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Land] 츠키에테 Ver.00
*츠뮤님의 츠메카린 이야기 팬픽, 그 두번째.
"스승님. 이건 좀,"
"입 다물어. 실전이다."
"그러니까 그 실전이 문제라고. 츠키는 이제 막,"
"난 저 나이에 이미 사람을 수십이나 베었어. 내 동생도 그랬고. 잔소리 마라."
"그러니까 스승님하고 츠키는 경우가 조금,"
검은 옷을 입은 조그만 꼬마와 몸에 딱 붙은 검은 갑주를 두른 마른 여자가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소년 츠키에테는 조심스레 몸을 숙이며 검을 꽉 움켜쥐었다.
"닥치고 따라오는 거야. 넌 뭐 안 그랬니?"
"나야 본능으로 어찌어찌 되지만 쟤는 좀,"
"너, 쟤 사랑하니?"
"아, 아아니?"
"나도 사랑하거든? 열라 사랑하니까 존내 괴롭히는거야. 알았니?"
"니니엘님! 전투 준비됐습니다!"
풀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병사가 면갑을 들어올리며 보고를 하는 통에 거의 이길뻔한 설전을 중단하게 된 마른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니니엘. 유학생 신분으로 이 나라 왕립 검술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몸매와 덩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클레이모어를 휘둘러대는 전설적인 여자 용병. 그 실력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개인 용병대를 거느리지 않고 소수의 제자만 데리고 늘 가장 앞장 서 적진을 돌파하는 무자비한 여자. 그건 이미 여자가 아니라 전투기계라는 소리까지 듣지만 본인은 그다지 그런 소문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나라 영주가 자기 군대를 맡긴 이 전투에서 그녀의 관심은 오직 출생이 불운한 자기 나라 왕자님에게 쏠려 있었다. 츠메카린 츠키에테. 지켜주세요 광선을 촉촉하게 발사하는 금빛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유혹적인 소년. 저녁 햇살에 옷깃이 녹아드는게 지금까지 손에 쥐어본 어떤 클레이모어의 검광보다도 예쁘게 보이는건 결국 자신도 여자라는 건지. 니니엘은 전혀 전투기계 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파피엘. 언니에게 어쩌다 저런 걸 안겨준 거냐.
"잘들어요. 왕자님. 저 마을 한가운데 마수가 침략했어요. 땅 속에서 솟아나는데, 모체만 베면 추가 전력이 막히니 그게 집중 목표예요. 우린 중앙으로 돌파할 겁니다. 지금까지 배운걸 잊지만 않으면, 돌아가서 저녁 훈련 생략하고 맛있는거 먹고 일찍 잘 거예요. 이해했죠?"
소년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손을 벌벌 떨면서 몇번이고 손등에 라이트닝 볼트를 차지해 띄웠다가 흩어버리는 모습이 많이 불안한 것같다.
"나중에. 나중에. 지금 벌써 힘을 다 쓰면 곤란해요. 알았어요? 자, 1분대 서쪽, 2분대 동쪽, 신호하면 돌입해라. 혹시라도 내가 걱정돼서 개인행동하는 녀석이 있으면 살아남은 경우에 한해서 죽도록 패주겠다. 알았나!"
"예!"
"이동!"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 니니엘은 등에서 클레이모어를 뽑아들며, 자신을 따르는 두 꼬맹이를 바라보았다. 반항적인 붉은 눈동자의 소년과 순진한 금빛 눈동자의 소년. 붉은 눈동자의 소년이 금빛 눈동자의 소년에게 한 팔을 뻗어 어깨를 두른다.
"야. 츠키. 안무서워? 지금이라도 말해. 네가 말 하면 스승님은 굳이 같이 안 데려가."
"아냐. 괜찮아."
"괜찮긴 뭐가! 손은 떨고 있으면서."
"레바엔. 할말 더 있냐?"
"아니아니?"
"그럼 간다."
두말없이 검을 빼들고 마을 한복판을 향해 돌진하는 여자. 저 좁은 등을 보며 따라 달린게 몇번째인지 기억도 안난다. 오늘은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어야겠군. 하는 생각을 하며 레바엔은 츠키를 일으켰다.
"정말 괜찮아?"
"응. 아무리, 아무리 무서워도, 누님을 생각하면,"
"네 누님이 무슨 어딘가에 있다는 그 여신님이냐? 아니면 죽은 자를 살려준다는 그 신비의 여인이라도 되냐. 네가 말하는 누님이란 꼭 전설속에나 나올 법한 그런 여자같아. 실제로는 주근깨 투성이에 입을 샐쭉 내밀고 다과가 늦는다고 투정하는 아주 평범한 공주님 아닐까? 못만난지도 한참인데 그걸 어떻게 알아."
금빛 눈동자가 생긋 웃는다.
"그럴리가 없어. 우리 누님은 그런 공주님이 아니야. 무서운 얼음공주라고. 가자."
첫 실전인데 먼저 달려나가는 츠키에테. 라이트닝 볼트를 차지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레바엔은 츠키에테를 향해 달려가다가 살기를 느끼고 엎드렸다.
"아이스볼트! 엎드려!"
건물 옆으로 츠키를 끌어당겨 숨자마자 벽을 향해 아이스볼트가 두어 개 날아와 꽂힌다. 이미 니니엘의 뒷모습은 저 안쪽으로 사라지고 없다.
"가고일이야. 최상급 마수인데."
"으으으, 어딘지 보여 레비? 스승님은 어디 가신거야!"
"잠만 보자."
츠키의 등을 타고 올라가 살짝 머리를 내미는 레바엔을 향해 날카로운 아이스볼트가 또 날아와 꽂힌다. 간발의 차이로 머리를 뒤로 뺀 레바엔은 츠키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른쪽 앞 건물 2층이야. 해결하고 지나가자."
"스, 스승님이 돌아보고 와서 구해주지 않을까?"
"우리가 스승님을 구할 일은 있어도 절대로 스승님이 우릴 구해주진 않아. 그 '건' 늘 그렇거든. 잘들어. 내가 지그재그로 달릴 테니까, 넌 라이트닝 볼트를 날려. 한번에 맞춰야돼. 너무 빨라도 너무 느려도 내가 죽는다. 알았지?"
"알았어! 그런데 무겁다."
"뭐가 무겁냐. 간다!"
츠키의 머리를 툭 치고 튀어오르듯 일어난 레비는 두개의 검을 뽑아들고 날듯이 부서지고 불탄 건물들 사이를 달려나갔다. 파악. 팍. 아이스볼트가 내리꽂힌다. 둘씩. 가고일이 두마리잖아! 츠키는 신중하게 숨을 쉬며 라이트닝 볼트를 손에 모았다. 하나. 둘. 셋. 팍! 파박! 레바엔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앗, 다리가 얼었나! 비틀거리는 순간 츠키는 더 주저하지 못하고 라이트닝 볼트를 날렸다.
"지금이 아냐!"
이미 늦었다. 손을 벗어난 전격이 가고일을 강타했고, 가고일 두 마리가 동시에 뒤로 날려가 넘어졌다. 레바엔은 벌떡 일어나 지상으로 떨어지는 그 녀석들을 향해 달려가려 했지만 거리가 너무 길었다. 전격에 온몸이 구워지고도 그것들은 이미 일어나 이쪽을 보고 커다란 검을 빼들며 달려든다.
"레비!"
퍼억!
츠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준 녀석이 자신의 실수로 지금 네 조각으로 갈라지는 판에 도저히 그걸 볼 수가 없었다.
"레, 레비이..."
심장이 크게 뛴다. 눈을 떠야 해.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 눈을 떠야 해. 겁내면 안돼. 조심스레 눈을 뜨자 거기엔,
누군가의 좁은 등이 보였다.
설마 누님인가.
항상 온 힘을 다해 지켜주던 그 작은 등이 어린 눈에도 무척 애처로웠던.
하지만 비례가 다 틀렸다. 검은 너무 길었고 키도 무척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붉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
"스승님!"
츠키는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피냄새가 가득하다. 마수의 피로 범벅을 하고 바닥에 벌렁 누워 있던 레바엔이 일어나 앉는다.
"어우 죽는 줄 알았네. 아, 츠키! 네 탓 하는건 아냐. 결국은 안 죽었잖아. 그런데 어쩐 일로 구해주러 온 거야. 스승님?"
"어쩐 일이라니. 지금까진 구할 필요가 없어서 안 구해준거다. 일어나. 내 소중한 제자라는 녀석아."
발로 레비를 툭 차고 다시 앞서가는 그녀. 그쪽 골목에 산산조각난 마수의 시체가 잔뜩 널려 있어서 츠키는 잠시 눈을 돌리며 입을 막았다. 니니엘의 목소리가 들릴때까지.
"왕자님. 제가 첫 시간에 가르쳐준거 기억나요?"
"예? 아 예, 눈을 감지 말라고,"
"왜 감았죠?"
측면 공격에 대비해 셋이 삼각으로 서서 걸어가면서도 니니엘은 계속 묻는다.
"그, 레비가 죽을까봐, 어떻게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 그랬..."
"전장에서 누가 죽는건 당연해요. 맞으면 죽는 겁니다."
"스승님한테 맞으면."
키득거리는 레바엔의 머리를 향해 건틀릿을 끼운 손이 무자비하게 내리꽃히는 것과 별도로 얘기가 계속 이어졌다.
"왕자님의 그 누님을 위해서 이 고행을 나서는 거죠?"
"네."
"그럼 방해자는 모조리 처치해도 괜찮은 겁니다. 그 댓가로 설령 나나, 레비가 죽더라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는 없어요."
말을 끝내며 니니엘은 클레이모어를 들어올렸다. 어느새 마을 한가운데, 광장을 부수고 지면위로 올라온 커다란 마수의 모체를 보았다. 거대한 굼벵이같다. 저 입으로 마수가 튀어나오는 건가. 츠키는 보기만 해도 몸이 벌벌 떨리는데 레바엔은 히죽히죽 웃고 있다.
"너무 그렇게 떨지마. 내가 지켜줄게."
등 뒤로 그동안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뒤따르던 마수들이 다 모여들었다. 완전히 포위되어 도망칠 곳도 없다. 츠키는 한 손으로 검을 꽉 움켜쥐며 다시 가장 자신있는 마법 라이트닝 볼트를 다른 손으로 차지했다. 레바엔이 그런 그의 손을 붙잡는다.
"검을 꽉 쥐면 안된다고 스승님이 그러잖아."
니니엘은 부르르 몸을 떨며 다시 마수를 토해내는 그 길쭉한 입을 향해 클레이모어를 똑바로 들었다. 이미 주변의 마수들은 관심밖이다. 레바엔은 결국 그게 다 자신의 몫으로 돌아온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섭니? 떨 것 없어. 아프지 않게 한 번으로 끝내줄게."
검과 한몸이 되어 일직선으로 몸을 날리는 니니엘의 뒤로 레바엔은 츠키와 등을 맞대며 두 개의 검을 높이 들었다.
"다 덤벼!"
"스승님 그만요! 배가 터질 것 같애요."
"많이 먹어요. 제가 직접 요리한건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앞치마를 두르고 식칼을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은 심히 안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츠키는 다시금 방금 앞에 놓아진 양파볶음에 손을 뻗었다. 맛은 분명히 좋긴 하다. 얻어온 재료가 마수들이 훔쳐간 걸 다시 들고온 것이라는 점이 좀 모모하지만.
"츠키. 입가에 다 붙었다."
레바엔은 냅킨을 뻗어 츠키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겉으로야 동갑내기 같아도, 마족의 피가 흐르는 레바엔의 나이는 츠키보다는 꽤 많다. 형 처럼 다독여주는 모습이 보기엔 참 흐뭇하다.
"레바엔. 너도 얼른 먹어. 다 그냥 있네."
"난 됐어 스승님. 항상 말하지만 니니엘 표 요리라는 이유 만으로 맛이 없, 악!"
빠악. 전투에 나갔다만 오면 언제나처럼 일어나는 순번이다. 지금까지는 늘 관찰자였지만, 츠키는 저런 반응들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것 같다. 순수하게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이에서나 오가는 악의없는 험담들. 악의없는 손찌검. 그 많은 피와 뼈의 산을 헤치고 온 둘 사이에만 가능한 일들. 이제 자신도 거기 끼어 있다.
누님을 다시 만나면, 저렇게 지내게 될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면서 왠지 흥에 겨워져 한쪽에 놓인 술잔에도 손을 뻗어보는 츠키였다.
"앗! 츠키! 그거 무지 쎈 술이야!"
아쉽게도 이미 몇모금이 목을 넘어갔고, 쿵 소리까지 내며 식탁에 쓰러진 츠키를 업어들고 방에 데려간건 레바엔이었을 거다 아마. 니니엘이 직접 데려다 줬다간 멍하니 맛이 간 그 얼굴에다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거든.
*츠뮤님의 츠메카린 이야기 팬픽, 그 두번째.
"스승님. 이건 좀,"
"입 다물어. 실전이다."
"그러니까 그 실전이 문제라고. 츠키는 이제 막,"
"난 저 나이에 이미 사람을 수십이나 베었어. 내 동생도 그랬고. 잔소리 마라."
"그러니까 스승님하고 츠키는 경우가 조금,"
검은 옷을 입은 조그만 꼬마와 몸에 딱 붙은 검은 갑주를 두른 마른 여자가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소년 츠키에테는 조심스레 몸을 숙이며 검을 꽉 움켜쥐었다.
"닥치고 따라오는 거야. 넌 뭐 안 그랬니?"
"나야 본능으로 어찌어찌 되지만 쟤는 좀,"
"너, 쟤 사랑하니?"
"아, 아아니?"
"나도 사랑하거든? 열라 사랑하니까 존내 괴롭히는거야. 알았니?"
"니니엘님! 전투 준비됐습니다!"
풀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병사가 면갑을 들어올리며 보고를 하는 통에 거의 이길뻔한 설전을 중단하게 된 마른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니니엘. 유학생 신분으로 이 나라 왕립 검술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몸매와 덩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클레이모어를 휘둘러대는 전설적인 여자 용병. 그 실력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개인 용병대를 거느리지 않고 소수의 제자만 데리고 늘 가장 앞장 서 적진을 돌파하는 무자비한 여자. 그건 이미 여자가 아니라 전투기계라는 소리까지 듣지만 본인은 그다지 그런 소문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나라 영주가 자기 군대를 맡긴 이 전투에서 그녀의 관심은 오직 출생이 불운한 자기 나라 왕자님에게 쏠려 있었다. 츠메카린 츠키에테. 지켜주세요 광선을 촉촉하게 발사하는 금빛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유혹적인 소년. 저녁 햇살에 옷깃이 녹아드는게 지금까지 손에 쥐어본 어떤 클레이모어의 검광보다도 예쁘게 보이는건 결국 자신도 여자라는 건지. 니니엘은 전혀 전투기계 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파피엘. 언니에게 어쩌다 저런 걸 안겨준 거냐.
"잘들어요. 왕자님. 저 마을 한가운데 마수가 침략했어요. 땅 속에서 솟아나는데, 모체만 베면 추가 전력이 막히니 그게 집중 목표예요. 우린 중앙으로 돌파할 겁니다. 지금까지 배운걸 잊지만 않으면, 돌아가서 저녁 훈련 생략하고 맛있는거 먹고 일찍 잘 거예요. 이해했죠?"
소년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손을 벌벌 떨면서 몇번이고 손등에 라이트닝 볼트를 차지해 띄웠다가 흩어버리는 모습이 많이 불안한 것같다.
"나중에. 나중에. 지금 벌써 힘을 다 쓰면 곤란해요. 알았어요? 자, 1분대 서쪽, 2분대 동쪽, 신호하면 돌입해라. 혹시라도 내가 걱정돼서 개인행동하는 녀석이 있으면 살아남은 경우에 한해서 죽도록 패주겠다. 알았나!"
"예!"
"이동!"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 니니엘은 등에서 클레이모어를 뽑아들며, 자신을 따르는 두 꼬맹이를 바라보았다. 반항적인 붉은 눈동자의 소년과 순진한 금빛 눈동자의 소년. 붉은 눈동자의 소년이 금빛 눈동자의 소년에게 한 팔을 뻗어 어깨를 두른다.
"야. 츠키. 안무서워? 지금이라도 말해. 네가 말 하면 스승님은 굳이 같이 안 데려가."
"아냐. 괜찮아."
"괜찮긴 뭐가! 손은 떨고 있으면서."
"레바엔. 할말 더 있냐?"
"아니아니?"
"그럼 간다."
두말없이 검을 빼들고 마을 한복판을 향해 돌진하는 여자. 저 좁은 등을 보며 따라 달린게 몇번째인지 기억도 안난다. 오늘은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어야겠군. 하는 생각을 하며 레바엔은 츠키를 일으켰다.
"정말 괜찮아?"
"응. 아무리, 아무리 무서워도, 누님을 생각하면,"
"네 누님이 무슨 어딘가에 있다는 그 여신님이냐? 아니면 죽은 자를 살려준다는 그 신비의 여인이라도 되냐. 네가 말하는 누님이란 꼭 전설속에나 나올 법한 그런 여자같아. 실제로는 주근깨 투성이에 입을 샐쭉 내밀고 다과가 늦는다고 투정하는 아주 평범한 공주님 아닐까? 못만난지도 한참인데 그걸 어떻게 알아."
금빛 눈동자가 생긋 웃는다.
"그럴리가 없어. 우리 누님은 그런 공주님이 아니야. 무서운 얼음공주라고. 가자."
첫 실전인데 먼저 달려나가는 츠키에테. 라이트닝 볼트를 차지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레바엔은 츠키에테를 향해 달려가다가 살기를 느끼고 엎드렸다.
"아이스볼트! 엎드려!"
건물 옆으로 츠키를 끌어당겨 숨자마자 벽을 향해 아이스볼트가 두어 개 날아와 꽂힌다. 이미 니니엘의 뒷모습은 저 안쪽으로 사라지고 없다.
"가고일이야. 최상급 마수인데."
"으으으, 어딘지 보여 레비? 스승님은 어디 가신거야!"
"잠만 보자."
츠키의 등을 타고 올라가 살짝 머리를 내미는 레바엔을 향해 날카로운 아이스볼트가 또 날아와 꽂힌다. 간발의 차이로 머리를 뒤로 뺀 레바엔은 츠키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른쪽 앞 건물 2층이야. 해결하고 지나가자."
"스, 스승님이 돌아보고 와서 구해주지 않을까?"
"우리가 스승님을 구할 일은 있어도 절대로 스승님이 우릴 구해주진 않아. 그 '건' 늘 그렇거든. 잘들어. 내가 지그재그로 달릴 테니까, 넌 라이트닝 볼트를 날려. 한번에 맞춰야돼. 너무 빨라도 너무 느려도 내가 죽는다. 알았지?"
"알았어! 그런데 무겁다."
"뭐가 무겁냐. 간다!"
츠키의 머리를 툭 치고 튀어오르듯 일어난 레비는 두개의 검을 뽑아들고 날듯이 부서지고 불탄 건물들 사이를 달려나갔다. 파악. 팍. 아이스볼트가 내리꽂힌다. 둘씩. 가고일이 두마리잖아! 츠키는 신중하게 숨을 쉬며 라이트닝 볼트를 손에 모았다. 하나. 둘. 셋. 팍! 파박! 레바엔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앗, 다리가 얼었나! 비틀거리는 순간 츠키는 더 주저하지 못하고 라이트닝 볼트를 날렸다.
"지금이 아냐!"
이미 늦었다. 손을 벗어난 전격이 가고일을 강타했고, 가고일 두 마리가 동시에 뒤로 날려가 넘어졌다. 레바엔은 벌떡 일어나 지상으로 떨어지는 그 녀석들을 향해 달려가려 했지만 거리가 너무 길었다. 전격에 온몸이 구워지고도 그것들은 이미 일어나 이쪽을 보고 커다란 검을 빼들며 달려든다.
"레비!"
퍼억!
츠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준 녀석이 자신의 실수로 지금 네 조각으로 갈라지는 판에 도저히 그걸 볼 수가 없었다.
"레, 레비이..."
심장이 크게 뛴다. 눈을 떠야 해.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 눈을 떠야 해. 겁내면 안돼. 조심스레 눈을 뜨자 거기엔,
누군가의 좁은 등이 보였다.
설마 누님인가.
항상 온 힘을 다해 지켜주던 그 작은 등이 어린 눈에도 무척 애처로웠던.
하지만 비례가 다 틀렸다. 검은 너무 길었고 키도 무척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붉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
"스승님!"
츠키는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피냄새가 가득하다. 마수의 피로 범벅을 하고 바닥에 벌렁 누워 있던 레바엔이 일어나 앉는다.
"어우 죽는 줄 알았네. 아, 츠키! 네 탓 하는건 아냐. 결국은 안 죽었잖아. 그런데 어쩐 일로 구해주러 온 거야. 스승님?"
"어쩐 일이라니. 지금까진 구할 필요가 없어서 안 구해준거다. 일어나. 내 소중한 제자라는 녀석아."
발로 레비를 툭 차고 다시 앞서가는 그녀. 그쪽 골목에 산산조각난 마수의 시체가 잔뜩 널려 있어서 츠키는 잠시 눈을 돌리며 입을 막았다. 니니엘의 목소리가 들릴때까지.
"왕자님. 제가 첫 시간에 가르쳐준거 기억나요?"
"예? 아 예, 눈을 감지 말라고,"
"왜 감았죠?"
측면 공격에 대비해 셋이 삼각으로 서서 걸어가면서도 니니엘은 계속 묻는다.
"그, 레비가 죽을까봐, 어떻게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 그랬..."
"전장에서 누가 죽는건 당연해요. 맞으면 죽는 겁니다."
"스승님한테 맞으면."
키득거리는 레바엔의 머리를 향해 건틀릿을 끼운 손이 무자비하게 내리꽃히는 것과 별도로 얘기가 계속 이어졌다.
"왕자님의 그 누님을 위해서 이 고행을 나서는 거죠?"
"네."
"그럼 방해자는 모조리 처치해도 괜찮은 겁니다. 그 댓가로 설령 나나, 레비가 죽더라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는 없어요."
말을 끝내며 니니엘은 클레이모어를 들어올렸다. 어느새 마을 한가운데, 광장을 부수고 지면위로 올라온 커다란 마수의 모체를 보았다. 거대한 굼벵이같다. 저 입으로 마수가 튀어나오는 건가. 츠키는 보기만 해도 몸이 벌벌 떨리는데 레바엔은 히죽히죽 웃고 있다.
"너무 그렇게 떨지마. 내가 지켜줄게."
등 뒤로 그동안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뒤따르던 마수들이 다 모여들었다. 완전히 포위되어 도망칠 곳도 없다. 츠키는 한 손으로 검을 꽉 움켜쥐며 다시 가장 자신있는 마법 라이트닝 볼트를 다른 손으로 차지했다. 레바엔이 그런 그의 손을 붙잡는다.
"검을 꽉 쥐면 안된다고 스승님이 그러잖아."
니니엘은 부르르 몸을 떨며 다시 마수를 토해내는 그 길쭉한 입을 향해 클레이모어를 똑바로 들었다. 이미 주변의 마수들은 관심밖이다. 레바엔은 결국 그게 다 자신의 몫으로 돌아온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섭니? 떨 것 없어. 아프지 않게 한 번으로 끝내줄게."
검과 한몸이 되어 일직선으로 몸을 날리는 니니엘의 뒤로 레바엔은 츠키와 등을 맞대며 두 개의 검을 높이 들었다.
"다 덤벼!"
"스승님 그만요! 배가 터질 것 같애요."
"많이 먹어요. 제가 직접 요리한건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앞치마를 두르고 식칼을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은 심히 안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츠키는 다시금 방금 앞에 놓아진 양파볶음에 손을 뻗었다. 맛은 분명히 좋긴 하다. 얻어온 재료가 마수들이 훔쳐간 걸 다시 들고온 것이라는 점이 좀 모모하지만.
"츠키. 입가에 다 붙었다."
레바엔은 냅킨을 뻗어 츠키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겉으로야 동갑내기 같아도, 마족의 피가 흐르는 레바엔의 나이는 츠키보다는 꽤 많다. 형 처럼 다독여주는 모습이 보기엔 참 흐뭇하다.
"레바엔. 너도 얼른 먹어. 다 그냥 있네."
"난 됐어 스승님. 항상 말하지만 니니엘 표 요리라는 이유 만으로 맛이 없, 악!"
빠악. 전투에 나갔다만 오면 언제나처럼 일어나는 순번이다. 지금까지는 늘 관찰자였지만, 츠키는 저런 반응들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것 같다. 순수하게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이에서나 오가는 악의없는 험담들. 악의없는 손찌검. 그 많은 피와 뼈의 산을 헤치고 온 둘 사이에만 가능한 일들. 이제 자신도 거기 끼어 있다.
누님을 다시 만나면, 저렇게 지내게 될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면서 왠지 흥에 겨워져 한쪽에 놓인 술잔에도 손을 뻗어보는 츠키였다.
"앗! 츠키! 그거 무지 쎈 술이야!"
아쉽게도 이미 몇모금이 목을 넘어갔고, 쿵 소리까지 내며 식탁에 쓰러진 츠키를 업어들고 방에 데려간건 레바엔이었을 거다 아마. 니니엘이 직접 데려다 줬다간 멍하니 맛이 간 그 얼굴에다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