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제 3 원수
로한 제 3 왕조의 시조, 에오메르 에아디그 왕


로한 왕가는 본디 북방에 살던 에오세오드 족의 후손이다. 청년 영주 에오를이 이끄는 이 부족은 용맹한 전사이며 노련한 기마병이었다. 키리온 섭정의 시대에 위기에 처한 곤도르를 도와준 보답으로, 당시 주민이 거의 없었던 지금의 마크 땅을 하사받은 에오를 왕은 로한 왕조의 시조가 되었고, 이 후에 긴 역사를 거치며 던랜드 인의 습격이라든지 여러 위험으로부터 자신들과 곤도르를 지켜왔다. 봉화는 그 시절부터 유지되어온 로한과 곤도르의 연락수단으로, 그들은 서로가 원하면 언제든 출정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온 사방이 외적으로 둘러쌓여 있던 곤도르는 그 약속을 쉽게 지킬 수가 없었다. 어느 쪽이냐면 거의 한번도 지켜본 적이 없다. 그러나 로한인들은 끝까지 우정을 버리지 않았고, 그리하여 제 3시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다시 한번 크게 곤도르를 구해낸다.

에오메르는 왕가의 직계손이 아니다. 세오덴 왕은 그의 외삼촌이며, 그는 곤도르인의 피와 로한 왕가의 피가 흐르는 어머니보다는 역시 마크의 원수들중 하나였던 아버지 에오문드를 좀더 많이 닮았다. 지나치게 열정적이어서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아버지 에오문드와는 달리 어머니를 닮아 약간은 더 신중했지만, 방패에 얹힌 시체로 돌아온 아버지를 본 어린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적들에게는 한없이 무자비한 장수였다. 오르크든 던랜드의 인간이든 우르크하이든 로한의 적에게 있어 그는 죽음 이외의 것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로한인들이 믿고 따르는 왕가의 피를 이어받았기에 자신 휘하의 모든 이들에게 그 믿음을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펠렌노르 평원에서 그들은 외친다. "죽음을!"

그는 충성스런 신하이며, 분명 사랑받는 조카였을 것이다. 동생 에오윈과 함께 왕궁에서 살면서 주군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사랑을 한 대상에게 쏟을 수 있다는 것은 이 단순하고 순수하기까지 한 남자에게는 축복의 시간이지만, 시련은 모든 행복한 이야기가 그렇듯,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마의 활약으로 세오덴 왕은 자기 정신을 잃어버렸고, 마침내 에오메르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다.

"로한 왕국으로부터 추방한다. 에.오.문.드.의 아들 에오메르. 돌아오면, 그땐 사형이다."

그는 분명 로한인들의 사랑과 믿음을 받는 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크의 제 3원수로 맹활약해 적은 수의 병력으로도 수많은 적을 쓰러트렸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지만, 세오덴에게 있어 그는 왕위 계승자 후보라기보다 충성스런 신하의 한 사람이었다. 믿음직한 후계자로 생각했다면, 노년의 세오덴은 분명 아직 어린 자기 아들 세오드레드를 제친 채 자신이 먼저 그에게 왕위를 - 아니면 적어도 섭정의 자리를 - 물려주었을 것이다. 사루만의 마법에 씌이기도 전에 그 일은 이루어졌을 것이고 로한은 사루만의 군대에게 쉽게 유린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오덴은 그를 사랑했지만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믿었던 왕자, 마크의 제 2 원수 세오드레드는 시체가 되어버렸고 충성하는 주군을 따라 신하의 예로 섬기며 또한 동생처럼 아꼈던 세오드레드의 죽음은 에오메르에게 있어 슬픔과 동시에 무거운 짐을 내린다. 이제 그는 마음을 잃어버린 사랑하는 외삼촌을 지켜야 함과 동시에 그 왕좌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는 이제 로한의 아라곤이다. 적자는 아니지만 왕이 되어야 한다. 자질은 충분하다. 그리고 왕은 제정신이 아니니 로한은 어느새 왕을 잃었고, 섭정 그리마가 모든 걸 쥐고 있다. 그러나 정당성을 입증하진 못하고 있다. 그럼 이제 어찌 해야 하는 걸까. 왕을 몰아내야 할까? 아버지나 다름없는 외삼촌을 몰아낼 순 없다. 감성 가득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집이나 다름없는 신성한 황금 궁전에서 피를 볼 수도 없다. 그는 이 엄청난 고민을 안은 채 그 스트레스를 우르크하이에게 아낌없이 풀어버린다. 전투를 도발하지도 않고 몰래 야영중인 적군을 개 잡듯 도륙하는 건 분명 기사의 행동, 혹은 군인의 행동이 아니다. 그건 거의 피에 굶주린 비적의 행동이다.

그러나 그를 거의 미치게 만들었던 이 고민은, 아라곤과 그가 대려온 흰색의 마법사로 인해 풀려난다. 왕은 되살아났고, 그는 (당분간) 왕이 되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 해왔던대로 단순하고 우직하게 충성만 하면 된다. 얼마나 고마운가. 그는 아라곤과 형제나 다름없는 우애를 맺게 되었고, 주군을 믿듯 그를 믿게 되었다. 왕좌라는 짐에서 헤어난 그는 이제 자유인이다. 이방인 소롱길의 전설로 기억되는 아라곤이 이제 그의 곁에 있으니 그는 전설과 함께 더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원래도 거의 그랬지만)

봉화가 오르고, 부활한 노왕 세오덴의 뒤를 따라 수많은 로한인을 거느리고 그는 전장으로 향한다. 전설의 아라곤은 이제 또 다음 전설을 낳기 위해 돌아오지 않는 길로 사라졌고, 그는 이제 자신이 전설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 대부터 숱한 전투에 함께 해온 노장들이 뒤에 서 있고, 빛나는 눈으로 함께 말을 달려줄 또래의 젊은이들이 곁에 서 있다. 해왔던 대로 용감하게 해치우기엔 짐이 무겁다. 곤도르까지 가는 5일 밤낮의 긴 행군을 지나, 새벽에 이르러 마침내 펠렌노르 평원에 섰을 때까지, 그의 머릿속엔 온갖 부담감이 감돌았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이제 사랑하는 외삼촌께서 친히 청소해주신다. "에오메르, 오른쪽!"

사랑하는 주군께서 그 대신 전설이 되어주셨다. 그 누구도 뒤따르지 못할 만큼 영광과 열정에 사로잡혀 수천 로한인의 선두에 서서 달리는 노왕의 등을 바라보며 에오메르는 모든 짐에서 놓여나 피와 죽음의 자유를 얻었다. 사나운 민족들의 지도자로서 그는 칼날처럼 적들을 베어넘겼고, 영광을 몸에 받고 부담스러워하기 보다 왕께로 돌릴 수 있었다. 자유를 얻은 이 단순한 남자에게는 하라드인들이 끌고온 거대한 짐승조차 두려움의 대상이 되질 못한다. 로한인들은 아름답고 무시무시한 전쟁의 노래를 부르며 전장을 휩쓸었고 그 선두에는 에오메르가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이 거대한 전장에서 사랑하는 외삼촌을 잃고, 더욱 사랑했던 동생까지 거의 잃어버릴 뻔 했다는 걸 알게 된 뒤에 그는 잠시나마 자신을 놓아준 그 무거운 왕좌라는 짐이 자신을 짓누르는 게 아니라 이미 그 자신 안에 있었음을 알아버린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그는 이미 그 자리에서, 왕이 되었다. 아라곤이 원군을 이끌고 펠렌노르 평원에 늦게나마 도착했을 때, 그는 더이상 전설의 아라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대등한 친구로서,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검은 문으로 나아간다.

세오덴 왕의 장례 행렬 선두에 서서 에도라스에 돌아온 에오메르 왕은 그 후로 65년간 왕위에 머물렀다고 한다. 로한의 선왕 중에는 노왕 알도르를 제외한 그 누구보다도 긴 기간이었다. 그는 반지전쟁으로 우정을 쌓은 아라곤과 돌 암로스의 임라힐 등 곤도르의 영주들을 이따금 방문했고, 임라힐의 딸 로시리엘과 혼인하여 그 아들 엘프위네가 왕위를 이었다. 그의 통치 하에 이르러서 마크의 백성들에게는 그렇게도 염원하던 평화가 찾아왔고, 말과 사람의 수도 크게 늘어났다. 엘레사르 왕은 이 후에도 수없이 정벌에 나섰고, 절친한 친우였던 에오메르 역시 천년의 우정을 제 4시대에도 이어나가 룬의 대해 너머와 하라드의 먼 벌판까지, 그가 세오덴처럼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푸른 들판을 배경으로 선 백마의 깃발을 나부끼며 엘레사르왕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함께 나아갔다.

왕의 얼굴을 가졌으나 그 이름을 갖지 못했던 버려진 왕은, 이렇게 해서 로한의 역사에 위대한 군왕으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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