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와지의 숲/반지의 제왕 인물 리뷰
반지의 제왕 인물 리뷰 13. 갈라드리엘
땅별
2006. 6. 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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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로리엔의 여왕
숲의 여주인
제3 시대 말기에 가운데땅에 살고 있는 그 어떠한 인물도, 그녀보다 오랜 세월을 가운데땅에서 지내진 못했다. 그녀는 해와 달이 있기도 전, 발리노르에 두 그루 거대하고 아름다운 나무만이 이 세상에 빛을 던져주던 시절에 발리노르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에는 그 옛날 발리노르의 빛이 스며들었고, 그 결과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빛나는 여왕으로 남게 되었다. 부친은 놀도르 요정의 군주들 중 하나였던 피나르핀이며, 모친은 바다를 사랑하는 금발의 텔레리 요정 처녀 에아르웬이었다. 그녀의 남자 형제들 중에는 아라곤의 아득히 먼 조상인 베렌과 그 부친 바라히르에게 큰 도움을 주었던 핀로드 펠라군드와 같은 요정군주가 있었다. 펠라군드의 반지는 그 태곳적부터 아라곤 가문의 상징 중 하나로, 특히 피터잭슨의 영화에서 보면 아라곤이 여전히 그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마리 뱀이 에머랄드를 받치고 있는데, 하나는 머리로 받치고 다른 하나는 삼키려 드는 형상이다. 이는 피나르핀 가문의 문장이었다.
대 마왕 모르고스가 두 나무를 죽이고 발리노르의 빛을 머금은 보석 실마릴을 강탈해 달아난 뒤에, 요정들은 잃은 것을 되찾고 복수를 하기 위해 발리노르를 떠나 암흑에 잠겨 있던 가운데땅으로 온다. 그때에 그들을 이끌던 실마릴의 창조자 페아노르는 대부분의 무리들을 배신하고 자신과 아들들, 그리고 그 직속수하들만 데리고 몇 안되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버린다. 남겨진 요정들의 일부는 피나르핀의 영도 하에 발리노르로 돌아가야만 했고, 하지만 그의 아들들과 딸들은 가운데땅을 보고 싶은 열망과 버려졌다는 배신감 때문에 계속해서 가운데땅으로 가기로 한다. 당시에 발리노르의 북쪽과 가운데땅의 북쪽은 얼음의 대지 헬카락세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수천의 요정들을 이끌고 수많은 희생을 겪으며 그들은 마침내 헬카락세를 건너 가운데땅에 도착한다. 얼음의 대지를 건너며 오빠들과 함께 백성들을 이끌면서 갈라드리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운데땅에 온 뒤에 갈라드리엘은 모친의 친족인 텔레리 요정이었던 켈레보른과 혼인하고, 자신만의 영토를 찾아 떠난다. 그리하여 그녀와 일족들은 제1시대에 일어난 수많은 끔찍하고 슬픈 사건들에서 떨어져 소식만을 접할 수 있었고, 갈라드리엘이 찾아낸 숲은 저 발리노르에 있었던 로리엔의 숲에 비견될만큼 아름답게 가꾸어질 수 있었다.
제2시대가 되어 사우론은 아름답고 고결한 모습으로 요정들을 현혹시켜 힘의 반지를 만들게 하는데, 갈라드리엘 또한 그 반지를 갖게 되었다. 요정의 세 반지 중 하나인 대지의 반지 '넨야'를 가진 그녀는 반지의 힘으로 자신의 왕국을 놀랍도록 풍성하게 가꾸지만, 이어진 사우론과의 거대한 전쟁을 겪으며 제3시대에는 차츰 은둔의 숲으로 변해가게 되었다. 이제 요정들은 공공연히 나서지도 않았고, 숲속에 숨어 자신들만의 방식을 지켜가기만 했으며, 따라서 고 시대에 요정과 교류한 적이 없었던 인간들(브리나 로한 인들, 던랜드인들, 하라드와 룬의 인간들)에게, 그리고 동쪽의 난쟁이들에게 그녀는 숲의 여주인이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된다. 사실 알 수 없는 것은 언제나 두렵기 마련이고, 두려움은 왜곡을 낳는다. 단지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 숨어야만 했던 그들인데, 결국 그것이 수많은 가운데땅의 의로운 자유 종족들로부터 불신과 공포만을 낳게 한 것이다. 오랜 옛날에는 분명 리벤델에서 모리아를 지나 로스로리엔으로 가는 길이 열려있었는데, 요정 때문인지 난쟁이 때문인지 그 길은 막혀버렸다. 대화 없는 단절은 언제나 위험하다. 그리고 그 단절을 다시 여는 것 또한, 설사 양쪽이 언제나 서로 통하길 바라고 있었다 해도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그녀는 그리 힘들었던 요정과 난쟁이의 연결을, 세 가닥 머리카락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반지원정대가 떠나던 날, 그녀는 여덟 원정대원에게 각기 선물을 주는데, 난쟁이 김리 만큼은 다른 선물을 바라지 않고 오직 그녀의 머리카락만을 원했다. 김리의 손재주로 그 세가닥 머리카락은 불변의 수정 속에 담기어 김리 가문의, 그리고 난쟁이 종족 모두의 귀중한 보물이 되었고, 그녀가 가운데땅을 떠나간 후에도 그 머리카락은 남아 세개 시대를 살아온 위대한 여왕을 기리는 유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대지처럼 강하고도 유연하며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위대한 어머니와도 같은 여왕인 그녀조차도, 절대반지의 유혹 앞에는 일시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힘을 가지고 있다면, 힘을 쓰는 것에는 묘한 중독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힘을 결국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차라리 그 힘을 영원히 자기 것으로 거두어 가지려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일 것이다. 그리고 반지의 힘은, 오직 자신에게 주어졌기에 자신만이 지켜내고 스스로 거두어야 한다. 절대반지를 그냥 주겠다는 프로도의 말은 감당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위대한 힘을 버리고 고향 발리노르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반지가 파괴되고, 피나르핀 가문의 반지를 가진 인간이 다시 왕이 되었다. 그리고 세번째로, 그녀의 눈앞에서 또 하나의 시대가 저물었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가운데땅에서는 이제 그 누구의 얼굴에서도 발리노르의 빛을 볼 수 없다. 우리들은 이제, 어쩌면 영원히, 고결하고 아름다운 것을 잃어버렸고, 모든 것은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잊혀져 가는 것들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리고 슬프다. 그것이 요정의 운명이었고, 그녀는 그 운명의 대표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