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상한 세르반도니가
트로이 VS 알렉산더 VS 킹 아더
땅별
2006. 6. 12. 18:33
신화속의 인물을 재조명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우면서 잘했다는 소리 듣기 매우 힘든 방법은 '역사속의 인물로' 조명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킬레스 : 발목만 제외하고 불사의 몸을 가진, 신의 아들. 트로이 전투에서 파리스의 화살에 발목을 맞고 전사.
트로이 전투 : 10년에 걸친 소모적인 공성 끝에 오디세우스의 재치로 목마를 성 안에 들여 마침내 함락시킴.
헬레네 : 모든 남자들을 현혹시킨, 절세의 미녀. 제우스의 불륜의 결과물로, 헤라의 저주를 받아 관계하는 남자마다 파국을 맞이함.
파리스 : 트로이를 멸망케 하리라는 예언으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비운의 왕자. 헬레네와 운명의 사랑에 빠짐.
이 모든 것이 영화 트로이에서 어떻게 변화했나를 봅시다.
아킬레스 : 막강한 힘과 놀라운 검술을 가진 용맹한 전사이나 정치와 세상사에 회의를 느끼는 심약한 인물. 파리스의 화살에 죽지만, 사람들이 목격한 것은 오직 발뒤꿈치에 박힌 화살뿐.
트로이 전투 : 10개월 여의 단속적인 공성 끝에 양측 모두 주력 장수를 잃은 상태에서 트로이의 목마로 함락됨.
헬레네 : 정략결혼으로 호색한인 메넬라오스에게 팔려갔다가 파리스를 만나 사랑에 눈뜬 아름다운 그리스 귀족 여성.
파리스 : 여자나 후리고 다니며 형에게 의지하는 철부지에 망나니 막내 왕자. 헬레네를 만나 겨우 사랑을 알고 형을 잃은 후에 겨우 인생을 알게 됨.
위대했던 신화 속에서 위대함을 빼앗고, 숭고한 운명 속에서 필연을 빼앗아버린 영화 '트로이'는 그래서 제목이 일리아드가 아니고 '트로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과는 보다시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된 힘이었던 신적 요소를 모두 잃어버린, 단순한 일류 액션 에로물.
"신들은 인간을 질투해."
하지만 정작 그 신은 아킬레스가 아폴론의 신상을 베어버린 것처럼, 처음부터 영화안에선 있지도 않았습니다. 신의 이야기에서 신을 빼버리면, 남는게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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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반면, 역사속의 인물을 재조명하는 방법도 물론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알렉산더의 경우, 가장 사료에 충실하게 진행하는 방법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사료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덧살로 붙였지요. 가장 평이한 전기영화의 서술 방식이지만, 어떤 덧살을 붙이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알렉산더에 덧붙인 덧살은, 결코 그리스의 나체 조각상들처럼 치부는 감추고 사실은 미화시킨 덧살이 아니라, 로댕 이후의 조각상처럼 치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흉한 사실을 그대로 그려내는 덧살이었습니다.
4만 대 25만이라는, 단일 전투로서는 최대에 가까운 거대한 전투였던 가우가멜라 전투 신은 한없이 냉정하고 섬뜩하게 이날의 전황을 그려냅니다. 피범벅이 되어서도 지극히 냉정하게 훈련받은 대로 검과 창을 휘두르는 알렉산더의 군대가,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다리우스의 모습보다 수천배는 더 섬뜩하게 보이도록. 그런 힘을 가진 군대가 아니라면 인도에 이르는 대장정을 해낼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위대한 군인이었던 알렉산더는, 정치가로서, 왕으로서는 단지 몽상가에 불과했습니다.
모두 하나되는 세상. 모든 민족이 그리스식 표준을 따르는 문명화된 세계. 각지에 세워지는 알렉산드리아. 멋진 꿈이지만...
"꿈을 쫓는 자는 역사에 남지만, 대신 그 주위 사람들을 너무나 힘들게 해. 그리고 그가 죽거나 아니면 주위 사람들이 지쳐 죽지."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프톨레마이오스(영어식으로는 톨레미, 안소니 홉킨스 분)의 말대로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들마저 모두 그를 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게 당연한 것이겠지요.
"신은 인간을 질투해."
아무리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스 같은 영웅이 되고 싶다고 해도,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는 법이고, 영화는 바로 그 한계에 늘 부딪히고 좌절하며 우는 연약한 알렉산더를 냉랭하게 그려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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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속의 인물을 그릴때 우리는 주로 전설 그 자체에 주목하는 것을 자주 보아왔습니다. 전설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이야기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곤 합니다. 여기에 덧붙일 것은, 얼마나 전설을 더 전설처럼 보이게 하느냐. 얼마나 더 전설로서의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게 하느냐 정도겠지요. 영웅의 행적과 사랑을 통해 무엇이 옳은지 사람들에게 일깨워주는 그 뻔한 기능 말입니다.
영화 '킹 아더'는 '카멜롯의 전설'등에서 기존에 보여주었던 이 방식들을 무참히 깨부수고, 전설을 역사로 끌어내버렸습니다. 아무도 뽑지 못하던 엑스칼리버를 뽑아 그것으로 왕이 되었다는 아더는, 실존인물입니다. 5세기 경,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무렵의 일이죠. 암흑 시대라고 불리던 이 변혁기에 브리튼 섬의 주민들은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침략자 색슨족의 침입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나운 상전에서 놓여나자 바로 잔인한 도적을 맞이하는 꼴.
아더의 본명은 '루시우스 아토리우스 카스투스' 로마인 아버지와 브리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휘하에 있는 기사들은 로마 제국 동쪽 끝 변방에 살던 기마민족 '사마시아' 출신의, 당시 가장 고도로 훈련된 전투 집단이었습니다. 명예와 무용 등을 중시하는 기사도 따위는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죽음 대신 로마를 위해 싸워주는 것을 선택하여 징집당한 그들은 15년의 복무 기한을, 고향과는 거의 지구 반대편인 브리튼 섬까지 끌려와 채우게 됩니다. 마침내 그 기한이 끝나고 자유를 보장받지만, 그들은 힘겨운 임무와 숱한 동료들의 죽음을 뒤로 하고 자유로이 고향으로 떠나기보다, 나란히 원탁에 앉아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며 그들을 돌보아준 아더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합니다.
익히 알고 있는, 기사도에 충실한 풀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엑스칼리버를 휘두르는 아더왕이 아니라, 로마의 갑주를 걸치고 독수리 문장이 달린 군기를 쳐드는 아더의 모습은 무척 생소하지만, 영화는 나름대로 멋지게 아더를 전설에서 끌어내 역사의 옷을 입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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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할 줄 알았죠? 포장만 역사일 뿐,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그 대의를 위해 싸웠고 마침내 압도적인 수의 적을 맞아 싸워서 이긴 아더의 모습은 결국 전설속의 아더왕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장검으로 검투사식의 로마 검술이라뇨;; 아더가 무슨 헤라클레스라고. 이럴 바에야 차라리 전설에 충실해 마법이 난무하는 대전투를 그리는게 낫지 않았나 싶네요. 내심, 대의를 내세워 껍데기만 남은 로마를 차버리고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야심가 아더를 보고 싶었단 말입니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새롭게 그려내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모험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