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에서 서성거리기/잊고 싶은 것들
글을 쓰려면(2)
땅별
2007. 1. 2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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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뿐인가요. 짧게나마 여행도 다녀오고, 주변 사람들 붙잡고 인터뷰도 해보고, DVD 서플먼트에 실리곤 하는 다큐멘터리도 열심히 반복해서 보며 메모하고, TV에서 필요한 정보가 나오는 다큐멘터리가 있으면 녹화해서 돌려보고,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끌어모은 자료들이 모여서 세계가 되고, 캐릭터가 되고, 이야기가 됩니다.
글은 그 이야기를 전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상대방이 듣는 것'이죠. 즉, 소설이든 뭐든 글이라는 것은, 오직 한가지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읽히는 것'
중학교 국어 과정에서부터 우리는 글 쓰는 법을 배웁니다.
주제선정 → 소재 선택 → 구성 → 자료조사 → 집필 → 퇴고
소설이라고 별다르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들으려면, 우린 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그 할 말이 주제입니다. 거창하게 권선징악이니 이런게 주제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것만 같은 그런 절실한 할 말, 그게 주제입니다. 그런 게 없는 소설은 기껏해야 자신의 마음속 어딘가의 풍경을 끄집어내서 '야, 이거 어때? 근사하지?' 라고 계속 사람들을 붙잡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나 창작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내면 같은거 별로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괜히 관심도 없는 얘기를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으며 다른 이들을 귀찮게 하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헛짓거리입니다. 할 필요가 없는 짓입니다. 전할 말이 없으면 분명히 관두고, 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해야 하는 겁니다. 글을 통해서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그냥 말해버리면, 그건 소설이 아니죠.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도 이미 학창시절에 배웠습니다.
소설의 3요소: 주제, 구성, 문체
소설 구성의 3요소 : 인물, 사건, 배경
캐릭터의 강함과 약함 혹은 모에포인트, 혹은 엄청난 반전이나 놀라운 스펙터클이 기다리는 스토리, 또는 아무도 상상해본 적 없을 법한 기이하고 신비한 세계관, 이건 다 소설의 3요소 중 하나인 구성에 속합니다. 이 구성의 구체화는 자료조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어떤 분들은 다른 세계의 인물이 되어 그 세계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쓰기 때문에 우리 세계에 대한 자료조사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판타지니까 괜찮아. 라고 말할거예요. 무협지인데 뭐 어때. 이건 SF야. 아냐 난 그런 시시한 장르문학이 아니다. 이건 그냥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모아놓은 자료 같은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앞서도 말했다시피 소설은 그 어떤 목적에 우선해, 일단 '읽혀야' 합니다. 우리 세계의 독자들에게요. 그러니 당연히 우리 세계의 독자들이 (재미나 감동은 일단 저리 치우고)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세계의 독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되어선 안됩니다. 우리세계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그렇게 안하는것은 무슨 핑계를 대도 태만이고 비겁함이며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애초에 말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치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허구니까 어차피 독자가 모르는 세계, 독자가 이해하지 못할 인물이 나와도 된다는 건,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순수문학이건 판타지나 무협, SF같은 장르문학이건, 자신이 구축한 세계와 그 세계안의 캐릭터에 대해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게 알고 그걸 우리 세계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해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건 자료조사를 통해 가능한 겁니다.
정규교육과정에 글쓰기 절차가 들어간 것은, 괜히 외울 거리를 늘려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정해진 글쓰기 절차를 따르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글쓰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서 뭔가를 퍼올려봐야 아무것도 없다는건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아직 학생인 여러분, 이것만은 꼭 알아두세요.
단지 즐기기 위해서라면 상관이 없으나, 글을 써서 그 글을 팔아 돈을 받고 싶다고 말하면서, 혹은 이미 그렇게 하면서 가슴에서 터져나올것 같은 할 말도, 치밀한 준비도 없이 글을 써서 남들 앞에 읽으라고 내놓는 것은 독자를 기만하는 것이며, 정해진 절차를 따라 수없이 노력하고 있는 수많은 프로, 아마추어 글쟁이들을 모욕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덧1. 하루종일 먹지도, 눕지도 않고 생각에 잠기어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차라리 책을 읽느니만 못하더라. - by 공자
덧2. 참고 ← lumi님이 마비노기 연재만화 게시판에 올리신 창작자의 고충에 대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