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클래식과 반지의 제왕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노스탤지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의 규모면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한때 위대했고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잊혀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아마 두 이야기를 더욱 진중하고 위엄있게 보이도록 하는 거지요.

"제다이라, 그거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군."
"요정의 시대는 끝났고 우린 이제 이 땅을 떠날 겁니다."

템플에서 강도높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공화국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 온 은하계를 헤집고 다녔던 제다이들에 대한 수많은 기록들은 제국의 20년 철권 통치에 의해 깨끗하게 잊혀져 버렸고, 그 걸 되돌리는 건 정식 입문도 못한 한 젊은이의 서툰 광검 솜씨와 진실한 마음 하나 뿐이었지요. 위대한 요정들의 빛나는 검은 오래전에 부러져버렸고, 요정의 피가 흐르는 순혈의 누메노르 왕도 오래전에 잃어버린 시대에, 절대 반지를 파괴하는 것은 요정의 선물인 에아렌딜의 별빛이 담긴 병 하나를 고이 품고 있는, 연약한 두 젊은 호빗이었습니다.

마비노기는 넥슨에서 퍼블리싱하는 DevCAT 팀의 다중 접속 온라인 게임입니다.

게임이지만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비노기 Generation 1 여신 강림, Generation 2 팔라딘, Generation 3 다크나이트의 제목과 이야기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메인스트림'이란 이름으로, 모든 캐릭터가 한번은 거쳐가게 되는, 에린의 이야기들이지요.

그리고 제너레이션이란 구분처럼, 이야기의 업데이트 일자에 따라 그 것을 겪어나간 유저의 캐릭터들 또한 세대가 갈리게 됩니다. 이유는 하나지요. 다음 패치가 진행되면서 기존의 힘들고 어려웠던 메인스트림은 하향되거나, 혹은 넘어갈 수 있도록 바뀌니까요. 그리고 유저들도 쉬운 길을 찾아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개하기 바쁘구요.

G2 팔라딘 2시즌때 마비노기를 시작한 저와 저의 길드 멤버 다수는, 길마님을 제외하면 이미 하향된 G1과 G2를 클리어했습니다. 길마님도 G1은 하향이었지요. 그런 우리가 보기에, 하향 전의 극악의 G1과 G2를 클리어해낸 기존 유저캐릭터들은 그야말로 전설처럼 보였습니다.

G3이 하향되었습니다.

G2에서 시작한 우리 '세대'는 G3에 얽힌 추억들이 가장 많습니다. 루아가 나오길 기다리며 베안루아에 모여 보낸 시간들, 겁없이 뛰어들어갔다 공포와 정면으로 맞닥뜨린 이지페카. 영혼의 포션을 만들고 항마의 로브를 만들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생산을 하려고 온 사방 뛰어다닌 기억들. 그리고,

잠입.

3층 30개의 구슬방을 통과해야 하는, 그 치열했던 순간들. 타고다닐 말도 없던 시절, 날아오는 가고일, 뛰어오는 헬하운드를 피해 죽어라 두 다리로 달렸던 그 시간들. 몹렉을 유도하기 위해 수십명이 모여 함께 통행증을 던질 때의 기묘한 쾌감. 그리고 마침내 클리어했을 때 보게 된 동영상의 허무함과, 그동안 지겨웠으면서도 결국 정이 들어버린, 지정 염약으로 염색까지 해서 입고다녔던 항마의 로브와의 싸한 이별.
2005년 7월 31일. 지독했던 잠입의 추억.


끝으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된' 최종 던전.

2005년 8월 20일경, 이세느의 최종 던전 서포터를 갈 무렵. 당시의 닌니는 스매시를 제외한 모든 전투스킬 9랭이었다. 지금은...

그러나 이지페카는 사라졌고, 루아가 출몰하는 시각표가 마비노기 웹진에 퍼져 알려졌고, 온갖 퀘스트 아이템의 생산은 NPC가 대신 해주고, 잠입은 1층 10개로 줄었으며, 최종 던전을 둘이서도 가뿐히 클리어할 수 있는 대괴수들이 돈을 받고 관광버스마냥 클리어해줍니다.

마비노기 챕터 2가 진행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고, 좋아지고 있고, 편해지고 있습니다.
2005년 9월 2일. 지금은 뚫려있는 길.


우리들은 초보자 퀘스트에 있던 거대 흰늑대를 잡기 위해 그렇게도 노력했지만, 요즘 시작하는 뉴비들에게 거대 흰늑대란 생소한 이름일 뿐입니다.

우리들은 프라이스의 '어이쿠, 다리가 부러졌네' 를 말하며 낄낄 웃고 에스라스의 윈드밀을 기억하며 이를 갈지만, G2를 스킵하고 그냥 팔라딘이 된 뉴비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겠지요.

에린의 2세대인 우리들은 이제 스타워즈 에피소드4의 오비완 케노비가 된 걸지도 모릅니다.

"메인스트림이라. 그거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군."

A New Hope는 있을까요.
프로도 배긴스는, 있을까요.

마비노기 Chapter 2에 온 지금, 우리들은 요다와 메이스 윈두(베타테스터와 하향전 G1클리어 캐릭터)의 무용담을 전설처럼 전하며, 우리들 스스로도 그 전설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는 것만 같아 슬픕니다.

슬픈데, 좋아요.

전설의 주인공이 됐으니까요.

빌어먹을.
2006년 4월 28일. 근접공격스킬 전1랭 달성. 어느새 닌니도 전설속의 그 사람들처럼 되었다.


그런 이야기들 많이 듣습니다. 특히 오래 하신 분들은요. 마비노기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는 이야기.
제게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는 끝났고, 우린 이제 이 땅을 떠날 겁니다."

그래서 많이들 떠났지요. 베타 때부터 하시던 분들은 특히나 많이들 가버렸어요.
전설은 전설답게. 라는 걸까요.
2006년 4월 30일. 현존 최강 던전 페카 하급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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