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상한 세르반도니가
코드 기어스 : 총체적인 가면극
땅별
2007. 2. 15. 15:10
제로 :
반역의 검은 영웅 vs 순백의 기사
기어스 :
마인드 컨트롤 vs 마인드 리딩
브리타니아 :
인종주의 vs 민족주의
란슬롯 :
슈퍼 메카닉 vs 리얼 메카닉
카렌 :
학교 친구 vs 기사단
반역의 검은 영웅 vs 순백의 기사
기어스 :
마인드 컨트롤 vs 마인드 리딩
브리타니아 :
인종주의 vs 민족주의
란슬롯 :
슈퍼 메카닉 vs 리얼 메카닉
카렌 :
학교 친구 vs 기사단
빌어먹을. 이렇게 취향마다 직격해도 되는거냐. 코드기어스.
거대 제국 브리타니아가 일본을 합병, 에어리어 일레븐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배하게 된 지 7년째지만, 여전히 일본 독립의 기치를 내거는 레지스탕스가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버림받은 황자 루루슈는 불구인 여동생 나나리와 함께 신분을 감추고 숨어 살던 중 우연히 레지스탕스에 말려들었다가 신비의 소녀 C.C를 만나 절대 명령의 힘 '기어스'를 손에 넣습니다. 약육 강식을 몸소 실천하는 브리타니아 제국 자체가 무너지지 않는 한, 약자로 규정당한 남매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믿었던 루루슈는 그 놀라운 힘을 이용, 일본 '독립'이 아닌 '타도' 브리타니아를 외치며 자신을 '제로'로 칭하고 검은 가면을 쓰고 일어나 일본 내 레지스탕스 세력들을 '흑의 기사단'이란 이름으로 규합해 브리타니아 제국 전체에 맞서 전쟁을 선포합니다.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 앤더슨과 네오, 아나킨과 다스베이더처럼, 코드 기어스는 루루슈와 제로, 즉 가면을 쓴 검은 영웅의 모티브가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가면과 가명은 우리말로는 아주 작은 발성의 차이밖에 없는데, 사회적인 접촉에 있어서도 이 둘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가면을 쓴 상태와 쓰지 않은 상태의 같은 인물이, 사회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다르게 작용하는 두 인물로 보이지요.
특이한 것은, 이 검은 영웅들이 사회에 대해 갖는 태도는 자신을 '감추는' 가면을 썼을 때 '솔직하게' 드러나며, 가면을 벗어 맨 얼굴을 '드러내면' 오히려 모든 것을 '속이는' 가식의 얼굴로 돌아간다는 점이에요. 루루슈와 제로는 이 과정을 그대로 답습해냅니다. 너무 충실해서 오히려 저 위엄넘치는 선배님들보다도 더 원류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반역의 루루슈
재미있는 것은, '코드기어스'의 세계관은 혼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버리는 저 선배님들과 달리 자신만 가면을 쓰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선 루루슈의 오랜 친구, 스자크가 있습니다. 그의 가면은 거의 슈퍼로봇물의 주역 메카와도 같은 배경을 가진 강력한 나이트메어, '란슬롯'이죠. 명예 브리타니안으로 군에 있는 이 '일레븐' 소년이, 제국의 비밀스런 병기 '란슬롯'의 파일럿이라는 점은 아주 오랫동안 루루슈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밝혀지지 않습니다.
두번째는 카렌, 평범한 귀족 여학생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혼혈인 반정부 테러리스트죠. 이 경우 그녀의 가면은 오히려 병약해서 학교도 잘 못나오는 귀족 여학생 쪽입니다. '흑의 기사단'에서는 에이스로 갈수록 그 입지를 굳혀가지만 오히려 학교에서 힘들게 쓰고 있는 병약 미소녀 가면은 점점 불안해져갑니다.
세번째는 학생회장이죠. 겉으로 보기엔 야한 농담으로 후배들을 놀리기 좋아하는 지극히 평범한 '언니' 이미지지만 그건 가면이고, 사실은 몰락한 가문의 딸로 끊임없이 맞선에 불려나가야 하는, 그럼에도 루루슈의 출생의 비밀을 알면서도 숨겨주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고요.
이 외에도, 단 한번 자신을 구해줬던 유페미아 황녀에게 연정을 품었지만 사람들에겐 '감사 인사도 못했는데 한번 뵙고 싶어' 라고 말하는 여학생이나, 겉으로는 항복하고 충실하게 브리타니아에게 헌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반 정부 단체들을 알게 모르게 지원해주고 있는 '교토' 라는 세력의 수장, 하녀의 가면을 쓴 채 언제나 딸의 곁에 있으려 했던 카렌의 생모, 방송사 보도 담당자면서 동시에 '흑의 기사단' 단원이 되는 남자, 브리타니아의 순혈통 기사였지만 기억을 잃고 흑기사단원과 같이 지내게 되는 여성 등, 이야기는 계속해서 두 얼굴을 가진 이들, 혹은 한 얼굴에서 다른 얼굴로 변해가는 이들을 루루슈와 교차편집해서 보여줍니다.
심지어 브리타니아군의 주 무기인 인형 병기 나이트메어도 일종의 가면처럼 작용합니다. 루루슈, 즉 제로가 나이트메어 안에 탄 채 브리타니아 군 심장부에 숨어서 발각될까 전전긍긍하는 장면에서 특히. ('얼굴을 드러내라!') 브리타니아군은 덧붙여 단순한 보병조차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고, 그건 과거 가면을 착용했던 일본의 사무라이들을 연상시킵니다. 그래서인지 브리타니아는 오히려 과거의 제국주의 일본, 그리고 정복당한 구 일본은 과거의 한국처럼 보이네요. 혹자는 설정에서부터 일본인들의 피해망상이 배어나온다고 말하지만, 이야기 구조상 '일본적'인 것은 오히려 브리타니아 쪽입니다.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라고 오래된 유행가 가사도 있잖아요. 거의 그러한 발상으로 보입니다. 일종의 반성문인 셈이죠. '반딧불의 묘' 처럼요.
피지배 민족 취급받는, 이제 더 이상 일본이 아닌 에어리어 일레븐에 사는 이들. 브리타니아인이건, 명예 브리타니아인이건, 한때 일본인이었던 '일레븐'이건, 혼혈이건, 지배와 피지배가 섞여드는 이 불안정한 땅에서 살기에 그들은 두 얼굴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총체적인 가면극은, 다떼마에(겉마음)와 혼네(속마음)의 구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본인들에 대한 (어쩌면 당사자로서는 기분나쁠 수도 있는) 은유로도 보입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네오와 앤더슨이 흔히 원용되곤 했던, '온라인에서의 자아와 현실의 생활'에 대한 은유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처음부터 제로가 가면을 쓴 건 아닙니다. 그의 첫 전투는 통신기기로 모든 전투상황을 파악하고 지휘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도 하듯이요.
'제로'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역할과 작용이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주저없이 절대 명령을 내려 법을 어기고 목숨을 빼앗아요. 그건 우리가 게임을 하거나 온라인에서 블로깅을 하고 게시판에 글을 쓰고 덧글을 달때 의도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주저없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펼쳐보이죠. 하지만, '루루슈'는 나나리에게, 샤리에게, 스자크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를 전전긍긍합니다. 그래서 제로가 한 일의 결과에 흔들리는 거죠. 우리가 부모님이나 학교, 회사 사람들이 자신이 온라인에서 한 일을 보게 되면 자신을 어떻게 볼까 걱정하듯이요.
이렇듯 비단 다떼마에와 혼네를 구분하는 일본인에게만이 아니라, 인터넷과 로그인이 지나칠만큼 광범위하게 생활화된 우리 한국인들에게도 반역의 루루슈는 여러가지를 시사하는 듯 합니다. 우리들 역시 제로처럼, 스자크처럼, 카렌처럼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럼 당신의 진실은 어느쪽인가요.
가면?
아니면 맨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