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요약 :
하여간 남자들이란.
스파이더맨은 이제 원숙한 영웅이 됐습니다. 1,2편에서는 겨우 거리의 음유시인들에게서나 칭송받던 붉고 푸른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거미남은 이제 어린이들의 우상이며 여자들의 꿈이자 범죄 퇴치에 일조한 결과로 경찰청장 따님이신 아름다운 모델 지망생한테 뉴욕 시민 공로상을 받는데다가, 스파이더맨 티셔츠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기도 합니다.
피자배달을 하다가도 교통사고 당할 뻔한 아이들을 구출하던 순진한 영웅대신, 집에 경찰 무전기를 놔두고 위급상황이 생길때만 거미줄을 뻗고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여유'도 생겨버렸습니다. 어느새 '열심히'보다는 적당히, 그리고 '생색나게' 할 줄 알게 된거죠. 사실상 스파이더맨 활동은 '자원봉사'도 아닙니다. 피러 파커는 스파이더맨 전속 사진사로서 여전히 데일리 뷰글 지에 사진을 팔아 용돈을 챙기고 있거든요. 위험부담에 비해선 물론 적은 돈이긴 하지만 이익이 나오는 '일'이죠.
게다가 학교에선 이제 수업도 안빼먹는 우등생이며, 모델 지망생인 경찰청장 따님과 실험 파트너가 되니 적당히 친절하게 대해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여자친구 공연도 꼬박꼬박 챙겨봅니다. 2편의 정신없이 바빠서 불쌍한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매사에 긍정적이고 즐거우며 자신의 인기를 자랑스러워하는 피러 파커예요.
반면에 무대위의 스타로 이름 날릴 뻔하던 메리 제인 왓슨에겐 혹평이 쏟아지고, 결국 극단에서 퇴출됩니다. 좌절하는 그녀에겐, 이미 자신이 뭐든 잘 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차 있는 피러 파커는 정말이지 도움이 안돼요.
한 장면. 뭔가 대화를 하러 찾아온 메리 제인 왓슨은 대화 도중에도 계속 시끄럽게 떠드는 경찰 무전기를 가리킵니다.
"잠깐, 그거 좀 끄면 안돼?"
사고 소식, 곧 스파이더맨의 일거리이자 피러 파커의 사진 건수를 전해주는 경찰 무전기를 가리키며 메리 제인이 말합니다. 그러자 우리의 피러 파커는,
볼륨을 줄입니다.
메리 제인 왓슨과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 거미남, 피러 파커는 아주 평범한 보통 남자입니다. 여자친구는 자신만 바라보고 있을 거라 믿고 자신도 여자친구만 바라보고 있는 거라 믿으며, 언제나 여자친구와는 이렇게 저렇게 돼서 좋은 결말만 있을 거라고 혼자 망상에 잠겨 있었던 덕분에 실제로는 일이 틀어져도 어떻게 해야 할지 대처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우선이고 친구와의 관계 회복이 더 급하며 정작 그것 때문에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있어도 자신만큼 자기 여자친구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혼자 멋대로 상상하는 그런 보통 남자, 그게 피러 파커입니다.
사실상 여자친구한테 잘해주는거라곤 '남자친구 있다' 라는 사실 확인밖에 없으면서 말이죠.
잘해준 것도 없으면서 '다른 남자가 있어' 라고 차이고 나자 찌질찌질, 다른 여자를 끌고가서 보란 듯이 앞에서 춤춥니다. 더욱이 화내면서 메리 제인을 때리기까지 해요. 너무 평범한, 어쩐지 사귀다 깨진 어느 커플에 대한 뒷담화 같은 피러 파커의 행동에 웃음마저 나옵니다. 친구가 '다른 남자'라는 사실을 알자 이젠 그렇게 좋아하던 친구도 막 때리고 말이죠. 어린애 같죠?
근데 거기 계신 여친 있는 남자분 당신은 어떤데요? :)
결론 : 커플 분은 꼭 보세요. 여자들은 남자들 심리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남자들은 자기 반성을 위해서 말이죠.
덧 : 어떤 글씨가 굵어보이는 건 아마도 눈의 착각일 겁니다. (생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