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상한 세르반도니가
스타워즈로 보는 대중예술의 가능성
땅별
2006. 6. 12. 18:36
영화 <스타워즈>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영화에 대해 관심이 적거나, 영어문화권과 상관이 없는 세계의 사람일 것이다. 1977년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이 우주를 배경으로 한 무협 환타지 액션 드라마는 세대를 넘어 계속해서 재창조되며 2005년 여름, 6편에 이르는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개봉할 때마다 그 해 최고의 영화로 거론되며 극장가의 많은 기록들을 갈아치웠고, 영화 제작의 개념을 단지 '있는 대상을 촬영하는 것'에서 '보여주고 싶은 화면과 들려주고 싶은 소리를 자유롭게 창조하는 것'으로 완전히 뒤집어 놓은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의 인식과는 달리 헐리우드 유수 영화사들에 의해 대자본의 투자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가 아닌, 조지 루카스 감독의 '루카스 필름'이라는 작은 회사의 고유 자본으로 제작된 독립영화다. 20세기 폭스사의 로고는 언제나 이 영화 필름의 맨 앞에 붙어있지만, 20세기 폭스사는 다만 배급만을 담당했을 뿐, 단 1센트의 자본도 투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헐리우드 영화가 자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을 누르지 못하는 몇 안되는 영화 강국 중의 하나인 한국에서만큼은 이 헐리우드와 거의 아무 관련이 없는 독립영화가, 전혀 인기를 끌지 못했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까지 개봉된 클래식 3부작 중 2번째 작품 <제국의 역습>은 아예 개봉되지도 못했고, 세 번째 작품이자 당시까지만 해도 완결편이었던 <제다이의 귀환>은 본래 83년작이었으나 4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한국의 상영관에서 개봉하게 된다. 1997년,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개봉 20주년 기념을 겸해 이 낡은 세 영화를 디지털 기술로 리마스터링하여 재개봉했는데, 이때에도 국내에서의 흥행 수입은 세 영화를 모두 합쳐도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공룡 영화 <잃어버린 세계>의 수입만도 못했다. 1999년부터 개봉된, 클래식 3부작의 앞이야기를 다루는 프리퀄 3부작 역시 2005년에 이르도록 그다지 국내에서의 흥행은 좋지 못했다. 그 결과, 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독립영화에 대해서 너무 많은 부분들이 알려져 있지 않은 점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이영화는 아동, 청소년용도 아니며, SF(Science Fiction)도 아니고 (6편의 영화 모두,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듯 검은 화면에 뜨는 파란 글씨 "옛날 옛날 먼 옛날에 은하계 저 멀리에서...Long, long time ago, in gallaxy far, far away..."로 시작한다.), 심지어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무기 이름또한 국내 모 포털사이트에 의해 '레이저 검'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명칭으로 잘못 알려지고 말았다. 그러나 <스타워즈>의 세계관은 <반지의 제왕>에 비견될 만큼 방대하고 깊이있으며 또한 독특한 철학적 자연관을 보여준다. 포스Force로 대변되는 우주의 질서를 잡기 위한 제다이Jedi와 시스Sith의 대결, 그리고 마침내 포스의 균형을 가지고 오는 결말의 대담함은, 화려한 광검Light-Sabre 결투와 우주 공중전과 함대전 등으로 장식되어 풍성한 볼거리 또한 제공해준다. 수많은 개성적인 행성의 표정과 독특한 생물들, 인간 외의 종족들, 드로이드Droid라고 이름지은 스타워즈 특유의 인격과 개성을 가진 기계들, 그리고 위험한 우주의 풍경을 담아내는 과정은 하나 하나가 '기록'이 아닌 '창조'의 과정이었으며, 그렇게 해서 조지 루카스와 그의 팀은 아무도 보지 못한 광경, 아무도 듣지 못한 소리 속에 이 방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스타워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프리퀄 3부작에서 드러나는 은하 공화국의 몰락과 은하 제국의 성립 과정은 20세기 초 히틀러와 나치당의 집권 과정과 닮은 점이 많다. 전쟁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정치로부터 돌리고 힘과 공포로 권력을 유지하는 클래식 3부작에서의 제국의 모습은 레이건 시절의 미국 정부, 그리고 오늘날 조지 부시 2세 대통령 하의 미국 정부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또한 단지 이러한 사회적 쟁점 외에도, 서로를 베어 죽이고 그 결과 우주의 평화를 가져오려 하는 제다이와 시스의 모습을 대비시켜 악을 행하는 선은 정당한가, 선을 행하는 악은 정당한가와 같은 윤리적, 철학적 쟁점들 역시 시사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화두를 던져준다는 의미에서 <스타워즈>는 그저 한바탕 즐기고 넘어가는 오락용 블록버스터 영화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스타워즈>가 아닌 다른 영화라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는 면모이다. 여기서 <스타워즈>를 언급하는 것은, 이 6편의 영화가 단지 영화로 그치지 않고, 혹은 단지 하나의 대중예술로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화화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신화는 더이상 문화, 예술의 영역에서 핵심적인 코드가 아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예술가들은 신화속의 신과 인물들을 소재로 삼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미술품으로, 시로,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인간을 소재로 삼았다면 단지 음화(淫畵)에 지나지 않았을 여러 작품들이 아프로디테 여신으로 대변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캐릭터의 의미로 도덕적으로 허용되었다. 단테의 <신곡> 등 성서에 기반을 둔 여러 예술품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틀로 신화가 기여했다는 점을 확인하게 해준다. 그러나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외침, 그리고 2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고 난 현대의 인류에게 신성이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으로 대변되는 서구의 신화 세계는 물론이고, 그들의 제국주의에 의해 잔인하게 해체당한 다른 세계의 수많은 신화 속의 신들 역시 더이상 자신들의 피조물에 대해 믿음을 받아내지 못한다. 이러한 신화의 공백은 현대의 새로운 신화들이 메우려 시도하고 있다. TV에서 방영하는 <신화 창조의 비밀>과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이제 오늘날에 있어서 신화가 되는 것은 놀라운 사람, 사람이 해낸 놀라운 업적, 또는 인간 외의 것에 대한 각양 각색의 쉽게 믿어지지 않는 '과학적' 발견(로스웰에 추락한 외계인과 우주선, 잃어버린 세계, 네스 호의 괴물 네시 등) 등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종래의 신화가 가진 문화 전반에 걸친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우리는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싶어하고, 인간의 감성이 가진 가능성을 믿고 싶어한다. 신화는 바로 이러한 빈자리에 필요한 이야깃거리이다. <스타워즈>는 이러한 신화에의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놀랍고 신비한 방대한 세계의 모습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의 마치 신처럼 명확한 캐릭터성. 그리고 풍부한 자기 반복과 자기 암시이다. 신화의 신들은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성(性)적인 아름다움을 캐릭터로 가진 신이 아프로디테라면, 전장의 잔인함과 광포함을 캐릭터로 가진 신이 아레스인 것처럼, <스타워즈>의 등장인물들 또한 신화 속의 영웅들처럼 정형화되어 있어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 모두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 준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모험자 루크 스카이워커와 닳고 닳은 무법자 한 솔로, 고결하지만 용감한 공주 레아, 은둔의 현자 오비완 케노비, 그리고 권위와 힘의 상징 다스 베이더와 같은 <스타워즈 - 새로운 희망>의 주인공들은 이 후의 작품들에서도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내며 관계맺고 변해가며 성장하고 파멸하거나 마침내는 포스와 하나되어 영(靈)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그리고 또한 신화는 자기반복을 통해 완성되는데, 히브리 신화에서 신을 거역하는 이들과 그에 대한 응징 또는 용서의 과정들이 이브의 사과에서부터 예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스타워즈> 역시 이러한 반복의 과정을 지녔으며 이는 "I have a bad feeling about this.", 그리고 "May the Force be with you."와 같이 매 영화마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대사들로 대변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생활에 적용하는 것처럼 여러 영화들에서 <스타워즈>의 대사나 상황을 인용하게 만들었다. 영화 <액설런트 어드벤처>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주인공 10대 소년들은 중세로 가서 칼싸움을 하며 다스 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커의 대결을 흉내낸다. <플래시드>의 주인공들은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유인할 때 쓰는 경광봉을 마치 광검처럼 들고는 장난을 치며 "May the Force be with you!" 라고 외친다. 그리고 지구로 다가오는 거대 소행성을 반토막내기 위해 우주로 출동하는 <아마겟돈>의 주인공들은 츄바카와 한 솔로 같은 유명한 캐릭터를 들먹이며 자신들을 그 위치에 대입시킨다. 이러한 점들 이외에도 <스타워즈>가 얼마나 신화적 은유와 환유들을 많이 포함하는가는 다음의 패러디로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종교 행사에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신앙고백 - 사도 신경(1)과, 그 스타워즈식 패러디(2)이다. (1)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느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느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신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2)전능하사 우주를 지으신 조지 루카스님을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내가 믿사오니 이는 포스로 잉태하사 동정녀 슈미에게 나시고 오비완 케노비에게 고난을 받으사 용암에 빠져 죽으시고 장사하지 않고 기계몸으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제국에 오르사 전능하신 황제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다스베이더로서 포스의 균형을 잡으러 오시리라 포스를 믿사오며 거룩한 카운슬과 제다이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1997년작 <타이타닉>은 훌륭한 영화다. 아름답거나 장엄한 화면 안에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충실히 담아냈으며, 그 결과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과 사회적 이슈를 던져주었다. 그러나 타이타닉은 단지 그것으로 끝난다. 우리는 신화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재생산하듯, 타이타닉의 등장인물이나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즉 <타이타닉>'을' 이야기하는 것만 가능할 뿐, <타이타닉>'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짧은 한 편이기에 자기 반복과 자기 암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캐릭터성도 부족하여, 많은 관객들이 잭과 로즈라는 등장 인물의 이름보다는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배우의 이름을 두고 <타이타닉>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신화적 특징들이 결여되어 있으니 <타이타닉2> 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포스터와 같은 합성 이미지가 하나의 유희에 불과할 뿐 실제의 영화 혹은 소설 등 또 하나의 대중예술 작품으로 실현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스타워즈>는 가능하다. 즉, 우리는 <스타워즈>'를' 이야기할 뿐 아니라, <스타워즈>'로' 이야기할 수 있다. 티모시 잰의 스타워즈 소설들(제국의 후예, 어둠의 반란, 최후의 명령)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는 등단한 소설가에 의해 정식으로 출판된 문학 작품이며, 국내에서도 번역 출판되었으나 최근에는 절판되었다. 클래식 3부작 이후 세대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작품들은 조지 루카스의 등장인물과 세계관을 사용하면서도 작가의 독특한 내러티브와 주제를 표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또한 카툰 네트워크 채널에서 방영된 <클론 전쟁>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은 2002년 개봉한 <클론의 습격>과 2005년 개봉한 <시스의 복수> 두 스타워즈 영화 사이의 일을 다루고 있으며, 그리버스 장군과 같은 <시스의 복수> 한 편만 출연한 단역 캐릭터의 내력 등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미니시리즈 등으로 제작되거나, 다양한 장르의 게임(RTS, RPG, FPS 등)으로 출시된 스타워즈의 로고가 달린 게임들은 또한 영화 본편에서는 나오지 않은 여러 행성 출신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 본편 못지 않은 재미와 감동으로 전달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스타워즈>는 단지 영화만이 아니라,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대중예술 분야에서 하나의 신화적 바탕이 되어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대중예술이면서 다른 대중예술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경우, 즉 팬덤 현상이 <스타워즈>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드라마 <프렌즈>, 이처럼 대중예술은 단지 그 자체를 향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중'의 예술이기에, 팬덤을 형성하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야깃거리가 되고, 그리하여 오늘날의 인류는 대부분 잃어버린 '신화'가 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긴 세월동안 이어지다 현대의 이름으로 단절되어버린 문화와 예술의 전통을 재창조하는 토대로 대중예술을 받아들일 수 있고, <스타워즈>는 그러한 신화적 가능성을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