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 연대기 : 사자와 마녀와 옷장> 와 <게드 전기> 에 대한 미리니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언제부턴가 극장가에 걸리는 영화들 중 원작이 따로 있는 영화가 무척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볼 수가 있어요. 리메이크작이든 소설, 연극 등의 영화화든 말이죠. 원작이 있는 경우엔 원작 팬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당길 수 있으니 기본적으로 흥행이 보장된다는 안전장치가 되기도 하지만, 못만든 경우에는 영화가 엉망이라는 평에 원작을 망쳤다는 비난까지 덤태기로 씌워지죠. 앤드류 아담슨 감독의 <나니아 연대기>는 세계 3대 판타지 중 하나로 평가받는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강력한 원작의 후광도 없을 거예요. 영어권 독자들 중에 이 아름다운 동화 7편중 한편이라도 못읽어본 독자는 많지 않을 테니까요. 어른들은 어린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자기 아이들을 극장으로 데려갈것이고, 아이들은 또 책으로만 접할 수 있는 것들을 눈으로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을 테지요. 그리고 영화는 그들에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화면을 선사해주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는 7편이나 되는 대작이죠. 이걸 모두 영화화하는 건 시간상으로도 무리에요. 배우의 나이도 한계가 있고. 그래서 감독은 5편만 추리기로 하고 과감히 1편 <마법사의 조카>는 건너뛰고 출간 연도가 가장 앞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부터 만들었습니다. 다음 영화는 3편 <말과 소년>이 아니라 4편 <캐스피언 왕자>라고 합니다. 3편을 건너뛰는 이유는 다른 이야기들과 가장 관련이 적기 때문이죠. 시리즈 영화다운 선택입니다. '우리 세계의 아이들이 나니아로 가 모험을 한다'는 메인 줄거리에 충실해서, 그 '우리세계의 아이들' 캐릭터에 집중하는 겁니다. 이야기 하나에 영화 하나. 메인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단일한 이야기를 담는다는 점에서 영화와 동화는 구성이 유사하죠. 원작의 후광을 최대한 활용한 겁니다.

물론 감독 앤드류 아담슨도 수많은 독자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영화는 그의 시점에서 보는 <나니아 연대기>만을 담아냅니다. 사실 원작의 주인공은 루시라서, 피터의 전투는 모든 일이 끝난 뒤 피터의 설명으로만 원작에 드러납니다.그러나 감독은 피터의 전투가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았고, 그래서 오프닝에서 그는 작가 루이스는 한줄짜리 나레이션으로 넘겼던 런던 대공습과, 군에 지원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잠깐이지만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그려냅니다. 그때 폭격에 시달렸던 아이들이, 이제는 나니아의 전장에 서서 새들을 지휘해 나니아의 적들을 폭격하지요. 어떤 관객들은 그리핀과 새들이 모여 돌로 폭격하는 그 장면이 무척 즐거웠겠지만, 어떤 관객들은 그 장면은 신경쓰지 않다가 루시가 착한 거인 럼블버핀과 만나는 장면이 날아간 것만 아쉬워할 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연대기는 이렇게 상영을 시작했습니다. 누가보아도 페번시가 네 남매 역에 꼭 들어맞는 네 명의 신인 아역배우들이 너무 커버리기 전에, 서둘러 다음 영화가 나오고 또 다음 영화가 나와야겠지요. 감독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하든, 이 아이들의 캐릭터야말로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니까요.




어슐라 르귄의 <어스시의 전설>을 원작으로 하는 미야자키 고로의 <게드 전기>는 이런 점에서 너무 성급했던 겁니다. <어스시의 마법사>, <아투안의 무덤>, <머나먼 바닷가>,<테하누> 4편의 장편 소설로 이루어진 전체이야기를 단 한편의 애니메이션에 모두 집어넣는다는 건 아무리봐도 만용이죠. 게다가 애니메이션은 영화와 달리 배우의 나이에 연연치 않고 충분히 긴 제작기간을 잡고 작업할 수 있지 않습니까.

진실한 이름에 얽힌 마법에 대한 설정과 자신의 그림자와 싸워나가야 하는 모험, 그리고 어둠의 존재들에게 바쳐졌다 구원된 소녀의 삶, 삶과 죽음의 경계를 열어 세계를 잠식하는 자에게 대항하는 싸움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세계의 균형을 가져오는 것은 힘만 가진 남자가 아닌 삶을 소중히 여기는 한 여자라는 것까지. 긴 소설은 주인공 '새매(일본어로는 하이타카)'의 삶을 관통하며 그의 여정과 모험을 침착하게 늘어놓지만 2시간 안팍의 애니메이션에선 그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관객도 그런 여유는 없고요.

물론 미야자키 고로 감독도 캐릭터의 중요함은 알고 있기에,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네 캐릭터를 뽑아내 애니메이션에 배치합니다. 대현자 새매와 아렌, 테나와 테루. 하지만 원작에서 보여주었던 망망한 어스시의 바다도, 고통스런 모험과 마법의 어려움, '진실한 이름'의 위험성도 설명할 기회 없이 이 네 사람은 만나고 헤어지며, 원작에서 했던 대사를 서로 바꿔 맥락없이 읊조릴 뿐입니다. '새매'가 젊은 시절 겪었던 그림자와의 싸움은 매우 불완전하게 아렌의 몫으로 옮겨가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 장애인이었던 테루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감동적인 이야기였던 테나의 과거는 그저 대사 한마디로 일축되죠. 그래서 <어스시의 전설>이란 제목이 아닌 <게드 전기>가 되었는지 모르겠는데요. 문제는 <게드 전기>라는 제목조차 이 애니메이션에 어울리질 않는다는 겁니다. 대현자 새매의 진실한 이름인 '게드'를 제목에 붙였지만 그 이름은 러닝타임 내내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으니 아마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들은 대체 왜 <게드전기>인지도 이해 못했을 겁니다.

원작은 항상 양날의 검입니다. 잘 되어도 원작 덕, 못되어도 원작 탓이죠. <게드 전기>는 물론 그 자체만으로 보자면 그다지 나쁘진 않습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색감 좋은 화면에 '테루의 노래' 까지. 썩 괜찮은 애니메이션이에요. 그러나 원작 덕분에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관객들은 원작에 맞지 않는 부분들을 보면서 원작이 표현한 이야기의 10분의 1도 드러나지 못한 이 애니메이션을 비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독립된 작품으로 봐달라'는 건 엄살입니다. 그런 비난은 당연해요. 심지어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추억되는 <반지의 제왕> 세 편도 원작 지상주의자들에게 한없는 비난을 받았는걸요.

영화가 원작에 기대고 있는 한, 제작진은 자신들이 원작을 본 수많은 독자중의 하나라는 점을 잊어선 안됩니다. 물론 관객들도 그 점은 생각하고 영화를 봐줘야겠죠. 무조건 자신이 읽은 내용과 다르면 비난부터 하는 관객들도 잘못은 있는 겁니다. 세상은 넓고 같은 텍스트도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읽을 수도 있어요. 우리가 비난할 수 있는 경우는, 아무리 봐도 원작을 '잘못' 읽었거나 '성의 없게' 읽은 것이 드러나는 경우 뿐이죠.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성의없는 쪽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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