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별 2006. 9. 26. 18:26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육군훈련소에 입소했을 때, 훈련소장이라는 그 별 두개짜리 '아저씨'는 저를 포함한 수많은 청년들을 향해 이렇게 말을 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이제부터 '아저씨'가 되는 겁니다."

심장이 턱 하고 멈춰버릴 것 같은 끔찍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습니다. 그 뒤에 '자신과 가족에 대해 책임을 지고 조국과 국가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가 이어졌지만 그건 그 당시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저씨가 된다.

내가 아저씨가 된다.

내가 아저씨가 된다.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말은.

제가 '아저씨'라는 단어를 통해 연상하는 가장 첫번째 이미지는, 지하철 의자 한가운데 눕듯이 앉아 양 무릎은 넓게 쩍 벌리고 머리를 옆으로 꼬며 침을 질질 흘려가며 자고 있는 나이 든 남자의 모습입니다. 양 쪽에 어떤 사람들이 앉아있든 개의치 않고 머리를 주억이고 몸을 기대면서 말이죠.

두번째 이미지는, 후줄근한 잠바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머리를 꼿꼿하게 치켜들고 팔자 걸음을 걸으며 공공 장소에서 코와 입으로 연기를 물씬 뿜어내며 황홀한 듯 담배를 피우다 바닥에 가래침을 퉤에엑 하고 뱉는 그런 나이 든 남자의 이미지입니다. '뭘 쳐다봐?' 내지는 '니가 여기 주인이냐?' 와 같은 인상의 눈빛이 중요해요.

세번째 이미지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 상 앞에 앉아야 하는 음식점에서 밥그릇에 담뱃재를 털면서 웃도리를 벗어 던지고 허리띠도 풀면서 '어이 아가씨!' 내지는 '어이 아줌마!'('어이'가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아주 커다란 목소리로 손을 들어 종업원을 재촉해대서 겨우 반찬이나 더 내놓으라고 아기처럼 투정을 부리는 그런 나이 든 남자의 이미지입니다. '여기 뭐 서비스가 이래애~ 이럼 다시 안와버려~' 와 같은 목소리에 술기운이 가득 담겨있기도 하지요.

우린 보통 아저씨라는 호칭을 존중이나 존경을 떠나 '인정'하는 대상에게도 잘 쓰지 않습니다. 아주 평범해 보이는 보통의 행인 중에서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남자를 향해 약간 비하하는 느낌으로 말하곤 하죠. '어이 아저씨! 여기 들어오면 안돼요.' 물론 모두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상대를 깔보거나 낮춰보는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제게는 이상하게 그런 소리가 더 많이 들려왔답니다.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소위 말하는 '나이스 미들'이랄지, '신사분' 이랄지, '선생님'이라고만 불러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중년의 남자는 매우 찾기 힘듭니다. 저만 그런건진 모르겠는데, 거리에서건 학교에서건 직장에서건 정말 보기 힘들어요. 나이가 들고 나면 이상하게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에티켓도, 매너도 다 사라지고 남는 건 '젊은 사람들이 거 왜 이래?' 라든지 '장유유서 몰라? 엉!' 과 같은 호통 뿐이죠.

돈이 많은 '아저씨'들은 비싼 술집에서 젊은 여성들을 양 팔에 감고 히히덕대며 해외 관광을 나가면 현지 여성의 성을 돈을 주고 구매하곤 합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전에 물의를 일으켰던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처럼, "술집 주인인줄 알고 그랬다." 는 변명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정도로 세상 모든 여자들을 대상화하고 '먹는 것'처럼 인식하게 되어버리는 거죠. "나이 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릴 다니네"(서태지와 아이들 - 시대유감 中)요.

돈이 없는 '아저씨'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지하철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옆에 앉은 젊은 여성에게 자기 엉덩이를 밀착시키고 붙어 앉아 조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팔꿈치로 가슴을 건드리는 모습을 한두번 본게 아닙니다. 만원 버스 안에서 일부러 여자들 등 뒤에 몸을 붙인다던지, 어린 여학생이 힘들게 사람들 틈을 비집고 올라타는데 도와주는 척 하면서 슬쩍 슬쩍 더듬는다든지. 그런 자들은 제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거의 다 '아저씨'예요.

그들에겐 아무런 염치도 남아있지 않은 걸까요? 집에 돌아가면 그 '아저씨'들은 아이들에겐 아버지고, 선량한 '아줌마'들의 남편일텐데. 어째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 나오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거죠? 아니, 설마 그 많은 남자들이 다 아이들에겐 관심도 없고 아내를 마구 부려먹으면서 속으로는 바람필 궁리나 하는 그런 추악한 존재들인 건가요? 그러면서 누군가 그들의 잘못된 행동에 용감하게 제재를 하려 나서면 자신들이 얼마나 개발독재 시대에 그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이 사회를 일으켜 세웠는데 그 열매는 우리들이 다 따먹고 있다든지, 그러니 어른공경을 할 줄 알아야지 너희들이 이렇게 어른 앞에서 눈 똑바로 뜨고 바락바락 할 말 못할 말 다 챙기면 안되는 거라든지 하는 소리를 해가며 자신들은 끝까지 아무 잘못도 없고 오히려 희생자, 피해자, 순교자인 양 시늉을 합니다. 최연희처럼 '다 잊고 싶다'면서요. 토할 것 같아요.

담배를 너무 피워서 "검게 물든 입술," 술이라면 아무거나 막 들어가는 튀어나온 배 위에 걸쳐진 까만 가죽 허리띠, 땀냄새 나는 멀건 와이셔츠. 살집에 눌려 길게 찢어진 눈속에 희미하게 탐욕이 가득 배인 눈동자. 온 세상 남자들을 예비 성범죄자로 만든 그 한심하게 훤한 머리 속과 손가락.  

전 결코 그런 '아저씨'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제발 절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아줘요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