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상한 세르반도니가

이반나 린치, 소녀여 신화가 되어라

땅별 2007. 7. 20. 09:49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는 공허한 눈동자와 꿈꾸는 듯한 목소리, 이상한 악세사리와 엉뚱한 잡지책. 미친 (=lunatic) 러브굿이라고도 불리는 루나 러브굿은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의 여러 새로운 여성 출연진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아가씨가 아닐까 싶습니다. 배역을 맡은 아일랜드 소녀 이반나 린치는 15000대 1의 경쟁을 뚫고 캐스팅되었다네요. 성인 출연진에 한해서는 단 한번 나오고 마는 배역에도 굉장히 호화캐스팅인 이 시리즈는 어째서인지 아역 캐스팅에선 알려지지 않았거나 거의 신인에 가까운 아이들을 캐스팅하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뭐 여기까지라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극장에서 루나 러브굿이 출연하는 장면을 볼때마다 분명히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저 소녀는 루나 러브굿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 루나 러브굿'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어떤 몰입감 말이에요.

단지 연기를 너무 잘해서인가? 아니면 단지 백금발 소녀라서인가!
궁리하다 찾아보게 되었는데 이런 포스팅이 검색에서 걸리는군요.

http://www.kimjihee.com/tt/242
세계일보 김지희 기자 블로그 포스팅(2006년 2월 3일)

하단에 나온 대로 이반나 린치는 오랫동안 해리 포터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합니다. 영화에 참여하면서 그녀는 동경하던 신화 속으로 걸어들어간 셈이지요.
이랬던 그녀가

이렇게 변했습니다. 'ㅁ'b



 이반나 린치를 비롯해서 <해리 포터> 시리즈에 출연하는 어린 배우들은 대부분 원작 <해리 포터>의 애독자였거나 애독자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꿈은 이루어진다~☆고만 하기에는 이러한 이야기 뒤에 숨은 진실성을 깨닫지 못합니다.

대중 예술을 접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 - 평론가나 미학 연구자 포함 - 이 갖는 착각 중의 하나가, 이것이 일방적이고 소통이 불가한 형태의 상업 활동이라는 망상입니다. 물론 지극히 일방적인 사례들도 얼마든지 있지요. 각종 로맨틱 코미디물 같은, 예상 수요층의 기호에 철저히 맞추는 영화들이나 선정적인 무대 의상과 적당하고 쉬운 리듬으로 군인과 예비역들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가수들의 음반과 뮤직비디오처럼, 얼마든지 순수 상업적인 활동도 대중예술의 세계에선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며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되게 만든다는 점에서 대중예술이 신화와 접점을 갖는다는 이야기는 전에도 한번 포스팅을 했는데, 신화의 특징 중 하나가 수용자가 또한 전달자가 된다는 점이지요. 전달 과정에서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추가하고 재해석하기도 하며 그런 것들이 적층되어서 수백년이 흘러 완결되는 것이 신화입니다. 단지 이상한 여자아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루나 러브굿을 신비한 매력을 가진 소녀로 바꿔놓은 배우 이반나 린치는 그러한 반복 재생산의 나선 상에 올라선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신화들 중 하나인 <해리 포터> 신화에 진정 '참여'를 하고 있는 거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는 아직도 더 남았고, 우리는 이 재능있는 배우의 성장을 지켜볼 시간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입으로 전달하는, 조앤 롤링이 전해준 것과는 또 다른 신화를 받아들일 시간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산업사회의 비인간적 물결 앞에 사람들은 대부분 신화를 잃어버렸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산업 사회의 막바지부터 일구어진 대중예술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다시 한번 신화의 시대처럼 기대감을 갖고 다른 '사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국경과 언어의 장벽도 넘어서서 말이죠. 소녀여, 신화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