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별 2006. 6. 12. 18:34

오늘은 영화가 하나뿐입니다.

영화 '천군'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잘 모르겠네요.
남북한의 군인들이 1572년의 조선시대로 날려가 이순신을 만난다는 이야기.
박중훈 식 코미디를 유행시켰던 바로 그 배우 박중훈이 이순신에 캐스팅되어서인지, 이 영화가 요즘 유행한다는 그노무 '퓨전 코미디 액션 사극'으로 생각하게 되면 아마도 돈주고 안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여러가지 특수효과들이 조금씩 허술한게 눈에 띄고 그래서 그다지 깔끔한 화면을 보여주진 않습니다만,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갈라선 남과 북의 문제.
한반도의 핵 문제.
애국심의 범위에 관한 문제.

전쟁을 다루지만, 이 영화는 전쟁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인 범위까지 넘나드는 고찰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훨씬 우리 피부에 가까운 이야기, 즉 군인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내가 내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이런 겁니다.

그렇기에 영화는 탕아에서 일순간에 개과천선하는 영웅 이순신을 보여주기보다, 무과 응시때 다친 다리를 여전히 절룩이면서도 자신의 머릿속 마지막 생각 하나, 마지막 손가락 근육 하나에 배인 힘까지 모두 짜내어 나와 같은 사람들, 나와 대화하고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지키고자 발버둥치는 한 청년을 보여줄 뿐입니다. 과거로 흘러간 여섯 명의 남북한 군인들은 모두 이순신을 지키기 위해 죽어갑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영웅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휴전선에는 이 땅에 태어나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같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게으른 말년 이병장도, 어리버리 김이병도, 독사 박중위도, 모두 저 너머에 있는 다른 젊은이들처럼 민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겁니다.

다만 사랑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기에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강건너 중국을, 바다건너 일본을 바라보지 못하고 마주보고 있을 뿐입니다.


군대는 돈없고 빽없어서 간다고 생각들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가족을, 친구를, 그리고 여러분과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말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고(갔다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