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네소르의 아들 보로미르
곤도르의 대장

이실두르가 절대반지의 배신으로 오르크의 화살에 맞아 죽고 나서, 곤도르의 왕위는 이실두르의 조카 발란딜이 이어받았다. 사우론과의 전쟁으로 인해 국토는 황폐해졌고, 인구도 급감하여 곤도르의 국력은 쇠퇴 일변도를 걸었다. 외세의 침입이나 왕족들의 내분, 기근과 역병 등을 겪으면서, 모르도르 주변 곳곳에 세워둔 초소마저 유지가 불가능해 모두 철수하게 된다. 그 후로 비어있던 미나스 모르굴에 아무도 모르게 다시 마술사왕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제3시대 2050년, 에아르누르 왕은 마술사왕의 요청에 의해 1대1 결투를 치르기 위해 미나스 모르굴로 떠나지만, 그후로 누구도 왕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투사의 무용에만 관심이 있던 왕에게는 후사가 없었고, 왕족들은 수가 극히 적어 정당한 후계자는 찾을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당시에 왕권을 인계받았던 섭정 마르딜 보론웨에 의해 섭정의 통치가 시작되었고, 그후로 데네소르 2세 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26대의 섭정이 곤도르를 다스렸다.
섭정은 "국왕께서 돌아오실때까지 나라를 맡아 다스린다"는 서약과 더불어 직위를 맡았고, 이 직위는 계속해서 세습되었다. 권력은 왕권과 전혀 다름없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높은 단 위에 있는 왕좌에는 오르지도 않았고, 그 아래 섭정의 자리에 앉았다. 이실두르의 아버지 엘렌딜의 시절부터 내려오던 왕관은 항상 에아르누르 왕이 두고 간 그대로 왕가의 묘역에 남아있었다.

보로미르는 데네소르의 큰아들로, 그 역시 에아르누르 왕처럼 강한 투사였지만 전쟁에 대한 것을 제외하면 역사 공부조차도 게을리했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에게 섭정이 왕이 되려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소국이라면 몇년이면 되겠지. 곤도르라면 일만년이 걸려도 부족할 것이다."
이에 그는 무척 실망했고, 섭정의 직위 자체에도 회의를 느끼게 된다. 천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왕 따위는 필요도 없다고 느낀 것이다.
10세의 어린 나이에 요정 여인처럼 아름답던 어머니를 병으로 잃긴 했지만 그는 훌륭히 성장하여 놀라운 용맹을 발휘해서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원정대가 출발할 당시 그의 나이는 40세로, 누메노르 혈통이 남아있는 곤도르인으로서는 젊은 축에 든다) 곤도르의 대장 직을 '직접' 수행하여 오스길리아스와 카이르 안드로스 등 오르크들이 점령했던 곳곳을 탈환하는 공을 세운다. 오스길리아스는 줄곧 전초기지로 활용되다가, 펠렌노르 전투 직전에야 적에게 길을 내주었다.
그러나 그는 직접 모르도르의 권세에 대항해 싸우면서 자신이 택한 적이 자신의 용맹만으로는 손톱자국만큼도 상처입히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점차 깨달아갔고, 그리하여 마침내는 희망을 잃었다.

리벤델에 찾아온 그의 본래 목적은 자신과 동생 파라미르가 같이 꾸었던 예지몽에서 일종의 예언과 같은 노래를 들었고, 그 것을 해석해달라고 현명한 엘론드에게 부탁하기 위함이었다. '이실두르의 재앙'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반인족이 나타날 것이라는 그 노래의 의미를 알기 위해 찾아온 리벤델에서 그는 마침내 그 '이실두르의 재앙' 절대반지를 보게 되지만, 강인함에 걸맞는 용기와 희망을 갖지 못한 그는 반지에 의해 첫번째 공략 대상이 되고 만다.

전사로서 가장 강한 인간이었고, 또한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자국민에 대한 애정이 마음에 가득 차 있던 그에게 최고의 힘의 반지는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가 배워온 역사에는 항상 암울한 배신과 패전만이 이어졌고, 그 자신또한 그렇게 스러질 거라고 항상 피부로 느끼면서 어둠산맥을 바라보고 살아온 그에게 그 모든 질곡의 역사를 한번에 뒤집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은, 감정 표현에 서투른 그조차도 기쁨에 차서 자신의 주장을 소리높여 외칠 수 있게 해줄만 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반지는 인간이든 누구든 곤도르의 친구들에 의해서는 이용될 수 없었고, 원정대와 함께하면서 그는 계속해서 자신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그가 직접적으로 싸운 대상은 반지를 얻고자 하는 그 욕망이라기 보다는, 점점 절망만이 가슴을 채우는 자신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반지의 힘에 완전히 굴복하여 프로도를 궁지에 내몰고 나서, 그는 통곡하면서 다시 프로도를 부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서, 우르크하이의 습격에 최선을 다해 저항했고, 너무나 급박하게 싸우느라 그만 자신의 방패마저 가져오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방패를 들고 싸웠다면 그렇게 아쉬운 최후를 마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반지에 씌인 채 종족 전체에 저주를 부었던 그 반인족인 메리와 피핀을 지켜 주려다 목숨을 잃은 후, 그의 시신은 원정대 일행에 의해 요정의 배로 장례를 치르게 된다. 곤도르에서는 먼 훗날까지, 그를 실은 요정의 배가 폭포를 빠져나와 안두인 대하를 타고 오스길리아스를 지나서, 별이 빛나는 밤에 바다로 나아갔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훌륭한 전사였지만 심약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던 아쉬운 인물, 어쩌면 가장 평범한 인간다운 면이 많았던 등장인물인 보로미르는 그렇게 죽어서 신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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