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상한 세르반도니가

킹콩 VS 왕의 남자

땅별 2006. 6. 12. 18:38




"내가 정녕 이 나라의 왕이 맞느냐?"
궁궐 속에 곤룡포로 박제되어 유배된 연산의 외침은, 정글의 왕임을 애써 주장하려는 고독하고 외로운 킹콩의 표효.
"나, 이거 하고싶어. 이런건 여기서밖에 못하잖아." VS "돈은 문제가 아니야. 난 연극을 사랑했어."
오직 광대놀음을 사랑하지만 타고난 미모 때문에 몸을 팔길 강요받던 공길은, 인정받는 글을 쓰고 싶지만 돈의 압박에 굴복하는 잭 드리스콜.
"왕을 가지고 노는 거야." VS "네가 영화를 알아?"
한양을 향해 떠나 큰 판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려 했던 장생은, 미지의 해골섬으로 가 아무도 담지못한 영상을 담아오려 했던 칼 덴햄.

온 저자거리에 왕 이야기만 넘실대는 한양은, 오직 콩을 섬기는 원주민들이 살아가는 해골섬.
수많은 중신들에게 둘러싸여 살아남으려 애쓰는 연산은, 수많은 공룡들 속에서 외로이 살아남으려 애쓰는 킹콩.
연산은 장생의 눈을 지지고, 킹콩은 칼 덴햄의 카메라를 박살냈습니다.
연산은 공길의 인형극에 취하고, 킹콩은 잭 드리스콜의 글을 이해하는 아름다운 앤에게 취합니다.
아픈 기억들을 헤메이며 거친 싸움을 통과하며 그 모든 아름다움에 대한 갈구 끝에 연산은 결국 녹수에게 묶이고, 킹콩은 결국 커다란 쇠사슬에 묶입니다.
장생은 자신의 눈을 지진 연산에 대한 복수로, 공길과 함께 목숨을 걸고 마지막 한탕의 줄놀음을 넘고, 칼 덴햄은 자신의 카메라를 박살낸 킹콩에 대한 복수로 그를 쇠사슬에 묶어 무대에 올립니다.
연산은 광대놀음에 마음을 빼앗긴 채 중신들의 반정으로 목숨을 잃고, 킹콩은 앤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 미 육군 항공대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던, 결코 통제할 수 없는 두 왕의 최후는, 그렇게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자유를 주었던 것은, 바로 아름다움. 예술가의 혼이 부어진 그 아름다움이었던 것입니다.

칼 덴햄에게서 피터 잭슨을 읽은 것과 마찬가지로, 저는 장생에게서 이준익을 읽었습니다.
1933년 작 '킹콩'과 피터 잭슨의 '킹콩'이 다른 것만큼이나, 연극 '이'와 이준익의 '왕의 남자'는 다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름을 추구한 결과, 전혀 다른 곳에 서 있던 이 두 이야기가, 예술가의 마음 속에 타오르는 불꽃에 대한 터질 것 같은 사랑을 노래하는, 자화상과 같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광대! 광대지!"
그리고 공길은 다시 태어나 광대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연극을 사랑했다면 바다에 뛰어들었겠지."
그리고 잭은 앤에 대한 사랑으로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제 죽음보다 더한 그 자유에 대한 갈망을, 말하고 싶은걸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 갈망을 이해합니까?
셰헤라자드가 죽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멈추던 그 치열한 끊음을,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모자장이의 절규를, 이해할 수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