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골
골룸
반지 운반자
이실두르가 사우론의 손을 베고 반지를 손에 넣은 뒤로, 반지는 한동안 영영 그와 그의 가문에 속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북방으로 돌아가던 이실두르와 그의 가솔들은 글래든 평야 인근에서 오크의 기습으로 모두 피살당했고, 이실두르 자신은 반지를 끼고 물에 뛰어들었다가 반지의 배신으로 오크의 화살에 목숨을 잃고 만다. 반지는 그대로 안두인 강 바닥에 묻혀 잊혀졌다. 2500년이나.
스미골은 강을 좋아하는 특이한 호빗 일파인 스투어족 - 그러니까 메리 혹은 피핀의 먼 친척 - 의 한 젊은이였다. 사물의 근원과 시초에 대한 그의 호기심은 늘 그의 눈을 아래로 향하게 했다. 비슷한 친구도 있었다. 디골이라는 그 친구의 이름이 어째서 전해지고 있는지는 수수께끼지만, 그는 스미골의 생일날, 스미골과 함께 글래든 평야까지 배를 타고 내려가 낚시를 하던 중 큰 물고기에 이끌려 강 바닥까지 끌려내려갔다 겨우 강둑으로 헤엄쳐 나오게 된다. 그의 손에는, 결코 단순한 금 반지가 아닌 오래된 반지가 유혹적이고 치명적인 아름다운 금빛을 발하며 쥐어져 있었다.
스미골은 반지를 손에 넣기 위해 친구를 죽였다. 아니, 반지가 디골과 스미골 중 보다 적극적이고 단호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법한 인물을 골라내었던 것일까. 반지는 그에게 보이지 않는 능력을 선사했고, 스미골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반지의 능력을 십분 활용했다.
그후로 그는 골룸이 되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라면 알 수가 없을 비밀을 알고 다니며 다른 이들에게 해가 될 만한 정보를 캐고 다니는 그를 일가 친척이나 이웃들이 고운 시선으로 보았을 리 만무하다. 원래도 많지 않았던 친구는 점차 사라지고,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며 목구멍에서 '골룸' 거리는 소리를 반복하는 그를, 이제 모두 '골룸'이라고 불렀다. 그는 족장이었던 자신의 할머니에 의해 일족에서 추방당했고, 외로이 방랑하다 마침내 안개산맥에까지 이르렀다. 산의 뿌리에 이르러 그 깊은 어둠속에서는 어떤 비밀을 발견하게 될지 기대에 찬 그는 주저없이 산의 심장부로 기어들었고, 샤이어의 호빗 빌보 배긴스와 마주하는 날이 올 때까지 깊은 어둠 속에서 홀로 살았다. 아니, 반지와 함께 살았다.
그러나 산의 뿌리에서 그가 발견한 비밀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과거를 회상하며 구역질나는 물고기나 산채로 씹으며 근근히 질긴 목숨을 이어갈 뿐. 그는 반지를 증오하면서도 사랑했다. 자기 자신을 증오하면서도 사랑하듯.
반지는 그를 버렸다. 세상에 나설 때가 온 것이다. 암흑탑의 군주가 돌아와 바랏두르를 다시 일으키고 아홉 나즈굴이 다시 미나스 모르굴에 모여들고, 자신의 주인이 다시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반지는 그를 버렸다. 그러나 반지를 집어든 것은 방랑하는 난쟁이 군주 참나무방패 소린도, 회색의 마법사 간달프도 아닌, 너무 엉뚱해서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골룸은 그와 만났고, 수수께끼 놀이를 제안했다. 호빗들의 오랜 전통에 따라 진행된 이 시합은 마침내 골룸의 패배로 끝난다. 그의 패배였긴 할까. 호기심과 지식욕이 왕성했던 여족장의 손자와, 그저 부자집 외아들로 풍족하게 살아온 빌보와의 수수께끼 시합이란 애초부터 그가 질 리가 없었던 시합이다. 그는 아마 마법사와 시합을 붙여도 이길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 자신감이 도리어 그를 갉아먹었다.
"내 주머니에 있는게 뭐지?"
그런 수수께끼가 있을리가 없다. 그러나 그는 그것조차 수수께끼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답할 수 없는 수수께끼란 없다고 믿었던 이 어둠 속의 지자는 결국 자신의 지식에 패배하고 말았다. 주머니 속에 뭐가 들었는지를 알아차린 다음엔 이미 늦었다. 빌보는 반지를 들고 굴 밖으로 사라져버렸고, 골룸은 그야말로 홀로 남겨지고 말았다.
반지에 대한 욕망은 그를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본래부터 반지의 제왕이었던 사우론이었고 그는 모진 고문으로 끔찍하게 찢긴 뒤에야 그의 손아귀에서 놓여났다. 샤이어의 배긴스를 찾아 그가 나선 모험이란 그것만으로도 한권의 책이 될 테지만, 홀로 끝없이 중얼거리며 네 발로 걷는, 거의 벌거벗은 모험자의 모습을 주인공으로 바라는 이는 아마도 없다는게 애석할 따름이다. 그는 실날같은 반지의 기척에 의지해 안개산맥 기슭에서 로스로리엔의 외곽을 돌아 안두인 강을 넘어 에뮌 무일과 죽음의 늪을 건너 키리스 웅골을 지나 모르도르에까지 이르렀었고, 그 모든 길을 다시 거꾸로 거슬러 올라와 모리아에서부터 줄곧 거리를 두고 반지원정대를 쫒았던 것이다.
몇백년의 세월 동안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었던 그는 자기 자신이 아니면 '보물'과 대화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한동안은 프로도와 샘 앞에서도 늘 '보물'에게 말을 했다. 그러나 반지 운반자는 프로도였고, 그는 반지를 가진 프로도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삶은 반지에 단단히 얽혀 있었고 그 반지가 프로도의 입을 빌려 명령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결코 반지를 떠날 수 없었고 내내 프로도와 샘의 주위를 맴돈 끝에, 마침내 이실두르의 재난은 스미골의 재난이 되었다.
반지를 결국 손에 넣은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 그토록 염원하던 깊은 비밀이 녹아내린 용암 속으로 떨어져 내리며,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명의 호빗이 감당하기에는 지독하게 긴 생애 동안에 그의 머릿속엔 내내 두 인물이 대화를 했다. 그 둘은 늘 대립하는 것 같았지만 반지를 원하는 것만큼은 한결같았다. 그들의 마지막 대화는 무엇이었을까. 자신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반지와 함께 최후를 맞았다는 것은 그나마 가능했던 축복이었을까.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지만, 세상은 그 작은 존재에게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