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에서 서성거리기/잊고 싶은 것들'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07.08.30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6
  2. 2007.07.29 트랜스포머...? 4
  3. 2007.03.17 XX녀의 진실. 11
  4. 2007.02.24 어지간하면 이런 말은 안하려고 했는데(수정) 4
  5. 2007.01.29 글을 쓰려면(2) 12
  6. 2006.12.30 글을 쓰려면 12
  7. 2006.11.06 그만 좀 패 13
  8. 2006.10.03 푸트웍 좀 해보자 개새끼야. 4
  9. 2006.09.26 아저씨 17
김휘영이라는 문화 평론가가 진중권을 비판하는 6부작 칼럼을 연재하고 있나봅니다. 이 사람이 진중권을 비판하는 주된 코드는 '무식'인데요. 그 내용은 대부분 정당한 근거로 가득차 있긴 합니다만 곳곳에서 김휘영 자신의 '무식'이 드러나서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크게 세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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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가 블록버스터로 성공한 원인에는 탄탄한 원작 소설이 뒷받침되어 있고 또 이 두 소설 모두가 북유럽 신화와 그리스 로마 신화 등에서 그 모티브를 원용해 왔다는 점은 밝힌 바 있다. 한데 한국의 심형래 감독은 이런 소설적 성공 모델이나 실험이 없이 바로 한국의 이무기 전설을 각색하여 영화화 했다. 소설로 시장의 반응을 보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에 그만큼 허술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구조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한국의 소설가들이나 문단은 J.J톨킨이나 조앤 롤링 같은 역할을 해 주지 못했는가? 그들 스스로가 이런 환타지 소설 양식을 얕보면서 경원시 해 온 점은 없는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에 실제로 최첨단에 다다른 심형래 감독의 고독과 한계는 바로 우리 나라 문화 전반의 한계일 수 밖에 없다. 이런 문화적 토양이나 도움이 없이 혼자 고분분투한 심감독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동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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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영 : 성공한 영화에는 분명 무엇이 있다 중에서

저기, 환타지 소설 양식을 누가 얕보고 경원시했는지 모르겠는데, 구운몽과 홍길동전과 금오신화에 덧붙여서 박씨전이니 별주부전 같은 위대한 환상 문학 전통은 도대체 어디다 쌈싸먹었으며, 이영도와 이상균과 진산 마님과 박민규와 그외 수많은 소설가들이 지금 당신 눈에 안보였다고 '없는' 것이냔 말입니다. 한국의 환타지 소설 양식을 얕보는 건 소설가들이 아니라 바로 김휘영 당신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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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라는 이상한 문화평론가가 영화 디워를 두고 한 짓이 바로 이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의도적인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호하지만 디워의 중요한 내용까지 말하는 소위 스포일러 짓까지 했다. 이는 신문사 견습기자조차도 하지 않는 몰상식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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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 논란과 점차 화석화되는 파시즘 논리중에서

아니 저기, 그거 공중파 TV 뉴스 기자도 하던데요? 아주 화면까지 찍어서? 이것 좀 봐주세요. 아니 물론 몰상식 그 자체라는 건 맞는 말이지만, 어쨌든 기자라는 직함 가진 사람들도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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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상평을 짧게 요약하라면 솔직히 트랜스포머 보다는 더 재미있게 보았다. 트랜스포머의 지저분한 장면보다 디워에는 깨끗한 화면이 많이 나와서 좋았던 점도 있었지만 트랜스포머보다 확실히 나은 점은 영화음악이었다. 음악에 좀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에게는 디워가 훨씬 많은 장점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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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저기, <디워> 음악 작곡자는 스티브 자블론스키입니다. Cine21 영화정보에서 그의 파일을 찾아보았습니다.

http://www.cine21.com/Movies/Mov_Person/person_info.php?id=18292

저기 분명 트랜스포머도 같이 있습니다.

음악에 예민하다는 분이, 아니 무려 난청인 나도 나니아 연대기 보면서 음악이 '어딘가 익숙해~' 싶어서 찾아보니까 킹덤 오브 헤븐 음악 만든 사람이란 걸 알게 되어서 신기해했는데,  예민하다는 분이 대체 그걸 못느꼈단 거지요. 하하; 스티브 자블론스키가 디워에만 좋은 음악 주고 트랜스포머에는 나쁜 음악 준건가보죠? 애초에 저 정도 되는 프로가 자기 퀄리티를 떨어뜨리는 그런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안그래도 생면부지 심형래보다는 아일랜드에서 같이 일했던 마이클 베이 쪽이 그에겐 더 친숙할텐데. 디워를 아직 안봤으니 디워 음악에 대해선 모르겠지만, 트랜스포머의 배경음악은 분명히 금속성으로 가득찬 기계 생명체들의 전투 장면에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당연히 디워 배경음악도 이무기와 아트록스 군대 같은 거대, 초거대 파충류의 전투장면에 아주 잘 어울렸겠지요. 김휘영이 그 음악을 더 좋게 느꼈다면 단지 그의 취향이 금속성의 질감보다는 생물체적 질감 쪽이었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지금 진중권이 잘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진중권에 대해서라면, 저 역시 별로 탐탁치가 않습니다. 그는 김휘영의 분석대로 논리도 없이 감정에 호소하는 표현을 반복했으며,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면서 자신의 주관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꼭지가 돌아서' 같은 표현은 최소한 써선 안되었죠. 그 외에도 김휘영의 진중권 비판은 대부분 맞는 말입니다. '무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주 괜찮은 지적이었습니다.  

근데 김휘영 본인도 그에 못지 않게 '무식'하다면, 도대체가 이 긴 글이 진중권에게 설득력이 있겠냐는 말이죠. 하긴 진중권이 김휘영보다 더 무식하다면 아마 설득력이 있을지도요.



요즘 드는 생각이지만, 어떤 대상을 혐오하여, 그 대상을 비난하거나 비판하기 위해 사람들이 쓰는 용어의 사용은, 그 사람 본인에게 더 잘 적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사람이 혐오하는 것은 그 대상이 거기 그렇게 있다는 점이 아니라, 그 대상이 자신과 닮은 점이 있다는 사실 아닐까요. 도플갱어를 보면 죽는다는 그런 원초적인 공포 같은 것이 작용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결국 동족 혐오의 일종에 불과할지도 몰라요.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저도 저 사람들 못지않게, 아니 아마도 그보다 더! 무식하거든요. 생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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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감독판 서플먼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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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잭슨, 킹콩 서플먼트 中



모든 것은 변신한다.
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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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삼녀, 사실은 군십삼녀?

자세한 내막은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일간 스포츠야 찌라시니까 뭐 언론의 자세 어쩌고를 논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또 무슨무슨 녀.

된장녀. 개똥녀. 엘프녀가 오크녀. 꼭 뭔 일 있을 때마다 아이콘화 되어서 문제되는건 여자입니다. 남자가 어떤 행동을 했을때 사진에 찍히고 온라인에 공개되어 집단으로 욕을 먹는 경우는 거의 못봤습니다. 기껏해야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 정도?

만만한게 여자라는 거죠. 소위 네티즌, 누리꾼이라는 작자들의 수준이란게 결국은 초등학생 수준이라는 겁니다. 아이스께끼! 예요 이건. 정말 잘못해서 패는게 아니라 (아니 정말 잘못했더라도 당신들이 팰 권리는 없잖아?) 순전히 재미라니까요. 여자가 더 약해보이니까, 뭔 짓을 해도 현피(현실의 PvP)는 설마 안하겠지, 이러고 까는 겁니다.

더 웃긴건 그들의 언급들을 보면 자신들이 엄청 도덕적이고 고결하며 애국애족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묘사를 한다는 거죠. 자신은 정말로 누구라도 화낼 수밖에 없는 일에 분노한 것처럼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표출하는 것인양 연기하는 당신들의 손가락에 박수를. 짝짝.

근데 왜 '당신'이 분노해야 하는데.

저 여자가 지금 거기 모니터 앞에 앉아서 '분노' 하는 당신이란 구체적인 한 사람을 보고 군대 가서 3년 있으라고 했나? 아니, 그럴 만한 명령권자이기나 한가? 저 여자가 말했다고 정말 그렇게 돼?

실재하는 사람을 재미로 까면서 죄책감도 느낄줄 모르는 그 작자들이 써갈긴, 개 짖는 소리보다도 더 의미가 없는 언급들을 기사화하는 기자도 기자지만 애초에 그 말을 하는 것들이 더 나빠요. 정말로 그런것들부터 군대 13년 보냈음 좋겠어. 적어도 13년은 사회 정화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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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wookpsn/11310984
간만에 정말 바보같은 사람 하나 봤네요.

+ 그냥 바보라고 하기엔 미안해서, 바보인 이유를 덧붙입니다.

1. 커서 님의 논증

대전제 : All인터넷 → 공유
소전제 : Some창작 → 인터넷
결론 : Some창작 → 공유

논증 자체는 틀린게 없습니다. 정확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3단 논법 형식에서는 대전제가 거짓이면, 결론도 거짓이 됩니다. 이유는 논리학 책을 찾아보도록 하세요.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니까요.

이 논증의 대전제가 거짓이라는 점, 즉 '인터넷은 공유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지만, 커서님은 반드시 참이어야 하는 대전제에 대해 반증이 계속 나오는데도 대전제가 거짓이 아니라고 입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전문 지식 논하자는게 아닙니다' 등으로 일축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 한번, 커서님 소원대로 인터넷의 정신이 공유라는 것을 참이라고 '가정' 합시다. 그렇다면 말이 되느냐.

2. 커서님의 어휘 사용

"인터넷에선 인터넷의 정신이 우선이다. 인터넷 첫 번째 정신인 ‘공유의 정신’과 현실의 ‘지재권’이 충돌한다면 당연히 하위법인 지재권이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 커서님의 포스팅 중에서

첫번째. '~에선'은 공간에 붙는 부사격 조사입니다. 인터넷은 공유의 '수단'이므로 공간으로 대응될 수 없습니다.

두번째. 지재은 하위이 아닙니다. 지적재산권은 법률로 규정된 권리일 뿐입니다.

세번째. 지재권이 하위법이라면, '공유의 정신'은 상위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공유의 정신'은 명문화된 법이 아닙니다. 당연히 상위법일 리가 없습니다. '공유의 정신'과 '지재권'은 상하위 관계를 논할 수 있는, 같은 범주에 해당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네번째. 인터넷이 공간이라고 가정할 때, 인터넷과 현실의 우열을 논하려면, 인터넷의 정신과 현실의 정신을 대조해야 합니다. 지재은 '정신'이 아닙니다.  

결론 :
비아냥이나 조롱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커서님은 개념이 없습니다.
인터넷의 개념, 지재권의 개념, 그리고 의 개념을 모르시는 겁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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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요. -_-a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특정 어휘에 대한 개념에 동의할때 가능합니다. 책상을 연필이라 하고, 종이를 밥이라 하면 대화가 되지 않는건 당연한 거죠.

커서님이 갖고 계신 개념은 다른 많은 사람들의 개념과 일치하지 않으며, 사용하신 개념들은 문장 안에서도, 전체 글 안에서도 일관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커서님은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소통을 원하시니, 바보라는 겁니다.


+ 2월 25일 8시, 다시 추가
http://blog.daum.net/moveon21/2916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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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 개념도 없다니, 진짜 개념없는 사람입니다.

뭐 마침표를 심심하면 찍는다든가, 문장 호응이 안맞는 구절들이 곳곳에 산재했다든가 하는 걸 보면 기본적인 국어 능력도 없는 사람이니 개념이 있을리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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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려면 ←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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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http://yes24.com

현재 네권 반 정도를 썼고, 총 6권 분량으로 기획중인 자작 소설 <에이린 이야기>를 쓰기 위해 정독한 책들(일부)입니다.
 
책 뿐인가요. 짧게나마 여행도 다녀오고, 주변 사람들 붙잡고 인터뷰도 해보고, DVD 서플먼트에 실리곤 하는 다큐멘터리도 열심히 반복해서 보며 메모하고, TV에서 필요한 정보가 나오는 다큐멘터리가 있으면 녹화해서 돌려보고,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끌어모은 자료들이 모여서 세계가 되고, 캐릭터가 되고, 이야기가 됩니다.

글은 그 이야기를 전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상대방이 듣는 것'이죠. 즉, 소설이든 뭐든 글이라는 것은, 오직 한가지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읽히는 것'

중학교 국어 과정에서부터 우리는 글 쓰는 법을 배웁니다.

주제선정 → 소재 선택 → 구성 → 자료조사집필 → 퇴고

소설이라고 별다르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들으려면, 우린 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그 할 말이 주제입니다. 거창하게 권선징악이니 이런게 주제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것만 같은 그런 절실한 할 말, 그게 주제입니다. 그런 게 없는 소설은 기껏해야 자신의 마음속 어딘가의 풍경을 끄집어내서 '야, 이거 어때? 근사하지?' 라고 계속 사람들을 붙잡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나 창작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내면 같은거 별로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괜히 관심도 없는 얘기를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으며 다른 이들을 귀찮게 하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헛짓거리입니다. 할 필요가 없는 짓입니다. 전할 말이 없으면 분명히 관두고, 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해야 하는 겁니다. 글을 통해서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그냥 말해버리면, 그건 소설이 아니죠.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도 이미 학창시절에 배웠습니다.

소설의 3요소: 주제, 구성, 문체
소설 구성의 3요소 : 인물, 사건, 배경

캐릭터의 강함과 약함 혹은 모에포인트, 혹은 엄청난 반전이나 놀라운 스펙터클이 기다리는 스토리, 또는 아무도 상상해본 적 없을 법한 기이하고 신비한 세계관, 이건 다 소설의 3요소 중 하나인 구성에 속합니다. 이 구성의 구체화는 자료조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어떤 분들은 다른 세계의 인물이 되어 그 세계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쓰기 때문에 우리 세계에 대한 자료조사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판타지니까 괜찮아. 라고 말할거예요. 무협지인데 뭐 어때. 이건 SF야. 아냐 난 그런 시시한 장르문학이 아니다. 이건 그냥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모아놓은 자료 같은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앞서도 말했다시피 소설은 그 어떤 목적에 우선해, 일단 '읽혀야' 합니다. 우리 세계의 독자들에게요. 그러니 당연히 우리 세계의 독자들이 (재미나 감동은 일단 저리 치우고)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세계의 독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되어선 안됩니다. 우리세계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그렇게 안하는것은 무슨 핑계를 대도 태만이고 비겁함이며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애초에 말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치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허구니까 어차피 독자가 모르는 세계, 독자가 이해하지 못할 인물이 나와도 된다는 건,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순수문학이건 판타지나 무협, SF같은 장르문학이건, 자신이 구축한 세계와 그 세계안의 캐릭터에 대해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게 알고 그걸 우리 세계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해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건 자료조사를 통해 가능한 겁니다.  

정규교육과정에 글쓰기 절차가 들어간 것은, 괜히 외울 거리를 늘려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정해진 글쓰기 절차를 따르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글쓰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서 뭔가를 퍼올려봐야 아무것도 없다는건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아직 학생인 여러분, 이것만은 꼭 알아두세요.

단지 즐기기 위해서라면 상관이 없으나, 글을 써서 그 글을 팔아 돈을 받고 싶다고 말하면서, 혹은 이미 그렇게 하면서 가슴에서 터져나올것 같은 할 말도, 치밀한 준비도 없이 글을 써서 남들 앞에 읽으라고 내놓는 것은 독자를 기만하는 것이며, 정해진 절차를 따라 수없이 노력하고 있는 수많은 프로, 아마추어 글쟁이들을 모욕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덧1. 하루종일 먹지도, 눕지도 않고 생각에 잠기어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차라리 책을 읽느니만 못하더라. - by 공자

덧2. 참고 ← lumi님이 마비노기 연재만화 게시판에 올리신 창작자의 고충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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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목표 한 가지
1. 돈을 주고 내 글을 살 사람들에게, 그 돈보다 더한 즐거움을 줄 것

*글을 쓰기 위한 산술식 두 가지
1. 원본 x 0.9 = 퇴고본
2. 자신이 쓴 분량 x 10 = 그 글을 쓰기 위해 읽은 책의 분량

*글을 쓰기 전에 대답을 준비해야 할 질문 세 가지

1. 글의 예상 독자층은?
2.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3. 글이 가진 흥미요소는?



....오늘 갑자기 포스팅이 폭주하는 이유는 새 글 구상이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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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 vs 체벌 논란 ←SBS 8시 뉴스

200번의 구타 ←나는그네님 이글루스에서 트랙백

애들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주위에도 많이 발견되곤 합니다. 더 끔찍한 건 저와 같은 세대 사람들, 혹은 더 어린 분들 사이에서도, 심지어 그 '맞아야 말을 듣는 애들' 속에 들어갈 중고생들 중에도 그런 논리를 펴는 분들이 있어요.

'사랑의 매'니 '정신봉' 이라고 매직으로 쓰여진 막대기들이 제게 어떤 교육적 효과를 주었는지는 모르겠으되, 적어도 "Spare the rod, spoil the child." 라는 말은 교육 현장에서는 정론인 것처럼 지난 40년간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게 아니죠. 유럽이나 미국의 학교들도 곧잘 정도가 심한 체벌 때문에 논란이 일곤 합니다.

매를 때리는 것도 그 교사의 열정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로 곧잘 합리화되곤 합니다. 분명 매질은 힘든 일이고, 그 대상이 전교생이라면 더욱 말할것도 없을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사라는 직업은 보수도 대단치 않고, 사회적인 대우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벌과 같은 힘든 일을 자처하는 그런 열정을 보이는 교사들을 우리는 인정해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군대에서도 공식적으로는 이제 체벌 안합니다. 규정에 따른 '얼차려'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체벌을 가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다들 알기 때문입니다.

체벌이 학생에게 동기를 부여할까요? 체벌이 학생으로 하여금 교사의 권위를 인식시켜줄까요? 체벌이 학생 마음을 바꾸게 할까요? 체벌이 학생의 게으름을 없애줄까요? 체벌이 학생의 반항심을 누그러뜨릴까요? 체벌이 학생을 반성하게 할까요? 체벌이 학생들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부 '아니오'입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확신하냐고요?

내가 안그랬거든.

체벌은 학생을 아프게 하고 다치게 합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때릴까요.

비단 체벌 뿐 아니라 두발 문제, 수업 정상화 문제를 비롯해 이 나라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의 원인은 단 하나예요. 학생을 사람으로 안보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래요. 학교의 주인은 이사장일지 모르지만, 학생은 사람입니다. 교사의 일거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행위는 언제 어디서도 누구에 의해서도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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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편집인칼럼]괴물적 사회와 신뢰의 조건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로 유명한 홍세화님의 칼럼입니다. 사행성 도박기계 '바다이야기' 파문이 한참일때  기고된 칼럼이에요.

정부에서건 국회에서건, 여당에서건 야당에서건 “게임산업을 규제하면 정보기술(IT) 산업 진흥 취지에 어긋날 수 있다”는 주장 앞에서 다른 소리는 잦아들어야 했다. 주류언론은 물론, ‘대학은 산업’이라는 주장에 맞서 ‘짖을’ 줄 몰랐던 대학까지 모두 “게임산업도 산업”이라고 주장한 편과 한통속 아닌가? 말하자면, 이땅의 ‘입’들은 ‘돈벌이’ 논리 앞에서는 다른 목소리를 내선 안 되는 것이다.

후우.
비트겐슈타인이 '게임'을 예로 들며 언어에 있어서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정의는 불가능하다고 했었죠. 가족 유사성이란 용어를 써가면서요. 야구도 게임이고 체스도 게임이며 솔리테어도 게임이고 테트리스도 게임입니다. 더 나아가자면 쿵푸 대련도 게임이고 이종격투기도 게임입니다. 이들 간에 무슨 공통점이 있겠습니까.  유사점만 있을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논의하기 위해선 우리는 먼저 주가 되는 용어의 개념부터 새로이 규정하고 그 개념에 대해 합의하고 넘어가야 하는 겁니다.

홍세화님은 '바다이야기' 라는 '게임'을 비판하기 위해 유사성이 극도로 희박한 다른 '게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정부정책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물신풍조가 지배하는 괴물적 사회는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이런 근거를 가지고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을 겁니다. 홍세화님과 '게임'에 대한 정의를 사전에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이외에는요. 이들의 정의는 아마도 '돈을 내고 컴퓨터로 작동하는 놀이기구' 일겁니다. 네, 세상에! 최초에는 대학생들의 레포트 작성을 돕고 돈을 받으려 창업된 PC방을 고의적으로 '게임방'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니까요. 돈을 내고 컴퓨터로 작동되는 놀이기구를 즐기잖아요.

오늘 홍세화님과 같은 정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습니다.
게임물 등급 위원회 출범
게임물 등급위 논란

그리고 그들과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저를 포함해 여기에 있습니다.
루리웹에서 발견한 글
멋진 신세계 -by 황금숲토끼님

게임물 등급위원회의 취지는 굉장히 좋습니다. 영등위에서 게임의 심의까지 맡아온 지금까지의 운영은 확실히 전문성도 떨어지고 공정하지도 못하죠. 그런데, 도박기계 '바다이야기' 때문에 '문화관광부'가 감사를 받아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사실 '문화'와 '관광'이 한 부서에서 한 장관밑에 있다는게 더 웃깁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해명도 마찬가집니다. '바다이야기'를 비롯한 컴퓨터 기반 도박기계를 '게임 산업'으로 분류한 당신들의 개념 체계가 전 국민의 동의를 받기는 했을까요?

물신이 횡행하는 괴물적 사회라고 홍세화님이 불렀던 한국 사회는, 제가 보기엔 공짜 사회입니다. 괴물적 사회? 그렇게 대단하기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은 공짜를 너무 좋아합니다. 모 휴대전화 브랜드 광고에서 공짜아저씨가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라고 외치던 그 목소리는 잊혀진 지 오래입니다. 만화책이든 소설책이든 책은 사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도서대여점에서 빌리는 것이고, 모두들 온갖 P2P 프로그램으로 온갖 불법 자료를 다운받아요. 즐기기 위해선 그 즐기는 대상을 만든 사람에게 돈을 내야 한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조차 잊혀진 사회입니다. 그래서 출판 시장이 죽었고, 패키지 게임 시장이 죽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시장이 죽었고, 그 모든 이들이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은 온라인 게임 시장이었습니다. 이것마저도 사실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게임을 즐기기 위해 돈을 내는 사람보다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기 위해 돈을 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널려 있으니까요. 게임 아이템 거래 시장 규모가 1조를 넘겼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문화'관광부는 여태 뭘 한겁니까. 설마 당신들, '문화'를 '관광'하려고 만든 부서였어요?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도록 모두들 손놓고 가만히 있다가 정작 사실 '문화'와는 거리가 먼 '바다이야기' 파문에 '문화관광부' 감사를 시작했다지요.

이 사회는 책임을 묻는 사회입니다. 문제가 벌어지면 '왜' 그랬냐고 묻지요. 항상 그래요. 잘못한 사람을 찾아내려 합니다. 그리고 그를 벌주려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시는 문제가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항상 '적'을 찾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어떤 '악'을 찾아나섭니다. 이건 심각한 무지의 소치예요. 사회를 병들게 하는건 '악'이나 '악인'이 아니라, 무지입니다. (차라리 악은 사회를 일시적으로는 발전시킵니다. 멀리 볼 것도 없습니다. 히틀러를 보세요.) '술집 주인인줄 알았다'는 변명이 먹힐거라고 생각하는 그런 방향의 무지죠. 모두가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같은 개념을 공유하며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끔찍한 무지 말입니다.

시민단체라고 스스로를 부르고 있는 이익집단들이 게등위의 구성과 운영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물론 투표권을 가진 대한민국 시민이며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될 게등위에 대해 이런 저런 목소리를 내세울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업계 유착'과 '제2의 바다이야기' 파문을 막기 위해 밀어내고 싶어하는 게임업계 사람들 역시 대한민국 시민이며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될 게등위에 대해 이런 저런 목소리를 내세울 권리가 있습니다.

'게임'이란 용어의 개념을 한정하고 그 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건설적인 논의에 함께 참여하는 대신 보이콧하며 그 부정적인 의미로만 가득 차 있는 자신들의 개념을 절대적인 진리처럼 외치는 그들.

시쳇말로 '개념없는 새끼들' 인 셈입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핑퐁> 등의 작가 박민규님의 말을 인용하며 마칩니다.

네가 당룡이냐? 끄덕끄덕. 삼가 한수를 배우겠소. 오호라 학익(鶴翼)의 품세를, 그렇다면 용호(龍虎)의 권세로! 쿵후라는 이름 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좋은 시절이었지만, 이제는 먼 옛날의 이야기이다. (중략) 얼마전 열린 이종격투기 대회에서의 일이다. 종이 울리자마자, KO로 승부가 난 경기가 있었다. 복서출신의 패자는 습관처럼 푸트웍을 밟아보려다 불의의 기습을 당했다. 선공을 하지 말란 법은 없었지만, 뭐랄까 그런 기분이었다. 즉 삼가 한수를 배우겠, 에서의 '퍼벅' 의 느낌. 정신을 차린 그의 표정에서 나는 그런 문장을 읽을 수 있었다. 푸트웍 좀 해보자. 개새끼야.

- 대산 문학 2004년 여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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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육군훈련소에 입소했을 때, 훈련소장이라는 그 별 두개짜리 '아저씨'는 저를 포함한 수많은 청년들을 향해 이렇게 말을 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이제부터 '아저씨'가 되는 겁니다."

심장이 턱 하고 멈춰버릴 것 같은 끔찍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습니다. 그 뒤에 '자신과 가족에 대해 책임을 지고 조국과 국가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가 이어졌지만 그건 그 당시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저씨가 된다.

내가 아저씨가 된다.

내가 아저씨가 된다.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말은.

제가 '아저씨'라는 단어를 통해 연상하는 가장 첫번째 이미지는, 지하철 의자 한가운데 눕듯이 앉아 양 무릎은 넓게 쩍 벌리고 머리를 옆으로 꼬며 침을 질질 흘려가며 자고 있는 나이 든 남자의 모습입니다. 양 쪽에 어떤 사람들이 앉아있든 개의치 않고 머리를 주억이고 몸을 기대면서 말이죠.

두번째 이미지는, 후줄근한 잠바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머리를 꼿꼿하게 치켜들고 팔자 걸음을 걸으며 공공 장소에서 코와 입으로 연기를 물씬 뿜어내며 황홀한 듯 담배를 피우다 바닥에 가래침을 퉤에엑 하고 뱉는 그런 나이 든 남자의 이미지입니다. '뭘 쳐다봐?' 내지는 '니가 여기 주인이냐?' 와 같은 인상의 눈빛이 중요해요.

세번째 이미지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 상 앞에 앉아야 하는 음식점에서 밥그릇에 담뱃재를 털면서 웃도리를 벗어 던지고 허리띠도 풀면서 '어이 아가씨!' 내지는 '어이 아줌마!'('어이'가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아주 커다란 목소리로 손을 들어 종업원을 재촉해대서 겨우 반찬이나 더 내놓으라고 아기처럼 투정을 부리는 그런 나이 든 남자의 이미지입니다. '여기 뭐 서비스가 이래애~ 이럼 다시 안와버려~' 와 같은 목소리에 술기운이 가득 담겨있기도 하지요.

우린 보통 아저씨라는 호칭을 존중이나 존경을 떠나 '인정'하는 대상에게도 잘 쓰지 않습니다. 아주 평범해 보이는 보통의 행인 중에서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남자를 향해 약간 비하하는 느낌으로 말하곤 하죠. '어이 아저씨! 여기 들어오면 안돼요.' 물론 모두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상대를 깔보거나 낮춰보는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제게는 이상하게 그런 소리가 더 많이 들려왔답니다.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소위 말하는 '나이스 미들'이랄지, '신사분' 이랄지, '선생님'이라고만 불러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중년의 남자는 매우 찾기 힘듭니다. 저만 그런건진 모르겠는데, 거리에서건 학교에서건 직장에서건 정말 보기 힘들어요. 나이가 들고 나면 이상하게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에티켓도, 매너도 다 사라지고 남는 건 '젊은 사람들이 거 왜 이래?' 라든지 '장유유서 몰라? 엉!' 과 같은 호통 뿐이죠.

돈이 많은 '아저씨'들은 비싼 술집에서 젊은 여성들을 양 팔에 감고 히히덕대며 해외 관광을 나가면 현지 여성의 성을 돈을 주고 구매하곤 합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전에 물의를 일으켰던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처럼, "술집 주인인줄 알고 그랬다." 는 변명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정도로 세상 모든 여자들을 대상화하고 '먹는 것'처럼 인식하게 되어버리는 거죠. "나이 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릴 다니네"(서태지와 아이들 - 시대유감 中)요.

돈이 없는 '아저씨'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지하철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옆에 앉은 젊은 여성에게 자기 엉덩이를 밀착시키고 붙어 앉아 조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팔꿈치로 가슴을 건드리는 모습을 한두번 본게 아닙니다. 만원 버스 안에서 일부러 여자들 등 뒤에 몸을 붙인다던지, 어린 여학생이 힘들게 사람들 틈을 비집고 올라타는데 도와주는 척 하면서 슬쩍 슬쩍 더듬는다든지. 그런 자들은 제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거의 다 '아저씨'예요.

그들에겐 아무런 염치도 남아있지 않은 걸까요? 집에 돌아가면 그 '아저씨'들은 아이들에겐 아버지고, 선량한 '아줌마'들의 남편일텐데. 어째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 나오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거죠? 아니, 설마 그 많은 남자들이 다 아이들에겐 관심도 없고 아내를 마구 부려먹으면서 속으로는 바람필 궁리나 하는 그런 추악한 존재들인 건가요? 그러면서 누군가 그들의 잘못된 행동에 용감하게 제재를 하려 나서면 자신들이 얼마나 개발독재 시대에 그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이 사회를 일으켜 세웠는데 그 열매는 우리들이 다 따먹고 있다든지, 그러니 어른공경을 할 줄 알아야지 너희들이 이렇게 어른 앞에서 눈 똑바로 뜨고 바락바락 할 말 못할 말 다 챙기면 안되는 거라든지 하는 소리를 해가며 자신들은 끝까지 아무 잘못도 없고 오히려 희생자, 피해자, 순교자인 양 시늉을 합니다. 최연희처럼 '다 잊고 싶다'면서요. 토할 것 같아요.

담배를 너무 피워서 "검게 물든 입술," 술이라면 아무거나 막 들어가는 튀어나온 배 위에 걸쳐진 까만 가죽 허리띠, 땀냄새 나는 멀건 와이셔츠. 살집에 눌려 길게 찢어진 눈속에 희미하게 탐욕이 가득 배인 눈동자. 온 세상 남자들을 예비 성범죄자로 만든 그 한심하게 훤한 머리 속과 손가락.  

전 결코 그런 '아저씨'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제발 절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아줘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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