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와지의 숲/반지의 제왕 인물 리뷰
반지의 제왕 인물 리뷰 10. 빌보 배긴스
땅별
2006. 6. 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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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서면, 한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돼. 어물쩡 거리고 그냥 가다간 길이 널 어디로 데려갈지 아무도 모르거든."
대대로 부유한 배긴스 집안의 상속자 붕고 배긴스는 씩씩한 아가씨 벨라도나 툭을 아내로 맞아 슬하에 빌보 하나만을 두었다. 벨라도나의 마음에 들게 하도록 그는 호비턴에서 제일 화려하고 멋진 굴집을 팠는데, 워낙 대규모 공사였기에 툭 집안에서 보낸 결혼 지참금까지도 공사비에 보탤 정도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백엔드에서, 빌보는 어머니 쪽 가계에서 물려받은 모험심과, 아버지 쪽 가계에서 물려받은 차분한 성격 모두를 내면에 간직하며 자라났다.
50세가 되었을 때 마침내 그의 외가쪽 성격은 간달프의 자극으로 밖으로 튀어 나올 수 있었고, 그는 일생을 바꾼 대모험을 하게 된다. 참나무 방패 소린을 포함한 유랑하는 난쟁이 왕족 열 두 명과 간달프와 함께 외로운 산을 차지한 드래곤 스마우그를 처치하러 떠난 것이었다. 빌보는 도둑 클래스로 이 파티의 일원이 되었는데, 무한 클로킹이 가능한 아이템 절대반지를 입수함으로써 도둑으로서의 임무를 매우 성실히 수행하게 된다.
이 모험길은 동로를 따라 리벤델을 지나서 안개산맥을 넘어 어둠숲과 호수 도시를 거쳐 목적지인 외로운산에 이르렀는데, 빌보는 그 와중에 트롤 셋을 만나 고초를 겪기도 했고(그들이 해가 뜰 때까지 요리법을 두고 옥신각신한 결과 돌이 된 결과물은, 프로도가 마술사왕의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맬 때 일행이 아셀라스 풀을 찾은 근처이기도 하다), 안개산맥을 넘다 고블린과 싸우기도 했다. 어둠숲에서는 거미떼를 만났다가, 요정들에게 붙잡힌 난쟁이들을 구출해 강을 타고 호수도시에 이르렀고, 외로운 산에서는 드래곤이 죽은 뒤에 보물을 차지하고자 하는 인간과 요정과 난쟁이와 오르크들과 와르그(늑대) 떼거리까지 모두 모여 다섯 군대의 전투라고 불리게 되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무언가 재미나지 않은가? 반지 원정대의 여정과 비교해보자. 프로도도 동로를 타고 내려오다 나즈굴에게 고초를 겪고, 리벤델을 지나 안개산맥을 넘으려다 모리아에서 고블린에게 쫒겼으며, 로스로리엔에서는 강을 타고 내려갔다. 거미 여왕 쉴롭과도 싸웠으며, 샘은 프로도를 구출해냈다. 헬름 협곡과 미나스 티리스, 검은문에서는 엄청난 전투가 벌어졌다. 그들의 모험은, 결국 빌보가 겪었던 모험의 확장판인 셈이다. 심지어 마지막 전투에서 위기에 처한 순간에 독수리가 구해준 것까지도 똑같았다. 피핀이 "독수리다! 독수리가 와요!"라고 외쳤던 것처럼, 빌보도 다섯군대의 전투 와중에 독수리를 보고 기쁨에 겨워 크게 외쳤던 것이다.
모험길 중 안개산맥 어딘가에서 고블린에게 쫒겨 땅속을 헤메다가, 그는 골룸이 잃어버린(정확히는 골룸을 내버린) 절대반지를 줍게 된다. 그리고 골룸을 만나 수수께끼 놀이를 하게 되고, 그 마지막 승부는 이렇게 났다.
"내 주머니에 있는 게 뭐지?"
전통적인 수수께끼 놀이에는 맞지 않는, 평문의 문제였지만, 골룸은 이것에 답을 하려 했기에 결과적으로 지게 된 것이다. 주머니에 있던 건 골룸의 소중한 보물이었고, 그리하여 빌보는 엉겁결에 반지를 낀 채 골룸으로부터 달아나다가 마침내 땅속에서 탈출한다.
이 후의 모험에서도 그는 수없이 반지를 사용했고, 모험에서 돌아와서도 그는 반지를 종종 쓰곤 했다. 그가 반지를 자꾸 쓴 것은, 호비턴에서의 그의 생활이 결코 즐겁지많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사촌과 결혼한 로벨리아는 빌보가 떠나서 돌아오지 않자 자신이 백엔드를 상속받으려 했고, 한참 그녀가 그 일을 실행하던 차에 빌보가 다시 나타나게 되자, 두 호빗은 이후 평생의 앙숙이 된다. 빌보는 그녀의 눈에 자신이 발각되는 것조차 싫어했고, 그래서 길을 가다가도 멀리서 로벨리아를 보면 주저없이 반지를 끼곤 했다.
이렇게 늘 반지를 지니고 자주 사용한 결과, 빌보는 그후 60년의 세월이 흘러도 여느 호빗과 달리 늙지를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간달프는 의심을 하지만, 간달프가 아는 바로는 빌보의 외가인 툭 집안엔 유독 장수한 노인들이 많았기에 (130세라는 최장수 호빗 기록도 툭 집안의 유명한 '툭 노인'이 갖고 있었다. 이는 후에 빌보에 의해 깨어진다.) 시간을 두고 계속 지켜보는 실수를 하게 된다.
"호빗들과 친해서 눈이 먼 거로군."
사루만의 지적은, 어느정도 사실이었다.
반지는 물론 계속 빌보의 곁에 머물러 있었지만, 빌보는 놀랍게도 그 반지를 스스로 남에게 주는 과업을 달성해냈다. 간달프가 아는 한 이는 빌보만이 할 수 있었다. 이실두르도, 골룸도 모두 반지가 그들을 버렸던 것이지만, 빌보만은 자신이 반지를 버린 것이다. 반지는 프로도에게 상속되어, 마침내 운명의 산으로 끌려가 파괴되고 만다. 그 시작은 빌보가 반지를 포기한 그 위대한 행위에서 비롯했기에, 요정들은 빌보 역시 반지 운반자로서 충실한 예우를 해 주었고, 그는 리벤델에서 귀한 손님으로 여생을 보냈다.
시와 노래에 능하고, 요정어로 된 수많은 가운데땅과 누메노르의 옛 기록들을 찾아 서방 공용어(그러니까, 영어)로 정리하곤 했던 이 노학자는 마침내 최장수 호빗 기록인 131세를 기록하게 된 어느 날, 요정들과 함께, 그리고 사랑하는 프로도와 함께 발리노르로 떠나게 된다. 안정적이었고 유복했던 청년시절과 장년기의 위대한 모험, 그리고 방대한 지적인 모험 속에서 누구보다도 안정되게 살아온 노년기. 결혼도 하지 않았고 사랑도 하지 않았지만 빌보는 언제나 떠나고픈 모험심과 정착하고픈 마음 사이에서 그 둘의 균형을 잡아가며 긴 생애를 살았고, 그의 삶은 그것만으로도 충실하고 위대했다. 그가 남긴 숱한 저서들이 대대로 호비턴과 웨스트마치에서 필사되고 증본되며 후대에 전해진 덕분에, 오늘날 우리들도 반지 원정대가 결성되기 전의 가운데땅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