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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에는 이메일을 참 많이 주고 받았습니다. 현실의 우편함에서 편지가 사라지고 청구서와 통지서, 그리고 광고만 가득찼듯이, 이메일 역시 어느때부터인가 사람의 온기를 담은 이야기는 사라지고 온통 청구서와 통지서, 그리고 광고 뿐이죠.
그때 받은 메일 중 일부입니다.

저는 저 꿈 이야기를 마지막 장면으로 하는 글을 쓰겠노라고 말했고, 저 분은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덕분에 그 프로토타입인 기도를 쓰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메일로요.

그리고 꼬박 6년이 지난 2007년 9월 2일에, 비로소 완결했습니다. 공주는 그를 찔렀습니다. 나는 왜 공주가 그를 찔러 죽여야 했는지, 솔직히 말할게요. 쓸때는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야만 했지요. 그 이야기는 결국 여기서 시작했으니까요.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저분과의 메일 교환은 끊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그 자리를 메신저와 온라인 게임,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메꿨습니다. 저 분은 이따금 k라는 한 글자의 이름으로 제 주변 아는 분의 이글루스 등에 나타나기도 했습니다만, 그게 끝이었지요.
 
자. 그때 그 이야기, 완결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6년에서 2일이 모자라니, 5년걸렸다고 우겨보고 싶습니다. ^^; 그때 항상 그랬듯이 메일을 보내어 투정도 부려보고 싶고 자랑도 하고 싶습니다. 칭찬도 받고 싶고 우정어린 충고도 듣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마도 의사가 되어 계실 저 분은 그 오래된 메일함을 확인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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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사였던 거 같은데 한국 전래동화(뒤에 숫자도 붙었던 거 같은데 몇번째였는지는 모르겠어요)라는 제목이 붙은 책이 있었습니다. 아동문고치고는 글자도 좀 작은 편이고 지금 문고판 소설 정도 느낌이었던걸로 기억해요. 아마 초등학교 5~6학년이 적정 연령이었던 거 같은데 처음 읽었을 때 전 2학년이었습니다.

그 책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중에 기억나는 것중 하나가 '반쪽이' 연작이라고 해야 하나, 반쪽이라는 주인공을 소재로 하는 네편인가 다섯편의 이야기가 있었어요. 반쪽이는 날때부터 반쪽이라서 반쪽이라고 불렸습니다. 팔도 하나. 다리도 하나. 눈도 하나. 입도 하나. 귀도 하나밖에 없었대요. 대신 두 팔의 힘이 모두 한 팔에 옮겨 붙었는지 팔 힘은 굉장히 쎘대요.

반쪽이에겐 두 형이 있었습니다. 큰 형은 힘이 좋고 둘째 형은 영리했나봐요. 부모님은 두 형제를 지극히 사랑했지만, 반쪽이는 반쪽이라서 반쪽밖에 사랑하지 않았습니다.(이 대목에서 눈물이 왈칵 나왔던 것 같아요) 형들도 반쪽밖에 안되는 동생이 거추장스럽다며 어딜 가든 떼어놓고 둘이만 갔답니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영웅 신화입니다. 사람으로 둔갑하기도 하는 거대 호랑이가 아버지를 물어가고, 속임수로 두 형을 차례로 물어가면 반쪽이는 쫒아가서 그 무지막지한 팔힘으로 호랑이를 한방에 눕히고 배를 갈라 아버지와 두 형을 구출합니다. 왜구가 쳐들어와 현감의 딸을 납치하면 두 형이 전략을 짜내느라 고심하는 사이 반쪽이는 용맹하게 반쪽밖에 없는 몸으로 왜선에 올라 딸을 구출해옵니다. 그 외에도 오랑캐 두목도 눕히고, 아마 도깨비 왕도 눕혔던 거 같네요.

사람들은 모험을 떠난 반쪽이를 볼때마다, 반쪽밖에 안되는 청년이 뭘 하겠냐며 우습게 봅니다. 반쪽이는 바로 그런 틈을 파고드는 거죠. 다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하나밖에 없는 팔이 괴력을 발휘하는 거예요.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이야기를 계속 읽게 만들었었죠.

재미있는 점은, 평소에는 그렇게 홀대하던 부모님은 두 형이 모험을 위해 길을 떠날 때는 잘 다녀오라고 말하면서, 반쪽이가 뒤따라 가려고만 하면 울며 불며 말리더라는 겁니다. 그래도 반이라도 사랑은 하긴 했나봅니다. 너는 반쪽밖에 안되는데 형들도 못한 일을 네가 어찌 하느냐. 네가 가버리면 우린 아들 셋을 다 잃는거 아니냐. 그러면 반쪽이는 매번 담담하게 그러더라고요.

"염려 마십시오. 저는 반쪽이니 저를 잃어도 슬픔은 반밖에 되지 않을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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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들어올려 방패를 들지 못하는, 그래서 용맹한 스파르타 인이 될 수 없었던 에피알테스를 보면서 자꾸만 어릴때 읽었던 반쪽이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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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기억날때마다 덧붙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대부분은 지경사 어린이 문고나 창비 아동문고에서 나온 이야기들일 겁니다.

1. 큰 새 작은 새

금슬이 좋지만 아이가 없던 어느 부부가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정성들여 기도를 했더니 아이가 생겼습니다. (아마 새의 깃털을 가져다가 댓돌위에 얹어놓으면 된다는 식의 산신령이나 선녀의 계시를 받았을 거예요. 기억이 정확하지가 않네요.) 남매를 낳게 된 부부는 각기 큰 새와 작은 새라는 이름(네이밍 센스하고는)을 지어주고 금이야 옥이야 길렀답니다. 네 식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걸로 끝나면 좋았을 것을, 작은새가 시집을 간 뒤에야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비가 오는 날 큰새의 나막신 바닥이 젖지 않았다든가, 날아다니는 사람을 보았다는 마을 사람들의 수근거림이라든가. 이게 큰 일인 것이, 당시에 날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역적이라는 국법이 정해져 있었거든요. (도대체 왜!) 결국 아버지는 어느날 큰새를 붙잡고 술을 마시며 잠을 재운 뒤 옷을 벗겼습니다.
진짜로 날개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큰새가 역적으로 몰려 잡혀가고 가족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불에 달군 칼로 그 날개를 잘라버리려 하지만 그 때에 큰 새가 깨어나버립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함부로 할수 없거늘 그 부모가 자식의 몸을 해하는 법이 어딨냐면서 큰새는 하소연을 하고, 아버지는 그냥 칼을 놓고 우네요.
비밀로 하고 앞으로 절대 날지 않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집간 작은 새에게도 날개가 있었습니다. 시부모는 서슴없이 작은새의 날개를 잘라버렸고, 덧붙여서 큰새가 날아다니는 사람, 역적이라고 관아에 일러바칩니다. 포상을 노렸지만, 한통속이 아니냐며 시부모와 남편과 같이 작은새는 투옥당합니다.
큰 새의 집을 나졸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아버지 명령대로 나무위에 숨어있던 큰 새는 부모님을 마구 대하는 나졸들에게 분노해 날아오르며 내가 잘못했다면 나를 잡으라고 외치고, 온 몸에 화살을 맞고 떨어집니다.
그 사이, 작은새는 날개가 잘린 자리가 썩나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옥사하고 말았습니다.

날아다니면, 날개가 있으면 어째서 역적이었던 걸까요. 어린 마음에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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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3 - 최후의 전쟁에 나오는 엔젤과, 그의 날개를 없애기 위해 돌연변이 억제제 '큐어'를 개발한 그 아버지를 보면서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2. 호랑이가 된 효자

옛날 어느 마을 선비에게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1000일동안 하루에 하나씩 소의 생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의원의 처방에 좌절하던 선비는 어느날 결심하고 주역을 펼쳐 둔갑술을 시행합니다. 아내가 잠든 사이 몰래 호랑이로 변신하여 소를 잡아와 마당에 던져놓고는, 다시 몰래 방으로 들어가 잠든 척 하다가 아침에는 마당에 놓인 소를 보며 아내와 함께 놀라주는 거예요.
어머니는 차츰 차도가 있는 것 같았고, 선비는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계속 밤마다 호랑이가 되어 조선 팔도를 누비며 소를 잡아오는 이중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문제는 이게 햇수로 3년씩 계속되다보니 아무래도 아내가 눈치를 채지 말이죠. 덧붙여서, 팔도를 가리지 않고 소가 매일매일 없어지다보니 나라에서도 이게 무슨 괴현상인가 싶어 조사를 하러 다니는 형편이었지요.
999일째 밤, 먼저 잠든척 하고 있던 아내가 몰래 밤에 밖에 나가는 남편을 뒤따라갔습니다. 마을 어귀 한적한 곳에서 옷을 벗어 숨겨놓고 주역을 펼쳐놓고 주문을 외우니 커다란 호랑이로 둔갑해버리는 걸 보고는 아내는 기절하듯 놀랐습니다. 여태 지성으로 섬겨온 남편이 호랑이라니! 여우가 사람 놀이를 하듯이 호랑이가 사람으로 변해서 여태 자신과 어머니를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했던 아내는 나라에서 찾는다는 소도둑이 남편이 아닌가 싶어 관아에 신고를 해버렸어요. 물론, 두번다시 사람으로 둔갑하지 못하게 옷과 주역책을 태워버리고요.
쿵. 마지막 한마리의 소를 던져놓고 사람으로 돌아가려고, 이제 두번다시 호랑이로 변신하지 않으려고 가벼운 걸음으로 마을 어귀로 갔던 선비는 아무것도 없는걸 보고 기절하듯 놀랐습니다. 사람이 될 수 없는 거예요! 그 때 아내가 나졸들을 데리고 와서 자신이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가슴이 터질 지경이지요. 이 바보같은 아내야. 오늘이 마지막인데! 하지만 아무리 외쳐봐야 호랑이가 어흥 하는걸로 밖에 안보이는 겁니다. 그길로 선비는 도망을 쳤습니다. 정말로 호랑이가 되어서 산짐승을 잡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와 뼈를 씹으며 울던 그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옵니다. 나졸들이 다 포위하고 있는데 당당하게 들어오다가 결국 어머니 방 문앞에서 창에 찔려 죽고, 그제야 사람으로 돌아갔습니다.
거의 다 나았던 어머니는 비참하게 죽어있는 아들을 보고 충격받아 세상을 떠버렸고, 아내는 자신이 호랑이가 아니라 사람이었던 남편을 죽게 했다는 사실에 자살하고 말았답니다.

전래동화의 호랑이 이야기는 자주 호랑이가 죽는걸로 끝납니다. 은혜 갚은 호랑이(목에 걸린 비녀를 뽑아주었더니 아내감도 업어다주고 벼슬거리도 업어다주고 했다는 암호랑이 이야기). 효자 호랑이(나무꾼을 잡아먹으려다 예전에 잃어버린 형 아니냐는 거짓말에 속아 나무꾼의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던 호랑이). 어느 쪽이든간에요.

아내는 왜 남편이 호랑이면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까요.
자신에게 인간인 남편으로서도 잘못한 게 없고 혼을 빼가는 것도 아닌데 단지 '호랑이'라는 이유만으로 잡으려 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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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아니지만 표범으로 변하는 이 언니를 키우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네. 아마 이런 동화들 때문일거예요. 저는 사람 목숨 동물 목숨 어느게 더 귀한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드래곤 라자를 읽으면서도 드래곤 라자(드래곤과 뜻을 통하는 사람? 대충 그런 의미였던 기억이)가 있는데 왜 말 라자는 없을까, 드래곤은 왜 인간 라자를 따로 두지 않는가. 오크는 드래곤 라자가 되면 안되나. 인간과 엘프와 오크와 페어리와 드래곤 등등 각 종족을 나타내는 별이 있다면, 왜 말을 나타내는 별과 나무를 나타내는 별과 개를 나타내는 별은 없는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길에서 지내는 고양이들을 막 대하고 흉물이니 요물이니 하는 걸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그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학대하는 이들과 뭐가 다른가 생각이 듭니다.

하기야, 자신 이외의 존재를 '이용대상'으로 절대로 보지 않고 모두 동등하게만 바라보면 살 수가 없겠죠. 생명이 있거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못먹을 테니까요. 어쩔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긴 합니다.

'인간의 맘에 드는 자연이란, 인간에게 이로운 자연일 뿐'이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있었죠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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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화이트데이였지요. 고교시절에나 신경써야 할 화이트데이가 제 기억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은 물론 요란스런 인터넷과 방송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게임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냐면 이쪽이 제게는 몇배나 더 인상이 깊었지요.

2001년에 이 게임을 접하고서,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패키지 게임이 나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악튜러스, 마그나카르타, 언제든지, 언제까지나, 이어질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2003년 이후 4년간 국내 정식 발매된 패키지 게임의 수는 0.

한 장르가 아예 없어졌습니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네. 제 잘못입니다.

저도 수많은 게임들, 다 복제본으로 플레이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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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모뎀의 시대, 영화 <접속>의 시대, 이제 잊으시겠습니까? (Y/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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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in님 이글루스에서 트랙백합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 혹은 선생님이 분장한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받곤 하던 연필깎이. 손으로 바이스를 잡아 앞으로 당겨 연필을 넣어 수평으로 고정한뒤 후방의 레버를 돌려주면 부드럽게 연필이 깎이고, 아래 상자에 담겨 나중에 꽉차면 버리게 되어 있는 깎인 가루는 무척 고와서 미술 시간에 공예 소재로 써먹은 적도 있지요. 나무와 흑연가루가 섞여 있는 부드러운 냄새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해요.

디자인은 정말 다양해서 증기기관차 컨셉부터 집모양, 인형 모양에 나중에는 총 모양도 있었습니다. 연필심이 부러지거나 닳아서 뭉툭해지면 여기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되었지요.

요즘 아이들은 샤프를 더 많이 사용하는 듯 싶습니다. 손으로 딸깍딸깍 눌러주면 샤프심이 나오지요. 샤프도 모자라 볼펜을 비롯해 색색의 염료가 담긴 다양한 종류의 펜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지우개 대신 화이트마커가 있어서 그 모든 것으로 예쁘게 노트필기를 하지요.

하지만 손으로 레버를 돌리며 드르륵드르륵 연필을 깎는 순간의 그 흥분된 기다림은 어디로 갔을까요.  

덧>표준어 맞춤법상 '연필깍기'는 틀리고 '연필깎이'가 맞는 표현입니다. 네이버 자동 검색어 완성 시스템에선 연필깍기가 우선으로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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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절에 게임기는 게임팩을 꽂아서 플레이했었습니다.
가격도 지금에 비하면 참 저렴한 쪽이었지요.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사주는 것이기 때문에 게임만 하는 게임기가 아니었지요.

어쩌면 지금도 PS2를 사달라고 아이들이 부모를 조를 때는 '이걸로 영어 학습용 DVD도 틀 수 있어요' 라는 식으로 조를 지도 모르겠습니다^^;

2D그래픽 위에서 움직이는 전자음의 물체들. 그건 '게임'이라서 의미가 있었는데.
지금 게임들은 너무 영화 아니면 만화같아요.
게임의 게임다움은 어디로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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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 테이프, 잊혀진 소리의 전령
음악 웹진 [weiv]에 실린 글.

아랫글과 관련해서 생각나, 옮겨봅니다.
고교 시절 카세트테이프에 나만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들던 그 시간은, 참으로 느리고 갑갑하며 엉성한 작업이었지만 나 스스로에게 처음으로 엄밀함이라는 가치를 주입시켰던 작업이었습니다.

지금도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만의 컴필레이션 앨범은 공CD로, MP3 플레이 리스트로 간편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바보같은 아날로그식 노가다의 시간낭비와 땀냄새 만큼 뿌듯하지는 않다. 카세트 테이프에 자신만의 애청곡을 세심하게 녹음하던 살떨림과 희열 대신 이제 남은 것은 P2P 사이트를 찾아 헤매는 퀭한 눈과 한 번도 제대로 듣지 않은 곡들로 가득 채워진 묵직한 하드 디스크일지도 모른다. 서두에 그 시절이 그립지는 않다고 했지만 소중한 기억인 것만은 확실하다. 음악이 그렇게 값어치 있고 절박하지 않은 시대가 되고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본문 중에서

그렇습니다.
음악이 그렇게 값어치 있고 절박하지 않은, 그런 시대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있어서가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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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통이란 건 말이죠. 늘 상대의 피를 뒤집어쓰고, 온몸을 붉게 물들이고... 길에 한 다리로 서서 커다란 입을 쩍~하고 버리고 있다구요. 정해진 시간이 되면 뱃속의 내장을 우체부에게 쏟아내지요. 우체통은 편지를 꺼내러 오는 자를 시험하는 파수꾼... 만일 약해빠진 사람이 꺼내러 오면...

크아아아!

.. 하고 머리무터 통째로 우적우적 먹어버린대요~♡"


-스이세이세키, 로젠메이든 4권 中

위의 우체통은 물론 입이 두갭니다.(더무섭지요)
한쪽은 빠른우편, 다른쪽은 보통우편을 넣도록 되어 있습니다만, 언젠가 집배원이 꺼낼때 보니 입구만 다를 뿐 안은 한 통이더군요.

편지를 마지막으로 써본 건 정말 오래된 일.
우체통에 편지를 넣어본 건 더 오래된 일이군요.

기다림이라는 것이 사라지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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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6일자 마린블루스 일기 중 일부.

언제부턴가 시가지나 문화 관련 업소들이 운집한 곳이 아닌, '동네'마다 있던 작은 레코드점포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음악을 듣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곳인데.
홈쇼핑과 mp3, 벅스의 편리함은 잘 알고 있지만, 사실 들려오는 음악이 좋아 그 가게에 들어가 물어보고 구입하는 추억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만큼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우리 곁에 오기 힘들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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