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사실, 다빈치 코드에서 말하는 시온 수도회라든지, 오푸스 데이 같은 내용들은 '사실'이기도 하고, 다빈치가 그린 수많은 종교적 회화들이 실제로는 다른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얘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디스커버리 같은 다큐멘터리 채널에선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얘기인데다, 예수가 대단히 독특한 인간이었고 결혼도 했었다는 이야기는 셰익스피어 시대부터 이미 널리 알려졌던 이론인데 이런게 이제와서 기독교 단체의 심기를 건드려서 상영 금지일리가 없는 겁니다. 그런 건 진짜, 생 트집에 불과해요.
하지만 이 책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상영 금지 요청을 받고 있는 이유는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기독교적 주제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신성한 여성성'의 파괴와 '남성성의 권위 확립'이라는, 일종의 거대한 이데올로기 투쟁을 고발하고 있거든요. 이 소설은 풍부한 상징과 기호학적 함의를 통해, 수만년간 이어져 내려온 신성한 여성성에 대한, 남성성의 이천년간의 반란과정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반란이 거의 성공해서 이제는 덮어진 것 같지만, '시온 수도회'는 여전히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성성을.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남자,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라는 말이 있지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 제목도 있고,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성차를 소재로 하는 수많은 인터넷 유머가 책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흐름은 남성성이 사회적 우위에 서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남근 숭배를 하는 말리의 원시적 조각상과 조지 부시의 기도하는 두 손은 본질적으로 같은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마녀 사냥을 통해 신성한 여성성의 숭배가 종교적 전통 하에 남아있던 예수 이전 시대 종교들의 모든 메시지는 박멸당했고, 여자는 남자의 부속지로 전락한 지 천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오늘날 가장 영향력이 크고 배우기 쉬운 언어인 '영어'를 봅시다. prince왕자에 ess를 붙여야 princess왕녀가 됩니다. 기본적으로 man인간이란, 남자를 가리킵니다. 영어로 쓰여진 최고의 고전, 반지의 제왕을 볼까요?
"War is the province for men."
에오메르는 에오윈에게 말합니다. 호빗 '메리'가 전장에 뛰어들겠다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냄과 동시에, woman여자인 에오윈이 전장에 뛰어들려 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는 충고지요.
"No man can kill me."
마술사왕이 에오윈에게 하는 말이지요. '인간'은 나를 죽일 수 없다는 의미지만, '남자'는 나를 죽일 수 없다는 의미로도 보입니다. 에오윈은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도 당연히.
언어는 그 언어가 사용되는 세계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가장 보편적인 척도지요. 그리고 이렇게 성차별적인 언어인 영어가 지배적인 오늘날의 세계는 남자를 위주로 짜여져 왔습니다. 수많은 남자들이 여성을 원합니다. 여성이란 인격체를 함께 살아갈 배우자로 원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프로이트적으로 본질을 따지면 그 여성은 결국 성욕의 충족과 유전자의 보존을 위한 도구로 원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10살도 안된 어린 소녀부터 60세가 넘은 노파에 이르기까지, 이 욕구에서 자유로운 여성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녀들은 가장이란 권위를 틀어쥐고 있는 아버지에 의해 양육되고 길들여집니다. 아버지는 남자고, 남자의 기준에서 여성을 길들이는 과정은 결국 '다른 남자에게 가장 가치있어보이는 성욕 충족 및 자녀 생산 도구' 로 보이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정숙한 여성과 현모 양처가 여성의 이상향으로 보여지는 것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구조에서 비롯합니다.
하지만 도구로서의 여성을 남자들은 하나만 원하지 않습니다. 유인원 중에서, 오직 인간과 긴팔원숭이만이 일부 일처제를 지킵니다. 그런데 인간은 아주 철저하게 지키지는 않습니다. 일부 다처제가 오히려 더 오랜 시간동안, 권위를 가진 우두머리 인간man에게 이어졌지요. 침팬지와 오랑우탄과 고릴라처럼, 인간도 본질적으로는 일부 다처제를 원하는 동물인 셈입니다. 이 4종의 수컷은 모두 자위행위를 합니다. 성욕의 충족이 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종족 보존을 위한 최선의 여성을 선택하긴 하지만, 인간은 성욕을 충족시킬 다른 여성을 원합니다. 여성을 먹는것에 비유하는 인간man의 표현들은, 수많은 언어에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밥만 먹고 어떻게 살아. 반찬도 먹어야지. 라고 말하는 그들의 자기 합리화는 본능에 대한 합리화지 일탈행위에 대한 합리화가 결코 아닙니다.
성욕의 충족 도구로서 바라보는 여성은 결국, 다양한 입맛에 맞춰지는 여러가지 식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항상 여성에겐 이중성이 강요됩니다. 교복미소녀가 전통적인 성적 판타지인 이유를 알겠지요? 맛있게 보이도록 속살이 비치는 교복 블라우스를 어린 학생들에게 입히고, 내 가족이니 그 위에 조끼를 입혀 그걸 가립니다. 맛있게 보이도록 바람이 불면 속옷이 보이기도 하는 스커트를 입히면서, 내 가족이니 다리를 오므려 앉는 등 자세부터 정숙하길 요구합니다. 완전히 공개되어 있는 도구는, 내 것이 아니게 됩니다. 불편합니다. 공공 화장실이 더러우면 볼일을 보면서도 불쾌한 것처럼, 창녀는 불편합니다. 하지만, 교복 미소녀는 (검증은 별도로 하고) 위의 이중성 덕분에, 내가 처음 사용하는 것이고 그 효용이 월등합니다. 이 판타지는 결국 남이 입댄 음식보다는 처음 나온 음식이 맛있다는 원칙에서 비롯하는 겁니다. 손을 대면 이중성이 깨집니다.
이렇게, 남성 위주의 사회 구조에서 모든 남성은 변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변태라는 단어의 기준이 일부 일처제보다 일부 다처제를 선호한다는 점, 혹은 일반적인 식사보다 특이한 식사를 원한다는 점에 있다면 말이죠.
여성성이 신성하게 여겨지던 농경시대에는 이러한 변태는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대지와 같이 생명을 창조하고 양육하는 여성은 신성한 것이며, 성교는 영육의 결합이고 인간의 능력으로 신과 닿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수많은 포르노 산업의 결과물이 남자에게 성교를 오락으로, 여성을 그 도구로 보이게 합니다. 산업 자체가 남성 위주로 짜여져 있습니다. men남자은 (여성을 포함한) 자연물을 이용하여 노동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해 냅니다. 해체하고 가공하고 변화시켜 일부는 버리고 일부는 본래 용도와 다르게 사용하는 등의 '파괴'를 '가치 창조'라고 부르는 이 멋진 사회 구조는 men남자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men이 무얼 창조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에오메르의 대사를 변형하자면, Creation is the province for women.
여성은 신성하고, 위대하며, 그녀들의 2세를 양산하기 위해 일부 유전자를 분리해 떼어놓은, 걸어다니는 정자주머니일 뿐인 남성으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임무를 수행하는 위대한 혼입니다. 여성은 남성의 어머니도, 아내도, 딸도, 걸레도, 퀸카도, 먹이도 아닙니다.
여성은 여성입니다.
한기총의 주 멤버는 남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