요.

피지배 민족 취급받는, 이제 더 이상 일본이 아닌 에어리어 일레븐에 사는 이들. 브리타니아인이건, 명예 브리타니아인이건, 한때 일본인이었던 '일레븐'이건, 혼혈이건, 지배와 피지배가 섞여드는 이 불안정한 땅에서 살기에 그들은 두 얼굴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총체적인 가면극은, 다떼마에(겉마음)와 혼네(속마음)의 구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본인들에 대한 (어쩌면 당사자로서는 기분나쁠 수도 있는) 은유로도 보입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네오와 앤더슨이 흔히 원용되곤 했던, '온라인에서의 자아와 현실의 생활'에 대한 은유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처음부터 제로가 가면을 쓴 건 아닙니다. 그의 첫 전투는 통신기기로 모든 전투상황을 파악하고 지휘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도 하듯이요.

'제로'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역할과 작용이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주저없이 절대 명령을 내려 법을 어기고 목숨을 빼앗아요. 그건 우리가 게임을 하거나 온라인에서 블로깅을 하고 게시판에 글을 쓰고 덧글을 달때 의도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주저없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펼쳐보이죠. 하지만, '루루슈'는 나나리에게, 샤리에게, 스자크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를 전전긍긍합니다. 그래서 제로가 한 일의 결과에 흔들리는 거죠. 우리가 부모님이나 학교, 회사 사람들이 자신이 온라인에서 한 일을 보게 되면 자신을 어떻게 볼까 걱정하듯이요.

이렇듯 비단 다떼마에와 혼네를 구분하는 일본인에게만이 아니라, 인터넷과 로그인이 지나칠만큼 광범위하게 생활화된 우리 한국인들에게도 반역의 루루슈는 여러가지를 시사하는 듯 합니다. 우리들 역시 제로처럼, 스자크처럼, 카렌처럼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럼 당신의 진실은 어느쪽인가요.

가면?
아니면 맨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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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

일어 학원이 있는 종로 일대에는 일어 학원 말고도 학원이 무수히 많았다. 서울 아이들은 보통 학교를 두 군데 이상이나 다니나 보다. 영수 학관, 대입 학원, 고입 학원, 예비고사반, 연합고사반, 모의고사반, 종합반, 공통수학반, 서울대반, 연고대반, 이대반…… 이 무수한 학원으로 무거운 책가방을 든 학생들이 몰려 들어가고 쏟아져 나오고 했다. 자식을 길러 본 경험이 없는 나는 이들이 은근히 탐나기도 했지만, 이들의 반항적인 몸짓과 곧 허물어질 듯한 피곤을 이해할 수 없어 겁도 났다.

  어느 날 어디로 가는 길인지 일본인 관광객이 한 떼, 여자 안내원의 뒤를 따라 이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어느 촌구석에서 왔는지 야박스럽고, 경망스럽고, 교활하고, 게다가 촌티까지 더덕더덕 나는 일본인들에 비하여 우리 나라의 안내원 여자는 너무 멋쟁이라 개발에 편자처럼 민망해 보였다. 그녀는 멋쟁이일 뿐 아니라 경제 제일주의 나라의 외화 획득의 역군답게 다부지고 발랄하고 긍지에 차 보였다. 마침 학생들이 쏟아져 나와 관광객과 아무렇게나 뒤섞였다. 그러자 이 안내원 여자는 관광객들 사이를 바느질하듯 부비며 소손소곤 속삭였다.

  "아노-미나사마, 고치라 아타리카라 스리니 고주이 나사이마세 (저 여러분, 이 근처부터     소매치기에 주의하십시오)."

  처음엔 나는 왜 내가 그 말 뜻을 알아들었을까 하고 무척 무안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차츰 몸이 더워오면서 어떤 느낌이 왔다. 아아,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그 느낌은 고통스럽게 왔다. 전신이 마비됐던 환자가 어떤 신비한 자극에 의해 감각이 되돌아오는 일이 있다면필시 이렇게 고통스럽게 돌아오리라. 그리고 이렇게 환희롭게. 나는 내 부끄러움의 통증을 감수했고, 자랑을 느꼈다.

  나는 마치 내 내부에 불이 켜진 듯이 온몸이 붉게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내 주위에는 많은 학생들이 출렁이고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 만으론 모자라 ××학원, ○○학관, △△학원 등에서의 별의별 지식을 다 배웠을 거다. 그러나 아무도 부끄러움은 안 가르쳤을 거다.

  나는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펄러덩 훨훨 휘날리고 싶다. 아니, 굳이 깃발이 아니라도 좋다. 조그만 손수건이라도 팔랑팔랑 날려야 할 것 같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고. 아아,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신동아, 1974. 8)

박완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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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물 흐렸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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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주인인줄 알았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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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아직도 70년대에 머무르는 지역사회 인사들에게, 제발 누가 부끄러움 좀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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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http://yes24.com

현재 네권 반 정도를 썼고, 총 6권 분량으로 기획중인 자작 소설 <에이린 이야기>를 쓰기 위해 정독한 책들(일부)입니다.
 
책 뿐인가요. 짧게나마 여행도 다녀오고, 주변 사람들 붙잡고 인터뷰도 해보고, DVD 서플먼트에 실리곤 하는 다큐멘터리도 열심히 반복해서 보며 메모하고, TV에서 필요한 정보가 나오는 다큐멘터리가 있으면 녹화해서 돌려보고,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끌어모은 자료들이 모여서 세계가 되고, 캐릭터가 되고, 이야기가 됩니다.

글은 그 이야기를 전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상대방이 듣는 것'이죠. 즉, 소설이든 뭐든 글이라는 것은, 오직 한가지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읽히는 것'

중학교 국어 과정에서부터 우리는 글 쓰는 법을 배웁니다.

주제선정 → 소재 선택 → 구성 → 자료조사집필 → 퇴고

소설이라고 별다르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들으려면, 우린 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그 할 말이 주제입니다. 거창하게 권선징악이니 이런게 주제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것만 같은 그런 절실한 할 말, 그게 주제입니다. 그런 게 없는 소설은 기껏해야 자신의 마음속 어딘가의 풍경을 끄집어내서 '야, 이거 어때? 근사하지?' 라고 계속 사람들을 붙잡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나 창작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내면 같은거 별로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괜히 관심도 없는 얘기를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으며 다른 이들을 귀찮게 하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헛짓거리입니다. 할 필요가 없는 짓입니다. 전할 말이 없으면 분명히 관두고, 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해야 하는 겁니다. 글을 통해서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그냥 말해버리면, 그건 소설이 아니죠.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도 이미 학창시절에 배웠습니다.

소설의 3요소: 주제, 구성, 문체
소설 구성의 3요소 : 인물, 사건, 배경

캐릭터의 강함과 약함 혹은 모에포인트, 혹은 엄청난 반전이나 놀라운 스펙터클이 기다리는 스토리, 또는 아무도 상상해본 적 없을 법한 기이하고 신비한 세계관, 이건 다 소설의 3요소 중 하나인 구성에 속합니다. 이 구성의 구체화는 자료조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어떤 분들은 다른 세계의 인물이 되어 그 세계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쓰기 때문에 우리 세계에 대한 자료조사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판타지니까 괜찮아. 라고 말할거예요. 무협지인데 뭐 어때. 이건 SF야. 아냐 난 그런 시시한 장르문학이 아니다. 이건 그냥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모아놓은 자료 같은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앞서도 말했다시피 소설은 그 어떤 목적에 우선해, 일단 '읽혀야' 합니다. 우리 세계의 독자들에게요. 그러니 당연히 우리 세계의 독자들이 (재미나 감동은 일단 저리 치우고)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세계의 독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되어선 안됩니다. 우리세계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그렇게 안하는것은 무슨 핑계를 대도 태만이고 비겁함이며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애초에 말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치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허구니까 어차피 독자가 모르는 세계, 독자가 이해하지 못할 인물이 나와도 된다는 건,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순수문학이건 판타지나 무협, SF같은 장르문학이건, 자신이 구축한 세계와 그 세계안의 캐릭터에 대해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게 알고 그걸 우리 세계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해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건 자료조사를 통해 가능한 겁니다.  

정규교육과정에 글쓰기 절차가 들어간 것은, 괜히 외울 거리를 늘려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정해진 글쓰기 절차를 따르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글쓰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서 뭔가를 퍼올려봐야 아무것도 없다는건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아직 학생인 여러분, 이것만은 꼭 알아두세요.

단지 즐기기 위해서라면 상관이 없으나, 글을 써서 그 글을 팔아 돈을 받고 싶다고 말하면서, 혹은 이미 그렇게 하면서 가슴에서 터져나올것 같은 할 말도, 치밀한 준비도 없이 글을 써서 남들 앞에 읽으라고 내놓는 것은 독자를 기만하는 것이며, 정해진 절차를 따라 수없이 노력하고 있는 수많은 프로, 아마추어 글쟁이들을 모욕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덧1. 하루종일 먹지도, 눕지도 않고 생각에 잠기어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차라리 책을 읽느니만 못하더라. - by 공자

덧2. 참고 ← lumi님이 마비노기 연재만화 게시판에 올리신 창작자의 고충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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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 캐릭터 시뮬레이터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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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리카나, 데니아, 이리디스, 유소영
비록 라시안이지만 시리카나는 레무리아에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레무리안이나 타고날 법한 홍채와 머리칼 색을 갖고 있습니다. 정도가 심할 정도로 쾌활하고 가끔 지나치게 개방적인 듯한 겉모습은 고독한 속내를 감추기 위함일지도 모릅니다. 역대 최연소 마법학교 교장이지만,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답니다.
데니아는 평범한 레무리안의 전형. 심약하고 소심하며 라시안을 동경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워합니다. 마법학교 학생으로 곧 졸업합니다.
이리디스는 흑염의 이리디스라고도 불리며 늘 웃는 얼굴이었던 시리카나와는 반대로 냉랭하고 엄격한 교사로서 마법학교를 이끌고 있습니다.

유소영은 본디 우리 세계에서는 평범한 고시생으로, 레무리아에 불려와서는 문관이 되어 제국을 위해 일하고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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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민수, 안정민, 키프체
키프체 역시 레무리안과 비슷한 외모를 가졌지만 라시안이며 레무리아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안정민은 이승환을 동경하는 90년대 젊은이, 해병 출신 예비군이며, 이민수는 이소룡을 동경하고 통기타를 즐기는 70년대 고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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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사용을 허락해주신 루미님께 감사드립니다. :)
사실을 고백하자면, 한동안 한참 어떻게 결말을 낼지 결정을 못하고 있었는데  루미님의 위 팬아트를 보았을때 겨우 저번화의 '어린애가 아냐' 부분을 떠올리고는, 그 다음을 술술 풀어낼 수 있었던 거예요. 루미님 정말정말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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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숨막히는 순간도 아니고 흥분의 시간도 아니야.
하루종일 같이 있고 싶은 충동도 아니고.
밤에 일어나 그가 내 몸에 애무해주기를 바라는 욕망도 아냐.
결코 아냐.
부끄러워 마라.
난 진실을 얘기하는 거니까.
그런 것들은 그저 사랑에 빠진 상태야.
우리 모두는 자신들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설득할 수 있어.
하지만 사랑이란 그 후에 남는 것들이야.
사랑에 빠졌을 때의 불길이 사라진 후에 말이다.
별로 신나는 얘긴 아니지?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너와 그와의 불길이 사라진 후에
진정한 사랑이 남게 되겠는지는
네 자신만이 생각할 수 있지.

- by Dr. 이아니스, <코렐리의 만돌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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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좋아하는 영화를 10편만 뽑아보라고 하면 정말 갑갑합니다. 스타워즈랑 반지의 제왕만 해도 벌써 9편이잖아요. 여전히 단 한편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고 들었다 놓는 영화들도 많이 있지만, 반면 3편까지 이어지며 거대한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들이 이제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 이유는 그 영화들이 매우 잘 만들어졌고 좋은 흥행 성적을 올렸기에 속편을 제작하는 것이 이득이기도 하고, 3편까지 나올 만큼 세계와 캐릭터가 탄탄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결말이 그 세계의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는 점도 빼놓으면 안되겠네요. '다음엔 어떻게 되었을까?' 를 한번쯤은 궁금해 하게 만드는 그런 결말 말이에요.

그럼 한번 지금까지 나온 3부작을 10개만 꼽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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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1972~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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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클래식(1977~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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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198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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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퓨처(1985~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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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공원(1993~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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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1998~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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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1999~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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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프리퀄(1999~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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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200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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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2001~2003)


이 중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되어 나온 영화는 반지의 제왕과 스타워즈 프리퀄 정도라는 생각이 드네요. 한 편을 만들어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사람들은 속편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3부작이 되는 이유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속편도 흥행하여 또 다음 편을 찍어야 하는 경우.
두번째는 처음부터 2편을 연속으로 찍기로 기획하고 만드는 경우.

첫번째 예에는 아마 대부, 터미네이터 등이 들어가겠고, 두번째는 매트릭스, 백 투 더 퓨처 등이 들어갑니다. 특히 이 두 영화의 2편 절단마공은 영화관에서까지 '다음 이시간에(to be concluded)'를 보아야 하느냐는 분노에 찬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지요.

물론 첫번째 예의 경우에는 4편, 혹은 5편까지도 나오기도 합니다. 에이리언, 리쎌웨폰, 더티 하리, 록키, 나이트메어, 13일의 금요일, 그리고 올해 4편이 개봉되는 다이하드, 쏘우처럼요. 그러나 '완결편'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완성한다기보다, 이런 영화들은 우리 세계에 부속된 하나의 신화처럼 계속 그 내러티브가 이어지는 겁니다. 신화가 사라진 우리 세계에서 그들은 공포와 용기, 정의와 의지의 신들이죠. 그러므로 3부작과는 또 다른 이야기 구조를 갖습니다. 007 영화처럼, 하나 하나가 완결이며 또한 하나 하나가 다음편을 향해 열려있는 거지요.

3부작이라는 제작 관행은 아마도 오래 이어질 것 같습니다. 올해인 2007년에 쏟아져나오는 제3부인 영화들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완결편도 있고, 다음 편을 향해 열린 영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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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 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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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의 해적 : 세상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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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즈 써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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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이블 : 멸종

물론 일각에서는 영화가 연속극이냐며 비아냥거리는 의견도 있고 (특히 트릴로지 중 2편이 개봉되었을 때 심각하게 제기되는 비판) 한 편의 영화에 이야기를 못담아낼 만큼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소리도 나옵니다만, 그만큼 감독이나 제작진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도 볼 수 있겠죠. 어느 쪽이 진실이든, 올해는 풍성한 3편들 덕분에 극장을 찾는 맛이 좀더 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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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에

*이 글은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분쟁을 피하고 평온하고 여유로운 넷 생활을 영위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그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해서 쓰여졌습니다.

*군데군데 상당히 말이 심하므로, 미리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저는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한 명의 블로거일 뿐이며, 따라서 이 글의 내용이 진실이고 어긋나면 사형! 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임을 밝힙니다.  


총론

인터넷 상에서 우리는 글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시간과 공간의 장애를 넘어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까페 등의 커뮤니티 형식일 수도 있고, 홈페이지의 게시판일 수도 있고, 블로그의 포스팅과 덧글, 트랙백일 수도 있습니다. 보통 이 세 가지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중에서 홈페이지 게시판에 대한 방법론은 이미 2003년에 siva님의 번역으로 국내에 소개된, 네코야나기님의 글 (게시판 글쓰기 매너, 원문)이 이미 있으므로, 저는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굉장히 주목해야 하는 점은, 대부분의 경우 오직 '만'을 통해 소통이 된다는 점입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만난 상대방과는 달리 상대방의 나이도 성별도 출신도 어투도 표정도 모릅니다. 아무 정보도 없는 상대와 대화를 할때 우리는 오직 그 말의 기록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통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해야 합니다.

이 기초적인 가정이 없이는 우리는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대답하지 않을 벽에 고함을 지르는 것입니다. 갇혀있는 공간도 아닌 모두가 드나드는 곳에서 말이죠.

손가락을 사용해 일정 시간을 들여 키보드를 마모시켜가면서, 아무런 보상도 없는 행위를 하는 이유가 단지 '재미있기 때문'이라면 그렇게 사는것도 좋겠지요. 그런데 남들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 개쉑들아.이런 사람의 경우엔 인터넷에서의 행동이 그 자신의 삶에 있어서 별로 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저 자신의 불만과 스트레스를 배설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터넷 이용자는 자신이 드나드는 공간이 그런 배설 장소이길 바라지 않습니다. 바로 당신처럼요. 혹시 그런 분이 계시다면 조용히 Alt 키와 F4 키를 함께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생긋)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가정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렇듯이, 상대방은 기본적으로 '선의'를 가지고 그 말을 남긴 것이라고 가정해야 합니다. '난 원래 좋은 의도 같은 거 없어.'인가요? 꺼져.

옛 속담에 뭐 묻은 개가~ 로 시작하는 게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여러분은 짐작하고 있을 거에요. 상대방의 어떤 점이 싫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상대방을 평가할때 알게 모르게 '나라면 이렇게 했겠지' 라는 가정을 한다는 뜻입니다.

이 평가는 단지 '다른 사용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웹 만화나 소설, 뉴스 기사, 블로그 포스팅 등 자신이 이용하고 있는 컨텐츠의 창작자, 자신이 이용하고 있는 컨텐츠에서 다루어지는 현실의 인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여러분이 일상적으로 접하고 계신 컨텐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전과정을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스크롤로 내려 단 1분 안에 볼 수 있는 컨텐츠라 해도,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1년이 소모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한 명의 이용자가 컨텐츠를 접하는데 드는 노력은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보다 항상 적습니다.  이용자는 항상 창작자에게, 그 노력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예의겠죠.
 


야, 그럼 비판도 하지 말라고?


비판비난은 다릅니다. 그 가장 큰 차이점은, 상대의 의도를 선의로 해석하느냐, 악의로 해석하느냐에 있습니다. 선의에 근거를 두는 비판은 그 또한 선의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고 해당 창작자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어쨌건간에 자신을 건드리면 지구끝까지라도 쫒아가 박멸해야 직성이 풀리는 처음부터 악의적인 창작자도 있긴 하지만요. (저 아니에요 ;ㅁ;) 그런 창작자도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겁니다. 악의와 무지로 인한 수많은 이용자들의 공격에 그만 인내의 한계에 달해 쾅하고 터진 걸거예요. 제가 아는 한은 보통 그렇습니다. :)

그럼 인터넷에서의 글쓰기에서 필요한 대전제를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1.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해야 합니다.

2. 상대방은 기본적으로 '선의'를 가지고 그 말을 남긴 것이라고 가정해야 합니다.


이 두가지 대 전제를 가지고, 앞으로 2회에 걸쳐 각각 커뮤니티에서의 글쓰기 방법과 블로그에서의 글쓰기 방법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보겠습니다.  

인터넷 글쓰기 방법 -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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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글쓰기 방법 - 총론

커뮤니티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터넷 영역에는 대단히 많은 커뮤니티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다음, 네이버 등 대형 포털 사이트는 물론이고, 싸이월드나 프리챌의 경우는 그 자체가 한 개의 거대한 커뮤니티처럼 작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커뮤니티의 특징은 그 시스템부터가

'사람들의 모임'


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커뮤니티는 일정한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안되는 것이 있을 거예요. 뭐가 있을까요?

1. 공지사항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커뮤니티에는 대부분 공지사항이나 이용 규칙 등이 있고, 그것을 어기는 회원에 대해 운영자는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습니다.
공지사항을 쓴 그 커뮤니티 운영자는 그 사안에 반대하는 회원이 빠져나갈 각오도 하고, 몇몇 항목이 맘에 안든다고 가입하러 왔다가도 그냥 가는 사람들도 있을 거란 각오도 하고 쓴 겁니다. 그러니 좀 읽어. 한글은 다 읽을 줄 알잖아.

읽으라고 써둔 거니까 제발덕분에 읽고나서 가입할지 말지 결정하세요. 덜컥 쳐들어와서 금지된 행동을 하다가 운영자한테 쫒겨나면 누구 손해겠습니까.

운영자용 : 공지사항이나 이용 규칙은 비회원도 접근할수 있는 곳, 그리고 최대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자신의 닉네임과 함께 적어두는 편이 좋습니다.

2. 자기소개

처음 가입하면 자기 소개를 합니다. 당연하잖아.
커뮤니티에 따라서 조금씩 다릅니다. 오프 모임이 잦은 곳에서는 상세한 자기소개가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그 커뮤니티의 주제에 자신이 어떻게 관련이 되었는지는 적어주는 편이 좋습니다.
아참, 그 커뮤니티의 주제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애정이 없으면 좋은 말로 할 때 가입하지 마세요. 아는 사람이 여기 있어서? 그럼 계속 그사람 하고 알아서 놀아요. 안말립니다.
기존 회원의 경우도, 다른 사람을 커뮤니티에 데려온 경우에는 가급적이면 먼저 나서서 소개를 해주는 편이 좋습니다.

3. 자료실

창작물 관련 커뮤니티의 경우 자료실을 많이들 운영합니다. 개중에는 이 자료실만을 노리고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커뮤니티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니 자료실만 보고 갈거면

꺼져.


덧붙여서 커뮤니티 자료실에는, 누구에게 어느만큼의 저작권이 있는지 명시하여 자료를 올려두는 것이 좋습니다. 안그러면 비슷한 주제의 다른 커뮤니티에 어느결에 올라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이런게 자꾸 반복되다보면 전쟁납니다.

아마 전쟁 일으킨 박쥐 회원은, 양쪽에서 다 매장당하게 될 겁니다. 난 그냥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 어쩌구 하고 변명하지 마세요. 퍼가지 말랬는데 퍼갔으니, 사형!(웃음)
 
*cf. 한국어가 쓰이는 온라인영역에는 엄청난 양의 불법자료들이 널려 있습니다. 패키지 게임, 각종 동영상, 음악, 만화 스캔본, 소설 텍스트 등.
이것들은 전국민들의 암묵적 합의하에 벌어지는 범죄행위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 전부 도둑이라고요. 개인적으로 어둠의 루트를 통해 사람대 사람으로 교환하는 것까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어디가서 불특정 다수에게 퍼트리는 짓은 하지 맙시다. 자랑이 아니라고요.

4. 방랑 고수

커뮤니티에 처음 오자마자 해당 주제에 대해 이런저런 썰을 풀면서 소위 '본좌급' 내공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 훌륭하시네요. 참 대단하셔요. 그런데 우리도 그만큼은 알거든요. 안녕히 가세요.  

5. 정의의 사도

가끔 '이쪽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걸 봤는데요.' 하면서 다른 곳에서 이쪽 커뮤니티와 관련해 안좋은 내용을 퍼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신입일 수도 있고, 처음부터 이럴려고 가입한 회원일 수도 있고요. 가끔은 한참 같이 지냈던 알만한 사람이 그러기도 합니다. 그러지 마세요. 왜?
안된다면 안되는 겁니다. 좀 하지 마. 

인터넷 상의 모임에 애정을 갖는 것은 그 모임이 그 사람에게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그렇잖아요?

그런데  당신이 기분나빴다는 건 알겠지만요, 왜 우리까지 기분나쁘게 만드실까요. 편히 쉬려고 와서 포근하고 익숙한 소파에 푹 앉았는데 '다들 궐기합시다' 하고 사람마다 붙잡고 일으키며 빨간띠 매고 외치는 꼴입니다. 좀 쉬자고요. 이상.

6. 놀이

유료 무료를 떠나서 온라인게임이 이렇게 천지에 널린 나라도 드뭅니다. 웹에서 아무나 잡고 물으면 적어도 하나는 해 봤거나 하고 있는 중인 경우가 많지요.  커뮤니티 안에서 친해진 사람들끼리는 곧잘 이런 놀이를 함께 즐기게 되곤 합니다.
그렇다고 당신이 하는 놀이를 강요할 필요까진 없습니다.
의사가 일치해 함께 놀 수 있다면 친해지는 계기가 되겠지만, 적어도 상대방이 안한다고 하면 안하는 걸로 생각합시다. 당신이 싫어서 안하는게 아니에요.(웃음)

웹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당신을 위해 기다리는 놀이 상대가 아닙니다.

게임 중에도, 특히 PvP기반 게임의 경우에는 더욱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플레이어는 당신의 렙업을 위해 죽어주는 몬스터가 아닙니다. 온라인 게임은 '사람'과 놀기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아무나 무차별로 죽이면서 지존임을 만끽하고 싶다면, 패키지 게임을 하시길 권유합니다. 가급적 돈주고 사서 말이에요. 어지간한 온라인 게임 계정비보다 그게 더 싸더군요. (웃음)

7. 오프라인 모임

오프 모임이 활발한 커뮤니티에서는 번개니 잡모니 정모니 해서 온갖 모임에 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한국이 이런 경향이 강한가봅니다.

일단 나가면 제 1 주의. 초면에 이름 묻는게 실례냐고? 실례일 수도 있습니다.
까페마다 분위기가 다르지만, 어떤 곳은 회원들끼리 주로 닉네임을 부르는 반면 어떤 곳은 실명제가 일반화되어 있기도 합니다.
분위기 봐서 이름이라든지 나이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겁니다. (채팅에서도 동일)
신비주의를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 자꾸 캐묻지 마세요. 듀오 커플미팅이라도 나왔냐, 아니면 혹시 경찰이냐.

그렇다고 너무 비밀만 잔뜩 있어도 친구가 안생깁니다만. (^^;; )

처음 나간 모임일 수록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렵습니다. 당연한 겁니다. 모두 친한 사람들끼리 모였는데 혼자 신입이면 당연히 서로 놀지 당신에게 특별히 관심 가져주지 않습니다. 먼저 다가가서 적극적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같이 놀아줍시다. 고의적으로 신입을 왕따시키는 경우는 본인이 정말 무언가 온라인에서 잘못 행동한게 있을 경우가 아니면 절대 없습니다.

혹여 내가 어울리지 않는 모임이라고 생각하면 괜히 그 사람들 즐겁게 노는데 훼방 놓지 말고 조용히 사라지는 것도 예의입니다.

8. 운영자

온라인 커뮤니티는 개설자라도 '내 것' 정신으로 운영하면 곤란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커뮤니티는 사람들의 모임이지 개인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닙니다.
가장 좋은 자세는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품어주는 그런 자세겠지만, 신이 아닌 사람이 그걸 할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적어도 공정하게 정해진 룰, 또는 관습적으로 해왔던 대로에는 따라가야 합니다. 내 맘대로 누구는 멋대로 등급상승. 누구는 맘에 안들어  강퇴.
당신 맘에 안든다고 다른 회원들 맘에도 안드는거 아니니까 혼자 난리치지 맙시다.
대형 커뮤니티일 수록, 운영자는 공인에 가까워집니다. 특정 몇몇이나 운영자끼리를 제외한다면 가능하면 모든 신입에게 거리를 유지합시다.

아, 특별히 신입 적응 조교가 자기 적성이고 할 일이라고 믿는 분이라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열심히!(웃음)

운영자랑 친하다고 난동을 피우는 일부 정신나간 신입 때문에 곤혹스러워지고 싶지 않다면 모두와 적당한 거리. 적당한 친절이 가장 좋은 정책입니다.

커뮤니티 운영은 봉사활동입니다. 이익이 나서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누가 억지로 시킨다고 하시겠어요?

그러니 자기가 한 일에는 꼭 티내는 편이 좋습니다. 운영자가 뭐도 안하고 뭐도 안하고 이런 것만 찾아다니는 사람도 가끔 있습니다. 공지글 기능 같은거 모양으로 있는 게 아닙니다. 커뮤니티의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주세요.
친한 사람이 저런 짓해서 뒤통수맞을 때도 있으니 요주의. 어쨌든간에, 잘못을 지적받으면 운영자로서는 할말 하나도 없습니다. 바빠서 어쩌고? 생활이 각박? 운영자 하지 마.
기왕 자진해서 하는 거면, 욕먹지 말고 제대로 합시다.

인터넷 글쓰기 방법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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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글쓰기 방법 - 커뮤니티

블로그

블로그는 1인 미디어라고도 할 수 있으며, 홈페이지나 커뮤니티와는 달리 순수하게 개인의 공간입니다. 블로그의 주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대해 갖는 권한은 일반적으로  홈페이지 주인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대해 갖는 권한에 비해 막강합니다. 반면 방문객은 덧글과 트랙백, 그리고 방명록으로 상당히 소극적으로만 주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한테 까불지 마.

또한 홈페이지와는 달리 블로그의 이용은 굉장히 간편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수의 이용자들은 자신 또한 블로그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블로그는 대부분 운영이 쉽습니다. 그중 가장 쉬운것이 유사 블로그인 싸이월드 미니홈피이겠고, 그 다음은 네이버 블로그등 포털 사이트 제공 블로그, 그리고  이글루스나 티스토리,  마지막으로 설치형 블로그겠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홈페이지 주인들과 달리 블로그 주인들은 고생을 함께 하고 있다는 공통 분모가 없기 때문에, 밀도 있고 어느정도 영속적인 연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소위 블로그스피어 등으로 불리는 블로거들간의 연계는 네이버 블로그의 이웃 제도, 혹은 올블로그나 이올린 등을 볼때 어느정도는 시스템에 의한 반강제성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즉, 블로그의 주인은 기본적으로 외로운 한 마리 늑대라는 겁니다.

이 것을 전제하고, 블로그의 포스팅과 트랙백, 덧글, 방명록으로 나누어 블로그에서의 글쓰기 방법을 논해보겠습니다.

1. 포스팅

기본적으로 뭐든 관계는 없습니다. 소소한 일상에 대한 것부터 자신의 전문 영역이나 취미활동에 관련한 내용까지. 하지만 부디 당부하건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적어야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적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은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적어야 합니다. 거짓에 의한 낚시글은 후에라도 좋으니 거짓이었다고 표기해주어야 합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적어야 합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아는 것은 그 근거를 분명히 표시해주어야 합니다.

주인 맘대로 하라며 뭐가 그리 복잡해. 귀찮아!

네, 맘대로 하셔도 좋은데 그에 대한 책임은 지라는 말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적어놓고 내버려두는 것은, 초등학교 복도 한쪽에 누구랑 누구랑 뽀뽀했대요 하는 낙서만 보고 다른 아이에게

'누구랑 누구랑 뽀뽀했대'

라고 퍼트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블로그 포스팅이라면 최소한

'복도에서 봤는데 누구랑 누구랑 뽀뽀했대요. 하고 써있더라.'

라고 말해야 합니다. 요즘은 사진도 많이들 찍잖아요. 휴대전화에도 다들 카메라 렌즈 달려있고요. 혹시 말로 설명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다면, 눈으로 보여주세요.

두번째. 포스팅 안에 창작물이 담겨있다면, 반드시 저작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진실되게 밝혀둡니다. '님들 마음대로 어디 퍼가보세요' 라는 말을 장난삼아, 혹은 반어법으로 해놓고 나중에 퍼갔다고 화를 내는 것은 어불성설이에요.  이런 경우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진지함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특히 '~펌'이 시스템적으로 보장되는 한국에서는요.
 
세번째. 포스팅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이따금 포스팅 내용에 대한 비판에 '내 블로그에 내가 내맘대로 포스팅하는데 무슨 상관이야' 라고 반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거면 덧글, 트랙백 막으세요. 

블로그는 덧글 트랙백 기능의 사용에 대해 선택하게 되어있습니다. 개인의 공간이니만큼, 소통하고 안하고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자신의 공간이니, 스스로가 그 모든 기능을 완전히 활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 모르면 일단 물어봐.

2. 트랙백

포스팅을 트랙백할때는 '관련된 글'이어야 합니다. 아주 작은 연계라도 좋으니 관련이 있는 편이 좋습니다. 관련 없는 포스팅인데 그저 방문객이 많아 보여서 블로그 홍보하려고 살짝 걸었다? 스팸 트랙백이랑 다른게 뭐냐.

해당 포스팅과 의견이 맞거나 하는 포스팅이라면 트랙백하는데 별 문제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이러저러해서 트랙백합니다, 하는 인사 정도는 남겨주는 편이 좋습니다. 특히 상대 블로그에 처음 방문하거나 하는 경우라면 더욱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블로그에서 트랙백이 걸렸다? 근데 하필 닉네임이 영어다! 이러면 진짜 스팸같이 보입니다. 지워져도 할말 없다고요. (웃음)

혹여 해당 포스팅에 반대되는 의견이거나 해당 포스팅이 뭔가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어 지적하려 하는 경우, 굉장히 신중해야 합니다. 이거 마치 침몰하는 전함에서 함장이 '포로로 잡혀 심문을 받을 땐 신중해라' 라고 외치는 그런 쓸데없는 명령 같이 보입니다만, 진짜로 그거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블로그는 주인의, 주인에 의한, 주인을 위한 곳입니다. 언제라도 맘에 들지 않는 트랙백은 삭제해도 되는 겁니다.
상대 블로그의 주인이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인 경우에는 괜찮겠지만, 몇가지 다른 포스팅을 살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링크만 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게 아냐! 저 놈 나빠. 저 놈 블로그 오는 애들도 알게 까야 돼.

아니, 아까 주인한테 까불지 말라 그랬잖아요.-_-;
마음에 안든다, 용납할 수 없다, 처단해야 한다 뭐 그러면, 그냥 방문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그래도 걱정돼?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세요. 그 포스팅 하나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겠어요. ^^;
당신이 영향을 안받았다면, 다른 이용자도 안받았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면 그게 딱 맞습니다.

3. 덧글

덧글, 댓글, 리플, 여러가지 용어로 쓰입니다만 다 같은 말입니다. 포스팅에 대해 반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예요. 그러므로 덧글은

포스팅 내용과 연관이 있어야 합니다.

별 상관도 없는 자신의 경험담이나 자랑, 혹은 들은 이야기를 담는 덧글, 혹은 아무 내용없는  덧글은 스팸 덧글과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커뮤니티 쪽에서도 말했지만 처음 온 사람은 어디서 알게 되어 방문한 누구라는 것까지 가급적이면 표시해주는 편이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높임말을 사용합니다. 아주 특수한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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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처럼 반말 '만' 해야 한다고 명시한 경우는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일반적인 블로그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초면에 반말 까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 나이 꽤 많은데. 혹은 블로그 주인이 공개한 나이 보면 나보다 어린데. 그런거 없습니다. 과연 당신은 당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초면에 반말하면 어떻게 대할 건가요? 과연 그 상대를 '어른이다.' 라고 생각해서 그 말을 그냥 공손히 받아들일까요?

총론에서 언급했듯 인터넷 상에서 나이는 대화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다른 이용자에게 있어서는 오직 당신의 글 만이 존재합니다. 어떤 덧글을 달았다면, 그것만으로 당신은 그 덧글을 보는 사람에게 이러저러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겁니다.

에이 뭐 닉네임 바꾸면 되지.

저기 말이죠,  설치형 블로그 태터툴즈와 태터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계정형 블로그 티스토리의 경우에는 덧글 작성한 IP가 다 보입니다. 두가지 닉네임으로 말투까지 바꿔가며 덧글 달아도 주인에겐 한 사람으로밖에 안 보인다고요. 너 바보지?

이글루스나 네이버 블로그의 경우에는 저런 바보짓을 막기 위해 아예 처음부터 회원만 덧글을 달 수 있는 옵션도 부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첫 인상, 첫 덧글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네 뭐, 가끔은 정말로 순수하게 높임말로 공손하게 덧글을 달아도 '너 지금 나 놀리는거지?' 하고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주인들도 있긴합니다. 개.조.심.

덧덧글의 경우, 시스템이 받쳐주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포스팅 - 덧글 - 덧덧글 과정으로 블로그에서의 대화가 완결된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포스팅-덧글 과정으로 이미 대화는 완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주인도 있습니다.
참고로  블로그의 덧글을 일일이 매 시간마다 읽는 부지런한 주인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다들 사는게 바쁘다고요. 덧글에 반응이 없다고 시무룩해 하면서 칭얼대지 맙시다. ^^;

블로그 주인은 인터넷 세상의 어떤 존재가 아니라 당신과 마찬가지로 바쁜 현실의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덧덧글은 필수가 아닙니다.

내가 싫어서 안 다는 거 아냐?


저기, 싫어할 만큼의 관계는 있었나요? -_-;
당신을 싫어하려면, 당신과 그 주인 사이에 일정한 악연이 있어야 가능한 겁니다.
주인이 이유없이 날 따돌린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이 주인에게 잘못 대한 게 없나, 덧글을 무례하게 단 적은 없나 그것부터 생각해보세요.
 
덧붙여서 저같으면 싫어할 정도의 상대라면 그냥 덧글 지우고 차단 걸어버립니다.

*비밀덧글의 경우는 덧글이라기보다 블로그 주인에게 띄우는 이메일과도 같습니다. 그 대답을 덧덧글로 하는 것은 가끔 상당히 곤혹스러워집니다.
둘 만의 비밀에 대해 대답해야 하는데 대답은 모두가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간단한 개인정보가 들어간 내용 등은 몰라도 정말로 은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메신저나 이메일, 혹은 전화나 문자, 직접 대화 등을 이용해주세요.


4. 방명록

이글루스처럼 방명록이 없는 블로그 서비스도 있긴 합니다만,  덧글과 상관없이 주인에게 할 말이 있거나 해서 남길 수 있는 곳이 방명록입니다. 보통 안부라든가, 오프 모임에 대한 것, 개인 사정 전하기 등이 주가 되죠.

주의 : 아는 사람들의 공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방명록에서 주인이 어떤 행동을 했다는 것을 가지고 나한테도 이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거긴 이미 친해진 사람들이 노는 곳이라고요.

그래서인지 많은 수의 태터툴즈, 티스토리는 방명록 기능을 거의 사장시키거나, 아예 링크를 삭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혼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블로그의 성격에는 사실 잘 안맞죠.

보통 블로그를 방문하면 특정 포스팅을 보러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때 첫인사는 그냥 그 포스팅에 덧글로 남겨주시면 되는 겁니다. 네임링크를 타고 온 경우, 그저 그 사람의 블로그 전체를 둘러보게 되면 그때는 방명록에 첫 인사해도 좋겠지만, 마지막 등록글의 날짜를 잘 보세요. 아예 확인을 안하고 사는 주인들도 많으니까요.(저요 OTL)

예전에는 보통 링크 신고를 방명록에 했지만, 최근에는 다들 RSS 피드를 수집해서 구독하기에 이런 과정도 그닥 의미가 없는 듯합니다. 어지간한 건 덧글을 이용해주세요. 그게 블로그에서 이루어지는 주된 소통방법이니까요. 안보는 곳에 아무리 거창하게 사랑고백해도 소용 없다 이겁니다.

주인의 경우 : 방명록을 이용하지 않을 거라면 확실하게 링크를 제거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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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곤-제레미 아이언스 인터뷰]테크놀로지가 인간 정신을 창조할 순 없다←직접 보기



최근 들어 판타지 장르가 인기를 얻는 까닭은 뭘까.
-판타지영화에는 일종의 도피주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건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니까. 그러나 판타지영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캐릭터 사이의 관계다. 조지 루카스의 마지막 <스타워즈> 시리즈를 봐라. 그는 테크놀로지에만 집중하느라 배우의 연기는 모조리 무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사람들은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 배우가 더이상 필요치 않을 거라 내다보지만, 테크놀로지가 인간 정신을 창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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