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키님의 츠메카린 이야기 팬픽입니다.
AU는 Alternative Universe의 약자인데, 본래는 스타워즈 팬픽 중에서 원작의 스토리와 배치되지만 같은 캐릭터라면 이랬을 수도 있겠다는 가정으로 쓰여진 팬픽들을 분류하는 말이에요. 즉 지금 쓰는 이야기는, 뮤키님의 오리지날 스토리와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덧 : 19금은 조금 안되고, 15금은 조금 넘습니다.
츠메카린 이야기 AU
<저주가 낳은 아이>
처음 그녀를 만났을때 느꼈던 것은, 그의 여신인 누님에게 느꼈던 것과도 같은 그런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 금빛 눈동자가 어딘지 모르게 누님을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소년은 먼저 말을 건넨다.
"왜 그래요 니니엘?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응?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왕자님."
서른 살. 원숙한 경지에 이른 여검사의 목소리는 어쩐지 소녀처럼 떨리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그들은 내내 서로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츠키에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 츠메카린 왕가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남자아이.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재 자체마저 유폐당한 가련한 아이. 그 아이가 이제 니니엘의 지도 아래 당당한 마검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간다.
지금 이렇게 보내고 나면 언제 또 다시 볼 수 있을까.
"오늘은 여기서 쉬어야겠습니다."
제자가 마차를 세우고 야영지를 정리하는 동안 니니엘은 음식 재료를 꺼내 요리를 준비했다. 소시지, 베이컨, 토마토. 들판에서 먹는 한끼 식사 치고는 꽤 호화로운 준비같아 보이지만, 그녀가 늘 주장하는 대로 '잘 먹어야 잘 싸우는 법'이기에.
게다가 그녀의 제자는 지금 일생 일대의 싸움을 앞두고 있다.
"아, 오늘은 제가 요리할게요."
"괜찮은데."
"아뇨, 아직 전 요리에 대해선 인정을 못받았잖아요. 오늘 밤에 한번 솜씨를 보여드릴테니, 긴장하고 기다려보세요."
귀엽게 한 눈을 찡긋하는 이 제자의 요리솜씨도 이젠 수준급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자신이지만, 아마도 마지막이 될 이 밤의 식사만큼은 자신이 해주고 싶었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들어요. 스승님."
몇년간 일상이었던 대화는 화자가 반대로 바뀌었어도 여전히 따뜻하게 오간다. 니니엘은 입에 음식을 넣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웃음짓는 츠키에테의 시선을 느끼고는 얼굴을 돌렸다. 레바엔 이놈은 대체 왜 나중에 따라오겠다고 한 거야. 단 둘이 있자니 너무 어색해. 그녀의 미각은 물론 처음 이 소년의 검이 자신의 공격을 빗겨내고 파고들었을 때처럼 대견함과 기특함으로 가득채워졌지만, 그 단정하면서도 화려한 맛에 순수하게 즐거워하기엔 마음 상태가 너무 복잡했다. 제발 차라리 마수라도 잔뜩 습격해라. 그 쪽이 단순해서 좋단 말야.
"제가 먼저 불침번을 설게요. 주무세요. 스승님."
"알았어. 그럼."
마국 츠메카린의 국경지대. 계절은 온화했고 흙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편안했다. 이런 편안한 잠자리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니니엘은 그 '마녀'를 떠올리며 다시금 몸을 떨었다. 무가의 자녀로 태어나 지금껏 두려워해본 유일한 존재. 잠이 들면 늘 괴롭혀오던 그녀의 서릿한 목소리.
'감히 일개 무사 주제에!'
퍼득 눈을 떴을 때 니니엘은 몸이 어딘지 둔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의 몸 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길고 검은 머리칼의, 그 소년.
"미안해요. 스승님. 아니, 니니엘. 어쩔 수 없었어요."
그때의 그 남자와 똑같은 말을.
"그동안 줄곧 생각했는데, 이제 때가 됐어요."
무슨 소리냐고 되물으려 했지만 제자의 얇은 입술이 먼저 자신의 입술에 포개지는 바람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손으로도 밀어 던져버릴 자신이 있었지만, 그녀의 몸은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입술이 떨어지길 기다려 니니엘은 온 힘을 다해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내게, 무슨, 무슨 짓을!"
"그걸 먹고도 말을 할 수 있다니, 역시 스승님이군요."
"뭐?"
"아까의 음식, 마취약을 넣었어요. 스승님은 제가 쓰러트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편법을 썼죠. 약에서 풀려난 뒤에 절 베어버리셔도 괜찮아요."
"츠, 츠키에테!"
그의 손길이 거침없이 니니엘의 옷자락을 끌어내렸다. 그만하라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목구멍 안에서 맴돌 뿐 제대로 발화되어 나오질 못했다. 작고 여리다고 생각했던 그 손이 이제 남자의 손이 되어 속살을 더듬는다. 그 때 그 남자처럼.
"한참 생각했는데, 제 마음을 받아줘야겠어요."
그의 손길이 은밀한 곳까지 이르렀다. 온몸이 오그라들 것 같은 끔찍한 느낌. 니니엘은 사력을 다해 팔을 들어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만, 해."
"이제와서? 그럴순 없어요."
"나, 난! 읍!"
다시금 깊은 키스. 처음에는 굳게 닫혔던 그녀의 입이, 곧 벌어져서 어린 제자의 입술과 섞여들었다. 평생 잊지 못할 그 날 밤이 떠올라 니니엘은 온 몸이 뜨거워졌다. 말해야해. 어서 말해야해. 넘어가선 안돼. 이렇게 되어선 안돼. 그의 입술이 떨어지고, 서로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잠시 숨을 골랐다. 그가 말했다.
"봐요. 스승님도 날 원하고 있었잖아요."
"맞아."
"난 이런 녀석입니다. 알고 있었죠? 그 성에서 계속 살았다면, 누님에게도 난 결국 이렇게 했을 거예요."
"알아."
네가 자라나는 걸 본건 다름아닌 나니까. 라는 긴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니니엘의 몸은 자유롭지 못했다. 그건 큰 축복이었어. 끔찍한 고통이기도 했지만. 파피엘에게 나는 감사해야해. 너라는 선물을 받은 것을. 그런 긴 말도 더 할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그 손길에 모든 걸 내맡겼다. 가늘고 여린 몸. 거대한 클레이모어 한자루로 전장을 휘젓던 '여자가 아닌' 그녀의 몸이라기엔 너무나 나긋나긋해서 츠키에테는 끔찍한 죄책감마저 느꼈다. 다행이다. 누님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이라서. 차라리 다행이다.
"괜찮겠죠?"
니니엘은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비명이 숲 가장자리에서 높게 솟았다가, 이내 상처입은 맹수처럼 헐떡이는 거친 숨소리가 온통 주변을 뒤덮어나갔다.
*
"미안해요 스승님."
어스름 속에 나신으로 앉아 있는 그의 입가엔 웃음마저 걸려 있었다. 니니엘은 마취약에서 풀려났는데도 여전히 바로 누워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이런 녀석이야. 알고 있었잖아요?"
"그래. 모를리가 없지. 너도 나같은 녀석이지."
니니엘은 손을 뻗어 땀에 젖은 츠키에테의 머리칼을 조심조심 쓸어내렸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 츠키에테는 눈을 감으며 니니엘의 품에 안겨들듯 누웠다. 자신의 품 안에 머리를 묻은 그를 향해, 니니엘은 나직하게 고백했다.
"내가 네 엄마야."
버림받은 왕자의 금빛 눈동자가 일순간 커다랗게 떠졌다.
"돌아가. 부디. 네 누이에게."
*
18년전.
"어렸을 때부터 난 너밖에 없었어."
소녀 검사는 여왕의 정부(情夫)를 바닥에 쓰러트리고 그 위를 덮치고 있었다. 그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돌아가. 지금 네가 이런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형감이야."
"죽어도 좋아. 다만, 네가 안아주기만 하면."
두 사람은 그렇게 여왕의 침소에서 한 몸이 되었다. 그리고 절정의 순간이 지나고도 아직 어렸던 그 둘은 쓰러지듯 그 곳에 누워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너무 늦게까지.
여왕이 들어설때까지.
"감히, 감히 일개 호위 무사 주제에 내 남자를 넘봐! 좋아. 사랑때문인가? 그럼 그 사랑을 빼앗아주마!"
츠메리카 여왕의 마법은 단 일격에 그 남자를 핏덩이로 만들어 날려버렸다. 어린 소녀 니니엘은 곁에 있던 검을 집어들 생각조차 못하고, 온몸에 그 남자의 피를 뒤집어쓴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비명조차 나오질 않는다. 나온다 해도 여왕의 결계 때문에 결국 아무도 듣지 못할 거다. 숨조차 멎을 듯한 그 공포 속에서 여왕은 그녀에게 다가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사악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리 와!"
머리채를 쥐여 창밖으로 끌려나간 니니엘은 아래층의 정원에서 놀고 있는 어린 공주님을 보았다. 세살? 네살? 붉은 머리칼의 공주님은 위층에서 벌어진 이런 끔찍한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행복하게만 보였다.
"저 애는 후계자가 될거야. 하지만 하나로는 부족해. 난 하나가 더 필요했지. 둘은 싸우게 될거야. 사랑하는 자매끼리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거야. 그리고 친 자매를 죽일 만큼 뛰어난 실력과 냉정한 마음을 가진 아이가, 이 나라를 물려받는 거다. 그게 내가 바라는 바야. 자, 무사여. 선택해라. 그 배로 내 아이를 낳아줄 테냐, 아니면 아이와 함께 내 목욕물이 될 테냐."
아이라고? 니니엘은 자신의 밑에 닿아있는 여왕의 손길에 흠칫 몸을 떨었다. 이루어졌으니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까지 죽게 할수는 없었다.
"나, 낳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내가 직접 뽑은 호위무사의 답이지. 네 피와 살과 정은, 그 하나 하나가 전부 내 몫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네가 낳겠지만, 결코 네 아이가 아냐!"
여왕의 손을 타고 저주의 마법이 니니엘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끔찍한 공포와 고통 속에서 니니엘은 의식을 잃었고,
깨어났을 때 그녀는 아주 잠깐 금빛 눈동자를 가진 사내아이를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
"하지만 망가져 있어. 아마 곧 알게 될거야."
레바엔은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다음 이야기는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친구 츠키에테의 여신, 얼음 공주 츠뮤는 그동안의 생각보다 너무 연약해 보여서 그는 감히 그녀에게 다음처럼 사실을 말해주지 못했다.
"스승님처럼 너무 늦게 알면 곤란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