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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 감독, 올란도 블룸 주연. '킹덤 오브 헤븐'의 배경은 십자군 전쟁입니다. 유대교 사원이 있는 예루살렘, 예수가 죽은 골고다 언덕이 자리한 예루살렘, 이슬람의 사원이 자리한 예루살렘. 성지를 되찾자는 그 '이름'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성벽아래에서 죽어갔습니다.
영화는 십자군 전쟁 최악의 졸전이라고 평해지는 '하틴의 뿔' 전투가 일어나기까지의 배경, 그리고 그 이후만을 다룹니다. 하틴의 뿔 언덕에 가득한 까마귀 떼만이 어이없는 패전을 보여줄 뿐. 우리의 주인공 발리안은, 자신이 십자군으로서 예루살렘 근방에 영지를 가진 높은 기사 고프리의 아들이란 사실을 전혀 몰랐던, 그저 아이와 아내를 잃은 불쌍한 대장장이 청년일 뿐이었습니다. 신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청년일 뿐이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생부에게 이끌려 기사가 되고, 생부가 죽자 영주가 됩니다. 발리안은 성지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곳에도 신은 없었습니다. 남편이 있는 공주가 자신을 유혹하고, 사랑은 하지만 그녀에게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이용당하기 때문이겠지요.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용당하기 때문에 결코 발리안의 고결한 마음은 도구로서의 자신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기사 기 드 뤼지앵은 결국 공주를 아내로 삼았기에 왕이 되고, 곧바로 전쟁을 도발합니다. 그리고 '하틴의 뿔' 전투에서, 물도 공급받지 못한 그의 부대는 간단하게 쓸려버립니다. 이제 이슬람의 위대한 지도자 살라딘은, 그동안 평화를 위해 기독교도의 지배를 인정해 준 예루살렘을 자신의 발 아래 두려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했던 그대로 응징을 가하려,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신은 핑계였지. 다만 영토와 이익을 얻기 위한 전쟁이었어."
기사들은 모두 달아났습니다. 예루살렘의 주민들은 그저 학살 앞에 벌벌 떨고 있을 뿐. 하지만 우리의 발리안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분연히 일어서, 싸웁니다.
신을 위해서도, 영토와 이익을 위해서도, 사랑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다만 죄없는 이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당연히 질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시체를 태우면 종말의 날이 와도 부활하지 못해요!" - 예루살렘의 주교
"놔두면 전염병으로 다 죽어요. 신께서도 이해하실 겁니다. 이해 못한다면, 신도 아니니 상관 없겠죠." - 우리의 발리안
전투는 무승부로 끝났고, 빌리안은 예루살렘을 내어주고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발리안이 본래 살던 마을에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가 찾아옵니다. 성지를 되찾으러 간다고 말하죠.
"자네가 살라딘에 맞서 예루살렘을 지켰다는 그 고프리의 아들 빌리안인가?"
"전 그냥 대장장이입니다."
네. 얼굴과 손목에 긴 흉터가 남았지만, 그는 대장장이로 돌아왔습니다.
더이상 공주가 아닌 새 아내와 함께요.
3차에 걸친 사자왕 리처드의 원정은 씁쓸한 협상으로 끝났고, 엄밀히 말해서 이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이 '성전'은 계속되고 있고 그 자리에, 우리 친구들, 우리 동생들, 우리 아들들이 서 있기도 합니다. 아르빌에 말이죠.
그들은 왜 거기 서 있는 걸까요?
왜 미국과 한국과 이라크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버려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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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 리, 이연걸로 더 잘 알려진 최고의 액션배우의 또 하나의 역작입니다. 'Danny the Dog' 어릴때부터 갱들에게 '사육'되어 목줄을 풀면 맹견으로 돌변하는 대니. 인간으로서의 감정이나 사고가 배제된 그의 눈 앞에 맹인 피아노 조율사 샘(모건 프리맨)이 나타납니다. 피아노 소리에 그의 안에 남아있던 작은 인간이 깨어났고, 우연한 기회에 갱들로부터 놓여난 그는 그저 피아노를 찾아갔다가 샘과 그의 수양딸 빅토리아가 사는 작은 자취집에서 살게 됩니다. 음악과 대화와 사랑이, 그를 조금씩 인간으로 돌려놓고, 마침내 그는 절대로 스스로는 풀 수 없던, 맹견으로서의 자신을 묶어두던 그 목줄을 풀어내리고 진짜 인간이 됩니다.
그때서야 눈앞에 나타난 자신을 키워준 갱들. 파이터들로 하여금 서로 죽일때까지 싸우게 하는 불법 클럽에 끌려간 그는 더이상의 살인은 하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살인을 강권합니다.
탈출하여 샘과 빅토리아에게 돌아간 대니는, 빅토리아의 피아노 연주로 마침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찾고, 자신을 키워준 갱단 두목이 어머니를 상습강간하다가 죽이고 만 원수라는 걸 깨닫습니다. 갱들이 샘과 빅토리아가 사는 아파트를 덮치고, 이제 대니는 다시금 싸워야 합니다. 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하나요?
아니면 어머니의 원수를 죽이기 위해 싸워야 하나요?
거대한 전쟁이건, 일 대 일의 격투건,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할 때 그 이유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정당한 이유가 없는 싸움은, 사육되던 대니의 지난날처럼, 기 드 뤼지앵의 '하틴의 뿔' 전투 처럼 승패를 가리지 않고 비참할 뿐이지요. 주체가 아닌 싸움. 발사된 화살. 부러져나가는 검날. 빗나간 창처럼 의미없이 손실될 뿐입니다.
어쩌면 삶은 그 사람에게 있어 기나긴 싸움입니다.
당신의 싸움의 이유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