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0만년 만에 돌아온 미소녀 예찬, 오늘은 Leaf 사의 고전 미연시, White Album의 히로인 오가타 리나 입니다.

White Album은, 물론 남자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성인 게임'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단순한 H씬(무슨뜻인지 모르시는 분은 주저없이 백스페이스를~)을 위한 게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H씬은 그저 '미연시라는 장르의 어쩔 수 없는 한계' 일 뿐, 여느 드라마나 영화보다도 더욱 마음을 움직이는 깊은 스토리와 음악으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독특한 게임입니다. 백색 마약이라고도 일컬어지며, 여러 히로인들을 모두 공략하고 CG 달성률 100%를 채우기 위해 수많은 게이머들이 몇날 며칠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만큼은, 수많은 분기점을 포함하는 이 게임의 진짜 스토리는 오가타 리나에 대한 스토리 그 하나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미연시와 달리 White Album에서의 주인공은 이미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모리가와 유키. 이제 싱글을 막 발표한 신인 아이돌, 하지만 주인공과는 고교시절부터 알아왔고 사귀어 온 사이였지요.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길을 걸어감에 따라, 주인공은 AD 아르바이트 등으로 방송국을 맴돌며 그녀 곁에 머무르려고 애쓰지만 어쩔 수 없이 멀어져만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주치게 되는, 이미 정상의 아이돌이며 무한의 카리스마를 가진 무대위의 여신, 오가타 리나.



유키와는 같은 소속사이고, 오프닝 이벤트에서 우연히 자신의 프로듀서이자 친오빠인 오가타 에이지와 말다툼을 벌이다 실수로 주인공의 얼굴에 강펀치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유키 때문에 AD 아르바이트로 방송국을 드나들던 주인공은, 그녀와 우연한 기회에 이런 저런 대화를 하게 되고, 점차 화려한 그녀의 무대 위 모습 뒤에 숨은 또 다른 모습들을 하나 하나 알아갑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돌보아주고 감싸줄 수밖에 없는 연약하고 외로운 소녀의 모습.




너무나 화려한 오빠의 배경에서, 그녀는 오빠를 사랑하면서도, 여동생이라기보다 마치 도구처럼 다루어지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합니다. 그러나 일 만큼은 확실하게, 멋지게, 굉장하게, 훌륭하게 잘 해내는 그녀. 그 일의 최대의 적, '스캔들'이 오빠와 유키 사이에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고자 유키의 연인인 주인공에게 접근하지만, 도리어 주인공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태도에 자신이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스캔들을 막겠다더니, 스캔들을 일으키다니.
주인공은 유키의 매니저에 의해 철저하게 유키와 격리당하고, 화려하지만 냉정한 연예계라는 얼음 낙원의 한 끝에서 고독에 떨던 중 리나의 솔직한 모습들에 조금씩 마음을 열수밖에 없게 됩니다. 일터에서 마주치는 그녀와의 아무것도 아닌 대화들. 가끔 예정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그리고 가벼워보이는 부탁 여러가지. 그런 것들이 그녀와 주인공의 거리를 하나 하나 좁혀가면서 동시에 두 사람 모두가 사랑해 마지 않던 유키와의 거리는 점차 멀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리나는 고백합니다. 사랑해버렸다고. 그러니까 유키에게 돌아가라고. 자신이 오빠를 잃었던 것처럼 유키를 슬프게 할 수는 없다고. 그러나 그건 결국 똑같은 희생. 지금까지 오빠에게 해왔던 것과 마찬가지의 희생에 지나지 않기에, 주인공인 플레이어로서는 그녀를 결코 그렇게 돌려보내선 안되는 겁니다. (돌려보낸 당신에겐 저주를!)



"나, XXX와 잤어."
"짝!-"
씁쓸하지만, 정말 많이 씁쓸하지만.
음악제에서 리나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한 유키에겐 리나가 가졌던 정상의 아이돌이란 지위가 내려졌고,
음악제에서 1위를 차지하자마자 은퇴선언을 한 리나에게는 유키가 가졌던 남자친구가, 자신을 찬양하거나 혹은 이용하거나 깎아내리지 않고 순수하게 대해줄 남자친구(바로 플레이어 당신!)가 내려졌습니다.
결코 원하던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바라던 바를 얻었고, 이제 유키와 리나의 앨범, White Album이, 유키의 첫 앨범이자 리나의 마지막 앨범이 주인공의 손에 쥐어집니다.
연예계라는 낙원은 유키를 얻고, 주인공이라는 현실은 리나를 얻습니다. 정말로? 엔딩 이벤트인 음악제 이후로, 주인공은 리나를 만나지 못합니다.
유키는 정말 사랑했던 두 사람 모두 용서하지만, 리나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연예계에서 내려와 주인공 곁에 선 리나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스캔들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방송과 잡지의 기자들을 피해가며, 몇달이나 지나서 홀연히, 하지만 힘겹게 주인공을 찾아온 리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주인공처럼 알바생이나 하며 사는 게 어떨까 하고 웃어봅니다.
그래봐야 아직은, 그 유명한 프로듀서 오가타 에이지의 동생이란건 변함없기에 주인공과의 사랑의 도피는 결국 호텔방과 해변을 오가게 되지만 말이지요.

압도적인 카리스마 너머에 숨어있던 덜자란, 아니 자랄 수 없었던 여린 소녀의 모습들.
석양의 해변에서 웃음짓는 오가타 리나의 뒷모습은 영원히 우리모두의 아이돌로 남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