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리니름 있습니다.
원제 <FLY BOYS>, 1차대전 당시 프랑스에 의용군으로 지원한 미국인들을 모아 편성된 '라파예트' 비행단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들은 실재했던 인물들을 바탕으로 각색한 것이지만,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거의 사실입니다. 성능은 고사하고 안정성조차 검증되지 않았던 당시의 복엽 전투기를 타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방탄 유리로 된 캐노피는 물론 낙하산조차 없었죠. 하나 혹은 두개 달린 9mm 기관총은 늘 불량 탄환으로 중간에 막혀 망치로 때려가면서 다시 쏘곤 했습니다. 이 공중전의 시대, 1917년은 라이트형제가 최초의 비행기를 12초동안 하늘에 띄운지 겨우 12년 후입니다.
지금이야 저부터도 제가 사는 곳에서 차 타고 한시간만 달리면 공군 기지가 있고(한때 거기에 친구가 근무했죠. 저도 국방 의무 수행하느라 면회 갈수는 없었지만.) 거기서 발진한 전투기나 헬리콥터를 이따금 볼 수 있을 만큼 비행기는 우리에게 흔한 물건이 되었지만 아직 킹콩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기도 전이었던 당시 미국인에게 '프랑스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전쟁에 나간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가 '우주에 가서 우주선을 타고 전쟁에 나간다는 것'과 비견될 만큼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며, 또 엄청난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또 아무나 하려고 하던 일도 아니었죠.
농장이 파산해 오갈데 없게 된 카우보이, 비행에 반해 나이도 속이고 들어온 16살 철부지, 하버드에서 짤려버린 부잣집 외아들, 최고지만 흑인이기에 늘 평가절하되던 권투 선수, 그리고 어설픈 전과자. 각기 출신도 다르고 사연도 제각각인 미국 소년들(BOYS)이,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국을 도운 프랑스 의용대장 '라파예트'의 이름을 딴 비행대(FLY)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결국 미국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한 만큼 비행단 내부의 갈등도 많이 겪지만 그보다는 함께 하늘을 난다는 우정을 교류하고 그를 통해 갈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영화는 현실에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가상의 인물들을 통해 하나하나 엮어가며 시간 순서대로 풀어나갑니다. 심지어 적군인 독일 조종사들까지도, '같은 하늘을 나는 사람'으로써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가 있습니다. 지상에서 만났더라면 저 '어중이 떠중이' 미국인들을 본척도 안했을 프로이센 귀족 청년들이 하늘에서는 자신을 죽이거나 자신이 죽여야 할 적에게 정중히 경례하지요.
영화의 마지막, 계속해서 관객들이 응원해왔던 '카우보이'의 사랑은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는 한줄 멘트로 끝납니다. 그것과 완전히 동격으로 비행단원들의 뒷 이야기를 하나씩 한줄 멘트로 정리하고 실제 라파예트 비행단원들의 기념사진으로 마무리지을 때 이 영화가 전하려 했던 것은 어떤 극적인 감동이 아니라 다만 '그 어떤 영화보다도 극적이었던'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목적이라면, 이 영화는 눈물이 찔끔 나오도록 잘 살려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전쟁에는 어울리지 않을 약간의 낭만적 시선도 가미된 것 같긴 하지만,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화려한 휴가>는 1980년 5월 광주 민중 항쟁 사건을 정면으로 그린 첫 장편 영화일 겁니다. 영화 제목인 '화려한 휴가'는 당시 신군부가 입안한 광주 진압 작전의 작전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당시 광주에 투입되었던 군인의 시선이 굉장히 많이 가미되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생각을 지우고 선량한 사람들을 죽여야 했던 스무살 청년들에게 광주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계엄군에게도 돌아갈 집이 있고 집에서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었을 텐데, 그들이 어째서 '인간이 아닌 놈들'이 되어야 했을까요. 어째서.
그러나 영화는 그것에 대해선 거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 날의 참상 이후 2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광주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알고 있습니다. 영화는 그 알고 있는 것들을 늘어놓습니다. 영화의 인물들은 허구지만, 그들이 광주의 마지막 날 했던 일들은 모두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전직 특전사 장교 출신 택시회사 사장과 해병대를 나온 순수한 청년과 월남전 방위 출신 택시기사와 동네 양아치와 간호사와 고등학생. 그들은 모두 광주에 있었고 죽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영정을 끌어안고 있는 소년의 얼굴은 외신에까지 보도되었지요. 마지막날 밤 거리 곳곳에서 울려퍼지던, 광주 시민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을 '위대한 광주 시민 여러분'을 찾는 애절한 가두방송까지, 영화는 여기까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우린 <모래시계>와 <박하사탕>의 강우석과 김영호까지 알고 있지만,
영화는 그런 거 모릅니다.
제목이 무색하게도 <화려한 휴가>에는 '화려한 휴가'를 온 사람들이 없습니다. 애국가에 당연스레 가슴에 손을 얹는 순수한 시민들은 있으되, 그런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라는 명령을 따라야 했던 그 청년들은 없습니다. 다만 얼룩무늬 하이바와 곤봉과 총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작, 명령을 내린 사람은 없습니다. 영화에는 계엄령을 내린 인물은 없고, 그 명령에 따르는 '총알'만이 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닌 광주에 대한 영화인데, 그 옛일을 되살리는 작업 또한 철저하지 못했습니다. <라파예트>에서 손에 사전을 들고 서툰 프랑스어와 서툰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던 '카우보이'와 그의 프랑스인 연인과 달리, 분명히 광주 시민일 그들 중 제일 중요한 인물들은 오히려 전남 지방 방언을 쓰지 않습니다. 핏덩이마냥 목으로 넘기기 뜨거울 만큼 구성지고 찰진 사투리는 오직 조연들이 선사하는 짤막한 웃음들에서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과거를 오늘에 되살리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두 영화가 택한 것은 똑같이 가상의 인물을 통해 실재했던 에피소드를 재구성하는 방식이었고, <라파예트>는 실재했던 에피소드에 더 집중했던 반면 <화려한 휴가>는 가상의 인물에 오히려 더 무게가 실린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그들은 '가상의 인물' 로서 훌륭했던 것이지, 모두가 완벽한 '광주 시민'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광주를 직접적으로 다룬 첫 장편 영화인데 너무나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네요. 뭐 현실은 영화가 아니니까 무조건 다 '뜻깊은 일'을 '처음 시도'한다고 해서 영화처럼 그것이 최고가 되진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요.
지금이야 저부터도 제가 사는 곳에서 차 타고 한시간만 달리면 공군 기지가 있고(한때 거기에 친구가 근무했죠. 저도 국방 의무 수행하느라 면회 갈수는 없었지만.) 거기서 발진한 전투기나 헬리콥터를 이따금 볼 수 있을 만큼 비행기는 우리에게 흔한 물건이 되었지만 아직 킹콩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기도 전이었던 당시 미국인에게 '프랑스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전쟁에 나간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가 '우주에 가서 우주선을 타고 전쟁에 나간다는 것'과 비견될 만큼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며, 또 엄청난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또 아무나 하려고 하던 일도 아니었죠.
농장이 파산해 오갈데 없게 된 카우보이, 비행에 반해 나이도 속이고 들어온 16살 철부지, 하버드에서 짤려버린 부잣집 외아들, 최고지만 흑인이기에 늘 평가절하되던 권투 선수, 그리고 어설픈 전과자. 각기 출신도 다르고 사연도 제각각인 미국 소년들(BOYS)이,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국을 도운 프랑스 의용대장 '라파예트'의 이름을 딴 비행대(FLY)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결국 미국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한 만큼 비행단 내부의 갈등도 많이 겪지만 그보다는 함께 하늘을 난다는 우정을 교류하고 그를 통해 갈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영화는 현실에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가상의 인물들을 통해 하나하나 엮어가며 시간 순서대로 풀어나갑니다. 심지어 적군인 독일 조종사들까지도, '같은 하늘을 나는 사람'으로써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가 있습니다. 지상에서 만났더라면 저 '어중이 떠중이' 미국인들을 본척도 안했을 프로이센 귀족 청년들이 하늘에서는 자신을 죽이거나 자신이 죽여야 할 적에게 정중히 경례하지요.
영화의 마지막, 계속해서 관객들이 응원해왔던 '카우보이'의 사랑은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는 한줄 멘트로 끝납니다. 그것과 완전히 동격으로 비행단원들의 뒷 이야기를 하나씩 한줄 멘트로 정리하고 실제 라파예트 비행단원들의 기념사진으로 마무리지을 때 이 영화가 전하려 했던 것은 어떤 극적인 감동이 아니라 다만 '그 어떤 영화보다도 극적이었던'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목적이라면, 이 영화는 눈물이 찔끔 나오도록 잘 살려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전쟁에는 어울리지 않을 약간의 낭만적 시선도 가미된 것 같긴 하지만,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화려한 휴가>는 1980년 5월 광주 민중 항쟁 사건을 정면으로 그린 첫 장편 영화일 겁니다. 영화 제목인 '화려한 휴가'는 당시 신군부가 입안한 광주 진압 작전의 작전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당시 광주에 투입되었던 군인의 시선이 굉장히 많이 가미되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생각을 지우고 선량한 사람들을 죽여야 했던 스무살 청년들에게 광주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계엄군에게도 돌아갈 집이 있고 집에서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었을 텐데, 그들이 어째서 '인간이 아닌 놈들'이 되어야 했을까요. 어째서.
그러나 영화는 그것에 대해선 거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 날의 참상 이후 2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광주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알고 있습니다. 영화는 그 알고 있는 것들을 늘어놓습니다. 영화의 인물들은 허구지만, 그들이 광주의 마지막 날 했던 일들은 모두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전직 특전사 장교 출신 택시회사 사장과 해병대를 나온 순수한 청년과 월남전 방위 출신 택시기사와 동네 양아치와 간호사와 고등학생. 그들은 모두 광주에 있었고 죽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영정을 끌어안고 있는 소년의 얼굴은 외신에까지 보도되었지요. 마지막날 밤 거리 곳곳에서 울려퍼지던, 광주 시민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을 '위대한 광주 시민 여러분'을 찾는 애절한 가두방송까지, 영화는 여기까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우린 <모래시계>와 <박하사탕>의 강우석과 김영호까지 알고 있지만,
영화는 그런 거 모릅니다.
제목이 무색하게도 <화려한 휴가>에는 '화려한 휴가'를 온 사람들이 없습니다. 애국가에 당연스레 가슴에 손을 얹는 순수한 시민들은 있으되, 그런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라는 명령을 따라야 했던 그 청년들은 없습니다. 다만 얼룩무늬 하이바와 곤봉과 총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작, 명령을 내린 사람은 없습니다. 영화에는 계엄령을 내린 인물은 없고, 그 명령에 따르는 '총알'만이 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닌 광주에 대한 영화인데, 그 옛일을 되살리는 작업 또한 철저하지 못했습니다. <라파예트>에서 손에 사전을 들고 서툰 프랑스어와 서툰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던 '카우보이'와 그의 프랑스인 연인과 달리, 분명히 광주 시민일 그들 중 제일 중요한 인물들은 오히려 전남 지방 방언을 쓰지 않습니다. 핏덩이마냥 목으로 넘기기 뜨거울 만큼 구성지고 찰진 사투리는 오직 조연들이 선사하는 짤막한 웃음들에서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과거를 오늘에 되살리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두 영화가 택한 것은 똑같이 가상의 인물을 통해 실재했던 에피소드를 재구성하는 방식이었고, <라파예트>는 실재했던 에피소드에 더 집중했던 반면 <화려한 휴가>는 가상의 인물에 오히려 더 무게가 실린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그들은 '가상의 인물' 로서 훌륭했던 것이지, 모두가 완벽한 '광주 시민'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광주를 직접적으로 다룬 첫 장편 영화인데 너무나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네요. 뭐 현실은 영화가 아니니까 무조건 다 '뜻깊은 일'을 '처음 시도'한다고 해서 영화처럼 그것이 최고가 되진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