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메카린 이야기 AU : 누님이 줄었어요 (4)
"그러니까,"
파피엘은 머리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집게손가락을 입술 위로 가져갔습니다.
"지금은 여왕 눈에 띄면 안된단 말이지. 리틀 츠뮤."
"그 '리틀' 이란 말은 좀 안넣으면 안될까요? 사랑하는 동생님? 레비 보고는 리틀 레비라고 안하면서."
"시끄러 언니야. 내 맘이야."
"아우. 그래그래. 맘대로 하세요."
니니엘은 이제 될대로 되라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소파에 기대 앉았고, 파피엘은 쿠키 하나를 입에 넣으면서 얼른 츠키에테를 돌아보았습니다. 일종의 대책회의예요. 레바엔의 두 손에 커다란 책이 하나 들려있다는게 문제지요.
"이거 츠키 방에 있더라."
턱 하고 떨어지자마자 펼쳐지는 책 한쪽에는 어른이 아이가 되는 그림이 그려져 있네요. 책 위로 기어올라가 찬찬히 살펴보던 츠뮤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단정하고 냉랭한, 얼음공주같던 그 표정에 파피엘도 입가에 웃음을 지웁니다.
"이거야."
"네?"
츠키에테는 멍한 눈으로 누님을 내려다봅니다.
"이게 지금 내가 걸린 저주라고. 이게 왜 네 방에 있지?"
"츠키에테 저 녀석이 저지른 짓이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츠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거나."
레바엔은 별로 감정없이 읊었지만 츠키의 표정은 점차 굳어만 갑니다. 니니엘도 마찬가지고요. 파피엘은 아예 인상을 쓰며 츠키를 돌아봅니다.
"왜들 그런 눈으로 보시는 거예요? 제, 제가 이런 짓을 할리가 없잖아요!"
"있는데?"
파피엘의 눈이 가늘게 떠집니다. 조사하면 다 나와. 와 비슷한 느낌의 시선에 츠키에테는 고개를 떨구었다.
"정말 저 아닙니다. 누님. 절 믿으시죠? 제가 그럴리가 없다는거 아시죠?"
츠뮤는 아직도 책 위에 앉아서 츠키의 얼굴을 올려다봅니다. 정말로 그런거 같은데. 저런 서글서글한 눈매로, 저런 매끈하게 흘러내리는 턱선으로, 저런 은은한 입술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여튼, 지금 공주님의 상태에 대해선 여기 모인 우리들 외엔 아무도 몰라야 합니다. 그건 다들 인정하죠?"
니니엘이 입을 열자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럼 우리 이쁜 리틀 츠뮤를 숨겨야 하잖아. 어디다 숨겨?"
"그 책에 저주를 푸는 방법이 있어요? 공주님?"
"있어요. 하지만, 여기만 고대어라서 해독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좋아. 그럼 그 책과 함께 왕자님의 방에 숨도록 해요. 이 왕궁에서 가장 은폐된 곳이니까."
버림받은 왕자가 돌아와서 지내는 곳이니만큼 여왕의 시선이 가장 닿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만, 그렇다는건 방이 꽤 비좁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자, 잠깐만!"
"남매간이잖아. 하루 이틀 같이 자는 정도는 괜찮지 않아?"
"그래도."
"아항. '같이 잔단' 말이지? 손만 잡고 자! 쪼그만 것들이."
파피엘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났습니다. 츠키에테는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보지만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는 츠뮤의 시선을 피할 수도 없지요.
"자. 회의 끝. 그 여자가 각료를 모을 때가 됐어. 니니 언니랑 나는 내려가봐야하니까, 얼른 이동하도록! 리틀 츠뮤!"
"네네넵!"
자기도 모르게 예전에 검을 배울때처럼 인사를 해버리는 츠뮤가 너무너무 귀여워서 파피엘은 또 얼른 얼굴을 끌어안고 쓰다듬어줍니다.
"아유. 귀여워라. 꼭꼭 잘 숨어있어야해? 그럼."
"나도 가볼게."
레바엔도 얼른 일어나서 어둑어둑해지는 창밖으로 사라집니다. 체구가 작다고는 하지만 왜 꼭 창문으로 다니는 건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또 둘만 남았네요. 츠키는 얼른 작은 츠뮤를 안아듭니다.
"자, 그럼 제 방으로 가죠. 누님."
"야! 내려 놔!"
어깨를 내리치는 조그만 주먹에 팔 힘이 빠져 그만 누님을 떨어뜨릴 뻔 했습니다만 간신히 몸을 추스를 수 있었던 츠키에테였습니다.
"지금의 누님 걸음으로는 그 계단을 오르기 힘들어요."
"뭐가 힘들다는 거야! 안 내려놓을래?"
"아야얏!"
귀를 잡아당기는 누님의 손 때문에 결국 츠키에테는 누님을 얼른 내려놓았습니다만, 커다란 마법서를 턱 덮어서 힘겹게 들어올리는 츠뮤를 보면서 결국은 웃음짓고 맙니다.
"제가 들게요. 누님."
한 손에는 마법서를 들고, 한 손에는 츠뮤의 작은 손을 붙잡고, 동쪽 탑을 오르는 계단에 이르러서 츠키에테는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 츠뮤의 몸으로는 거의 기어오르다시피 해야 하는 가파르고 높은 나선계단입니다만. 츠뮤는 지금 자기 힘으로 계단을 오르려다가, 네 계단쯤 기어올라서는 그 자리에 걸터앉아서 숨을 몰아쉽니다.
"누님. 제가,"
"됐어! 먼저 올라가. 천천히 따라갈테니까."
츠키에테는 한숨을 쉬며 계단을 오릅니다. 뒤를 자꾸 돌아보면서. 방을 열고, 마법서를 좁은 탁자위에 내려놓고, 금방 또 츠뮤가 걱정되어 계단을 내려오는 츠키에테였습니다. 그리고 츠뮤는, 눈물을 흘린 것을 감추려고 얼른 고개를 돌립니다.
"누님. 그냥 제가 데려다드릴게요."
손을 내밀자 츠뮤는 눈물을 닦으면서 그 팔을 붙잡아 츠키에테의 품에 안깁니다. 여전히 고개는 돌린 채로.
"바보같이, 가랜다고 그냥 가니. 옛날부터 넌 하여튼."
"하지만 누님이,"
"됐어."
츠뮤는 팔을 뻗어 츠키의 어깨를 붙잡고, 츠키는 성큼 성큼 계단을 올라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정돈이 잘 되어 있진 않은 어지러운 좁은 방안에 츠키의 냄새가 가득 차 있네요. 허름한 나무 탁자 위에 마법서. 하녀들도 불편하다고 마다할 높고 좁은 침대 하나. 그리고 열려있는 벽장. 이런 방에서 계속 지내온 건 알았지만.
"내려놔."
"하지만 지금 이래저래 자리가 어린 아이에겐 불편, 악!"
"내가 어린애로 보여?"
츠뮤와 눈이 마주칩니다. 츠키에테는 눈물에 살짝 젖어 있는, 자신과 똑같은 그 금색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마음 속에 무언가가 찰랑이는 그 느낌을 꿀꺽 목 뒤로 삼켰습니다.
"어린애가 아냐."
츠뮤의 입술이 다가와 츠키에테의 입술위에 포개집니다. 작은 입술의 느낌에 츠키에테는 눈을 감았습니다. 잠시 입술끼리 흔들리고, 숨이 가빠지며 벌어지려 할때에 츠뮤는 고개를 돌리며 츠키에테를 확 밀치며 바닥에 넘어졌습니다.
"누님!"
내미는 손을 뿌리치며 일어서는 츠뮤. 츠키에테는 잠시 입술을 매만지며, 창가로 걸어가는 츠뮤의 좁은 등을 내려다봅니다.
"누나."
"방금거, 잊어버려. 가능하면 빨리."
서운한 마음에 츠키는 고개를 숙이며 저릿한 느낌을 가슴 아래로 밀어내리려 하지만, 살짝 돌아보는 츠뮤의 눈가에서 볼을 타고 흐르는 한줄기 눈물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나중에 딴소리하면 죽어."
약간의 울먹임이 배인 목소리와 작은 주먹이 흔들립니다. 츠키는 애써 웃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