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와지의 숲/반지의 제왕 인물 리뷰
반지의 제왕 인물 리뷰 1. 프로도 배긴스
땅별
2006. 6. 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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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손가락의 프로도.
드로고의 아들 프로도.
프로도는 어린 시절 뱃놀이 중의 사고로 부모님을 모두 잃었지만, 빌보 삼촌의 품에서 자라면서, 그리고 그의 이상스런 손님들(마법사나 난쟁이 같은)과 만나 수많은 모험 이야기들을 들으며 꿈을 키우게 된다. 가운데땅이 훨씬 넓었던 시절의 고시대의 모험 이야기도 자세하게 배워서 알고, 요정어도 공부했던 학자님이시기도 하다.
빌보와 프로도는 생일이 같은데, 생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호빗들의 입장에서 볼때 이는 굉장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삼촌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가계도를 확인해보면 7촌뻘이다. (빌보의 할아버지가 프로도의 증조할아버지의 형제이다.) 그러나 10단위 촌수도 일일이 따지는 호빗들이니 이정도는 매우 가까운 촌수이며, 게다가 빌보의 어머니쪽 가계로 따져도 7촌간이니 어쩌면 호빗치고는 매우 특이하게도 결혼을 하지 않은 빌보에겐 친아들보다 더 가까운 인연인 셈이다.
프로도의 모친쪽 가계는 툭 집안이나 브랜디벅 집안과 연관이 있는데, 이쪽 집안은 호비턴에 사는 호빗들에게는 '뭔가 좀 이상한 데가 있는' 집안으로 여겨지곤 했다. 배를 타거나 하는 일도 그 중 하나였기 때문에(본래 대부분의 호빗들은 물을 무서워한다.) 프로도의 부모가 죽은 일에 대해서는 갖가지 추문도 나돌았을 것이고(여자가 남자를 밀었는데 남자가 끌고 들어갔다든가 하는), 그는 아마 호비턴에 살면서도 또래 친구들이나 동네 어른들과는 겉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빌보도 평판은 좋았지만 옛날의 대모험 때문에 보통의 어른들은 그를 탐탁치 않게 여기곤 했다는데, 그 빌보의 상속인이 된 것도 프로도라는 젊은이의 평판에는 마이너스 요소가 되지 않았을까. 강건너 버클랜드에 사는 메리나 피핀이 사촌이기도 하지만, 그에겐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할만한 친구라고는 그들밖에 없었을 것이다.
빌보의 111세 생일 잔치이자 동시에 프로도의 33세 생일 잔치였던 그 날에 벌어진 대사건 이후 프로도는 문제의 '반지'를 물려받게 된다. 빌보가 젊은 시절 떠났던 여행에서 얻게 된 그 반지는 사실은 모든 것을 지배하고자 하는 힘이 들어있는 사우론의 절대반지였으니, 빌보는 "내 아들 프로도"에게 근사한 저택 백엔드와 함께 끔찍한 재앙까지 물려준 셈이다.
빌보의 모험이야기를 듣고, 그의 일기를 보아가며 프로도는 평범한 호빗과는 다르게 놀랍고 신비한 모험을 꿈꾸는 청년으로 자라났지만, 그에게 닥친 모험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하고 힘겨운 여정이었다.
"어렸을 때는 평온하고 조용하기만 한 샤이어가 너무 바보같아서 차라리 오크들이라도 쳐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이제 와서 정말 그런 식으로 샤이어를 잃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두렵네요."
왕족인 참나무 방패 소린을 포함한 열두 난쟁이와 함께 하면서, 보상도 확실하게 보장된 계약서까지 받아들고 있었던 빌보와는 달리, 반지의 힘을 이겨내면서 동시에 힘겨운 여정을 감내해야 하고 보상은 커녕 생환조차 보장할 수 없는 그의 길은 아홉명의 반지 원정대중 그 누구의 길보다도 험난했고, 죽음과 고통이 곳곳에 도사린 길이었는데, 정작 그는 인간으로 치면 갓 성년을 지난 나이의 부잣집 도련님에 불과했다. 원정을 시작한 나이는 소설에서는 50세, 영화에서는 33세인데, 호빗의 33세는 인간의 19~20세에 해당한다. 게다가 프로도는 공부는 제법 했을지 몰라도, 힘든 일이라곤 해본 적도 없이 사촌인 메리와 피핀과 함께 늘 샤이어 곳곳을 헤메다가 해질녘에 배고프고 지치면 각자 집으로 흩어지곤 했던 것이다. 사실 그가 위기에서 구하고자 했던 것은, 아라곤이 왕위에 올라 위대한 누메노르의 혈통을 다시 잇고 인간의 시대가 열리는 그 전환점보다는 오히려 이런 일상의 소박한 기쁨들에 가까울 것이다. 맥주를 마시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차마시는 시간이 있는 정중한 땅에서 씨앗과자와 함께 차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소박한 기쁨들.
모르도르라는 이름 자체만도 이미 가운데땅 서쪽의 모든 이들에게는 악몽이건만, 그 죽음의 땅으로 향해야 하는 임무 앞에서 그는 기꺼이 자신을 죽음앞에 내밀었다. 아라곤의 혈통도, 김리와 레골라스의 강함도, 간달프의 지혜도 갖지 못했던 그가 가진 것은 용기와 선한 의지 뿐.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최후의 드래곤 스마우그의 약점을 알아내고 드래곤의 재물을 도둑질해낸 빌보는 그 댓가로 굉장한 부를 얻었건만, 저 서쪽 회색 항구에서부터 어둠산맥을 마주보고 있는 미나스티리스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세상을 사우론의 발치에서 구해낸 프로도는 그 댓가로 칼에 찔린 상처와 독에 쏘인 후유증, 그리고 물어뜯긴 손가락만을 얻었을 뿐이다. 샘과 메리와 피핀은 후에 샤이어에서 다들 한자리씩 갖게 되지만, 프로도의 위업은 정작 샤이어의 호빗들은 관심도 갖지 않는다. 그들에겐 곤도르나 모르도르 같은 이름들은 상관도 없는 다른 시대 다른 세상 것인양 들릴 것이니. 그에겐 아픈 몸과 고통과 공포의 기억들 말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지치고 힘든 몸으로 몇년을 더 샤이어에 남아 자신의 여정을 기록에 남겼지만, 그는 이제 안식을 위해 자신이 구해낸 가운데땅을 떠나간다.
"우리는 샤이어를 구하기 위해 떠났었고, 결국엔 구해냈어. 하지만 나 자신은 구하지 못했어."
그리고 소설에서는 몇마디가 더 남는다.
"누군가는 포기하고 잃어야 다른 이들이 누릴 수 있는 법이지."
몇 안되기에 더욱 소중했던 친구들을 '영원히' 떠나간다는 것은 참기 힘든 슬픔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모두 훌륭하게 성장하고 인정받는 삶을 살게 된 것을 확인하면서 약간의 위안은 받았겠지만 그 상실감은 누가 메꿔줄 수 있을까.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의 경우엔 프로도를 여성으로 설정하여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좀더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샘과의 사랑 이야기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고 영원히 떠나가야 하는 아픈 이별이라든지.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읽고 난 뒤에 너무 마음이 아플지도 모르니 톨킨은 그런 점을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