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것들 : 어렸을 때 읽은 동화
앞으로 기억날때마다 덧붙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대부분은 지경사 어린이 문고나 창비 아동문고에서 나온 이야기들일 겁니다.
1. 큰 새 작은 새
금슬이 좋지만 아이가 없던 어느 부부가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정성들여 기도를 했더니 아이가 생겼습니다. (아마 새의 깃털을 가져다가 댓돌위에 얹어놓으면 된다는 식의 산신령이나 선녀의 계시를 받았을 거예요. 기억이 정확하지가 않네요.) 남매를 낳게 된 부부는 각기 큰 새와 작은 새라는 이름(네이밍 센스하고는)을 지어주고 금이야 옥이야 길렀답니다. 네 식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걸로 끝나면 좋았을 것을, 작은새가 시집을 간 뒤에야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비가 오는 날 큰새의 나막신 바닥이 젖지 않았다든가, 날아다니는 사람을 보았다는 마을 사람들의 수근거림이라든가. 이게 큰 일인 것이, 당시에 날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역적이라는 국법이 정해져 있었거든요. (도대체 왜!) 결국 아버지는 어느날 큰새를 붙잡고 술을 마시며 잠을 재운 뒤 옷을 벗겼습니다.
진짜로 날개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큰새가 역적으로 몰려 잡혀가고 가족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불에 달군 칼로 그 날개를 잘라버리려 하지만 그 때에 큰 새가 깨어나버립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함부로 할수 없거늘 그 부모가 자식의 몸을 해하는 법이 어딨냐면서 큰새는 하소연을 하고, 아버지는 그냥 칼을 놓고 우네요.
비밀로 하고 앞으로 절대 날지 않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집간 작은 새에게도 날개가 있었습니다. 시부모는 서슴없이 작은새의 날개를 잘라버렸고, 덧붙여서 큰새가 날아다니는 사람, 역적이라고 관아에 일러바칩니다. 포상을 노렸지만, 한통속이 아니냐며 시부모와 남편과 같이 작은새는 투옥당합니다.
큰 새의 집을 나졸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아버지 명령대로 나무위에 숨어있던 큰 새는 부모님을 마구 대하는 나졸들에게 분노해 날아오르며 내가 잘못했다면 나를 잡으라고 외치고, 온 몸에 화살을 맞고 떨어집니다.
그 사이, 작은새는 날개가 잘린 자리가 썩나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옥사하고 말았습니다.
날아다니면, 날개가 있으면 어째서 역적이었던 걸까요. 어린 마음에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2. 호랑이가 된 효자
옛날 어느 마을 선비에게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1000일동안 하루에 하나씩 소의 생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의원의 처방에 좌절하던 선비는 어느날 결심하고 주역을 펼쳐 둔갑술을 시행합니다. 아내가 잠든 사이 몰래 호랑이로 변신하여 소를 잡아와 마당에 던져놓고는, 다시 몰래 방으로 들어가 잠든 척 하다가 아침에는 마당에 놓인 소를 보며 아내와 함께 놀라주는 거예요.
어머니는 차츰 차도가 있는 것 같았고, 선비는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계속 밤마다 호랑이가 되어 조선 팔도를 누비며 소를 잡아오는 이중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문제는 이게 햇수로 3년씩 계속되다보니 아무래도 아내가 눈치를 채지 말이죠. 덧붙여서, 팔도를 가리지 않고 소가 매일매일 없어지다보니 나라에서도 이게 무슨 괴현상인가 싶어 조사를 하러 다니는 형편이었지요.
999일째 밤, 먼저 잠든척 하고 있던 아내가 몰래 밤에 밖에 나가는 남편을 뒤따라갔습니다. 마을 어귀 한적한 곳에서 옷을 벗어 숨겨놓고 주역을 펼쳐놓고 주문을 외우니 커다란 호랑이로 둔갑해버리는 걸 보고는 아내는 기절하듯 놀랐습니다. 여태 지성으로 섬겨온 남편이 호랑이라니! 여우가 사람 놀이를 하듯이 호랑이가 사람으로 변해서 여태 자신과 어머니를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했던 아내는 나라에서 찾는다는 소도둑이 남편이 아닌가 싶어 관아에 신고를 해버렸어요. 물론, 두번다시 사람으로 둔갑하지 못하게 옷과 주역책을 태워버리고요.
쿵. 마지막 한마리의 소를 던져놓고 사람으로 돌아가려고, 이제 두번다시 호랑이로 변신하지 않으려고 가벼운 걸음으로 마을 어귀로 갔던 선비는 아무것도 없는걸 보고 기절하듯 놀랐습니다. 사람이 될 수 없는 거예요! 그 때 아내가 나졸들을 데리고 와서 자신이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가슴이 터질 지경이지요. 이 바보같은 아내야. 오늘이 마지막인데! 하지만 아무리 외쳐봐야 호랑이가 어흥 하는걸로 밖에 안보이는 겁니다. 그길로 선비는 도망을 쳤습니다. 정말로 호랑이가 되어서 산짐승을 잡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와 뼈를 씹으며 울던 그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옵니다. 나졸들이 다 포위하고 있는데 당당하게 들어오다가 결국 어머니 방 문앞에서 창에 찔려 죽고, 그제야 사람으로 돌아갔습니다.
거의 다 나았던 어머니는 비참하게 죽어있는 아들을 보고 충격받아 세상을 떠버렸고, 아내는 자신이 호랑이가 아니라 사람이었던 남편을 죽게 했다는 사실에 자살하고 말았답니다.
전래동화의 호랑이 이야기는 자주 호랑이가 죽는걸로 끝납니다. 은혜 갚은 호랑이(목에 걸린 비녀를 뽑아주었더니 아내감도 업어다주고 벼슬거리도 업어다주고 했다는 암호랑이 이야기). 효자 호랑이(나무꾼을 잡아먹으려다 예전에 잃어버린 형 아니냐는 거짓말에 속아 나무꾼의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던 호랑이). 어느 쪽이든간에요.
아내는 왜 남편이 호랑이면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까요.
자신에게 인간인 남편으로서도 잘못한 게 없고 혼을 빼가는 것도 아닌데 단지 '호랑이'라는 이유만으로 잡으려 했던 걸까요.
호랑이는 아니지만 표범으로 변하는 이 언니를 키우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네. 아마 이런 동화들 때문일거예요. 저는 사람 목숨 동물 목숨 어느게 더 귀한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드래곤 라자를 읽으면서도 드래곤 라자(드래곤과 뜻을 통하는 사람? 대충 그런 의미였던 기억이)가 있는데 왜 말 라자는 없을까, 드래곤은 왜 인간 라자를 따로 두지 않는가. 오크는 드래곤 라자가 되면 안되나. 인간과 엘프와 오크와 페어리와 드래곤 등등 각 종족을 나타내는 별이 있다면, 왜 말을 나타내는 별과 나무를 나타내는 별과 개를 나타내는 별은 없는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길에서 지내는 고양이들을 막 대하고 흉물이니 요물이니 하는 걸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그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학대하는 이들과 뭐가 다른가 생각이 듭니다.
하기야, 자신 이외의 존재를 '이용대상'으로 절대로 보지 않고 모두 동등하게만 바라보면 살 수가 없겠죠. 생명이 있거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못먹을 테니까요. 어쩔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긴 합니다.
'인간의 맘에 드는 자연이란, 인간에게 이로운 자연일 뿐'이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있었죠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