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우리들의 이야기

'프랑스 기사들의 용기'는 아쟁쿠르에서 단 일천개의 영국 장궁 앞에 꺾였습니다. 영국의 기병대는 발리클라바에서 러시아군의 대포를 향해 돌진했다 짓이겨졌고 콜렌소에서 보어인들의 독일제 모젤 소총을 향해 돌진했다 벌집이 되었습니다. 제일 끔찍했던 것은 몽골에게서 기마전술을 배웠던 폴란드의 창기병대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70년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첫 말을 떼거나 첫 걸음마를 옮기거나 첫사랑에 빠지거나 첫 아이를 낳았을 쯤에 그들은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독일 제3제국의, 지금 우리가 보기엔 '코딱지만한' 1호 전차들을 향해 돌진해 역사도 전설도 신화도 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잡담거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20세기 초, 참호를 뒹굴며 질병과 허기와 기관총과 독가스와 철조망과 그 모든 것을 향해 자신의 목숨을 전력으로 돌진시키라고 하는 맛이 간 지휘관들의 미친 명령에 시달리던 소년병들의 머리위에는 두 세 겹의 날개로 창공을 수놓던 하늘의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거리를 달리는 경차 한 대의 엔진보다 가벼웠던 엔진을 손으로 돌려 시동을 걸어 날아오른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상대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며 자신의 명예를 걸고 싸웠습니다. 오늘날, 100년전 그들이 내질렀던 함성이나 비명'소리'보다도 빨리 날아가는, 하늘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그저 화면 속의 점 하나로 인식하며 버튼을 누릅니다.

전쟁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변해갑니다. 강강약. 강강강약. 중강약이죠. 항상 똑같은 리듬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때리고 차고 찢고 부수고 베고 꺾고 돌리고 누르고 만들고 겨누고 맞추고 일어서고 엎드리고 땅을 파고 헤엄치고 날아오르고 뛰어내립니다.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우리 세계에서 이미 '기사'들은 사람을 죽이지 못합니다. 한때 그들은 명예와 약자 보호, 주군에 대한 충성과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사랑을 위해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이 '정의'였으니까요. 그것이 그들에게 소중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들이 지켜야만 했던 것들이니까요. 우리는 그들을 죽이고 그들로부터 정의를, 그 소중한 것을 빼앗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들에게 그렇게 '소중했던 것들'을 그들만큼 소중하게 지키고 있는 걸까요.

둘) 그들의 이야기

카발리에로의 예식을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검은 갑주의 물결을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핏빛 절망의 시를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황금의 아카르드와 정열의 베락스를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마법의 황혼을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소중한 것을'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아이들의 놀이 속에, 서민들의 장터에, 부엌이나 서재나 침실에, 학교나 연병장이나 골목길에, 산이나 강이나 숲이나 여기 뒹구는 바위나 흙먼지 속에는 있을지 모르지만 어떠한 전쟁에도 정의는 없어.'

'기사' 라이디엔은 이렇게 말합니다. 과연 그의 말대로입니다. 오, 사타루스여! 당신의 아내가 저기서 지금 뺨을 맞았습니다! 우리 고귀했던 기사님들은 오래전에 정의를 잃어버렸습니다. 늙은 자엘라딘의 휘파람과 함께. 아니면 바위 아래 꿈을 묻어야 했던 정열의 베락스와 함께.
어쩌면 하얀 로냐프 강까지 달려갔던 파스크란과 함께. 어쩌면 자기 하녀의 카발리에로가 되어 도주한 섀럿 가의 마지막 기사 나이트 레이피엘, '당신의 소중한 것을'과 함께. 어쩌면 명예와 사랑 사이에서 사랑을 선택했던 그들의 '바람'과 함께, 아니 어쩌면 잠자는 크실 기사들을 찌르라고 명했던 위대하신 져런스타르 기사대장과 함께. 지켜야 할 것을 잃어버린 기사들은 이제 이름만 남았습니다. 데로스 기사대장이여. 기사도는 이제 정녕 기사의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소중한 것을'의 어린 날의 추억이 담긴 저택을 허물며 기사의 꿈을 꾸던 젊은 건설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저택 뿐 아니라 사랑, 명예, 충성, 그 밖에 기사들의 모든 것을 허물고 나서야 비로소 기사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 남자'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그 저택처럼 이미 주인을 잃어버린 것들입니다. '바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도 없듯이. '그 남자'는 그냥,

가짜였을 뿐입니다. 건설 노동자 시절 가짜 세르시아 출신이었듯이, '그 남자'는 가짜 기사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름뿐인 가짜 기사에게 남은 것은 죽음 뿐입니다.

벤도루우젤의 성문 앞에는 이제 수비대가 없습니다.

로냐프 강은 피에 젖어, 더 이상 그날처럼 하얗게 반짝이지 않습니다.

아슈벨의 늪에선 더 이상 하야덴의 검광이 Pellocs의 불길에 번뜩이지 않습니다.

헤라인드 성, 아니 이제 헤라인드 유적에선 더 이상 아아젠의 자장가가 들려오지 않습니다.

퓨론사즈의 성벽 위에 아무리 오래 서 있어도, '당신의 소중한 것을'은 전령 레페린을 앞세우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니, 이제 서서 퓨론사즈 평원을 내려다볼 성벽이 없습니다.  

'그 남자'의 진짜 얼굴을 기억하는, 수천명이나 되는 루우젤의 '왕'들은 자신들을 죽였던 가짜 기사들을 죽이고 가짜 기사인 '그 남자'를 죽이고, 자신들의 마지막 하나 남았던 '진짜' 기사를 위해, 그들의 장례 예법에 따라 돌을 던지고 돌아갔으니까요.

'당신의 소중한 것을' 죽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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