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겐 남동생이 있고,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가족입니다. 그러나 다리를 쓰지 못하는 정신과의사는 소녀와 대화하면서 이 집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부부의 침실이 두 개고, 남동생의 방도 두개이며, 소녀의 방도 두개입니다. 왜 그럴까요. 얼마 되지 않는 면적에 많은 방을 넣어두기 위해 온통 파란 색과 녹색으로 치장된 집안에는 계단과 복도가 이리저리 비틀려 있습니다.  

소녀를 쫒아다니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학교까지 찾아옵니다. 소녀의 아빠는 소녀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소녀에게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의 방에서 학교가 내려다보이는데, 소녀의 아빠는 소녀를 쫒으며 복도를 걷는 수상한 검은 옷의 남자를 호신용 라이플의 조준경으로 똑똑히 본 겁니다.

집에만 있어야 하는 소녀는 정신과 의사에게 끝으로 말합니다.

'저는 절대로 그 집에 낮에 있고 싶지 않아요.'

절박한 목소리에 대체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 어렵사리 소녀의 집에 찾아갔던 정신과 의사는 그 곳에서 완전히 모습을 바꿔버리는 소녀의 가족들을 보게 됩니다. 소녀가 학교에 갈 시간이면 귀여웠던 남동생이 부풀어올라 보기 흉한 고도비만 아이가 되어 온 입에 먹을 것을 처바르고, 엄마는 머리를 잔뜩 볶아올린 소름끼치는 피어싱 여자가 되어서 남동생에게 먹을 것을 부어줍니다. 아빠도 술병을 입에 물고 다니는 볼살 늘어지고 호통만 치는 남자가 되어서 소녀를 향해 '넌 누구냐. 왜 우리 딸같이 안생긴게 우리 딸 방에 있냐'고 외칩니다. 당장이라도 때려죽일 것처럼. 정신과의사는 간신히 원래의 소녀의 방에 숨어서, 행복했던 소녀의 옛 사진들을 살펴봅니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남자는 지금의 이 아빠가 아니에요.

소녀는 급히 아줌마같은 가발을 쓰고 얼굴을 바보같이 일그러트리며 헤실거리지만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이제 아빠는 집안 청소를 해야 한다며 온 집안에 흰 종이를 덕지덕지 붙이고, 그러던 와중에 가정방문을 온 소녀의 학교 교사에게 마침 잘 왔다며 학교 건물 안을 돌아다니는 수상한 남자를 보여주겠다고 베란다로 이끌고 갑니다. 라이플을 쥐어주고 조준경으로 학교 몇층 몇번째 창문을 보라고 하는 순간, 그 창문에서 불이 번뜩였고, 조준경에 눈을 대고 있던 교사의 머리를 총알이 뚫고 지나갑니다. 흰 벽지에 튀는 붉은 피. 소녀의 비명.

소녀의 아빠는 도망쳐야 한다며 아직 속옷차림이었던 소녀만을 이끌고 종이로 뒤덮인 문을 밀쳐 열고 밖으로 나갑니다. 거리에는 이미 붉은 경광봉을 휘두르며 교통 통제를 하고 있는 경찰들이 붉은 플라스틱 방패를 내밀어 길을 막고 서 있습니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양 차에 오르려 할때, 총성과 함께 소녀의 흰 속옷에 피가 튀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소녀를 잡습니다.

"내가 네 아빠다. 널 오랫동안 찾아왔다. 이제 돌아가자."

흉하게 일그러진 남자의 시체에서 흐르는 피가 소녀의 맨발을 감습니다. 소녀는 가발을 벗어던지며 조심스레 발을 들어 그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원래는 팀 버튼 영화의 색감과 달리의 질감을 합쳐놓은 것 같은 엄청난 이미지들이 폭주했는데 그걸 다 글로 표현을 못하겠는게 우울.
덧붙여서 소녀 역에는 어린 시절의 나탈리 포트만, 수상한 남자 역에는 에릭 바나가 수염을 기르고 나왔어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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