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사였던 거 같은데 한국 전래동화(뒤에 숫자도 붙었던 거 같은데 몇번째였는지는 모르겠어요)라는 제목이 붙은 책이 있었습니다. 아동문고치고는 글자도 좀 작은 편이고 지금 문고판 소설 정도 느낌이었던걸로 기억해요. 아마 초등학교 5~6학년이 적정 연령이었던 거 같은데 처음 읽었을 때 전 2학년이었습니다.

그 책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중에 기억나는 것중 하나가 '반쪽이' 연작이라고 해야 하나, 반쪽이라는 주인공을 소재로 하는 네편인가 다섯편의 이야기가 있었어요. 반쪽이는 날때부터 반쪽이라서 반쪽이라고 불렸습니다. 팔도 하나. 다리도 하나. 눈도 하나. 입도 하나. 귀도 하나밖에 없었대요. 대신 두 팔의 힘이 모두 한 팔에 옮겨 붙었는지 팔 힘은 굉장히 쎘대요.

반쪽이에겐 두 형이 있었습니다. 큰 형은 힘이 좋고 둘째 형은 영리했나봐요. 부모님은 두 형제를 지극히 사랑했지만, 반쪽이는 반쪽이라서 반쪽밖에 사랑하지 않았습니다.(이 대목에서 눈물이 왈칵 나왔던 것 같아요) 형들도 반쪽밖에 안되는 동생이 거추장스럽다며 어딜 가든 떼어놓고 둘이만 갔답니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영웅 신화입니다. 사람으로 둔갑하기도 하는 거대 호랑이가 아버지를 물어가고, 속임수로 두 형을 차례로 물어가면 반쪽이는 쫒아가서 그 무지막지한 팔힘으로 호랑이를 한방에 눕히고 배를 갈라 아버지와 두 형을 구출합니다. 왜구가 쳐들어와 현감의 딸을 납치하면 두 형이 전략을 짜내느라 고심하는 사이 반쪽이는 용맹하게 반쪽밖에 없는 몸으로 왜선에 올라 딸을 구출해옵니다. 그 외에도 오랑캐 두목도 눕히고, 아마 도깨비 왕도 눕혔던 거 같네요.

사람들은 모험을 떠난 반쪽이를 볼때마다, 반쪽밖에 안되는 청년이 뭘 하겠냐며 우습게 봅니다. 반쪽이는 바로 그런 틈을 파고드는 거죠. 다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하나밖에 없는 팔이 괴력을 발휘하는 거예요.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이야기를 계속 읽게 만들었었죠.

재미있는 점은, 평소에는 그렇게 홀대하던 부모님은 두 형이 모험을 위해 길을 떠날 때는 잘 다녀오라고 말하면서, 반쪽이가 뒤따라 가려고만 하면 울며 불며 말리더라는 겁니다. 그래도 반이라도 사랑은 하긴 했나봅니다. 너는 반쪽밖에 안되는데 형들도 못한 일을 네가 어찌 하느냐. 네가 가버리면 우린 아들 셋을 다 잃는거 아니냐. 그러면 반쪽이는 매번 담담하게 그러더라고요.

"염려 마십시오. 저는 반쪽이니 저를 잃어도 슬픔은 반밖에 되지 않을 것 아니겠습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팔을 들어올려 방패를 들지 못하는, 그래서 용맹한 스파르타 인이 될 수 없었던 에피알테스를 보면서 자꾸만 어릴때 읽었던 반쪽이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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