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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나라들의 수 만큼이나 많지. 요정들은 미스란디르라고 부르고, 난쟁이는 사르쿤, 젊은 시절 지금은 잊혀진 서방에서는 올로린이라고 했네. 남쪽 땅에서는 잉카누스, 북쪽에서는 간달프라고 하지. 동쪽으로는 가본 적이 없고."
- 두 개의 탑 中
'이스타리' 라고 불리는 이들은 모두 다섯으로, 인간이나 호빗들은 이들을 마법사라고 불렀다. 그들은 스란두일 왕의 초록 큰 숲의 남쪽에 어둠이 스며들어 '어둠숲'이라고 불리게 되었을 때쯤에 회색 항구를 통해 가운데땅에 들어왔다. 영생의 땅 발리노르에서 사우론의 악을 견제하기 위해 파견한 이들은 강대한 능력을 가진 반신족, 마이아들이었지만, 직접 자신의 힘으로 사우론에 대항하는 것만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 수장은 사루만, 요정들은 쿠루니르라 부르는 자였고, 그는 서녘의 인간들과 접촉했으며 본래 곤도르의 서쪽 끝 요새였던 아이센가드에 정착했다. 라다가스트는 독수리를 비롯한 온갖 날개달린 이들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온 가운데땅의 정보를 모았고, 간달프는 요정들과 주로 접촉하면서 한곳에 머물지 않고 많은 곳을 떠돌아다녔다. 나머지 두명은 각각 동쪽과 남쪽 땅으로 들어가 그 후로 언급되지 않고, 이 마법사들과 요정의 군주들이 모이는 '백색회의'에도 출몰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사우론의 악을 견제하고 그곳의 인간들을 선의 세력으로 돌리는데 실패하여 죽음을 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놀라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호빗들에게 있어서 간달프는 불꽃놀이를 벌이는 등 축제의 여흥을 돋궈주는 일종의 연예인이자, 아이들을 꾀어 위험하고 알 수 없는 바깥 세상에 관심을 갖게 만들곤 하는 요주의 인물에 불과했다. 호빗 아이들은 그를 보면 '위대한 간달프'라고 부르지만, 나이를 느리게 먹는 호빗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어렸을 적에 간달프를 보게 되면 '위대한 간달프!'를 연호하며 그의 마차를 쫒아 달음박질 쳤다는 것을 그 아이들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간달프를 환대하며, 그가 바깥세상에서 겪는 헤아릴 수 없는 고초와 고민거리들을 잠시 잊게 해주는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던 프로도(그리고 아마도 빌보)에게서, 그러니까 가장 순수하고 연약하며, 주어진 막대한 과업을 해나가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던 그런 아름다운 호비턴에서 문제의 절대반지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종족으로서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함과 준엄함을 가진 이 '마이아 올로린'에게는 크나큰 슬픔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달리 선택할 도리가 없이 이 작은 이에게는 너무나 큰 짐일 그 부탁을 하게 되고, 그가 항상 생각하고 기대해 왔던 대로 프로도는 놀랍게도 과업을 해내고 만다. 간달프 자신조차도 할 수 없던 일을.
오랜 세월 가운데땅에서 살아오면서 수많은 지식을 익혔고, 그리하여 가운데땅 어디에서도 그가 가지 못할 곳은 없었으며 알지 못하는 세상도 남지 않았다. 물론 그의 적 사우론과 그 부하들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많이 알았으며, 그들과 대항해 싸울 만큼 강대한 힘도 가지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 자신이나 사우론과 동일한 '마이아'였던 존재, 발로그에 대해서만큼은 정확한 정보가 없던 만큼 확고하게 승리를 다짐할 수 없었던 듯 했다.
비밀의 불꽃 아르노르의 충복이라고 발로그 앞에 선언한 대로, 그는 불의 마법사이며, 그의 불꽃은 적들을 물리칠 뿐 아니라 모리아의 어둠도 밝혔고 아몬 딘의 봉화도 밝혔으며 사람들의 가슴에도 용기와 희망의 불을 지폈다. 그 모든 것은 그가 요정의 세 반지 중 하나였던 불의 반지 '나랴'의 주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래는 회색항구의 주인이자 가운데땅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요정 중 하나인 선장 키르단이 가지고 있었는데, 키르단은 간달프에게 이것을 건네주었다. 마지막 배가 떠날 때까지는 가운데땅을 떠나 서녘 땅 발리노르로 향하는 이들을 전송해야만 하는 키르단은 자신보다는 간달프에게 오히려 반지가 어울릴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네 머리로 받아봐! 페레그린 툭! 그래도 안열리면 날 가만히 냅두고."
"다음엔 네가 직접 뛰어들어라! 그럼 걱정할 일도 없을 테니까."
불의 마법사인 만큼 그는 성격도 불같았지만, 결코 그렇다고 성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척이나 침착하고 용의주도한 편이었지만, 자신만큼 막강한 발로그 앞에서는 그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듯 하다.
잠깐의 방심으로 발로그와 함께 심연으로 떨어진 후에, 그들은 비록 관객이라고는 지하의 괴수들 뿐이었지만 저 고시대의 위대한 전투에 비견될만한 놀라운 싸움을 벌였다. 간달프의 검에서는 발리노르의 빛이 번뜩였고, 발로그의 채찍에서는 고대의 대마왕이자 사우론의 주인이었던 모르고스의 분노가 불꽃이 되어 일렁였다. 아마도 역시 모리아가 건재하고 난쟁이들의 문명이 꽃을 피우던 고시대부터 존재했을, 지하 깊은 곳에서 카라드라스 산정 꼭대기에 이르는 '무한의 계단'을 오르며 그들은 한없이 싸웠고, 간달프는 마침내 그를 무찔렀는데, 이 전투는 사실 펠렌노르 전투보다도 더욱 웅대한 노래로 불리워야 마땅할 것이다.
죽음의 끝에서 자신의 사명을 위해 다시 되살아난 간달프는 이제 사루만이 스스로 내버린 '백색회의의 의장' 역인 '흰색의 마법사'가 되어, 독수리의 왕 과이히르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일행을 찾아온다.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그 누구도 태우지 않는 로한의 명마 섀도팩스를 타고. 사실 이 명마는 로한 왕가의 종마에게서 났지만 아무도 태우려 들지 않아 그저 방치되어 있었는데, 간달프가 사루만에게서 탈출한 후에 로한에 와서 경고를 했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나서(이미 세오덴은 사루만의 마법에 씌어있었다) 만나게 된 말이다.
피핀 때문에 한번 죽을 고비를 지나고, 아무도 보진 못했지만 역사에 길이 남아야할 전투를 치른 간달프는 이제 다시 피핀 때문에 황급히 미나스 티리스로 향한다. 백색 탑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백색의 마법사는, 샤이어 호빗들이 '위대한 간달프'를 연호하는 것과 꼭 같이 곤도르 백성들에게 '위대한 미스란디르'라는 외침을 듣는다. 팔란티르를 들여다보고 나날이 소심해져 가는 성주 데네소르보다는, 이 마법사의 존재가 곤도르의 병사들에게는 훨씬 큰 믿음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비록 실전 경험도 턱없이 부족한 병사들이지만(파라미르와 함께 하던 백전 노장들은 이미 오스길리아스에서 거의 모두 잃었다), 미스란디르의 영도 하에 그들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용감히 싸웠다. 3일이나 분전한 끝에 그들은 수없이 죽어가면서도 로한이 올 때까지, 그리고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왕이 돌아올때까지 왕을 위해 비워진 왕좌를 지켜냈다. 모든 것은 분명 위대한 미스란디르의 공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검은 문 앞에서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싸웠던 간달프는 이제 모든 과업이 끝나자 너무나 엄청난 일을 맡아준 프로도를 구하고, 그에게 합당한 영예를 선사하기 위해 불길이 치솟는 운명의 산으로 과이히르와 함께 날아간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나고, 일행이 모두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간 뒤에도 프로도는 영예보다는 아픔과 함께 지냈고, 간달프는 내내 그 것을 마음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반지 원정대의 과업이 모두 끝나고 가운데땅이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했을때, 그는 반지의 사자였던 빌보와 프로도를 데리고 영생의 땅으로 떠난다.
"그는 무척 위험하지. 나도 무척 위험하고 말이오, 난쟁이 양반. 살아 있는 채로 바랏두르에 끌려가지 않는 한, 가운데땅에서 당신이 만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존재일 거요."
아라곤 일행을 다시 만났을 때의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는 것이지만, 그는 반신족 마이아인 만큼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적을 물리치기 보다는 가운데땅의 모든 자유민들이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도록 곁에서 거들기만 한다는 것은 대단한 자제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절대 반지를 거부하는 것 역시, 3개 시대를 살아온 위대한 여왕 갈라드리엘 마저도 일시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을 만큼 치명적인 유혹이었는데도 그는 심지어 손가락 하나 대지도 않았다. 힘이 있으되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분명 없어서 못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일 것이니.
모든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영생의 땅으로 돌아간 뒤에 그는 아마도 마이아의 본모습으로 돌아갔을까. 혹은 여전히 간달프인 채로 프로도와 빌보의 곁에 머물면서 몇만년이나 오래전부터 전해지던 지혜의 노래를 불러주며 그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달래주었을까. 어쩌면 또 다른 임무를 가지고 가운데땅으로 돌아와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원정대의 다른 일행들은 모두 유한한 존재였지만, 무한한 그에게 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는 역시 유한한 존재에 불과한 필자에게는 상상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