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상한 세르반도니가
스타워즈 VS 반지의 제왕
땅별
2006. 6. 12. 18:40
워낙 유명한 두 영화니까, 무어라 내용에 대해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평범한 소년이 세상의 운명을 지게 되지만 자기 스스로의 길을 자신의 방법으로 개척해 나간다는 이야기라는 점은 비슷하고, 사랑과 우정과 배신과 복수의 이야기라는 점도 비슷해요. 헐리우드 대형 영화사에서 대 자본을 투자한 작품이 아니라는 점도 그렇고요. 하긴, 이정도까지 추상화했을 때 비슷하지 않은 이야기가 몇개나 남을 지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두 영화에는, 한쪽은 여섯편짜리고 한쪽은 세편짜리, 한쪽은 편당 두시간 한쪽은 편당 세시간 반이라는 분량상의 차이 외에도, 서로 절대 넘을 수 없는 깊은 골이 존재합니다. 그 차이는 '한국에서도 흥행했다.'와 '한국에서만 흥행하지 못했다.'의 차이지요.
한국은 굉장한 나라입니다. 헐리우드 영화가 수입 배급되는 나라 중에서 자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이렇게 높은 나라가 또 있을까요. 또한 그 자국 영화가 타국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도 헐리우드 영화에 비해 그다지 뒤떨어질 것도 없다는 점도 그렇구요. 그만큼 문화적 잠재력도 깊고 전통도 확고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런 한국에서 스타워즈는 흥행하지 못하고 반지의 제왕은 흥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홍보의 차이를 예로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타워즈는 첫 개봉부터가 본토에 비해 너무 늦은데다가 홍보 자체도 잘 안되었고, 드라마적으로 가장 긴장감넘치고 중요한 부분인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 편은 국내 개봉 자체를 못했었지요. 이렇게 첫인상을 구긴 영화가, 90년대 말에 재개봉을 하고 그 뒤를 이어 개봉을 한다 해도 관객들이 기억해주고 다시 극장을 찾을 리 만무합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공짜로 (불법으로!)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보면 되는 한국 사회의 편리한 정보 인프라 구조상, 어지간하게 재미있거나 '극장'만의 메리트가 없는 영화는 장사가 안될 수밖에 없지요. 물론 반지의 제왕처럼 국내 배급사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원작 소설 등의 주변 상품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아마도 국내에서 처음 스타워즈를 받아보게 되는 배급사나 영화관 관계자 여러분들에게도 '첫인상'이 나빴던 게 이유가 되지 싶네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화를 '아무도 안본'게 아니라, 스타워즈도 분명 극장에서 보고 나온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의 평은 반지의 제왕을 보고 나왔을 때와는 달랐지요. "그냥 그래. 화면은 멋있더라."
왜 그렇게 말할까요. 그건 스타워즈와 반지의 제왕의 이야기 구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반지의 제왕은 긴 호흡으로 여유있게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웅장하고 아름다운 화면 속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반지죠.
반지를 파괴해야 하는 사람들. 반지를 되찾아야 하는 족속들이 서로 극명하게 대립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배경 이야기를 잘 모르더라도 모든 것은 반지로 귀결된다는 그 하나 만큼은 이해를 하게 되고, 모든 주인공에게 닥친 상황을 절박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3편 왕의 귀환에서 마침내 반지가 파괴되었을 때, 많은 관객들이 안절부절 못했던게 저거만 부서지면 얘기 끝날줄 알았기 때문이지요. 3년동안 (일년에 3시간이나!) 극장을 찾아줬는데, 반지가 부서지고도 도무지 끝날 기미를 안보이니 일어섰다 다시 앉기를 반복할 수밖에요.
하지만 스타워즈는 긴박하고 경쾌한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면서도, 재기 넘치는 독특한 화면 속에는 그다지 분명한 목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포스? 라이트 사이드와 다크사이드의 대결이 그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믿었을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런 추상적인 개념이 이야기의 핵심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는 도움이 될 지 몰라도요.
스타워즈의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목적이 다 따로 있습니다. 그 목적은 한 편에서 귀결되는 게 아니라 전편, 혹은 그 이전 편부터 계속해서 의도되고 추진되어온 목적일 경우가 많습니다. 포스의 균형을 잡는다는 예언 하나 믿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위험한 아이를 받아들인 제다이 카운슬의 마스터들이나, 단지 다크 사이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라이트 사이드를 밀어낼 뿐 아니라 은하계 전체를 지배할 권력을 노리고 있는 팰퍼틴이나, 다시 은하계에 정의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레아 공주나, 그들의 목표는 너무 거대하고 또한 주인공의 개인적 목표와도 서로 나란하지 않기에 그저 배경 이야기처럼 보일 뿐입니다. 정작 여섯편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인 아나킨과 그 아들 루크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향해 행동하지요. 아나킨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리고 루크는 갓난아이 때부터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그림자를 뒤쫒기 위해, 영화에 보여진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영화와 영화 사이, 영화가 끝난 뒤에서 살아갑니다. 관객은 누군가 한 사람, 감정이입을 하거나 공감해줄 사람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냥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에 열광하기엔 저들이 왜 저렇게 싸우나 하는 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거지요.
납득이 가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두 영화에서 드러나는 '아버지 상'의 차이에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아버지, 혹은 그 대신이 될 삼촌이나 왕의 모습은, 늙어 약한 모습도 보이지만 위엄있고 단호하며, 리더쉽을 갖추고 앞장서서 이끌어줄 사람입니다. 빌보도 그렇고, 엘론드도 그렇고, 세오덴도 그렇고, 데네소르도 그렇고, '아버지'라는 이름과 권위에 모두 어울리는 인물들이죠. "물론이지. 그애도 배긴스니까." 와 같은 빌보의 대사. 세오덴의 "부모가 자식을 묻는게 아니라오." 와 같은 슬픈 대사. 그리고 "저희들 입장이 바뀌었길 바라시죠? 제가 죽고 형이 살아있는." 과 같은 파라미르의 대사를 보고 공감이 가지 않는 한국의 부모와 둘째들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네요. 그들은 제3시대 말엽의 가운데땅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한반도의 수많은 큰아들 빠돌이 아버지이자 둘째나 조카에겐 냉정하기만 한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스타워즈는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없습니다. 프리퀄에서는, 제다이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만 나옵니다. 그들은 가정에서 벗어나 무예와 학문과 포스를 연마하는 독특한 수행자 집단이며, 권력의 중심과 닿아있고 극도로 절제를 요구하는 자들입니다. 아버지보다 마스터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그들에게, 아들/딸 보다 파다완이란 호칭이 더 익숙한 그들에게 아버지상을 찾는 건 불가능합니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제일 근접한 이야기구조라면, 이제는 한물 간 무협영화의 사제관계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프리퀄 스타워즈는 포장은 화려한 우주 판타지일지는 몰라도, 한국인에게는 한물 간 무협지로밖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아버지가 없고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이들을 전부 베어넘겨버린 아나킨이 아버지가 되어 있는 클래식에서는, 다스 베이더의 잊지못할 그 한마디 대사를 남기죠.
"I'm, your father."
충격적인 반전으로 보일 지 모르지만, 이는 70년대부터 수많은 한국 드라마에서 반복되어 온 이야기구조입니다. 출생의 비밀 말이에요. 드라마에선 모두가 한 가족이지요. 뻔한 이야기 아닙니까. 모르긴 몰라도, 클래식만 본다 해도 저 장면에 딱히 충격받을 한국인이 그리 많진 않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반지의 제왕을 지배하는 정서는 한국인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반지 원정대 편에서 간달프를 끌어들이려는 사루만의 모습이란, '우리가 남이가' 라고 말하는 부정한 권력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우리가 남이가'는 원정대를 통해서도 수없이 반복됩니다. 요정과 난쟁이의 반목 정도는, 지역감정에 빗대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거예요. 가부장적인 로한 왕과 곤도르 섭정의 모습은 '군사부일체'와 같은 성어가 생각나게 하고, 사우론의 군대가 사람들을 덮치는 모습이란, 화적패나 오랑캐가 덮쳐오는 사극의 그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스타워즈의 전투는 화려하긴 하지만, 절박함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압도적으로 강한 적군이 아니라서일지도요? 제다이가 너무 강해서일지도? 혹은 적군이 너무 바보같아서일지도요. 신나게 온 우주를 뛰어다니지만, 너무나 많은 문화권의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주기에 관객으로서는 저 많은 이들이 다 어쨌다는 걸까 하고 넘어갈 뿐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지긋지긋한 시골짝 박차고 세상에 나와 뭔가좀 해볼 요량이었다든지, 친구를 구하려고 위험을 자초했다든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뛰어든다든지 하는 주인공의 사명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알아서 벌어집니다.
요약하자면, 반지의 제왕은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여운을 주지요. 흥행하기 마련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타워즈는, 북미 신화이기에 영화를 보는 잣대로 평가를 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그다지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점이 두 영화의 흥행 성적에 있어 크게 갈리는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두 영화에는, 한쪽은 여섯편짜리고 한쪽은 세편짜리, 한쪽은 편당 두시간 한쪽은 편당 세시간 반이라는 분량상의 차이 외에도, 서로 절대 넘을 수 없는 깊은 골이 존재합니다. 그 차이는 '한국에서도 흥행했다.'와 '한국에서만 흥행하지 못했다.'의 차이지요.
한국은 굉장한 나라입니다. 헐리우드 영화가 수입 배급되는 나라 중에서 자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이렇게 높은 나라가 또 있을까요. 또한 그 자국 영화가 타국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도 헐리우드 영화에 비해 그다지 뒤떨어질 것도 없다는 점도 그렇구요. 그만큼 문화적 잠재력도 깊고 전통도 확고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런 한국에서 스타워즈는 흥행하지 못하고 반지의 제왕은 흥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홍보의 차이를 예로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타워즈는 첫 개봉부터가 본토에 비해 너무 늦은데다가 홍보 자체도 잘 안되었고, 드라마적으로 가장 긴장감넘치고 중요한 부분인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 편은 국내 개봉 자체를 못했었지요. 이렇게 첫인상을 구긴 영화가, 90년대 말에 재개봉을 하고 그 뒤를 이어 개봉을 한다 해도 관객들이 기억해주고 다시 극장을 찾을 리 만무합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공짜로 (불법으로!)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보면 되는 한국 사회의 편리한 정보 인프라 구조상, 어지간하게 재미있거나 '극장'만의 메리트가 없는 영화는 장사가 안될 수밖에 없지요. 물론 반지의 제왕처럼 국내 배급사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원작 소설 등의 주변 상품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아마도 국내에서 처음 스타워즈를 받아보게 되는 배급사나 영화관 관계자 여러분들에게도 '첫인상'이 나빴던 게 이유가 되지 싶네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화를 '아무도 안본'게 아니라, 스타워즈도 분명 극장에서 보고 나온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의 평은 반지의 제왕을 보고 나왔을 때와는 달랐지요. "그냥 그래. 화면은 멋있더라."
왜 그렇게 말할까요. 그건 스타워즈와 반지의 제왕의 이야기 구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반지의 제왕은 긴 호흡으로 여유있게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웅장하고 아름다운 화면 속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반지죠.
반지를 파괴해야 하는 사람들. 반지를 되찾아야 하는 족속들이 서로 극명하게 대립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배경 이야기를 잘 모르더라도 모든 것은 반지로 귀결된다는 그 하나 만큼은 이해를 하게 되고, 모든 주인공에게 닥친 상황을 절박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3편 왕의 귀환에서 마침내 반지가 파괴되었을 때, 많은 관객들이 안절부절 못했던게 저거만 부서지면 얘기 끝날줄 알았기 때문이지요. 3년동안 (일년에 3시간이나!) 극장을 찾아줬는데, 반지가 부서지고도 도무지 끝날 기미를 안보이니 일어섰다 다시 앉기를 반복할 수밖에요.
하지만 스타워즈는 긴박하고 경쾌한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면서도, 재기 넘치는 독특한 화면 속에는 그다지 분명한 목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포스? 라이트 사이드와 다크사이드의 대결이 그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믿었을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런 추상적인 개념이 이야기의 핵심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는 도움이 될 지 몰라도요.
스타워즈의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목적이 다 따로 있습니다. 그 목적은 한 편에서 귀결되는 게 아니라 전편, 혹은 그 이전 편부터 계속해서 의도되고 추진되어온 목적일 경우가 많습니다. 포스의 균형을 잡는다는 예언 하나 믿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위험한 아이를 받아들인 제다이 카운슬의 마스터들이나, 단지 다크 사이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라이트 사이드를 밀어낼 뿐 아니라 은하계 전체를 지배할 권력을 노리고 있는 팰퍼틴이나, 다시 은하계에 정의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레아 공주나, 그들의 목표는 너무 거대하고 또한 주인공의 개인적 목표와도 서로 나란하지 않기에 그저 배경 이야기처럼 보일 뿐입니다. 정작 여섯편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인 아나킨과 그 아들 루크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향해 행동하지요. 아나킨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리고 루크는 갓난아이 때부터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그림자를 뒤쫒기 위해, 영화에 보여진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영화와 영화 사이, 영화가 끝난 뒤에서 살아갑니다. 관객은 누군가 한 사람, 감정이입을 하거나 공감해줄 사람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냥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에 열광하기엔 저들이 왜 저렇게 싸우나 하는 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거지요.
납득이 가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두 영화에서 드러나는 '아버지 상'의 차이에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아버지, 혹은 그 대신이 될 삼촌이나 왕의 모습은, 늙어 약한 모습도 보이지만 위엄있고 단호하며, 리더쉽을 갖추고 앞장서서 이끌어줄 사람입니다. 빌보도 그렇고, 엘론드도 그렇고, 세오덴도 그렇고, 데네소르도 그렇고, '아버지'라는 이름과 권위에 모두 어울리는 인물들이죠. "물론이지. 그애도 배긴스니까." 와 같은 빌보의 대사. 세오덴의 "부모가 자식을 묻는게 아니라오." 와 같은 슬픈 대사. 그리고 "저희들 입장이 바뀌었길 바라시죠? 제가 죽고 형이 살아있는." 과 같은 파라미르의 대사를 보고 공감이 가지 않는 한국의 부모와 둘째들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네요. 그들은 제3시대 말엽의 가운데땅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한반도의 수많은 큰아들 빠돌이 아버지이자 둘째나 조카에겐 냉정하기만 한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스타워즈는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없습니다. 프리퀄에서는, 제다이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만 나옵니다. 그들은 가정에서 벗어나 무예와 학문과 포스를 연마하는 독특한 수행자 집단이며, 권력의 중심과 닿아있고 극도로 절제를 요구하는 자들입니다. 아버지보다 마스터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그들에게, 아들/딸 보다 파다완이란 호칭이 더 익숙한 그들에게 아버지상을 찾는 건 불가능합니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제일 근접한 이야기구조라면, 이제는 한물 간 무협영화의 사제관계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프리퀄 스타워즈는 포장은 화려한 우주 판타지일지는 몰라도, 한국인에게는 한물 간 무협지로밖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아버지가 없고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이들을 전부 베어넘겨버린 아나킨이 아버지가 되어 있는 클래식에서는, 다스 베이더의 잊지못할 그 한마디 대사를 남기죠.
"I'm, your father."
충격적인 반전으로 보일 지 모르지만, 이는 70년대부터 수많은 한국 드라마에서 반복되어 온 이야기구조입니다. 출생의 비밀 말이에요. 드라마에선 모두가 한 가족이지요. 뻔한 이야기 아닙니까. 모르긴 몰라도, 클래식만 본다 해도 저 장면에 딱히 충격받을 한국인이 그리 많진 않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반지의 제왕을 지배하는 정서는 한국인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반지 원정대 편에서 간달프를 끌어들이려는 사루만의 모습이란, '우리가 남이가' 라고 말하는 부정한 권력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우리가 남이가'는 원정대를 통해서도 수없이 반복됩니다. 요정과 난쟁이의 반목 정도는, 지역감정에 빗대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거예요. 가부장적인 로한 왕과 곤도르 섭정의 모습은 '군사부일체'와 같은 성어가 생각나게 하고, 사우론의 군대가 사람들을 덮치는 모습이란, 화적패나 오랑캐가 덮쳐오는 사극의 그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스타워즈의 전투는 화려하긴 하지만, 절박함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압도적으로 강한 적군이 아니라서일지도요? 제다이가 너무 강해서일지도? 혹은 적군이 너무 바보같아서일지도요. 신나게 온 우주를 뛰어다니지만, 너무나 많은 문화권의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주기에 관객으로서는 저 많은 이들이 다 어쨌다는 걸까 하고 넘어갈 뿐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지긋지긋한 시골짝 박차고 세상에 나와 뭔가좀 해볼 요량이었다든지, 친구를 구하려고 위험을 자초했다든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뛰어든다든지 하는 주인공의 사명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알아서 벌어집니다.
요약하자면, 반지의 제왕은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여운을 주지요. 흥행하기 마련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타워즈는, 북미 신화이기에 영화를 보는 잣대로 평가를 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그다지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점이 두 영화의 흥행 성적에 있어 크게 갈리는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