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 위에 우뚝 솟은 유일한 도시, 바벨 시티는 크게 세 층으로 나누어집니다. 순혈통의 인간인 1급인간만이 안드로이드 및 제조 인간 등을 거느리고 거주할 수 있는 최상층과, 방사능으로 인해 오염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2급 인간이 거주하는 중간층, 그리고 그 두 층으로부터 도망친 무법자들과 변형 형질이 발현되어 반쯤은 인간이 아닌 3급 인간들이 거주하는 최하층입니다. 위쪽으로의 이동은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어, 아래 층에서 태어난 자가 위 층으로 올라오려 하면 반드시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1급 인간들은 지구를 폐허로 만든 전쟁이 감정의 통제가 미흡해서 발생했다고 보며, 그리하여 그들은 인간의 폭력성과 욕망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종류의 문화를 폐각했습니다. 음악, 미술, 문학, 그 어떤 것이든. 성관계는 물론 가벼운 신체 접촉도 금지되어, 그들은 모두 복제를 통해 시험관에서 태어납니다. 문화를 즐기는 것, 그리고 '의도된' 신체 접촉 ─ 입맞춤을 비롯해 ─ 에의 처벌은 하층으로의 추방입니다.
중간층의 인구는 오염된 유전자로 인해 발현되는 초능력 때문에 언제나 1급 인간들에 의해 수탈당해왔고, '너무 많은 번식'을 막기 위해 1급 인간들은 이따금 이유 없이 중간층을 정벌하여 아이들을 살해합니다. 자유롭게 사랑하고 시와 노래를 향유하지만 한정된 공간 안에서 강요된 노동을 해야만 하는 그들은 늘 1급 인간들에 대한 반역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3급 인간들은 2급 인간들 사이에서, 그러니까 초능력을 발휘하는 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뒤틀려 있어, 복잡하게 발현되는 강한 초능력의 노예가 되어 이성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괴물이 되곤 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죽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늘 위쪽으로의 공격을 감행하기에, 1급 인간들은 징집된 2급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동원한 폭력으로 그들을 길들여, 완전히 괴물이 되어버린 도시 밖의 생물들로 하여금 도시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끝이 없는 전투를 벌이게 하고 있습니다.

소년은 1급 인간으로, 지정된 부모와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친 안드로이드가 그들을 2급 인간이라고 말하며 부모를 죽였고, 소년은 간신히 도망쳐 중간층으로 들어섭니다.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소년은 저항군에 가담하여, 최상층을 향한 반역의 기치를 들어올립니다. 그들은 온갖 모습의 안드로이드 ─ 사람 크기의 전투기로 변신하거나, 전차로 변신하는 그런 ─ 로 변장하고 침투하여 테러를 감행하고 요인을 암살하길 거듭하였습니다. 반드시 노래를 부르면서. 평범한 사랑노래요.

많은 전우를 잃었지만 이상하게도 소년은 총알 하나 스친 적 없었습니다. 부상조차 남의 일이기만 했지요. 그러다 마침내 수세에 몰리고, 거대한 미로와도 같은 지하도에서 안드로이드의 추격을 피해 소년은 자신이 이끄는 부대를 중간층으로 탈출시키려 합니다. 안드로이드 패치워크(...알아듣는 사람들 위대해요)의 무기 '증오의 일격'은 2급 인간의 유전자를 감지하여 1.2초마다 사격하고, 발사되면 타겟을 따라가고 빗나감은 없기에 지형을 이용해 막아내지 않는 이상 반드시 한 명은 죽습니다. 소년은 분전했지만 마침내 부대는 전멸하고, 겨우 도망친 소년은 지치고 피로한 나머지 구석에 앉아, 2급 인간들에겐 성서와도 같은, 소설책을 펴 읽으며 잠을 쫒으려다 결국은 잠이 듭니다.
 
문득 노랫소리가 들려 눈을 떠보니, 유전자 감지기는 분명 1급이라고 가리키고 있는 나이 든 남자가 노래를 부르며 가벼운 춤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수상하게 생각한 소년은 그를 뒤따라가고, 마침내 그를 붙잡으려 하는 순간, 유령처럼 남자의 곁을 맴돌며 달라붙은 흐릿한 붉은 머리의 미소녀가, 남자의 등 뒤에 붙어 서서 남자의 목을 벱니다. 소년은 반사적으로 총을 쏘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턱 밑을 스치고 지나간 총알 흔적이 격심하게 아파옵니다. 눈앞에 쓰러져 있는 건 노래부르는 남자가 아니라, 꿈에서 보았던 미소녀와 똑같은 그 붉은 머리의 미소녀 안드로이드였습니다. 자신이 쏘아 죽인. 부서진 머리 사이로 기계장치가 선명히 보입니다. 턱 밑을 슥 문지르다 소년은 금속성의 느낌에 퍼득 놀랍니다. 자신의 턱 밑으로 비어져 나온 것은 피가 아니라 금속 조각들이었습니다.

그 자신도 안드로이드였던 것입니다. 주인 없이 버려진 이상, 결코 1급 인간들과 함께 살 수 없는 그런 안드로이드. 주인에게 버려진 이상, 2급 인간보다도 못한 그 안드로이드.

웃음을 지으며 소년은 총탄의 열기로 인해 그을리고 일그러져버린 자신의 얼굴 가죽을 찢어버리고 기계로 된 맨 눈을 깨끗하게 씻어냅니다.

"이젠 깨끗한 눈으로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

소년은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오래전 보급품으로 소설을 받을 때 그 많은 낡은 문고판 중에서 유독 마음이 끌려 골랐던 소설책, <피노키오>를 읽어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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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앞에 설치된 강단에서 연설에 열을 올리는, 지장보살과 같은 온화한 얼굴이 매력적인 종합병원 원장을 향해 사람들은 열광의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 지역 생활보호 대상자에게 무상 의료 서비스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하는 중인 것 같은데.

철컥 소리가 나서 사람들 중 몇몇이 눈을 돌려보니 강단 옆에 교복 입은 소녀가 소총을 들어 원장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울고 있었는지 눈물을 철철 흘려서 눈이 새빨갛게 물들고 옷 앞자락이 땀과 눈물로 흥건히 젖어 있었습니다. 누군가 손을 뻗어 말려보기도 전에 몇 차례나 소총이 발사되고 원장은 쓰러져 죽습니다. 피가 강단 아래로 흘러내리고 사람들은 우왕좌왕 도망칩니다. 강단에 앉아 있던 국회의원이나 구청장 같은 사람들을 향해서도 소녀는 총을 쏩니다. 맞은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헐떡이며 그들을 쫒아가 마구 쏘아대던 소녀는 그만 지쳤는지 주저앉고, 경찰들이 달려와서 소녀를 향해 총을 겨눕니다. 총을 늘어뜨린 채 하늘을 보고 있던 소녀는 문득 덜덜 떨면서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앳된 얼굴의 순경을 향해 눈을 돌렸습니다.

"아저씨는 사람이네?"

"뭐?"

"나를 죽이고 내 일을 이어서 해주세요."

"뭐? 뭐라는 거야! 어서 총을 버려!"

"공포탄으로 사람을 죽이려면 바짝 붙어야죠."

소녀는 덜덜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총을 질질 끌면서 다가와서 순경의 총구 앞에 자신의 왼쪽 가슴을 들이밉니다.

"자, 빨리!"

총을 들어 자신을 겨누려는 소녀를 보자마자 순경은 엉겁결에 발포했고, 폭사되는 공포탄의 화약이 소녀의 가슴을 뚫고 심장을 찢었습니다. 소녀가 쓰러지고,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마자 순경은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며 달려오는 동료 경찰들의 얼굴들이 모두 끈적한 체액이 줄줄 흐르는 역겨운 악마의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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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경의 시점이었음. 원래 끈적하고 갈색이거나 빨간색조인 소위 'tentacle' 계열 악마 디자인에 별로 거부감이 없는데 이상하게 꿈에서 보니까 무지무지 무서웠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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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이라고 불리던 종족들은 먼 옛날에 '악마'를 소환한 적이 있다. 마치 운석처럼 검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온 그것은, 사람보다 열몇배나 키가 크고 몸은 타오르는 돌로 되어 있으며, 불을 뿜는 채찍과 거대한 금속 방패로 무장한 악마들은, 그것을 불러낸 자들에게도 공포였다.
더한 공포는, 그것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소환자를 잡아먹고 불을 토해 둘이 되었다. 둘은 또 다른 이들을 불살라 잡아먹고 넷이 되었다. 그들은 늘어나서 마침내 만의 영토를 벗어나 세상으로 기어나왔다.

모두가 파멸을 말하며 공포에 질렸을때 단 한명 아티아의 성녀만이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우리 남편과 아들들에게 저들을 물리칠 힘을 내려달라고. 우리 여식들을 지키게 해달라고. 그녀는 마침내 목숨과 맞바꿔 신의 응답을 들었다.

커다란 운석이 만의 영토 한 가운데 떨어졌다. 그 운석은 검게 타버린 하늘을 향해 수십가닥 푸른 빛을 내어쏘았고, 빛은 곧 그 아래에 있던 남자들을 향해 떨어져내렸다. 그들 중에는 아주 어린 아이도 있었고, 노인들도 있었다.

그것들의 불길에도 타지 않는 강건한 몸과, 그것의 돌처럼 단단한 살갗을 깨부술 무기를 얻게된 아티아의 남편과 아들들은 악마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아주 어린 아이라도 거대한 도끼를 휘둘러 단 한방에 그 것들을 돌조각으로 흩어버리곤 했다. 성기사라 불리던, 신에게 받은 힘을 휘두르는 그들의 위용에, 두려운 것이 없어보이던 악마들은 방패를 들어 몸을 가리며 서로 뭉쳐서 만의 영토로 물러났고, 두번 다시 거기서 나오지 못했다.

여자들은 신의 이름을 높이 부르짖으며 악마를 물리친 남자들에게 뜨거운 포옹과 입맞춤을 선사했다. 그것이 신에게 바치는 최대의 감사였다.

아티아의 남자들은 그 후로 누구나 모든 여자들의 주인이 되었다.

좋은 주인이었을 수도 있지만, 주인은 언제나 포악한 법.



긴 세월이 흐른 뒤.

만은 또 다시 악마를 소환했다. 뱀처럼 구불텅거리다 안개처럼 흩어지는, 한입에 몇 사람을 집어 삼키고 물속에 녹아 사라지는 것들. 잡아 먹힌 사람들은 아무 변화 없이 여전히 대지를 걷지만, 그들의 눈동자는 흐리고 걸음은 흔들렸다. 그리고 곧, 다른 이들 앞에 서면 먹은 것을 토하듯 그 커다란 것들을 토해내며 제자리에서 녹아내리고 만다.
 
그 것들이 긴 날개를 펴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제 아티아에는,

그들의 주인에 불과한 남자들, 성기사들을 위해 기도해줄 성녀는 없다.




.....에서 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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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0년대쯤, 조선에서 태어난 쌍둥이 소년들이 하나는 일본 낭인의 손에서 자라나고 하나는 중국 협객 손에서 자라나 소년기에 조선에서 마주치고 한 소녀와 동시에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셋 다 뿔뿔이 흩어졌는데, 나이먹어서 중일전쟁도 터지고 해서 웬수되어서 만난다. 결국 둘 중 하나는 죽는다며 칼로 맞붙는데 두 남자를 다 사랑했던 여자가 사이에 끼어서 양쪽에서 칼맞고 죽는 피범벅 꿈.

2. 중세 말, 공주님은 정략결혼을 위해 혼처로 향한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주군에게 충직하여 그녀의 호위를 자처한 기사. 온갖 노력을 했지만 결국 반국왕파에 의해 대로 한복판에서 그녀를 잃고 처음으로 임무에 실패한 충격과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충격이 겹친 김에 미쳐버려 스스로 목을 잘라버린다. 그로부터 200년 후,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갱단에게 추적당하던 시장의 딸이 절대절명의 위기에 몰렸을 때 그녀를 구해준 것은 머리가 없는 기사. 기사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 5월 23일경, 포스팅하려고 이글루스에 메모 끄적끄적하다가 익스플로러 오류나서 날려먹고는 잊어먹고 있었는데 오늘 이글루스에 '임시저장본'을 따로 모아서 보는 기능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서 거기 걸려있던 메모만 일단 복구합니다. 티스토리엔 왜 이런 기능이 없는 거람.

구체적인 장면들을 기억해내자니 1번은 칼부림 난무하고 조선인들(저 사이에 낀 여성 포함)이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일어나보니 베게가 다 젖었음) 억울한 처우를 받았던 것만 기억나고, 2번은 200년후의 자동차 추격 신에서 갑자기 오토바이를 탄 머리 없는 기사가 트레일러와 버스 지붕 위를 점프해가며 달려오던 장면만 기억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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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겐 남동생이 있고,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가족입니다. 그러나 다리를 쓰지 못하는 정신과의사는 소녀와 대화하면서 이 집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부부의 침실이 두 개고, 남동생의 방도 두개이며, 소녀의 방도 두개입니다. 왜 그럴까요. 얼마 되지 않는 면적에 많은 방을 넣어두기 위해 온통 파란 색과 녹색으로 치장된 집안에는 계단과 복도가 이리저리 비틀려 있습니다.  

소녀를 쫒아다니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학교까지 찾아옵니다. 소녀의 아빠는 소녀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소녀에게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의 방에서 학교가 내려다보이는데, 소녀의 아빠는 소녀를 쫒으며 복도를 걷는 수상한 검은 옷의 남자를 호신용 라이플의 조준경으로 똑똑히 본 겁니다.

집에만 있어야 하는 소녀는 정신과 의사에게 끝으로 말합니다.

'저는 절대로 그 집에 낮에 있고 싶지 않아요.'

절박한 목소리에 대체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 어렵사리 소녀의 집에 찾아갔던 정신과 의사는 그 곳에서 완전히 모습을 바꿔버리는 소녀의 가족들을 보게 됩니다. 소녀가 학교에 갈 시간이면 귀여웠던 남동생이 부풀어올라 보기 흉한 고도비만 아이가 되어 온 입에 먹을 것을 처바르고, 엄마는 머리를 잔뜩 볶아올린 소름끼치는 피어싱 여자가 되어서 남동생에게 먹을 것을 부어줍니다. 아빠도 술병을 입에 물고 다니는 볼살 늘어지고 호통만 치는 남자가 되어서 소녀를 향해 '넌 누구냐. 왜 우리 딸같이 안생긴게 우리 딸 방에 있냐'고 외칩니다. 당장이라도 때려죽일 것처럼. 정신과의사는 간신히 원래의 소녀의 방에 숨어서, 행복했던 소녀의 옛 사진들을 살펴봅니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남자는 지금의 이 아빠가 아니에요.

소녀는 급히 아줌마같은 가발을 쓰고 얼굴을 바보같이 일그러트리며 헤실거리지만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이제 아빠는 집안 청소를 해야 한다며 온 집안에 흰 종이를 덕지덕지 붙이고, 그러던 와중에 가정방문을 온 소녀의 학교 교사에게 마침 잘 왔다며 학교 건물 안을 돌아다니는 수상한 남자를 보여주겠다고 베란다로 이끌고 갑니다. 라이플을 쥐어주고 조준경으로 학교 몇층 몇번째 창문을 보라고 하는 순간, 그 창문에서 불이 번뜩였고, 조준경에 눈을 대고 있던 교사의 머리를 총알이 뚫고 지나갑니다. 흰 벽지에 튀는 붉은 피. 소녀의 비명.

소녀의 아빠는 도망쳐야 한다며 아직 속옷차림이었던 소녀만을 이끌고 종이로 뒤덮인 문을 밀쳐 열고 밖으로 나갑니다. 거리에는 이미 붉은 경광봉을 휘두르며 교통 통제를 하고 있는 경찰들이 붉은 플라스틱 방패를 내밀어 길을 막고 서 있습니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양 차에 오르려 할때, 총성과 함께 소녀의 흰 속옷에 피가 튀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소녀를 잡습니다.

"내가 네 아빠다. 널 오랫동안 찾아왔다. 이제 돌아가자."

흉하게 일그러진 남자의 시체에서 흐르는 피가 소녀의 맨발을 감습니다. 소녀는 가발을 벗어던지며 조심스레 발을 들어 그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원래는 팀 버튼 영화의 색감과 달리의 질감을 합쳐놓은 것 같은 엄청난 이미지들이 폭주했는데 그걸 다 글로 표현을 못하겠는게 우울.
덧붙여서 소녀 역에는 어린 시절의 나탈리 포트만, 수상한 남자 역에는 에릭 바나가 수염을 기르고 나왔어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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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멀지 않은 옛날입니다. 카세트 테이프가 들어가는 286 컴퓨터와 재믹스 게임기, 롤러가 달린 스케이트보드, 조그만 장난감들이 들어 있는 100원짜리 캡슐 뽑기와 소아과 병원에서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용 주사기의 시절입니다. 간호사가 꿈인 소녀는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해서 늘 수많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오빠도 있고 남동생도 있고 말썽꾸러기 여동생도 있어서 네 남매였는데요. 어느날 동네에 나타난 마법사 복장을 한 남자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폭죽 구경을 시켜주며 공룡모양 풍선과 솜사탕과 스케치북을 팔았습니다. 남자의 손에서 나무젓가락에 한올한올 감겨나가는 솜사탕을 몇 시간이고 신기한 듯 바라보던 여동생 덕분에, 소녀는 남자에게 특별한 스케치북을 선물받습니다.

"이건 말이다. 아주 특별한 거란다. 여기에 그림을 그리면, 뭐든 다 실현되지."

물론 남동생은 티라노사우루스 모양 풍선을, 오빠는 뽑기에서 당첨되어 깨끗한 새 스케이트보드를, 여동생은 신비의 솜사탕이라고 딱지가 붙은 비닐포장에 쌓인 은회색 솜사탕을 선물로 받았답니다.
 
그런데 다음날 소녀가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남동생이 모든 스케치북을 온통 먹물로 망쳐놓은 겁니다. 한바탕 난리가 났고, 소녀는 마지막 한장만 남은 그 특별한 스케치북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때 돌아온 오빠는,

"괜찮아. 한 장은 남았잖아. 여기에다 그림을 그리는 거야. 먼저 그리기 전에, 뭘 그릴지부터 잘 생각해보고. 그럼 버리지 않아도 되잖아?"

소녀는 울음을 그치고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오빠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케치북을 손에 꼭 쥐고요. 그리고 가벼운 스케치와 함께 이야기가 시작됨에 따라 네 남매는 순식간에 소녀의 상상속에 있던 사막으로 함께 떨어집니다.

"누나땜에 그래!"/"언니 땜에 그래!"
"그만 해 너희들!"

자신을 둘러싸고 옥신각신하는 형제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소녀는 몰래 그들 곁을 떠나고, 갈 길도 모른 채 정처없이 걷다가 어느 계곡에서 커다란 풍선 공룡들과 마주칩니다. 네 발로 지면을 울리며 무리지어 걸어가는 거대한 폴리프로필렌 풍선들. 그리고 그 사이로 뛰어드는 투명한 재질의 사람 키만한 작은 풍선 공룡. 도망치던 소녀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와서 구해준 오빠 덕분에 간신히 자리를 벗어나지만, 막다른 동굴에서 구해준 건 남동생이 갖고 있던 커다란 티라노사우루스 풍선이었습니다. 펑펑 터지는 얇은 비닐 풍선들.

그 동굴안에서 그들은 늘 갖고 싶었던 것을 발견합니다. 게임 팩이 푸른 비닐봉지에 하나가득. 캡슐에 들은 사탕이 까만 비닐봉지에 또 하나가득. 그리고 주사기 세트가 하얀 비닐봉지에 하나가득.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갖고 싶지 않아 해요. 그들이 원하는건 집에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배고픔을 못이기고 손에 들고 있던 포장된 은회색 솜사탕을 먹어버린 여동생은 그때부터 갑자기 모든 걸 알아버린 것처럼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남자는 마법사야. 신기루의 마법사라고 이 사막의 지배자라고 해. 환상으로 공포를 주어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것 같아. 힘을 얻은지 100년이면 죽게 되는데, 후계자에게 힘을 물려주면 죽지 않는대. 우리들 중 하나가, 남자의 후계자가 되어야 하나봐."

누가 되어야 할까요.
그리고, 누가 되든, 나머지는 돌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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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잠에서 깨어나 바로 적는 글. 배경은 제가 구상했던 게임 레무리아 온라인입니다.
요즘 게임할때 느낀 그런 정서와 만들고 싶어하는 게임에 대한 비주얼이 꿈속에서 이리저리 섞여서 이상한 잡탕 스토리가 됐네요.

게임 레무리아 온라인에서 가장 득템이 잘되는 필드, 노르하 사막.
오늘도 올드 유저들은 파티를 맺고 몹 몰이에 여념이 없습니다. 수염이 허연 노인이 열심히 고수준 마법을 캐스팅하는 동안, 젊은 전사들은 낮은 스킬로는 별로 데미지를 내지도 못하는 괴물같은 몹들을 유인해 맵의 가장 구석진 곳까지 끌어옵니다. 계곡 안에 몹들끼리 서로 몸이 걸려서 오도가도 못하는 사이 체인 라이트닝이 시전되고, 마스터 레벨의 전격이 몹들을 날려버립니다. 쓰러지는 시체들을 향해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남녀 캐릭터들. 루팅할때마다 옷이며 금화가 후드득 떨어집니다. 이미 죽을 나이가 지났는데 그 비싼 생명약으로 한달 한달을 사는게 틀림없는 저 노인 캐릭터의 뒤에 앉아있을 유저는 분명 피식피식 웃고 있을 거 같습니다. 파티원들마다 자기에게 일정량의 돈을 주고 가니까 말이죠.
"저럼 재밌나."
계곡 위에서 한마디 툭 내뱉고 지나가는, 긴 검을 어깨에 걸머지고 까만 머리칼을 양쪽으로 질끈 묶은 여자. 니니엘입니다.
"심술나요. 저희들끼리만 다 헤쳐먹고."
옆에서 소녀 캐릭터가 한마디 내뱉습니다. 이름은 '귤'. 니니엘을 엄마라고 부르며 따르지만 사실 게임상의 관계는 그냥 동등한 유저캐릭터입니다.
"돈 저렇게 모아서 뭐에다 쓰려는지 원. 퀘스트도 안해. 던전플레이도 안해. 그렇다고 몹잡으려고 열심히 스킬 올리는 것도 아니고."
"마망. 나, 재밌는 생각났다?"
니니엘은 귤을 돌아보았습니다. 핑크빛 머리칼이 흔들리며 싱긋 웃는 귀여운 얼굴을 살짝 가렸다가 올라갑니다.
"저 속에 뛰어들어서 몹 흩어버리는거예요!"
말과 동시에 도도도도, 달려갑니다. 이미 한쪽에 잔뜩 모여있는 백마리 가까운 몹들 사이로, 귤이는 신나게 달려서 전부 흩어버렸습니다. 몹들이 귤이를 인식하면서 하나 둘 서로를 밀치고 계곡을 빠져나가는 겁니다. 등 뒤에 잔뜩 몹을 달고 전력 질주로 도망오는 귤이를 보며 니니엘은 피식 웃음을 짓고는 검을 뽑아들어 일격에 첫 몹을 베어버립니다. 한번에 한 마리씩. 어려울 것 없는 싸움이네요. 등 뒤에서 귤이는 얼른 죽은척합니다. 몹들 인식이 전부 니니엘로 옮겨왔어요.
"이거나 저 인간들이나 뭐가 다른데?"
"이건 마망 실력이고 저건 쟤네들 스킬빨이잖아요!"
다시 한번 베고, 찌르고, 또 베어내니 나머지 몹들은 공포심이 생겼는지 주춤 하고 물러납니다. 그러는 사이 등 뒤에서 쫒아온 뉴비들이 니니엘을 손가락질하면서 다시 몹에게 인식을 끌어 데려갑니다.
"오래 했음 다야!"
"뉴비도 돈좀 쉽게 벌어보자는데 방해나 하고!"
"니가 그렇게 잘났음 너도 파티맺고 몹 몰아다 쓸어!"
한숨이 나오는 소리들. 니니엘은 귤이를 슬쩍 돌아봅니다.
"잘하는 짓입니다? 따님?"
"에이, 그래도 저사람들 쉽게 쉽게 돈버는 건 보기 싫어. 우리 첨에 얼마나 고생고생하면서 스킬 올리고 옷사입고 그랬어요."
"전력질주랑 죽은척만 마스터 레벨까지 올리느라 참 고생했지요."
"컨셉이라니깐 컨셉!"
귀여운 이모티콘 웃음 때문에 니니엘은 또 웃으며 넘기지만, 금방 표정을 굳힙니다. 아까의 그 노인이 살기등등한 눈길을 보내며 천천히 등 뒤에 수많은 뉴비들을 달고 걸어오고 있어서요.
"칼질 하는거 보니 꽤 한참 하셨나본데, 둘이서 이 많은 뉴비들 고생한걸 헛일로 돌리고도 잘했다고 생각하나?"
"잘못한 것도 아니죠. 그리고 고생이란건, 그런걸 고생이라고 하는게 아니라 퀘스트 망해서 흉터도 생겨보고 혼자서 던전 돌다가 함정에 빠지고 그러는 걸 고생이라고 하는 거예요."
니니엘은 검을 들며 일어났다.
"호오. 난 이 게임 오픈베타때부터 했어. 어지간한 스킬은 다 마스터했고. 그런 나와 싸우시겠다?"
"오픈베타 때부터 하신 분이 그래 이 게임 본질은 잊어먹고 뉴비 지원한다는 핑계로 돈이나 모으고 그걸로 또 생명약 시세조작하고. 잘하는 짓입니다. 결혼도 안했죠? 호감도가 쌓여야 결혼을 하지. 원."
"즐기는 방법은 여러가지야."
"내가 보기엔 당신이 그 여러가지 중 오직 한가지만을 사람들한테 퍼트리는 걸로 보이네요."
"더 이상 못참겠군!"
노인으로부터 전격이 날아들어서 니니엘은 몸을 굴려 피하며 앞으로 뛰어듭니다. 노인이 스태프를 들어 검을 막는것과 동시에 몸을 뒤집어 발로 노인을 차내고, 절벽 뒤로 노인이 떨어집니다. 몹들이 모여 있었고, 노인을 향해 동시에 달려듭니다. 끄아악 하는 비명소리. 살려줘 하는 애처로운 이모티콘.
옆을 돌아보니 뉴비들이 다들 웅성거리며 서로 쳐다만 보고 있습니다. 너 부활 스킬 있어?  아니 없는데. 아직 못배웠어. 난 배웠는데 한번도 안써봐서 비활성화야. 누구 부활스킬 있는사람? 아무도 없어? 니니엘은 또 한번 피식 웃었습니다. 누구나 제일 먼저 배운게 부활스킬인데 하여간 요즘 뉴비들이란.
"가요. 마망."
"부활 시켜 주고 갈까 말까."
"뭘 부활시켜줘요. 저기서 시체 녹을때까지 누워 있어봐야 저런 작자들은 정신차려요."
"그래도 정신 못차릴거 같은데."
니니엘은 귤이에게 이끌려서 걸어가다 아직 루팅 안시킨 시체를 보고 멈춰섰습니다. 귤이가 얼른 시체를 열어 아이템을 꺼냅니다. 비싸고 예쁜 프릴 원피스가!
"와! 나 이거 갖고 싶었는데! 마망 최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니니엘은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PvP 승리 때문에 좀 사회레벨이 깎이긴 했지만 뭐 그정도야 늘상 있는 일.

다음 날 귤이가 접속하자마자 방긋 웃으며 맞이합니다.
"마망! 오늘 또 몹몰이 깨고 놀자. 뎅군도 데려왔어요! 오늘은 남자옷 이쁜거 안나오려나? 응응?"
딱 보니까 거의 질질 끌려온 분위기인 귤이의 남편 데이티아군. 본명보단 늘 '뎅'군이라고 불려서 참 불쌍한데요. 니니엘은 모여있는 몹을 향해 다시 전력 질주를 시작하려는 귤이 어깨를 덥썩 집으며 나직히 말했습니다.
"부부 동반 퀘스트부터 깨고 와야 하지 않겠어요? 바로 요 옆 동굴이잖아요?"
"마마아앙! 그거 무섭,"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방긋 웃으며 윙크하는 금색 눈동자 위로 퀘스트 파티 창이 찰카당,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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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키, 츠뮤

니니, 파피

버트, 하그

(뮤키님의 츠메카린 이야기 등장인물 SD 캐릭터입니다.)

츠메카린 왕궁 1층의 한 방에서 한 남자가 머리에 공구용 망치를 맞아 살해된 채 발견된다. 남자의 신원 검색 결과 그는 언제나 무표정을 유지하는 점이 매력인 CSI 요원 하그나스의 생부로, 하그나스는 남자가 살해된 시점에서 실종된 상태. 항상 45도 각도로 머리를 기울이며 말하는 츠키에테 반장과 인용구를 좋아하는 니니엘과 파피엘, 그리고 늘 성실하지만 약간 맹한 사이버트 등의 CSI 츠메카린 요원들은 함께 수사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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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배경은 19세기 중엽의 유럽 같은 세계. 어느날 갑자기 이유도 없이 사라져버린 아내를 그리워하며 하루 하루 살아가던 미스터 로빈슨. 소녀 취향이 심한 아들을 위해 쇼핑을 나섰다가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인형사에게서 두 인형의 구입을 권유받고는, 하얀 머리칼에 파란 눈을 가진 공주 인형과 녹색머리칼에 붉은 눈을 가진 소년 검사 인형 사이에서 고민하다 공주 인형을 구입하게 됩니다. 아들에게 그 인형은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지요. 그 역시 아들에게 둘도 없는 친구인 인형에게는 더 없이 자상하게 대해주었습니다. 마치 딸이나 며느리라도 되는양 말이죠.

"아빠, 하그가 또 이랬어."
"응. 그랬니. 참 잘했구나. 고맙다. 하그나스."

아들은 자신의 인형에게 너무 친절하게 접근하는 아버지 로빈슨에게 미묘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는 인형 '하그나스(...)'가 어디까지나 아들의 것이라는 걸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늘 그녀를 위한 옷을 부지런히 주문하며, 아름다운 이브닝 드레스를 차려입은 그녀에게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신청하는 퍼포먼스까지 할 정도였지만 말이죠. 하지만 하그나스와 춤을 춘 것은 물론 그의 아들이었습니다.  

부유했던 그에게 접근하는 여자는 꽤 많았는데, 그는 단호히 모든 청혼을 거절하기로 소문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늘 같이 술을 마시는 친구들이 오히려 더 소중했으니까요. 두 주에 한번씩 모여서 서민들처럼 거칠게 맥주를 1000ml 잔으로 들이부으며 피와 영광이 가득했던 군 복무 시절을 회상하다 아침이 올때쯤엔 토사물과 안주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뻗어버리는 그런 광란에 가까운 파티를 벌이는 남자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은 평소엔 모두 말쑥한 젠틀맨들이었지만요.

어느날 그렇게 뻗어있다가, 그는 아들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아들과 연인처럼 정겹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건 그 소녀 인형이었어요. 너무나 놀란 그는 술기운으로 헛것을 보나 하고 당분간 술을 끊기로 합니다. 거기에 도움을 준 건 로이디안 미망인. 그녀는 사라진 아내를 생각나게 할 만큼 따스하고 부드러운 성품이었고, 로빈슨에게 기꺼이 마음을 열고 대해주었지만 인형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믿어버릴 만큼 조금 지나치게 바보같은 성격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를 따라 가게 된 어느 강연에서 로빈슨은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연설자가 그때의 그 인형사였기 때문이에요. 그는 사람의 혼을 인형에 담는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최근의 성공작을 하나 선보입니다. 그건 아내의 인형. 누가 보아도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내를 꼭 빼닮은 그런 인형이었습니다. 그녀가 그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드, 나와 같이 영원히 살아요."

그는 이렇게 단호히 답하고 맙니다.

"거절하겠어. 당신은 더 이상 내 아내가 아냐. 인형일 뿐이지. 인형이 되어 영생하느니, 200리터의 흑맥주 속에 빠져 죽겠어."

인형이 된 그녀를 단호히 뿌리치고 나온 로빈슨을 친구들은 엄청난 환영으로 맞으며 또 다시 광란의 파티로 인도합니다. 진짜로 200리터의 흑맥주를 그를 위해 준비한 거죠. 그야말로 난장판. 삶을 긍정하는 환희의 찬가와 함께 그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쭉 뻗어버립니다.

깨어났을때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은 로이디안 미망인.  

"미스터 로빈슨. 제가 당신 아내의 대신이 될 순 없는 건가요. 전 살아있는 사람인데.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 돈이 아니라, 이렇게 술조차 이기지 못하는 여린 당신 마음을 사랑하는데. 지켜주고 싶은데."
"당신은 좋은 여자요. 내겐 너무 과분해. 이런 엉망진창인 내겐, 차라리 저 인형 하그나스가 더 어울리는 짝일 지도 모르겠소. 그래서 내 아내도 인형이 되고 만 거요. 모두 내 책임이오. 날 떠나시오. 두번다시 나타나지 마시오. 당신은 훌륭한 여자요. 더 좋은 상대가 있을 거요."

그 때 하그나스의 눈동자가 그의 아들을 향해 잠시 돌아갔다는 것은 아마 그는 보지 못했을 겁니다.

분노에 찬 로이디안 미망인은 그가 집에 없는 틈에 하인들 몰래 들어와 그의 아들이 안고 자고 있는 하그나스를 빼앗아듭니다. 칼을 들어 거칠게 목을 잘라버리려 하자 하그나스는 미약하나마 온 힘을 다해 저항하며 비명을 지르고, 아들은 연습용 레이피어를 집어들고 미망인을 공격하지만 어린 소년의 힘으로는 미친 여자의 거친 손길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그나스의 머리는 잘려나가 정원 연못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너 없인 더 살수가 없어! 난 오직 너 뿐이야!"

절규와 함께 아들은 연습용 레이피어의 끝으로 자기 눈을 찔러 자살하고, 로이디안 미망인은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2층 발코니에서 목을 매고 맙니다. 그녀가 죽자마자 허술하게 묶인 줄은 곧 떨어지고, 시신은 연못에 빠집니다. 슬프게 웃고 있는 하그나스의 머리가 미망인의 뒤틀려 꺾여버린 목 위에 둥둥 떠올라, 사람의 얼굴인 것처럼 그렇게 흘러 낙옆이 가득한 연못 구석으로 밀려갑니다.

Part 2.

걸핏하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누나에게 기습 키스를 하는 등 장난이 심한 남동생을 둔  로이디안 공국의 공주 이난나는 어느날 남매를 태운 마차가 고장나버려 잠시 길거리에 내려섰다가, 자신들의 마차가 지나가던 인형사를 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말발굽과 마차바퀴에 처참히 짓밟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녹색 머리칼에 붉은 눈을 가진 소년 검사 인형만이 그 곁에 똑바로 앉아 있었습니다. 이난나는 그 인형을 가지고 궁으로 돌아옵니다.

밤이 되자 인형은 깨어나서 자기 검을 뽑아들고 이난나의 앞에 충성을 맹세합니다. 말하고 움직이는 인형 때문에 너무 놀란 공주 이난나는 처음엔 두려워했지만, 곧 그의 순수함과 바보같은 단순함에 조금씩 마음을 풀게 됩니다.

"이름이 뭐야?"
"사이버트."
"좋아. 나의 기사 사이버트. 넌 앞으로 날 지켜줘. 보답으로 내가 줄 건 최고의 명예."
"감사합니다. 이 몸이 부서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잠든 그녀의 침대 곁에 늘 칼을 들고 서서 밤을 지새우는 사이버트. 궁 안의 사람들은 그저 공주가 겨우 여자애다운 취미를 붙인게 하필 기사 인형이냐면서 몰래 비웃곤 했는데, 그건 이난나 공주는 늘 새벽같이 일어나 검술 훈련을 하고 승마와 사냥에 몰두했기 때문이에요. 시와 음악을 좋아하는 남동생에 비하면 훨씬 강단이 있는 공주님이었지요.

남동생 리시스는 처음에는 누나의 인형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략결혼한 나이 많은 아내에게는 처음부터 별로 관심도 없었고 그의 눈에는 어릴때부터 함께 있던 누나만이 가득했지요. 그 옆에 있는 인형은 그저 새로 생긴 장식품이겠거니 할 뿐이었습니다. 외국 사절과 만나는 자리에서 누나에게 기습 키스를 해버리는 바람에 냅다 뺨을 맞아버린 그 날까지도.

"이게 무슨 창피야! 넌 왕족으로서의 자각도 없어? 우린 더 이상 어린 애가 아니야. 이런 짓거리 한번 더 했다간 정말로 내쫒겠어. 아니, 죽여버릴 거야. 리시스."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못하고, 누나에 대한 마음만 불사르던 리시스는 결국 밤에 몰래 누나의 침실에 숨어들었습니다. 마취약을 들고 말이죠. 인형 사이버트가 붉은 눈을 빛내며 서 있는 것이 굉장히 거슬렸지만, 그 시선이 닿지 않게 돌아가 누나를 덮치고 마취약이 묻은 수건을 입에 덮어버릴 때까진 좋았습니다.(대체 뭐가)

"리시스! 으읍!"
"포기해. 누나, 아니 이난나.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누난 결국 날 사랑하게 돼. 왜냐고? 내가 누나를 사랑하거든. 오늘 밤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하게 될거야."
"으으읍!"

마취약 기운으로 몸에 힘을 잃은 그녀의 옷을 벗기려다, 목에 서늘한 기운을 느낀 리시스는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댄 사이버트와 눈을 마주칩니다.

"감히 인형 주제에!"

분노한 리시스는 곁에 있던 누나의 검을 집어들고 그 인형을 내리칩니다. 하지만 인형은 가볍게 그 검을 막고는 나직하게 중얼거립니다.

"공주님을 해치는 자는 용납하지 않는다."

인형 사이버트는 날카롭게 날이 선 자신의 검을 휘둘러 단 일격에 리시스의 목을 베어버립니다.

"사이버트?"

간신히 약기운이 풀린 이난나는 자신의 몸 위에 떨어진 리시스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어째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동생의 피로 온몸이 젖은 그녀는 사이버트를 다시 바라봅니다.

"무슨 짓이야!"
"공주님을 지켰습니다."
"인형 주제에 이 나라 왕위 계승자를 죽였어!"
"공주님을 해쳤을 겁니다."
"닥쳐! 앞으로 움직이지 마! 아무 말도 하지 마!"

곧 사람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인형이 그랬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어요. 사이버트는 여느 인형처럼,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거든요. 공주는 혈육을 죽인 죄로 체포되었고, 리시스의 아내였고 대제국의 귀족 출신인 로이디안 부인(이제 미망인)의 분노를 살까 두려웠던 공국의 사법부에선 결국 무기 징역을 내렸습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단 하나만을 가지고 갈 수 있었는데, 공주님은 사이버트를 선택했습니다. 거긴 아무도 탈옥할 수 없지만, 대신 아무도 그 안을 통제하지 않는 곳이었지요. 여자가 들어온 것은 아마 처음이었을 겁니다.

"자, 여기서나 날 지켜줘."

하지만 사이버트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십년동안 여자를 본 적이 없던 죄수들은 공주를 향해 탐욕스런 눈빛을 빛내며 다가왔고, 이난나 공주는 온 힘을 다해 그들에게 저항했지만 몇 놈을 때려눕힌 뒤에 결국 그들에게 철저하게 짓밟힌 그녀를 사이버트는 여전히 붉은 눈을 빛내며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대체 왜 아무 짓도 안했어? 대답해."
"공주님이 원하신 겁니다.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것. 저는 오직, 공주님의 명령을 따르고 싶었습니다."

이난나는 사이버트를 안은 채 감옥 경계 밖으로 달려갑니다. 거길 통과하면 반드시 살해하게 되어있는 그 선을 넘어서자 모든 간수들의 총구가 그녀를 향했고, 그녀는 그렇게 인형과 함께 산산조각나 감옥 밖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만족하십니까."

그의 마지막 목소리는 지극히 냉정했고, 이난나의 피와 살점으로 뒤덮인 인형은 폐기물로 간주되어 버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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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군에게는 미안. 근데 진짜 이런 꿈 꿔버렸음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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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1인 2역의 주연으로 열연해주신 우에토 아야 씨 ^^*)

평범한 일본의 여고생인 주인공 앞에 갑자기 나타난 똑같은 얼굴의 소녀.  전국시대 사무라이마냥 칼을 차고 선 그녀는 주인공의 반 친구들과 똑같은 얼굴을 한 동료들을 데리고는, '네가 위험해' 라며 다른 시간대로 도망치길 종용합니다. 무엇때문에 위험한지, 누가 자신을 쫒는지는 언급하지 않으며 그저 붙잡고 달릴 뿐인데, 어찌저찌 해서 간신히 벗어나 집에 돌아가니 엄마가 전화를 받다 말고 식칼을 들고 죽이려고 하는 거예요. 도망쳐서 나와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대학생인 남자친구에게 하소연을 하던 중, 남자친구도 휴대전화를 받고나서는 갑자기 눈빛이 변해서 자신을 덮쳐 목을 졸라댑니다. 백주 대낮에 거리 한가운데서 벌어진 공포의 현장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은 역시 자신과 똑같은 얼굴의 소녀. 주저없이 남자친구를 두동강내고는, 피에 젖어 벌벌 떨고있는 주인공을 일으켜 세웁니다.

"널 쫒는 건 미래의 컴퓨터야. 네가 그 컴퓨터를 정지시킬 거거든. 나 또한 쫒기고 있어."
"시간은 직선이 아니야. 무한대의 복층으로 이루어진 서로 다른 평면이 계속 반복되는 거야."
"우리는 모두 같지만 또 달라. 과거의 나. 현재의 너. 그리고 미래의 또 누군가가 있어. 환생 비슷한 거지. 우리 셋은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미래의 그녀는 이미 죽었어. 남은건 우리 둘 뿐이야."
"난 지금까지 많은 이들과 함께 수많은 시간대를 뛰어넘으며 도망쳐 왔고, 너도 그래야 해."

계속 도망만 쳐야 하느냐는 질문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는게, 그녀는 곧바로 자신을 노리고 달려드는 이상한 눈빛의 야쿠자들을 한낮의 시부야 거리에서도 아무 주저없이 베어버리고 해서 주인공 둘은 경찰에도 쫒기는 몸이 되고 맙니다. 달아난 곳에는 비슷한 이유로 시간을 뛰어넘어 온 김구와 안중근(대체 왜!), 히데요리와 또 다른 인물들이 있습니다. 전화와 인터넷 등 네트워크로 이어져 있는 21세기 초반이라는 시공이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판단을 하고 아주 전국시대로 돌아가려 하자, 주인공은 과거의 자신인 소녀 검사를 붙잡아 말립니다.

"차라리 그 컴퓨터를 박살내러 가."

미래의 자신이 주었다는 타임 슬립을 작동해 출발한 시간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무슨 오작동인지 80년도의 한국, 광주로 이동해버린 일행. 계엄군과 시민군이 대치하는 그곳.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산으로 달아나 숨으려 하는 동안에 타임슬립도 잃어버립니다. 컴퓨터가 보낸 기계들이 그들을 추적해 오고, 다른 일행과 떨어져버린 두 소녀는...

에서 깼음.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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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시 '아르카나'의 한 장면


나는 정보 장교다.
나라는 지금 전쟁중이고, 나는 전장에 침투해서 정보를 빼오는 게 일이다.
하나도 안 위험한 이유는, 내가 침투할 곳은 바로 아군의 서류더미가 쌓여 있는 지휘소이기 때문이다. 고위 장교인 이상 나는 철저하게 보호되고, 그래서 내 일은 정시에 출퇴근하는 공무원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내 상관은 군 원수나 장군이 아니다. 여자 버릇이 나쁜 파스쿠치라는 노인이다. 그에겐 열 네명의 딸과 여섯명의 아들이 있지만 파스쿠치의 성을 가진 아이는 단 하나도 없다고 한다. 웃기지? 그런데 어쩌다 생긴 손녀아이는 끔찍히 위해주는게 더 웃기는 일. 마리안느 파스쿠치. 그 아이는 겨우 열 살이다.

나는 그의 지위도 계급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그의 저택 뒷산 산책 코스뿐. 정확한 집주소까지 전부 금지사항이기 때문이다. 그가 내 상관이고 내게 명령을 내릴 권한은 그에게만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오직 그에게만 보고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내가 받는 명령은 적진에 침투해 누굴 죽이라는 그런 게 아니니 다행이다. 기껏해야 어디어디의 현황을 알아오라는 정도니까. 알아오라는 명령을 받으면 알아오고, 그의 산책 코스에서 기다리다가 그와 같이 몇걸음 걸으며 보고하면 된다. 그럼 그는 다음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위험이 닥쳤다.

첫번째. 파스쿠치가 죽었다.
산책로에서 기다려도 이 시계같은 양반이 오질 않길래, 나는 몇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가 구토를 금치 못했다. 그가 머리만 남아 있고 온 몸이 손바닥보다 작은 고깃덩이와 뼈덩이로 분할되어 있었던 것이다.

두번째. 절차에 따라 파스쿠치가 지정해 둔 상부에 보고한 나는 최전선으로 배속되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이 쳐들어왔다. 당연히 지휘라곤 해본 적 없는 내 부대는 박살나버렸고, 나는 명령받은 대로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자결하려고 권총을 빼 들었다. 한번도 쏴본 적이 없는 권총이다.

"왜 그래?"

갑자기 나타난 어린 여자아이다. 열 두어살 쯤 됐을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한 손에는 어린 소녀에겐 어울리지 않을 큰 칼, 다른 손에는 기관단총을 들고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다. 뭐 눈 돌릴 만큼 나오고 들어간 몸도 아니지만. 가만, 지금 이런 소리 할 때가 아니거든.

"내가 죽여야 되는데 혼자 죽어버리면 안돼."

조금 어이가 없어져서 나는 아이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짓이야."

"죽이라고 명령하는게 더 나빠."

"난 아무 명령도 안하는걸."

"그럼 안죽일게. 혼자 죽든지 말든지~!"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맑게 웃으며 빙글빙글 몸을 돌리며 칼 춤을 춘다. 노래를 부른다.

하나, 둘, 셋, 넷,
일이다~ 일~ 할 일이 많아~
열, 스물, 서른, 마흔,
목이 너무 목이 너무 말라~
백, 이백, 삼백, 사백,
피가~ 목이~ 필요해~ 많이~


섬뜩한 노래다. 나는 큰 칼과 기관단총이 두려워 아이를 붙잡진 못하고 아이에게 물었다.

"일, 재밌, 니?"

"하나두 재미 없어!"

뚝 그치듯 노래와 춤을 멈추고 내게 다가온 아이는 외쳐버렸다.

"그만하고 싶어!"

난 그때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 아이를 위해 전쟁을 멈추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건 정보 뿐이다.

"전쟁을 멈추려면 열 세 개의 목을 베면 돼. 이름 적어줄게."

적국의 주요 강경파 인사 여섯명, 우리 나라의 주요 강경파 인사 일곱명의 이름을, 나는 아이에게 적어주었다. 그들의 자세한 집 위치와 사는 곳과 기타 등등의 모든 것을.

"얘네만 베면 돼? 나 이런거 안해도 돼?"

"응."

"와와! 이제 끝났다 끝났어! 만 사천 칠백 오십 삼명을 베었는데도 안끝나길래 울었단 말야. 열 세개만! 열 세개만 베면 되는구나!"

아이는 노래를 바꿔 불렀다. 여전히 섬뜩한 춤과 함께. 나는 그때 묘한 직감으로, 이 아이가 정말로 저 열 세명을 죽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 세 개, 열 세 개, 열 세 개의 목!
열 세 개만~ 하면 돼~
열 세 개, 열 세 개, 열 세 개의 목!
귀여운~ 마리안느에게 열 세 번만 벌을~!


마리안느.
파스쿠치의 손녀의 이름. 그녀를 난 딱 한번 보았었지. 곧 그녀는 노래를 마치고는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나는 다행히 포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차례로 적국과 우리 나라의 전쟁 지도자들이 하나 둘 죽어넘어가기 시작했다.

그 수가 열 셋이 되자, 이젠 더이상 양 국은 전쟁을 지속할 수 없었다. 제대로 된 공격 지휘관도, 면밀한 군수 담당자도, 카리스마 있는 국가 원수도 없는 나라가 무슨 전쟁을 하겠어. 휴전이 이루어지고, 포로를 교환하게 되었다. 이 또한 몇년이 지난 셈이다. 상급자들이 모조리 죽어버린 나는 장성이 되어, 포로 수용소를 방문하게 되었다. 포로들 사이에서 맹수를 묶는 것과 비슷한 재질의 굵은 수갑을 차고 매달려 있는 발가벗은 여자를 언뜻 보긴 했지만, '여긴 미친 놈 소굴이니 조심하시는게 좋습니다' 라는 부하 장교의 말에 이내 고개를 돌렸다.

200명이나 되는 장교 포로를 직접 심문하고 송환과 투항의 여부를 묻겠다고 하자 준비가 바빠졌다. 포로들을 몸수색하고, 한명 한명씩 방을 지나가게 하면서 나는 그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았다. 정보 장교의 감으로 그들의 거짓말 정도는 빤히 보였고, 대답과는 상관없이 송환과 귀순 도장을 내 판결로 찍어놓았다.

"이게 전부인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아까 그 여잔 뭐지?"

"여자가 아닙니다. 그건. 맹수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가 보았다. 발가벗은 여자는 사슬에 묶여 있어도 완강히 발버둥치며 으르렁댔다. 하지만, 이내 나를 보더니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성숙한 몸매에 나는 잠시 눈을 돌렸다.

여자는 노래했다.

열 세 개, 열 세 개, 열 세 개의 목!
열 세 개만~ 하면 돼~
열 세 개, 열 세 개, 열 세 개의 목!
귀여운~ 마리안느에게 열 세 번만 벌을~!


"이제 다 했어. 나 잘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하들에게 수갑을 풀어주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강아지처럼 내게 안겨와 울었고, 부하들은 내 지시에 따라 파스쿠치의 살해 건을 알아보았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 내 품에 안겨 있는 아이는, 파스쿠치의 손녀가 아니라 그의 창조물이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단순한 민간의 술사인 그는 군 정보망을 조작해 나를 자신의 지휘 하에 넣었다. 그리고 내가 모든 정보에 대해 충분한 준비를 갖자, 마리안느의 시동 키를 넣은 것이다.

절대적인 파괴자의 시동 결과는 참혹했다. 시동자를 포함해, 그녀의 길을 막는 모든 자를 죽였다.

다만 가장 중요한 정보망이었던 나는 처음부터 그녀에 의해 보호될 처지였던 것이다.

(마리안느의 노래를 글로는 전달할 수 없어서 아쉽네요. 굉장히 나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섬뜩하고 귀에 박히는 그런 음이었어요. 노래와 함께 숫자들이 눈앞에 환상처럼 명멸하는 묘한 느낌. 난 왜 맨날 이런 꿈만 꾸는 거야 대체.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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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위대했던 전사. 하지만, 사악한 마녀의 성으로 마녀를 베기 위해 떠난 뒤 잊혀졌다.
남자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난다. 마을은 그다지 풍족하지 않지만, 그런대로 평화로운 마을이다. 소년이 동경하는 영주의 딸은, 무척 순수하지만 제멋대로인 소녀. 연회장에 가지 않기 위해 소녀는 이따금 가출을 시도하고, 그러다 소년을 만난다.

(아마도 츠뮤님으로 추정되는 나레이션 : "그러니까 저런 식으로 납치범을 인질이 길들이는 거군요.")

소년은 치르키라는 이름의 메뚜기를 키우는게 일생의 낙. 소녀는 자신과는 너무 다른 소년의 이야기에 늘 빠져든다. 그리고 둘은 서로 무척 호감을 갖지만, 영주 부인의 손길이 뻗어와 소녀는 다시 성으로 끌려간다.

숲에 숨어 있다가 이내 낙담한 소년은 힘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마을 풍경이 이상하다. 옆에서 아는척 하던 동네 친구가 키우는 너구리가, 입이 이상스럽게 커다랗게 변하더니 몸 전체가 뒤틀어지며 이형으로 바뀐다. 녹색의 괴물이 된 그 너구리를 피해 소년은 마을 안으로 도망쳐 오지만, 이미 온 마을에는, 손바닥만한 개미와 망아지만한 벌레들로 가득 차있다.
치르키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치르키는 이미 죽어 있었다. 올라타도 될만큼 커다랗게 변했지만, 몸은 어느새 누군가에 의해 반동강나버린 치르키는 눈물을 흘리며 소년을 바라보다가 죽어간다.

(다시 나레이션 : 눈물나게 슬픈 이별이네요)

소년은 마을을 빠져나가기 위해 어머니와 단 둘이서 이리저리 숲을 지난다. 나무들 또한 살아서 움직이고, 그들을 잡으려 달려들자 어머니는 주저없이 예전의 검 실력을 발휘해 나무들을 베어넘긴다.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싸우셨군요."
"아니. 느이 아버지가 매번 경충(....)이었지. 일단 회피할 거다. 회피란 건, 강한 적과 싸우지 않고 돌아가는 거야. 알았니?"
하지만, 소년은 치르키의 나머지 커다란 반신을 물어뜯고 있는 벌레들을 보고는 그만 분노해서 나무막대기를 들고 그 손바닥만한 벌레들을 마구 짓밟고 두들겨패 박살냈다.
"회피하라니까!"
"그렇게 돌아가다 발길에 좀 채인 건 상관 없잖아요!"
"어쩜 그리 느이 아버지랑 똑같니!"
온 마을에 벌레들이니 동물들이 다 괴물로 변했지만, 이상하게 말들은 멀쩡했고, 괴물들의 습격에 놀라 울부짖고 있었다. 말에 올라타고 급히 도망치던 모자는, 이내 쫒기다 못해 마을 끝의 동굴로 들어간다. 기억도 나지 않던 시절부터 금기였던 그 동굴 안에는 화학적 위험물이니 생물학적 위험물이니 하는 표시가 가득 차있고, 온통 금속질의 벽과 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 몇몇 괴생물체들이 그곳을 막고 서서, 우리에게 그 이상 근엄할 수 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Thou, shall not, pass!"(...)
이에 어머니는 주저없이 근처 벽의 유리 장을 쳐서 깨고는, 45구경 매그넘을 꺼내 온 사방에 난사한다. 녹색의 체액이 난리치며 피어오른다.

(나레이션 : 아니 왜 갑자기 판타지에서 바이오 해저드 ㄱ-)

"회피하신다면서요 어머니?"
"지나가다 발길에 좀 채이면 어때서."
권총에 남은 마지막 한발이 문 옆의 계기판을 박살내자 결코 열릴 수 없을 거 같던 그 위험 표지의 강력한 X자 빔으로 보안된 문이, 벌컥 열렸다.
그 곳은 왕궁이다.

소녀는 모친인 영주 부인에 의해 드레스로 치장하고 왕궁의 연회장으로 끌려왔다. 개구리보다 더 못생긴 얼굴의 왕자와 선을 보기 위해, 왕비의 수석 시녀장과 면담을 먼저 치르게 된다.
하지만 엄청 잘나보이는 그 수석 시녀장은 얼음장처럼 단호한 얼굴로 서 있었고 소녀는 이내 따분해졌다.
"왕자비가 되면 월급은 잘 줘요?"
"노후 보장은요?"
"그 드레스, 어깨에 뭐 넣은거에요?"

(나레이션 : 굉장한 여자애네요.)

소년에게 들은 얘기를 마구 조합해가며 온갖 건방지다고 할 만한 표현을 난사하자 이내 시녀장은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표정엔 드러나지 않는다. 참다못한 영주부인이, '잠시 둘이 얘기좀 하겠습니다' 라고 양해를 구하고 소녀를 데리고 근처 정원으로 끌고 나온다. 미로정원의 입구로 들어가버린 영주부인을 쫒아 소녀는 미로 안에 들어서지만, 그 곳에서 마주친 것은 수천의 은색 나비들.
밤하늘을 수놓으며 미로 속을 온통 메운 나비들의 향연에 취해있던 소녀의 등뒤로, 갑자기 나비들이 우르르 몰려들더니 영주부인의 모습을 이룬다. 아니, 영주부인이 아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밤의 마녀다.
"내 말을, 그대로 따라한다."
라는 말과 함께 영주부인의 입 앞에서 몇 마리 나비가 모여들어 까만 구체를 이룬다. 영주부인은 소녀를 옭아매며 자기 입으로 소녀의 입에 그 구체를 집어넣으려고 애쓴다. 소녀는 발버둥을 치며 벗어나려 하는데, 그 순간 소녀의 눈앞에, 나무막대기가 휘둘러지며 구체가 맞아 날아가 흩어진다.
"밤의 마녀. 애들은 알아서 하게 냅두고 우리끼리 놀자. 나랑 못다한 얘기가 있을 텐데."
"흥. 네 남편은 웃기지도 않았어. 그런 조무래기에게 몸을 허락한 주제에 내게 대항할 셈인가?"
"닥쳐! 남자란 강함만으로 매력이 설명되는게 아냐!"
"그럼 밤일이나 잘한다고 남자인줄 알아 그럼?"
어머니들의 심도높은 토론을 뒤로 하고 소년은 소녀의 손을 잡고 미로 밖으로 달려나간다. 폭음과 빛의 향연이 등 뒤를 쫒아와 소년은 소녀를 끌어안고 엎드렸고,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일어났을 때는 어머니도, 미로 정원도, 왕궁도 흔적도 없었고, 광야에 앉아 있는 소년의 곁에는 차게 식은 소녀의 몸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어째서 츠뮤님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나레이션을 이어나갔는지는 의문입니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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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주먹계의 대부 밑에서 잔심부름 등을 해주고 밤에는 '파이널 판타지'라는 이름의 주점에서 춤을 추는 주인공 나(소녀)는 어느날 적대 조직의 피라미 하나를 심문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심하게 얻어맞은 뒤에 결국 조직의 아지트를 발설해버린 그는 울면서 내게 치료를 받았다.
그는 계속 울면서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날 저녁 '파이널 판타지'에 습격이 있게 되고 그는 그림자처럼 빠져나가 사라진다. 습격이야 우리 대부의 놀라운 대활약으로 처리되지만, 그 습격은 며칠을 두고 간헐적으로 계속 이어졌다. 나는 조직의 큰형들로부터 여러가지 싸움의 기술이나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배우며 빠르게 성장해 갔다. 이상할만큼 나는 여자인데도 강했다. 나중에는 수십명이 나 하나를 향해 각목을 들고 휘둘러오는 데도 그 각목을 내가 춤을 출때 쓰는 날카로운 부채로 모두 베어버리고 그 사내들을 다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러다 습격이 뜸해진 어느날 대부는 우리들 중 최고의 인원을 이끌고 적성 조직의 아지트를 급습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고 건물 지하에서 이어지는 지하 감옥 가장 깊은 곳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불길이 일렁이는 무시무시한 악마의 형상이었고, 금색의 사슬에 묶여 발버둥치고 있었다.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그 악마의 이름은 디아블로라고 했다.(;;) 몸을 돌려 나가려던 찰나, 적 조직의 우두머리가 우리가 들어온 입구에 웃으면서 서 있었다.
"비밀을 봐버렸군. 죽어 사라져라."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악마의 몸에 걸려있던 사슬이 튕겨져 날아가고, 디아블로는 풀려나 우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날카로운 부채를 펼쳐 악마의 몸 이곳 저곳을 베어내며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결국 부채를 놓치고 그에게 목덜미를 잡힌다. 이상한 것은, 디아블로는 나를 바로 죽이지 않고 계속 바라보다가, 이내 용암같이 주황색으로 빛나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뭐하는게야! 어서 죽여! 계약자가 명한다!"
디아블로는 눈을 꽉감고 고개를 흔들며 나를 벽으로 집어던졌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깨어났을때 내 곁에는 머리만 남아 무선조종 자동차같은 기계장치로 이동하는 남자와, 벌레들을 몸에 휘감고 있는 나이든 여자 사이에 있었다. 그들은 디아블로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수천년을 살아온 예언자들로, 동료는 아니었지만 지금 같은 목적을 위해 내 곁에 뭉친 것이었다. 디아블로의 몸은 인간과 같은 성분의 육체이며 그것은 바로 나를 알고 좋아하고 있는 한 남자의 몸에서 비롯했다는 그들의 설명에 나는 내게 치료를 받다가 도망쳐버린 적 조직의 피라미를 떠올렸다. 커다랗고 징그러운 어머니 벌레의 등에 올라탄 여자는 나를 안아올려 아주 빠른 속도로 수많은 벌레들과 함께 도시를 질주해 목적지로 가는데, 도시는 온통 파괴되어 있었고 불길에 쌓인 곳도 많았다. 마침내 도착했을 때 내가 본것은, 훨씬 거대해져버린 디아블로와 그 뒤에서 웃고 있는 붉은 눈의 남자였다. 적 조직의 우두머리였다.
"계약자부터 죽여."
여자가 내게 속삭였고, 나는 그를 베기 위해 불길에 쌓인 밤거리를 달려 그에게 다가갔지만 문득 그의 얼굴이 우리 조직의 대부처럼 변하는 것을 봐버렸다. 두 사람은 결국 한 사람이었다. 차마 베지 못하는 나를 보며 그는 디아블로를 향해 손을 들고 나를 죽이라고 손짓했다. 디아블로는 또 손을 쳐들었고, 나는 그가 망설이는 것을 알고는 곧바로 우리 대부의 목을 부채로 그어버렸다. 그냥 목만 베려고 했는데, 완전히 동강나버렸다. 그래도 나를 키워준 사람인데, 평생 알고 지낸 남자인데 그어버려야 했다.

그의 피가 얼굴에 확 튀었고, 다음 순간 디아블로의 몸이 하얗게 빛나더니 폭발을 일으켰다.

다시 정신이 들자 내가 춤을 출때 배경으로 많이 쓰던, '얼마나 좋을까' 라는 제목의 서정적인 노랫소리가 들렸고, 작은 소년이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소년은 울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악마의 계약이 시작되기 전으로 돌아간거야. 그도 너처럼 어렸을 때부터 길러졌었지."
무엇을 위해 내가 태어났고 그가 태어났을까. 우린 왜 싸워야 했을까. 슬픔에 눈물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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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이 심각해질대로 심각해진 2200년대의 어느날 고교생 민주의 집으로 배달 온 작은 금색의 램프. 알라딘의 마술램프와도 비슷한 모양의 그 등잔은 정말로 손으로 비비니 아름다운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 예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축하드려요. 당신은 티르 나 노이에 초대된 184만 12번째 시민입니다."
우주 반대편으로 차원이동된 민주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반쯤 물에 잠긴 아름다운 섬에 있는 고혹적인 작은 도시. 이 곳의 사람들에겐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만 도시에서 너무 멀리 떠나지 말라는 권고들은 있지만 민주가 그곳에서 택한 자신의 역할은 바다의 모험가. 그는 어디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잠수복을 입고 깊은 바닷속을 내달리게 됩니다. 그 일을 하게 된 건, 순전히 먼저 와있던 사람중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었던 같은 학교 선배 때문인데요. 그는 꽤 오래전에 실종되었다고 알려졌는데 이곳에 와 있었던 겁니다.
두 사람은 팀이 되어서 곧잘 아주 먼 곳에까지 나아가 새로운 것들을 많이 얻어옵니다. 그러던 중 어느 해구 속을 탐사하다가 발견한 잠수정은 어딘지 모르는 이상한, 하지만 익숙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지구에서 온 것들이지요. NASA 마크가 찍힌 옷이라든지, 스팸 깡통이라든지. 선배는 비밀로 하자면서 나중에 다시 올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두고 나오지만 영 민주는 찝찝합니다. 그 후 선배와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고, 신입 파트너를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임무를 수행하다 두 세번의 실수를 하게 되고, 상사로부터 호되게 질책을 들은 민주에게 선배의 연락이 옵니다. 혼자서 약속한 그곳으로 떠난 민주앞에 선배가 나타났고, 선배는 물 속인데도 잠수복을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고백할게 두가지 있어. 하나는, 난 인간이 아니야."
물속에서 잠수복의 헬멧에 살짝 키스하는 선배.
"그리고 널 사랑했어."
선배는 사라지지만, 그 충격으로 민주는 잠수 일을 그만두고 대신 활공기를 타기로 합니다. 인력으로 비행하는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글라이더들은 정말 먼 곳까지 날아갈 수 있었는데요. 첫 임무로 거대한 편대에 속해 멀리까지 날아간 목적지는 넥스 라는 거대한 항구도시. 해질무렵 도착한 그곳엔 수많은 날으는 자동차들이 하늘을 오가고, 거대한 건물들이 눈부시게 빛을 냈습니다. 리더의 인솔에 따라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 착륙한 그들이지만, 그곳 사람들은 그들을 무시합니다.
"티르 나 노이에서 온 사자입니다."
마침 그 건물의 가장 높은 사람이었나 봅니다. 나이든 회장과도 같은 남자가 리더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휙 돌렸습니다.
"이번에 책정한 물품 가격이 너무 높아서 그렇습니다. 조정을 요청합니다."
리더는 제법 정중하게 말을 했지만, 회장은 묵묵히 자신의 전용기에 오를 뿐. 비웃음을 보았다고 민주는 느꼈습니다.
"어이 시골뜨기들. 헛소리 하지 말고 돌아가. 너네들이 우리가 파는 물건들 하나라도 안사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제대로 비웃음을 흘리며 회장은 전용기 속으로 사라졌고, 리더는 민주에게 넌지시 귓말을 합니다.
"편대비행은 좀 알겠어?"
"네?"
"됐어."
그리고 다음 날 건물높이 불길이 치솟았고, 민주가 속한 편대는 감쪽같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제 전쟁입니다. 지구에서와 마찬가지로 문명을 유지하고 재화를 소모하며 살기로 한 이주자들과, 마법과 자연을 사랑하면서 살기로 한 티르 나 노이의 주민들간의 전쟁. 활공기를 타고 하늘을 누비며 또 다른 영광을 찾게 된 민주는 어느날 바다 한가운데서 적습을 받고 불시착해 물위에 떨어집니다. 활공기의 잔해도 물속으로 곧 가라앉고, 유일한 무기이자 신호기인 빛을 내는 마법의 완드도 잃어버린 민주는 그저 바다위에서 헤엄칠뿐. 오래전의 공포가 되살아나 물속이 갈수록 끔찍해지고 있습니다.민주를 구해줄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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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고향에서 서울로 유학 온 4명의 남매 중학생들을 하숙시키며 사는 평범한(?) 피자배달원 현성. 별로 나이 차이도 안나는 얼굴로 아이들에게 근엄한 표정으로 절대 금기라고 말한 지하실에는 대체 뭐가 숨어있길래. 고작 빨간 스쿠터나 타고다니는 주제에 말이다.

어느날 근무하는 피자집에서 벌어진 국회의원 암살 사건의 용의자를 추적해 잡아낸 개가로 구 경찰서에 불려간 현성은 서장의 권고로 경찰이 되어버린다. 어쩐지 오랜 안면이 있는 사이 같은 현성과 서장의 관계 때문에 수사반장도 뭐라 말은 못하지만, 파트너 없이 단독으로 행동하는 현성이 눈에 띄는 것은 당연. 그는 계속 국회의원 암살 사건의 배후를 캐내려 들지만, 갑자기 나타난 늙은 여류 과학자는 그를 막아세우며 더이상의 개입은 목숨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집히는 게 있어 현성은 퇴근 후에 지하실로 내려간다. 그런데, 이미 아이들이 자신의 비밀 고성능 자동차를 끌고 나가버린 것! 기절하게 놀란 현성은 스쿠터에 달린 추적장치를 켜고 제트 엔진을 끄집어내 달아서는 거리를 질주하는데.

밝혀지는 현성의 과거 : 죽은 아내의 추억(겨우 고3 정도 외모에 결혼까지 했었다). 늙은 여류 과학자의 13년 2중 생활.(국립과학수사연구소 근무와 슈퍼 히어로의 제작).

무엇보다도 현성 자신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초대 슈퍼히어로였던 것이다. 제트 엔진을 몸에 달고 하늘을 날며 고성능 무기로 범죄자를 제압하던. 과학무기의 결함으로 (아내를 비롯해)수많은 인명을 무고하게 살상한 후 그만 두었지만, 슈퍼히어로계획 자체는 2대로까진 이어졌다. 2대 '길주'의 모친은 바로 그 늙은 여류 과학자. 길주는 사고로 죽었다고 알려졌고, 그 후로 슈퍼히어로 계획은 백지화되었지만, 현성은 그 길주에게 이 사건의 배후가 있다고 의심한 것이다.

자동차를 돌려받고 아이들에게 함구령을 내리지만 이미 아이들은 못볼걸 보고도 차의 성능(마하3) 덕에 무사히 탈출했을 뿐. 이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현성과 자신이 필요없자 내쳐버린 정권과 언론, 세상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 길주와의 일대 격전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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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의 도시 인천. 밤마다 거리를 배회하는 검은 옷의 음침한 남자가 추적하는 적은 과연 누구일까. 주인공 여고생은 언제나 야간 자율학습과 피아노 레슨을 끝내고 돌아가는 늦은 밤길에 자신을 살피는 눈길에 몸을 떨며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 앞을 막아선 피아노 선생은, 순식간에 3미터도 넘는 키에 크고 긴 머리를 가진 날카로운 이빨의 생물체로 변해 자신의 두 손을 쥐고, 천천히 물어뜯으려 한다. 비명을 지르려 하던 찰나 나타난 음침한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괴물의 몸을 단검 하나로 산산조각내고, 그 장면이 인상깊었던 여고생은 남자를 따라나서지만 금방 잃어버린다.

며칠이 지난 후, 다른 누군가가 역시 그 괴물에게 발목을 뜯어먹히는 장면을 발견하고는 경악하며 두 발을 잃은 그 남자를 구하는데, 남자는 유명한 마라톤 선수였다. 갈수록 폐인이 되어가는 남자를 보다 못한 여고생은 마라톤 선수를 구한 자신에게 들이닥치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간신히 피해 달아나지만, 음침한 병원 복도에서 다시금 자신을 덮쳐온 것은 그 괴물이었다.

어쩐 일인지 이번에 나타난 남자는 괴물을 한번에 죽이지 않고, 슬금슬금 몸을 부수어가며 협박을 해댄다. 괴물의 이름은 ORGE. 햇볕이 닿으면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버리지만 빛이 없는 곳에선 인간의 모습. 그들이 먹고 사는 것은 인간의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심장을 빼앗고, 영리한 과학자의 뇌를 파먹는 것처럼,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여고생의 손을 물어뜯으려 한 것이다.

문제는 이제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것 만이 아닌, 좀더 거대한 음모라는 것. ORGE들 중에는 시장의 측근도, 시 의원도 있었고, 대기업의 총수도 ORGE였다. 점점 기업도시가 되어가는 인천에서 그들의 권력은 막강했고, 그래서 그들은 시민들의 가장 소중한 것, 자유를 빼앗아 먹어치우고자 했다. 그 시작이 될 사건은 언론의 조작과 가장 반발이 심할 학생들의 제어를 위한 학교 폐쇄.

이제 여고생과 낯모를 음침한 남자라는 묘한 페어의 엄청난 모험이 시작된다. 밝혀지는 남자의 과거. 한쪽을 쓸어내린 머리카락 속에 숨은 붉은 눈은 과연 어떠한 과거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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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2와 월드1은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월드1에서 사는 사람들은 곧잘 월드2로 가보곤 한다. 두 세계의 각 나라간에도 이미 협정이 맺어져 있어, 월드1의 '대한민국'과 월드2의 모 국가와는 유학, 관광에 대한 한 비자 발급이 필요 없다.

나는 대학 공부를 마치고 그 나라에 유학을 갔다. 3년 과정의 철학과 역사에 관한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었는데, 지도 교수와 한국에서 유학을 보낸 김XX(본인의 현재 지도교수이심;;; ) 교수가 문화적 차이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보면서 순간 욱 하는 성질에 그만 방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피러냐드인가 하는 손가락만한 작은 인종에 대해서 '그들의 문화는 볼 필요도 없소. 그런 조그만 걸 들여다보는 건 생태학자들한테나 맡기죠'와 같은 우리 김교수의 발언에 짜증난 것이었다.
뛰쳐나와서 지하에 마련된 유흥가와 같은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몇군데는 이미 불이 꺼져있었고, 어둑어둑한 지하에 가끔 불이 켜진 선술집이 보였다. 그중 한 곳에서 문득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땅별님. 마티니 한잔 드실래요?]
참고로 난 언제나 칵테일은 마티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돌아본 그 사람은 바로..[mica] 그 사람! 그리고 오래전에 유학간다는 말로 소식이 묘연했던 [랑이]
그 사람!
미카님이 경영하던 칵테일바는 상가 전체 주인의 횡포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다른 상가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거길 전부 내쫓고 싹 밀어버린 뒤에 휘황찬란한 거대 호텔을 지을 예정이라는데, (조금 어이없는 건 악덕 기업주 이름이 '니라트하크'였다. 디아블로2 확팩 하는 사람 다 아는 이름... )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횡포를 피해 보통 하수도로 알려진 '언더그라운드'에서 숨어 지내는 실정이었다. 그 뿐아니었다. 지하를 나와서 미카님이 설명해준 대로는 길 건너편 20층 아파트 여러 곳(거의 불이 꺼져 어두컴컴한...)까지 다 포함해서 그곳 전체가 개발이 될 예정이었는데, 정말 내 눈이 튀어나오게 만든 장면은 쪼그만 여자애가 옆에 넋을 잃고 주저앉은 엄마를 붙잡으면서 '엄마 우리 집에 왜 못가? 왜 못가?' 하면서 계속 우는 장면이었다.

꿈인 고로 갑자기 스킵. 니라트하크는 그 지역의 경찰권까지 갖고 있는(로보캅이었다 거의;; ) 거대 기업체의 총수인지라 그에게 대항하는 건 평화시위로는 부족했다. 평화적 시위에서 몇백명의 사상자를 내는 과잉진압을 했음에도 이 나라 정부는 도대체 관심조차 없다. 나는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랑이와 미카님이 물론 합세했고, 여러가지 기술을 사용하는 풍와와 사이코 키네시스가 뛰어난 레스티, 그리고 기타 등등이었다. 물론 이정도를 끌어모으는 축은 이미 어느 정도 조직이 되어 있던 시민 해방군이었는데, 인원은 약 1000명 정도 되었다. 간간히 니라트하크의 기업 사옥 주변이나 지하 구조물 등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니라트하크 군의 전력을 탐색해본 결과 전면전은 절대 무리였다. 인원도 차이가 엄청났고, 무엇보다 무기가 문제였다. 특히 보안대 요원이 쓰는 CD건은 CD 형태의 날이 선 원반을 발사하는데, 한번 날아가면 13고스트에서 반잘려 죽은 변호사처럼 몇 사람이건 그렇게 목이든 팔이든 잘려나가버린다;;; 한번의 전투에서 미카양을 그렇게 잃을 뻔했다.
사옥의 자세한 설계도면을 입수한 우리는 잠입해서 니라트하크를 잡자는 계획을 세웠지만, 수차례 시뮬레이션 결과 보안망을 완전히 뚫고 2층이상을 침입하지 못했다. 피해없이 주력군이 침투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 와중에도 우리 아지트에 니라트하크군의 척후대가 쳐들어와서 꽤 많은 사람을 잃고, 마지막에 풍와가 몸으로 막는다고 하길래 그를 남겨두고 모두 후퇴해서 아지트를 옮겼다.(니라트하크 빌딩 바로 옆으로;;; 근데 정말 등잔밑이 어두웠다.)
결국 나는 결심을 세웠다. 어차피 전체가 침입하지 못한다면, 나를 포함해 몇 명은 몸빵으로 죽어줘야 한다는 걸로. 그동안 가장 열심히 싸운 몇 사람을 불렀다.
"친구를 위해 죽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농담하는 거죠?"
제길, 아무도 죽고싶어하진 않았다. 다들 이 싸움으로 한밑천 단단히 잡을 생각밖에 없었다. 결국에 나는 랑이와 레스티에게 그 얘길 했다.
"우리가 이만큼 벌였으니 책임져야지."
"그래. 할 수 있는 만큼 다했어. 행우군이 보고 싶지만..."(누구 대산지 알죠?)
나는 그리고 그날 밤에 지금 사귀는 여친 앞으로 긴 편지를 썼다.
마침내 거사일! 우리가 맨 먼저 잠입해서 지하층으로 경비대원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고, 알파 팀과 델타 팀이 확실하게 13층으로 잠입에 성공했다. 그리고 우릴 잡으러 온건... 어이없게도 풍와였다. 배신을 때리다니! 한 손에 뇌전을 치직이면서 그는 이렇게 한마디를 남겼다.



















[내가 니 애비다]

그리고 깼다....;;;;

2002/08/30(Fri) 09:59:26

원문 출처 : 구srang.net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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