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사용을 허락해주신 루미님께 감사드립니다. :) 사실을 고백하자면, 한동안 한참 어떻게 결말을 낼지 결정을 못하고 있었는데 루미님의 위 팬아트를 보았을때 겨우 저번화의 '어린애가 아냐' 부분을 떠올리고는, 그 다음을 술술 풀어낼 수 있었던 거예요. 루미님 정말정말 감사해요 ^^;
"저어기," 아까부터 계속 바닥만 내려다보며 침대에 걸터앉아있던 츠키에테는 등불 아래 책을 펼쳐놓고 그 위에 올라앉다시피 한 공주님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레 말을 건네봅니다. 이따금 자그마한 손바닥을 펼쳐 하나하나 수를 세어보기도 하며 너무나도 열중해있는 우리 공주님은 못들었나봐요. "저기 누님." "뭔데." 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짤막하게 말합니다. 차가운 얼음같은게, 왕자님의 가슴 위로 흘러내리는 것 같습니다. 언제였더라. 저런 목소리를 처음 들은 날은. 누군가 가져다 준 사탕을 먹고 사경을 헤매다 깨어난 이후로 늘 자신 외의 다른 사람에게 내뱉던 그런 목소리인데. "아, 안 주무세요?"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공주님은 쓴 웃음을 지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다시 굳어진 표정으로 츠키에테를 바라봅니다. "먼저 자. 누나 바빠." "하지만 벌써 밤이 깊었는데, 자정도 넘겼어요." "이 책을 다 해독하기 전엔 못자." "누님." 츠키에테는 결국 일어나서 츠뮤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싸안습니다. "어두운데서 책을 오래 보시면 눈 상해요." "야!" 강렬하게 날아드는 로우킥이 마침 책상위에 있던 츠뮤에게서 뻗어나옵니다. 당연히 츠키에테는 다리가 아닌 배를 맞고는 풀썩 주저앉습니다. 의외로 정통으로 맞아서인지 거의 니니엘 스승님같은 아픔을 선사해주는 누님이었네요. "으으,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배를 쥐고 있는 츠키에테를 내려다보던 츠뮤는 이내 책상에서 뛰어내려 츠키에테의 얼굴을 두 손으로 들어올려 눈을 마주합니다. 작은 손이 얼굴을 쥐는 것에 퍼득 놀라는 왕자님. "미안, 또 때려버렸네." "괜찮아요. 제가 잘못한 거니까." "아니야. 누나가 미안." 살짝 젖은 눈으로 고개를 드는 츠키에테의 얼굴에, 아홉살의 어린 츠키에테가 겹쳐보입니다. 츠뮤는 불현듯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아 들키지 않으려 그 얼굴을 와락 작은 가슴안에 끌어안습니다. "누, 누님?" "잠시만, 그냥 이러고 있어." 검은 머리칼에 동그란 볼을 묻으며 츠뮤는 눈을 감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 숨을 들이마시면 느껴지는 동생의 냄새. "내가 아무리 작아졌어도, 네가 자꾸 어른 행세를 한다 해도, 결국 넌 내 사랑하는 동생 츠키에테일 뿐인데, 몸이 작아졌다고 마음까지 줄어들어버렸나봐. 난. 오늘 하루종일 너무 미안해. 츠키." "누나." 왈칵 눈물이 배어나옵니다. 츠키에테는 다시 여섯살이 된 것처럼 그 품에 얼굴을 묻고 간신히 눈물을 참습니다. 츠뮤가 팔을 풀자 츠키는 머리를 들어 다시 금색 눈동자를 서로 마주합니다. 츠뮤는 츠키의 큰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얼굴에 가져와 푹 기댑니다. "눈은 스물 일곱군데가 귀엽고, 코는 서른 여섯 군데가 귀엽고, 귀는 마흔 네군데가 귀엽고, 입술은 아흔 여섯군데가 귀엽다고?"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이었는데도 츠뮤의 어린 목소리로 반복되자 츠키에테는 금방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떨구네요. "그렇게 많이 귀엽다는데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있겠어. 요 녀석, 여자를 너무 잘 알아." 손바닥을 살짝 꼬집으며 츠뮤는 츠키에테의 품 안으로 안겨옵니다. "우리 츠키, 먼저 자요. 누난 책 마저 볼게." 츠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츠뮤를 다시 책상위로 올려줍니다. 몸을 감싸는 싫지만은 않은 커다란 손의 느낌에 츠뮤는 츠키의 손등 위에 약하게 팔을 감아봅니다. 손이 떨어지고, 츠키는 다시 몸을 숙여 츠뮤와 눈높이를 맞춥니다. "그럼, 먼저 실례할게요. 누님." "응. 잘자."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가져가 츠키의 이마에 입맞춤. "이건 굿나잇 키스." 어릴때처럼 그렇게 감싸주는 츠뮤의 모습에 츠키는 침대에 누워서도 한참 그 작은 입술의 느낌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눈꺼풀 위를 간지럽히는 햇살에 눈을 떠보니 벌써 창밖이 훤히 밝아왔습니다. 책상위에 마법서는 거의 마지막 페이지가 펼쳐져 있어 표지가 햇빛에 반들거립니다. 츠키에테는 몸을 일으키며 눈을 돌려 누님을 찾습니다. 피곤하다면서 자기 팔 밑에 기어든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냥 잠이 들어버렸죠. 이상한 생각을 안하게 돼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츠키에테는 뒤를 돌아보려다 문득 손에 걸린 이불이 아닌 천조각을 내려다봅니다.
츠뮤가 입고 있던 조그만 드레스가 길게 쭉 찢어져 있네요. 그리고 그 드레스를 꽉 붙잡고 있는 손은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여자의 손. 흰 손목과 매끈한 팔과 어깨 아래 붉은 머리칼이 흩어져 흘러내려 있습니다. 오목하게 들어간 허리 아래로는 이불에 덮여 보이지 않았지만 옆으로 뻗은 두 팔 아래는 (물론 파피엘보다는 작은 편이지마는) 성숙한 가슴이 살짝 엿보이고, 그리고 자신이 일어나 앉았으니 이제 햇살이 그 금색 눈동자를 깨울 차례입니다. 츠키에테는 지금 상황을 정확하게 깨달았습니다. '누님이 내 침대에 나신으로 누워 있다?'
"으음." 예쁜 손가락이 금색 눈동자를 살짝 가리며 흐트러진 얼굴이 조금씩 일으켜세워집니다. 츠키에테는 얼른 돌아섰습니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간신히 억누르면서요. 츠뮤는 아직도 눈을 제대로 못뜨고 있다가 문득 자기 손에 걸려 있는 것이 어릴 때 입던 그 드레스의 찢어진 조각이란 것을 깨닫고는 퍼득 고개를 듭니다. 잠에서 막 깨어난 왕자님의 얇은 옷차림이 공주님의 눈에 들어옵니다. 잠시 둘 다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아니, 무슨 말을 하겠어요. "츠키." 침묵을 깬 건 공주님. "아, 저, 그...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저도 몰랐고, 아니, 저기 싫다는 건 아니, 아니아니아니, 그러니까 누, 누님 저기," 횡설수설을 마무리 지을 만큼의 이성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츠뮤는 한 손으로는 이불을 끌어당겨 가슴을 가리며 다른 손에 잡히는 베개를 있는 힘껏 휘둘러 던졌습니다. 퍼억. "내 옷 가져와. 빨리!" 베개와 함께 건너편 벽에 처박혔던 츠키는 완전 부활한 무시무시한 얼음공주님의 나신을 보지 않기 위해 아프다는 내색도 전혀 없이 최대한의 속도로 방을 뛰어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공주님의 저주는 누가 건지는 결국 모르는 채 풀려났습니다만, 아마 그 마법서 말이에요. 츠뮤가 미처 읽지 못한 마지막 쪽 쯤에 그런 말이 있었을 거예요. 수백쪽에 이르는 저주의 원리에 대한 설명 끝에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