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메카린 이야기 AU : 누님이 줄었어요 (2)
이런 저런 구상을 많이 해보고 이리저리 참 고민하면서 쓰는데, 여전히 씨리어스함을 지우기가 힘드네요. 이건 제 본능 같은 그런 건가봐요. 치잇. 그나저나 포스팅할 것도 많이 있는데 제 글도 써야 하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버닝하고 있스빈댜? 어쩌겠어요 ^^;
"그러니까..."
젖은 은발을 수건으로 감싸면서 파피엘은 장난끼 어린 눈동자로 발 밑에 서 있는 아이를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높이가 거의 같던 제자님께서 또 무슨 삽질을 하셨길래 저렇게 조막만해졌을까. 츠뮤의 삽질 목록에 또 한줄을 추가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어디선가 읽은 슬픈 이야기에서나 떠올릴 법한 대사가 파피엘의 머릿속에 맴도는 걸까요? 미안해. 나 이런 몸이 되어버렸어. 츠뮤는 어쩐지 뱀 앞에 선 개구리같은 심정이 되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 왕자님의 바지자락을 한 손으로 살짝 붙잡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덥썩! 파피엘은 작은 츠뮤를 안아올리는 겁니다!
"귀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어어언니이이!"
"꺄아아아 어러케 어러케! 너무 귀엽자나아아!"
"저, 저기 파피누님!"
와락 끌어안고 얼굴에 부비부비 대쉬를 하고 있는 파피엘. 왕자님의 어깨가 축 쳐집니다. 그랬지. 어린 아이와 귀여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그녀라는 사실을 깜박했던 겁니다. 차라리 니니엘 스승님한테 가볼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왕자님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는 건 아마 파피엘도 알 거예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귀여워 죽겠는 걸 말이죠.
"자, 잠깐만!"
"너무너무 이쁘다아아아! 세상에 츠뮤가 이러던 시절이 있었다는걸 그동안 깜박하고 있었지 뭐니? 니니 언니 니니 언니!"
파피엘은 츠뮤를 안아 들고 빙글빙글 돌리면서 왕자님에게서 멀어져서 옆방으로 달려갑니다. 아니 저기 왕궁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면서 뛰어다니시면 곤란합니다 라고 외치기엔 왕자님도 그럴 처지가 못되잖아요? 안절부절 못하며 서 있다가 그만 작아진 누님을 걱정하며 따라들어갑니다. 그러나,
마국 제일의 검사가 냅다 내지른 베개가 날아들어 안면부를 강타해버리는 겁니다!
"잠좀 자자 파피야아아. 아침부터 이게 왠 소란이야!"
"언니 언니. 이러나이러나아아아! 자, 리틀 츠뮤! 가서 니니 언니를 깨우는 거야! 공격!"
부우웅 날아서 니니엘의 침대에 낙하하는 츠뮤. 마국의 공주님 오늘 아침부터 정말 고생이 심하십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왕자님도 들어섭니다. 게슴츠레 눈을 뜬 니니엘은 왕자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며 쇼올을 몸에 감습니다.
"왕자님 무슨 일이에요? 이 아침부터 검술 연습을 하자고 온건 아닐 거고. 어?"
니니엘은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선 은발과 흑발의 두 쌍둥이 사이에 서 있는 츠뮤를 바라보았습니다.
"무, 무슨 일을 당한 거야!"
"언니야! 봐바라? 츠뮤 너무 귀엽지?"
파피엘이 츠뮤의 머리칼을 두 손으로 잡아 양갈래로 묶어보이던 그 순간 니니엘의 오른 쪽 눈은 콧날과 정확히 얽혀서 ㄱ자를 그렸습니다.
"후우. 그러니까 어제 밤에 특별히 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지?"
"이 방은 아무 문제 없어. 침입자도 없었고."
창문 밖에서 거꾸로 매달려 빼꼼 머리를 내밀고 있는 붉은 눈의 소년이 말했습니다. 니니엘은 창가로 다가가 그 소년과 거꾸로 눈을 마주치며 물었습니다.
"레바엔 니가 그걸 어케 아는데?"
"밤에 여기 지붕위에서 별보다가 잠들었거든."
"숙녀의 방 창문 위에서 잘하는 짓이다?"
"뭐 어때. 지금은 나랑 똑같네 뭐."
남들보다 몇배는 느린 성장 때문에 츠키에테와 같은 나이인데도 지금의 츠뮤와 비슷한 키인 레바엔은 이내 폴짝 뛰어내려서 츠뮤에게 다가갑니다.
"뭐, 이것도 이대로 좋지 않을까? 난 불만이 없거든."
"난 좋지 않아! 좋을리가 없잖아!"
츠뮤가 깜짝 놀랄 만큼, 왕자님은 친구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당연히 좋을리가 없지요. 언제나 뒤따라가곤 하던 그 좁지만 당당한 등을 더 볼 수 없다는 것은, 밝게 웃으면서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그녀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좋을리가 없는 겁니다.
하지만 이내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츠뮤를 보더니 얼른 왕자님은 무릎을 굽히고 앉아 츠뮤와 눈높이를 맞추며 어깨를 짚습니다.
"미안해요, 누님. 놀라셨죠? 겁먹게 해서 죄송, 아얏!"
무릎에 작렬하는 고통. 츠뮤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귓가를 지르고 들어옵니다.
"너한테 내가 왜 겁을 먹어! 내가 무슨 아홉살이야?"
"아홉살 맞잖아."
레바엔의 차분한 목소리에 츠뮤는 당장이라도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니니엘이 교묘하게 걸음을 옮겨 둘의 가운데로 서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좀 비켜줍시다. 네?
"자, 일단 요약해봐요. 어제 밤에 특별히 먹은 음식도 없고, 어디 간 적도 없고 뭘 만진 적도 없고 냄새맡은 것도 없고, 따로 한 행동은 쿠키를 구운 것 밖에 없다는 거죠?"
츠뮤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사이에 파피엘은 쿠키 하나를 한 입 가득 물고는 오물거리고 있네요. 차라리 저게 문제라서 파피엘도 확 줄어들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왕자님이었습니다.
"그이까, 도근 아야. 그치? 그러므,"
네네, 독은 아니라는 거지요. 다 먹고 얘기해도 됩니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레바엔이 이었습니다.
"이건 저주 맞아. 날 봐. 핏줄에 내리는 저주라니까."
"너랑은 경우가 좀 다르지 않냐?"
"대충 새겨 들어 좀. 귀찮게 하지 말고."
니니엘은 레바엔의 삿대질에 입을 비죽 내밀며 다시 한번 세심하게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정말로 별 문제는 없어보이지만. 저주를 내리려면 대상과의 최소한의 연결점은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러니, 머리카락이라든지 이런거 누구한테 준 적 없니?"
눈높이를 맞추려고 몸을 숙이는 사촌들이 영 못마땅한지 츠뮤는 화장대 의자 위로 올라서려고 손을 뻗다가 기우뚱, 왕자님이 덥썩 잡아줍니다.
"야, 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
손을 뿌리치며 올라선 츠뮤는 잠시 거울 속의 조그만 자신을 바라보다가 이내 돌아섰습니다.
"얼마전에 여왕의 명으로 머리 손질을 해준 하녀가 있었어요."
"대답해. 무슨 짓을 한 거냐!"
"야, 츠키. 적당히 좀 해. 일반인이다."
"사, 살려주세요. 다 말씀 드릴테니까 목숨만 살려주세, 꺄악!"
라이트닝 볼트가 손 위에서 치직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녀는 머리를 감싸며 엎드렸습니다. 레바엔은 그런 츠키를 보면서 입술을 옆으로 비틀며 하녀의 방 소지품들을 꺼내보고 있었습니다. 얇은 속옷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전혀 얼굴 붉히지 않고 하나 하나 집어내보는 꼬마아이의 모습에도 하녀는 분노보다는 공포를 더 느끼는 거 같네요.
"말해봐."
"암흑성에 보냈어요! 편지로! 여왕 폐하 명령이었단 말이에요! 제발 목숨만!"
"그게 어떤 결과로 돌아왔는지는 알아? 아냐고!"
콰지지직! 엎드린 하녀의 몸 주위로 빙 둘러서 전격이 나무 바닥을 태우고 들어갑니다. 하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을 멈추고 멍하니 츠키에테를 올려다보았다가 이내 풀썩 옆으로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레바엔은 혀를 차며 그녀의 곁에 다가가 혀가 꼬이거나 하지 않도록 반듯하게 눕혀주고 질식하지 않게 살짝 옷을 풀어줍니다. 그 이상은 귀찮으니 그만.
"너무하잖아. 그래도 나름 귀여운 여잔데."
"가자."
"야, 어딜?"
먼저 성큼 성큼 방을 나서는 츠키에테. 레바엔은 쪼르륵 달려나와 팔을 붙잡습니다.
"좀 생각을 해 가면서 움직일 수 없어? 암흑성에 가면 뭐 어떻게 해서 해결하려고? 우리가 그 여자 이길 수 있을 거 같애?"
츠키에테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길!"
"있지, 츠키."
벽을 짚으며 인상을 쓰는 친구를 향해 레바엔이 말합니다.
"너 강해져서 누님을 지켜주고 싶다고 그러지 않았었냐?"
"그랬어. 그런데 못 지켜주잖아. 어째서 항상,"
"생각해봐. 강하고 약한 건 상대적인 개념이지. 네 누님이 그렇게 줄어들었어. 그럼, 약해진 거지? 그건 거꾸로 말하면, 네가 강해졌다는 뜻이기도 해."
흠칫. 츠키에테는 레바엔을 바라보았습니다.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올려다봅니다. 무얼 더 바라느냐는 듯한 그런 얼굴. 츠키에테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는 아냐. 아니라고. 레비! 잘 들어! 항상 내 앞에서 당당하게 서 있던 그 누님이! 압도적인 강함으로 날 지켜줬던 누님이 이제 저렇게 작아져서는, 떨고 있어. 너무나 무력해져서는 작은 손으로 날 붙잡아. 난 어쩌면 좋지? 이런건 아냐! 어떻게든 되돌려야 한다고!"
"누가 떨고, 누가 무력한데?"
레바엔의 물음에 츠키에테는 당연히 츠뮤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습니다.
'내가 무슨 아홉살이야?'
어린 목소리였지만 조금도 떨림이 없는 당당함은 그대로였지요.
"츠뮤는 저주를 풀 방법을 찾느라 지금 도서관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