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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기형이거나, 어디가 좀 모자라면 버려집니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7세 때부터 시작되는 군사교육은, 어린 소년으로 하여금 굶주린 늑대를 함정에 빠트려 무력하게 버둥거릴때 서슴없이 찔러 죽이는 것을 당연하게 실행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저는 사람 목숨 동물 목숨 어느게 더 소중한지 몰라요. 적어도 비겁하게 좁은 틈으로 숨어들어간 소년 레오니다스는, 늑대보다 몇배는 흉칙해보였습니다. 저 시작부터.)

피를 가지고 웃으며 노는 남자들의 나라 스파르타를 향해 다가오는 것은 동방의 대국 페르시아가 보낸 대군. 흙과 물을 보내 충성의 서약만 하면 살던대로 살게 해주겠다는 사신의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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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질 한방에 묵과당합니다.

뭐가 이성이고 뭐가 자유입니까. 입으로 열심히 이성과 자유를 부르짖어도, 그들은 절대로 이성적이지도, 자유민이지도 않습니다. 출생부터 전사이길 강요당하는 그들이, 자유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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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출생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기형이라 스파르타를 떠나 자라난 이 사람. 에피알테스. 스파르타인으로서 싸울수 있다고 말하는 그를 레오니다스는 '불구의 손으로는 방패를 들어 네 옆의 동료를 지킬 수 없다.'며 내칩니다. 300개의 복근이 하나처럼 움직이는 밀집 진형이 스파르타 군의 강점이었죠. 혹독한 훈련으로 잘 정돈된 300개의 육체와 전혀 다른 이 사람에게 스파르타는 함께 싸울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기회따위 존재하지도 않았죠. 원래 스파르타에서 기형으로 태어난 그는 죽었어야 했으니까요. 스파르타에 그의 자리는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도, 스파르타에서는 전열을 이탈하면 죽고 맙니다.

레오니다스는 자신의 병사들이 노예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네. 아니에요. 하지만 그들은 독립된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스파르탄'일 뿐입니다. 레오니다스 자신이 늘 그렇게 부르잖아요. 300명밖에 안되는데도 이름을 불러주는 게 아니라 '스파르탄!'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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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 페르시아의 관대한 왕이며 '자칭 신' 크세르크세스는 레오니다스에게 스파르타의 방식을 존중해줄 테니 그저 충성의 맹세만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오히려 더 많은 명예를 보장하겠다고 하지요. 모든 그리스를 스파르타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그건 페르시아에게도 이로운 일이며, 사실 스파르타에게도 손해볼 게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스파르타의 원로와 흉한 몰골의 제사장들은 뒷거래를 했을 겁니다.

그러나 레오니다스는 굴복하지 않고 끝없이 싸웠습니다. 아니, 죽였습니다. 어린 시절 굶주린 늑대를 좁은 바위틈에 끼이게 하고 무력해진 늑대를 찔러 죽였을 때처럼, 그렇게 페르시아의 군대를 좁은 테르모필레 협곡에 끼워놓고 무력해진 그들을 300개의 복근으로 이루어진 창으로 찔러 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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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계에서 몰려든, 복색도 전투 방식도 다양한 페르시아의 군대를 보면, 크세르크세스는 진실으로 관대한 왕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그는 스파르타가 내친 에피알테스도 받아들였습니다. 두 팔이 없는 사람도 창도 방패도 들 수 없다며 버려지지 않습니다. 그의 군대에서는 두 팔이 없더라도 양 팔에 칼날을 손 대신 붙이고 사형 집행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몇배는 거구인 사람도 그의 군대에서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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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관대하지 않나요? 그렇게 관대했기에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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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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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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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에게도 무제한적인 충성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들이 노예라서가 아닙니다. 어리석어서도 아니에요. 크세르크세스를 위해 엎드려 몸으로 계단을 만들어주는 노예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왕은 신이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다른 인간과 모습이나 복색이 다르더라도 자신의 군대로 인정해준다. 그런 믿음 말이예요.

적어도 다양한 문화권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인정해주는 크세르크세스는, 팔을 들어올리지 못하는 에피알테스를 내친 레오니다스보다 300배는 관대한 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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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알테스를 받아들인 다음에도, 악귀처럼 자신의 병사들을 학살하고 있는 300명의 '스파르탄'을 죽일 기회가 왔음에도 그는 죽이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손을 내밉니다. 그러나 레오니다스는 창을 던집니다. 정말이지 말이 안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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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신으로 만들어 비로소 저 수많은 다양한 인종과 출신의 백성들에게서 충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크세르크세스는 뺨을 스치며 자신의 피를 낸 레오니다스의 창으로 말미아마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신이 아니고, 신성을 잃어버린 페르시아 군대는 흩어질 수밖에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오리엔탈리즘을 말하는 사람들을 경멸합니다. 이 영화의 괴물은 스파르타예요. 페르시아가 아닙니다. 그들의 잘 정돈된 육체. 다비드의 그림에서처럼 아름답게 정돈된, 암포라에 새겨진 무늬처럼 단정한 300개의 육체가 바로 대화도 통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인간을 죽여대는, 물리쳐야 할 괴물인 겁니다. <에일리언>의 단 한 마리 에일리언, <고질라>의 단 한 마리 고질라, <괴물>의 단 한 마리 괴물처럼요.

그리고 그 괴물은 죽지 않았습니다. 100배로 불어나서 돌아왔습니다. 그리하여 페르시아는 쓰러졌고, 서구 문명은 팽창했고, 자신들이 올바르다고 믿으며 세계를 지배하려 들었죠. 페르시아처럼 상대방을 인정하는 관용도 없이, 자기네처럼 정돈된 복근을 갖지 못하면 죽여버리면서. 헬레니즘은 그렇게 확장되었습니다.


자기네처럼 흰 피부를 갖지 못하면 죽여버리면서. 자기네처럼 하느님을 믿지 못하면 죽여버리면서. 자기네처럼 과학적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면 죽여버리면서.

지금도 그렇게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혹평하는 사람들은 괴물같은 페르시아와 조각상같은 스파르타의 대조가, 너무 단순한 미적인 악과 선의 대조를 통해 역사를 왜곡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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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가 야만적으로 묘사되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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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라고 별 다르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아가 괴물같은 자들로 이루어졌다? 외모가 어떻게 다르든, 그들 모두의 신 크세르크세스의 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페르시아가 저는 스파르타보다 몇배는 이성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의 외모에 눈살을 찌뿌렸던 지금 거기 있는 당신! 그들의 외모가 '악'을 나타냈다고 믿는 지금 거기 있는 당신은 어쩌면 정돈된 신체를 갖지 못하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인간은 누구나 다르게 생겼습니다. 조금 많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네. 송곳니가 좀 튀어 나올 수도 있고, 덩치가 무지하게 클 수도 있고, 팔이 없어서 칼을 팔대신 끼울 수도 있는겁니다. 다 인간이에요.  그러나 그 모두를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 포섭하는 법을 페르시아와 로마, 한 등 대제국들이 멸망해버린 후 암흑시대부터 '다시' 지난 2000년간 배웠습니다.

아직도 덜 배웠어요.

그러니까 이 영화를 인종주의나 오리엔탈리즘으로 보고 있는 여러분들 자신이 인종주의자인 겁니다. 나치식의 인종주의자이기에 여러분들은 이 영화가 묘사한 페르시아의 그 다양성이 나타내는 아름다움을 이해 못하는 겁니다. 얼굴 한쪽이 일그러진 여자도 여성으로서 인정받고, 절룩거리며 왼팔도 제대로 못쓰는 에피알테스도 남자로서 성욕을 채울 수 있게 해주는 크세르크세스의 처우는 분명 '정당'합니다.  

단지 모습이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크세르크세스의 그 온화한 목소리를 가식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관대함은 '영화 속에 근거가 눈에 빤히 보이는데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생각과 같은' 모습을 가진 레오니다스의 입에서 나오는 자유와 이성에는 '영화 속에서조차 근거가 하나도 없는데' 거짓말이며 가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건가요?

제가 마음에 안들었던 부분은 딱 한가지입니다. 레오니다스의 죽음 직전의 연설. 노예와 자유민의 대비는 <알렉산더>와 같은 영화에서도 나왔습니다. 참 이놈의 연설 하는게 우스워요. 그 시절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가치를 그 시대 사람의 입으로 말합니다. 어차피 다 거짓말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남자들 군대가면 흔히 듣는 말이 인권을 보장 받으려면 한 사람 구실을 하라는 소리예요. 즉, '자진해서 복종하는 것이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거죠. 똑같은 헛소리인 겁니다. 영화에는 '접전 직전 사령관의 연설'이 참 많이도 나옵니다. 아무래도 선동적인 분위기를 조장하고 관객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내심 응원하게 만들기 좋은 방식이긴 합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령관 연설' 장면은 <매트릭스 : 레볼루션>에 나오는 캡틴 미퓨네의 연설이에요. We give them HELL before we die! 짧고, 명료하죠. 레오니다스도 조금만 더 짧게, 괜히 자유니 어쩌니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했다면 좋아했을 텐데요.  

어쨌든 저 한가지 단점만 제외하면 300은 분명 '공정한 시각으로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린' 잘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는 여러가지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한 영화를 보는 그 각도는 그 사람의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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