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회의 아우크소에 이어서, 이번회에는 필자의 고교생활을 온통 불살랐던 그녀들 중 하나인 아스카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아우크소처럼 붉은 이미지의 미소녀지만, 그녀와는 달리 무척이나 당당하고 활기찬 소녀.





가이낙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작품으로, 온갖 대형 로봇물의 특징이란 것은 다 가지고 있으면서 엄청 무지막지스런 스토리 꼬임과 막가는 엔딩으로 살인적인 욕을 얻어먹기도 했던 작품이지요. (특,히, 아스카의 최후 때문에 대박으로...(쿨럭)) 이 작품에서 제시되는 철학적으로 보이는 문제의식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것들은 단지 이야기를 떠돌 뿐이지 핵심을 관통하며 관객들의 깊은 마음을 흔드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관객들의 마음을 지른 것은 결국 "니들 아직도 미소녀에 취해서 로봇만화 보냐!" 라는 상당히 건방진 문제의식이랄까.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 14세. 일본계와 독일계 혼혈의 천재소녀. 독일에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일본에 와서는 뻔뻔하게도 같은 나이의 중학생들과 같이 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세컨드 칠드런. 입버릇은 "바보". 최대의 매력포인트는 하늘을 치솟는 자존심. 그녀의 시각에선 보통의 아이들은 사실 다 "바보" 겠지요.



나이와 맞지 않는 지나친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녀의 첫사랑은 20세 이상 연상의 카지 료지였습니다. 아저씨를 좋아하는 미소녀의 이미지란 '오지콘'이란 이름으로 일종의 전형으로 굳어져버린지 오래지요. 또래의 남자애들 따윈 눈에 차지도 않는다는 것도 있겠지만, 사실은 꽤나 우리의 주인공 신지에게 맘을 두고 있습니다.

그녀가 타는 에바는 2호기로, 프로토 타입인 레이의 0호기와 테스트 타입인 신지의 1호기와는 달리, 본격적으로 실전을 위해 만들어진 프로덕션 모델입니다. 수많은 장갑판과 AT필드로 무장하고 막대한 운동량을 발휘하는 에바의 힘은 워낙 강해서, 전선을 뽑으면 4분 30초라는 기간밖에 움직이지 못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그 시간을 길게 남겨먹으며 확실하게, 그리고 가장 잔인하게 사도를 처리하곤 합니다. 언제나 힘이 넘치는 모습은 일상에서도 드러나지만, 내면에는 항상 거절당할 까봐 두려워하는 어린 시절부터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외강 내유형.





당당하고 활기찬 그녀는 후에 제15사도의 정신 공격으로 폐인이 되고 말지만, 모친에 대한 기억을 자각하면서 최후의 순간에 여러대의 양산형 에바를 대상으로 엄청난 선전을 벌이다가 그만... (갑자기 나타난 롱기누스의 창에 의해 쓰러지고, 결국 에바 2호기와 함께 산산조각나고 맙니다. 흑흑.)


에바의 등장인물은 인간관계나 성격 면에서 무언가 심각하게 결여된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인공수정되어 태어나 아버지를 모르는 그녀에게는, 오직 자신만이 진정 소중했을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도, 에바도 모두 사실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나를 알아달라고. 단 한명이라도 좋으니 나를 봐달라고 그녀는 자기 나름대로는 수도 없이 외쳤지만, 아무도 그녀의 당찬 외면에 가려진 그 외침을 들어주진 못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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