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와지의 숲/반지의 제왕 인물 리뷰
반지의 제왕 인물 리뷰 5. 김리
땅별
2006. 6. 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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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인의 아들 김리
요정친구
난쟁이들은 본래 요정이나 인간과는 근본을 달리하는 족속이다. 저주받은 오르크조차 요정을 끔찍하게 변형시켜버린 결과물이지만, 난쟁이는 그들과는 전혀 다르며 친척 관계는 전혀 있을 수가 없다. 이유는 요정이나 인간, 발라(신족), 마이아(반신족) 등 가운데땅과 발리노르를 포함한 세계 '아르다' 안의 모든 거주민들은 본래 세상 밖의 절대신 '일루바타르'의 창조물이지만, 난쟁이는 발라 중 한명인 대장장이 신 '아울레'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본래 난쟁이는 지상에 무언가 자라나는 것이 있기도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무와 숲 등에 대해서는 조금의 애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애정을 갖는 것은 땅 속 깊은 곳에서 뻗어나가는 금속 광맥과 보석들이고, 이는 숲속에서 처음 눈을 뜨고 살아온 요정족이 숲에 대해 갖는 애착과 꼭 같다.
그리하여, 대장장이 신 아울레를 본받았는지 온갖 놀랍고 정교한 세공 기술들을 발전시켜나갔음에도 이들은 요정의 기준에서는 추한 외모와, 숲에 대한 사랑이 전혀 없이 함부로 그들의 도끼를 휘둘러 나무를 베어 쓴다는 점에서 요정들과는 가까워질래야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아득한 고 시대에는 이들 사이에 교류가 있어, 많은 요정왕국들이 난쟁이들과의 교역으로 얻은 무기로 무장을 하고, 난쟁이들에게 하청(?)을 주어 공사를 마친 난쟁이 양식의 암반을 파들어간 궁전에 거처를 마련했다. 은둔 왕국 도리아스의 메네그로스(천의동굴)는 그 대표격이다. 물론, 그 당시에도 있었던 거대한 난쟁이들의 지하 도시 카잣둠(요정의 땅에선 너무 멀리 있어 아무도 가보지는 못했다고 한다)에 비하면 장난감 수준이었다. 이 시대말에 도리아스는 난쟁이들과의 불화로 멸망했다고 한다.
고 시대에 자리잡았던 요정왕국의 터전들은 물론 전쟁과 재해 등으로 인해 두 시대를 지나는 동안 모두 아득한 바닷물에 잠겼고, 그 당시에는 '동쪽 저멀리 안개산맥'에 있다는 '카잣둠'이 지금은 가운데땅의 서쪽 중간쯤의 위치가 되어버렸다. 2시대 말기와 3시대 초기까지 사우론과의 전쟁으로 인해 요정왕국들은 대부분 황폐화되어 자취를 감추었고, 이제는 모리아라고 불리는 카잣둠에 살던 난쟁이들은 드래곤이나 고블린과의 거듭된 전투,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느새 아득한 땅 속에 숨어들어 잠들어 있던 발로그를 깨운 사건 때문에 가운데땅 자체 만큼이나 기나긴 역사를 자랑했던 모리아를 등진 채 떠돌이가 되고 만다.
빌보와 함께 모험을 떠났던 열두 난쟁이 중 하나였던 발린은, 드래곤 스마우그에게서 재산을 어느정도 되찾게 되자 세력을 규합하여 모리아로 향한 뒤, 글로인 등과 소식이 끊어진다. 열 두 난쟁이들은 본래 모리아에 살던 두린족 난쟁이들의 후손으로, 이들은 세상에 처음 눈을 떴던 난쟁이들의 시조 '두린'의 이름을 계속 이어받은 직계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했는지 글로인과 그 아들 김리는 그들에 대해 희망적으로 생각했지만, 간달프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고 결국 아득히 위대한 조상의 영이 서려있는 모리아에 들어서서 만난 것은 난쟁이들의 융숭한 손님대접이 아니라 고블린과 발로그였다.
모리아는 수천년전부터 있어왔기 때문에, 김리가 그 안의 도시를 보며 느낀 감정은 아마도 우리가 피라밋이나 파르테논 신전을 볼때 느끼는 그런 감정에 경탄과 경외심과 자긍심까지 가득 붙은 것일 터였다. 그런데 그 곳이 친척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는 것은 참담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엘론드의 비밀 회의에 불려온 난쟁이들은 대체로 빌보와의 모험 이후로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외로운산이나 철산 등에 눌러앉아 새로 세력을 규합한 부유한 난쟁이 군주들이었다. 항상 자신의 부를 늘리고 유지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자신과의 은원관계만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잊지 않는 난쟁이들이건만, 가운데땅 전체가 위기에 몰려 있다는데 요정들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는 모리아와 요정 왕국 에레기온이 손을 잡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사우론과의 전쟁 때에 모리아의 문은 닫혀버렸고, 이는 요정들이 효과적으로 사우론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난쟁이들이 적극적으로 요정들과 함께 전장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레골라스와 김리는 이 문제에 대해 옥신각신 하곤 했지만, 이들의 감정이 일소에 사라진 것은 로스로리엔에서였다.
김리는 본디 난쟁이들이 다 그렇듯 로스로리엔 숲에 대해 공포심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은 결코 요정과 다르지 않아서 갈라드리엘 마님을 알현하고 나서는 온통 그 분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과 숭배의 감정이 마음에 가득차게 되었다. 이로 인해 레골라스와도 화해하게 되었고,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 난쟁이가 요정의 친구가 된 것은 그가 처음일 것이다.
난쟁이에 대해서 적대적인 것은 어느 곳의 요정들이나 같은데, 로스로리엔과 같이 은둔해 있어 보안이 중요한 곳에서는 더했다. 자존심만큼은 키에 안어울리게 하늘을 찌르는 난쟁이나으리이신 김리에게 이러한 대접은 꽤 참기 힘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갈라드리엘 마님이 작별 선물로 어떠한 것을 원하냐고 물었을 때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며 굳이 주시겠다면 머리칼 한올을 기념으로 받았으면 한다고 답하여 요정들을 놀라게 했다. 난쟁이들은 탐욕적이고 재물만 밝힌다는 것이 대부분의 요정들이 가진 고정관념이었으며, 이는 상당부분 사실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김리가 받아든 갈라드리엘의 머리칼은 난쟁이의 기술로 투명한 수정 안에 보관되어 대대로 가운데땅에 남게 되었고, 갈라드리엘이 가운데땅을 떠난 후에도 남아서 3개 시대를 살아왔던 위대한 여왕의 기억을 남겨주었다.
갈라드리엘 마님에 대한 숭배의 감정이 난쟁이의 자존심과 결합되어서, 그는 에오메르가 숲의 여주인에 대해 실언을 하자(김리 자신도 로스로리엔에 들어서기 전에 같은 실언을 프로도에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자신의 도끼를 걸며 '그 분에 대해 올바르게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겠다고 분개한다. "난쟁이의 도끼질을 받으며 요정을 칭송하는 법을 배우는" 희한한 시대를 도래하게 만든 셈이다.
안두인 강에서는 레골라스와 한 배에 탔고, 로한에서는 항상 레골라스가 탄 말에 함께 탔던 김리는 고통과 죽음의 기다림이었던 검은문 전투에서도 레골라스와 나란히 함께 있었고, 먼 훗날 레골라스가 배를 타고 가운데땅을 떠나기로 했을 때 노년이 되었음에도 그와 함께 발리노르로 가기로 결정한다. 물론 이 결정에는 먼저 떠난 갈라드리엘 마님을 한번 더 뵙고 싶다는 마음도 작용했을 것이다.
자존심과 직선적 성격, 억센 의지 등으로 대표되는, 다분히 난쟁이다운 김리였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은 결코 요정이나 인간의 관점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강인함은 곳곳의 전장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오르크를 베며 세상이 시작된 이래 수없이 들린 그 난쟁이의 외침 "바룩 카자드! 카자드 아이메누!"를 울려퍼지게 했지만 덧붙여서 헬름 협곡 안 동굴의 아름다움도 발견하고(레골라스가 팡고른에 들어섰을때 느낀 경외심과 같은 것이다) 미나스 티리스의 성문과 거리 곳곳을 난쟁이의 솜씨로 훌륭하게 새로 단장하기도 한다. 파괴하기 보다는 만들어내고 보살피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난쟁이나 요정이나 꼭 같았지만 그들은 다만 그 대상이 달랐다는 데서 서로 반목할 수밖에 없었고, 김리 대에 이르러서 두 종족간의 오랜 반목이 마침내 화해로 결말을 맺었다는 것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