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앞에 설치된 강단에서 연설에 열을 올리는, 지장보살과 같은 온화한 얼굴이 매력적인 종합병원 원장을 향해 사람들은 열광의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 지역 생활보호 대상자에게 무상 의료 서비스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하는 중인 것 같은데.

철컥 소리가 나서 사람들 중 몇몇이 눈을 돌려보니 강단 옆에 교복 입은 소녀가 소총을 들어 원장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울고 있었는지 눈물을 철철 흘려서 눈이 새빨갛게 물들고 옷 앞자락이 땀과 눈물로 흥건히 젖어 있었습니다. 누군가 손을 뻗어 말려보기도 전에 몇 차례나 소총이 발사되고 원장은 쓰러져 죽습니다. 피가 강단 아래로 흘러내리고 사람들은 우왕좌왕 도망칩니다. 강단에 앉아 있던 국회의원이나 구청장 같은 사람들을 향해서도 소녀는 총을 쏩니다. 맞은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헐떡이며 그들을 쫒아가 마구 쏘아대던 소녀는 그만 지쳤는지 주저앉고, 경찰들이 달려와서 소녀를 향해 총을 겨눕니다. 총을 늘어뜨린 채 하늘을 보고 있던 소녀는 문득 덜덜 떨면서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앳된 얼굴의 순경을 향해 눈을 돌렸습니다.

"아저씨는 사람이네?"

"뭐?"

"나를 죽이고 내 일을 이어서 해주세요."

"뭐? 뭐라는 거야! 어서 총을 버려!"

"공포탄으로 사람을 죽이려면 바짝 붙어야죠."

소녀는 덜덜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총을 질질 끌면서 다가와서 순경의 총구 앞에 자신의 왼쪽 가슴을 들이밉니다.

"자, 빨리!"

총을 들어 자신을 겨누려는 소녀를 보자마자 순경은 엉겁결에 발포했고, 폭사되는 공포탄의 화약이 소녀의 가슴을 뚫고 심장을 찢었습니다. 소녀가 쓰러지고,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마자 순경은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며 달려오는 동료 경찰들의 얼굴들이 모두 끈적한 체액이 줄줄 흐르는 역겨운 악마의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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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경의 시점이었음. 원래 끈적하고 갈색이거나 빨간색조인 소위 'tentacle' 계열 악마 디자인에 별로 거부감이 없는데 이상하게 꿈에서 보니까 무지무지 무서웠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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